저벅 저벅 저벅
경찰서장이 나가보라고 할 때는 쿨하게 나가더니, 사무실도 들어가지 않고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팀원들이 신해수가 내려오자 우르르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장이 뭐라디?”
“청장님이랑 식사 약속이 있답니다.”
해수의 담담한 대답에 팀원들의 눈이 확 커졌다.
“드디어 위에서 선배님을 알아보셨는가!”
“청장님이랑 식사라니, 부럽다. 맛있는 거 먹겠지?”
“그게 문제냐? 아무튼, 이건 우리 팀의 경사다 경사, 오잉 신경사 경사네? 그래서 경산가?”
“아저씨 재미없어요.”
*
강진시 변두리에 있는 경치 좋은 갈빗집.
드르륵
“여깁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강진서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섰다. 먼저 와 있던 청장이 웃으며 일어나 반겼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따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듯하네요.”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그런데 신경사는?”
“그게...”
서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뒤를 힐끔거리다가 대답했다.
“출발 직전에 출동이 터졌는데, 꼭 가야 한다고...죄송합니다.”
“아, 아? 하하하!!”
청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서장에게 자리를 권했다.
“정말 듣던 대로군요. 강력팀이 출동이면 한시가 급한 일일 텐데, 당연히 가야죠, 경찰이라면, 괜찮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서장은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청장이 신해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며 고기도 들여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색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1시간 같던 10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왔나 봅니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청장을 보고는 허리를 절도 있게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경찰을 열심히 빛내주고 있는 우리 신경사, 반가워요.”
청장이 먼저 손을 내밀어 해수도 마주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손에 피가 묻어있다. 그는 재빨리 바지에 피를 문지르고는 맞잡았다.
“영광입니다. 경사 신해수입니다.”
“내가 영광이지, 앉아요. 앉아, 여기 이제 갖다 주세요.”
“네, 들이겠습니다.”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주변은 조용하고 전경이 좋은 소갈빗집, 갈비는 직원이 직접 굽고 잘라주기까지 하고 물러났다.
“들어요. 마음 같아서는 더 좋은 데 데려가고 싶은데, 요즘 경찰이 모여서 비싼 거 먹기 조심스러워서.”
서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강진시에 있는데도 몰랐네요.”
“아직 입도 안 댔으면서, 얼른 들어요. 신경사도”
청장은 해수에게만 그릇에 고기를 하나 올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청장은 검지로 해수의 옷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피는 누구 건가?”
“살인미수 현행범의 것입니다. 칼을 들고 덤비기에 제압하는 과정에서 튀었습니다.”
“그렇군, 그랬어, 허허, 역시 현장 사람이 오니 현장 얘기도 생생하네! 열정 있던 시절 생각나고 좋아요.”
“감사합니다.”
옆에서 강진서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기만 열심히 집어 먹고 있었다.
그도 알고 있다. 메인은 신경사고 자신은 면세우기용으로 덤으로 불렸다는 것을, 하지만 서장은 고기를 매우 좋아했다.
‘맛있다. 역시 남이 사주는 게 최고야.’
“우리 신경사 별명이 물리치료사라면서요? 범죄자들 관절을 이리저리 다 망가트린다고”
“죄송합니다.”
“아아 죄송할 게 아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경찰이 범죄자를 잡는데 쟤가 날 공격할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흉기를 숨기고 있는지 들고 있는지, 그런 거 다 생각하고 제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나라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경찰들이 몸을 사리는 거지.”
윗사람에게 매번 과잉진압으로 징계를 먹고 경고만 받았는데, 지금 기준으로 가장 위라고 할 수 있는 청남 경찰청장이 자신의 편을 든다? 해수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여기 와서 처음으로 진심이 묻은 눈빛을 하고 대답했다.
“항상 고쳐졌으면 했던 부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미안하지요. 이 자리에 올라서도 몸 사리느라 고치지 못해서, 신경사같은 참 경찰이 많아지면 참 좋겠어요.”
해수는 입안에 있던 갈비를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저는 참 경찰이 아닙니다. 애초에 목표도 국민의 안녕과 질서 유지, 치안 강화 이런 게 아닙니다. 저는 정의로운 경찰이 아닙니다.”
해수의 말에 청장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몸을 더욱 숙였다.
갈비를 열심히 먹던 서장이 멈칫했다.
“그럼 신경사가 경찰일을 하는 목적은 뭔가? 권력이나 돈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특진을 위해서?”
“특진을 많이 하면 현장에서 못 뛸 수 있으니 그것도 걱정입니다. 범인을 잡는데 현재 계급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청장이 놀란 눈을 하자 해수가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재범률이 매년 올라가고 있습니다. 전과 9범, 10범 이런 전과기록을 가진 전과자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답은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응징이 약하다.”
청장은 홀린 듯이 집중하여 해수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재범률 낮추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쁜 놈들 잡을 때 나쁘게 잡는 것밖에 없다고.”
“나쁜 놈들을 나쁘게 잡고싶다라...”
청장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서장이 웬일로 먼저 입을 떼었다.
“실제로 신형사가 내주서에 있을 때부터 합해서 잡은 범죄자가 한 트럭인데, 재범률이 극히 낮습니다. 손발로 범죄를 일으켰는데 손발을 못 써서.”
“아하!”
해수가 조금 우회했던 말의 뜻을 정확히 알게 되자 청장은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뼉을 쳤다.
“훌륭하구만, 재범을 막기 위해 자신이 손수 범인을 잡으러 열심히 뛴다. 주변에는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거나, 그냥 대충 시간만 때우는 놈들이 다거든, 진짜 경찰은 일 할도 되지 않아, 그 귀한 인력을 오늘 이렇게 만났네, 기대 이상이야, 신경사, 일하는데 뭐 불편한 거 없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시게.”
해수가 들고 있던 고기를 내려놓고 곰곰이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나 있기는 한데...”
“뭔데?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뭐든 들어주겠소.”
“압수수색 영장이 빨리 떨어지는 겁니다. 용의자의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어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하하! 일관성 있는 형사야, 아주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내 강수대 일은 힘써보도록 하지, 결혼은 하셨나?”
“미혼입니다.”
“만나는 사람은 있고?”
“없습니다.”
청장은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첩을 뒤지더니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똑단발에 다람쥐를 닮은 여인이 경찰 정복을 입고 브이를 하고 있다.
“내 딸도 경찰인데, 조아라라고, 신경사보다 한 살 많은가? 그렇네, 한 살 많아, 애가 나 닮아서 지금 강력팀에서 범죄자 때려잡느라 아직도 미혼이거든, 한 번 만나볼 생각 있나?”
“죄송합니다. 아직은...”
청장은 처음으로 해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짝 미간을 좁히며 사진첩을 닫았다.
“크흠, 그래 그래, 요즘 젊은이들은 그 뭐냐, 자만추? 그런 걸 좋아한다지, 같은 업계에 있으니까 언젠가 만날 일이 있겠지, 드세.”
“예.”
해수는 그제야 고기를 마음껏 먹었다.
***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강수대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해수야 맛있었냐? 뭐 먹었냐”
“선배님 이제 청장님 부속실장으로 들어가시는 겁니까?”
“돌격아 청장님이 뭐래? 청으로 들어오래?”
해수는 한 명씩 어깨를 잡아끌어 일렬로 나열시키고, 한 명씩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소갈비, 안 들어가, 별일 없었습니다.”
“와씨 나도 소갈비 좋아하는데! 안 싸왔냐?”
“다행입니다 선배님! 강수대에 선배님이 안 계시면 깻잎 없는 김밥이고 들깨 안 뿌린 비빔밥입니다!”
“뭐야 다 필요없는 거잖아? 얘 아무래도 니 지능적 안티같다.”
해수는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팀의 실적을 저만 공치사를 받는 것 같아 내내 불편했습니다. 고기는 맛있었습니다. 오늘 퇴근하고 모시겠습니다.”
“이야 역시 으리, 으리으리하다 우리 돌격이, 오늘 저녁은 소갈비다!”
팀장이 쌍엄지를 추켜드는 사이 오갱이 내선전화를 받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젠장, 오늘 저녁은 삼각김밥일 것 같네, 양진에 조폭들 떼폭건 지원요청”
“아니 양진에서 갑자기 왜?”
“형님, 우리 이제 강수대잖아, 얼른 일어납시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강력 1팀, 이제는 강수대인 형사들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동했다.
*
청장을 만나고 온 뒤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교통과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강수대 본부로 탈바꿈하고, 구실장이 특수방검복 제작을 위해 전문 재단사를 데리고 와서 강력팀과 강수대 형사들의 신체 사이즈를 재갔다.
강력팀에서 강수대로 바뀌고 나서도 거의 비슷했지만, 일처리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정보과의 지원응답이나 처리가 빨라지고, 타 지역 수사 협조도 수월해졌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길, 리드빌딩 입구에 새까만 세단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본 적이 있는데...’
해수는 지하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그 차로 다가갔다. 그러자 뒷문이 열리며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해수씨, 오랜만입니다.”
은색 하이힐에 하늘색 투피스 정장을 입은 안서은이다.
“절 찾아오신 겁니까?”
“그럼요. 왜 이사하고 집들이도 안 해요.”
해수는 그녀에게 이사한 집을 알려줬나 기억을 더듬었다.
“하루씨가 알려줬어요.”
“그렇군요. 올라가시겠습니까?”
“네, 구경하고 싶어요. 할 얘기도 있고.”
“예, 그럼”
서은은 해수를 따라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주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향했다.
오늘은 경호원은 없고 강실장만 함께였다.
“들어오십... 음?”
하루가 안서은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에 백화점에서 산 샤방샤방한 외출복을 입고 있다. 머리도 정갈하게 빗어서 잔머리 하나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하루씨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예쁘시네요.”
“네.”
이상하게 하루의 행동이 어색하다.
해수는 바나나 단지 우유를 하나씩 안서은과 강실장 앞에 내밀었다.
“이 우유는 쌓아두시나 봐요?”
“많이는 아니고, 한 박스씩 저장해둡니다.”
“그렇구나... 집 좋네요.”
안서은이 조금 마시고 나서 집안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하루가 앞장서서 아무 말도 없이 이리저리 문을 열어주며 그녀를 인도했다. 마치 어린애가 집 자랑을 하는 듯했다.
“여기가 해수씨 방인가 봐요.”
“제 방.”
“아, 아 하루씨 방이구나, 죄송해요. 자기만의 방이 따로 생겨서 좋으시겠어요.”
하루는 해수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집 넓은 건 좋은데, 그건 별로 안 좋아요. 같이 못 자서.”
“네... 네?”
하루가 아무 말 없이 안서은을 응시했다. 그 텅빈 눈동자가 이상하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서은은 그 눈빛을 결국 피했다.
한바탕 집구경을 하고, 해수와 서은이 다시 마주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서은의 눈빛이 한껏 진지하다.
“해수씨, 경찰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니, 해수씨의 경찰로서의 목적이 뭔가요?”
진지한 눈빛에서 나올만한 질문이다. 꽤 무겁고 깊은 질문에 해수는 턱을 문지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적이라, 전에 대답한 적이 있어서 바로 대답할 수 있겠네요. 나쁜 놈들을 나쁘게 잡고 싶은 게 제 목적입니다.”
서은은 가만히 해수를 응시하다가 그 대답이면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러면, 돌아오는 금요일 밤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금요일 밤? 무슨... 하루야, 할 말 있어?”
하루가 안서은과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지금은 아예 소파 테이블에 앉아 안서은의 얼굴을 가렸다.
“아닙니다.”
그녀는 해수의 물음에 흠칫 어깨를 떨고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은은 하루를 힐끔 보았다가 다시 해수에게 말했다.
“건영 물산의 사장 취임 축하파티에요.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재벌 3세들이 모두 참석할 거예요. 거기서 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녀가 오늘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이다.
해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서은은 훌륭한 조력자다.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사건만 없으면 참석하겠습니다.”
< #64. 나쁜 놈들은 나쁘게 잡는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