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손등이 찍힌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치우며 소리쳤다.
“장난하나! 이 아저씨가! 까 봐! 그리고 당신이 왜 내 손모가지를 걸어?!”
팀장은 자신의 패 하나를 까보고는 뻔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니네? 미안하게 됐수다.”
“아우 진짜...”
사내는 생긴 것에 비해 이해심이 넓은지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여기, 상한가가 얼마지?”
“판당 십”
한 판에 판돈 십만 원 이상 걸 수 없는 것이다.
“어쩐지... 보기도 힘든 천 원짜리가 여기 다 모여있다 싶었어, 판이 이렇게 작아서야 재미가 있겠나?”
“걸다 보면 주머니가 가벼워질 거요.”
“패는 까봐야 알지, 받고 열 개 더”
“에씨... 다이.”
팀장이 판에 들어간 지 한 시간 후.
-팀장님 아까 떤 게 혹시 설레서였습니까?
-그거에 니 손모가지 건다.
“나는 이만...”
같은 판에 있는 사내들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하고 있다. 두 명은 중간에 빠졌고, 새로 들어온 한 명도 다시 빠졌다.
“계속 할려?”
“그만 합시다. 오늘 영 운이 별로네.”
“그래 그럼, 이건 택시비 해.”
팀장은 같이 판을 했던 사람들에게 오만 원씩 돌렸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 기분 나빠했다.
“으휴... 재미없어, 난 이제 여기 올 일 없을 듯하네, 잘 놀다 갑니다.”
팀장이 쿨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손등을 찍혔던 사내가 금세 따라나왔다.
“형님, 그렇게 큰물에서 놀고 싶소?”
-얼씨구, 언제 봤다고 형님이래.
-걸렸네요. 팀장님은 역시... 다 계획이 있었군요.
“사내라면 내일 뒤지더라도 큰 물에서 놀아야지.”
“역시 배포가 남다르시네, 형님 들어오실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내일 이 시간에 봅시다. 총알 많이 챙겨오쇼.”
“얼마나? 나 돈 많은데?”
팀장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자, 사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마나 챙겨오던, 다 꼬라박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쇼.”
“햐, 자신감 봐라? 오랜만에 설레는데? 알았어, 내일 보세.”
“예 형님, 들어가십시오!”
팀장은 느리적 걸어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적휘적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사내가 적당히 멀어지자 표정이 싹 변하며 작게 말했다.
“얼굴 봤지?”
-예, 바로 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은 일루 와요. 오른쪽으로 꺾어서 큰길가.
“오케이”
*
신해수는 걸어서, 막내는 해수와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사내를 따라갔다.
사내가 별천지로 간다면 굳이 팀장이 위험을 감수하고 잠입을 하여 위치를 알아낼 필요가 없어진다.
“자택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런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가까운 허름한 원룸으로 들어갔다.
“잠복할까요?”
-아니,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안 갈 거 같아, 서로 가서 그 새끼 신상이나 캐보자.
“예, 복귀하겠습니다.”
서로 복귀하자, 팀장이 단추로 녹화된 영상을 틀어 사내의 얼굴을 모니터에 크게 확대하고는 외쳤다.
“야야 다들 모여봐! 2,3팀! 잠깐만 와 봐, 이놈 아는 사람?”
2팀은 가장 선임 팀원이 팀장으로 올라갔고, 3팀은 1팀장의 직속 후배이기에 강력팀 전체에서 가장 고참인 1팀장이었다.
형사들은 슬금슬금 와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잘 모르겠네요.”
“처음 보는 놈인데.”
다들 모르는 눈치다.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애초에 조폭들을 가장 많이 상대하는 건 1팀이기 때문에 1팀 원들이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2팀 막내가 실눈을 뜨고는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어, 쟤 걔 아닙니까? 다잉나이트에서 한 번 봤던 것 같은데”
“다잉나이트?”
다잉나이트 떼폭 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는 몰라도 그때 당시 두 조직 중의 하나다.
그때 칼을 맞고 골골거리다가 골로 간 강돌쇠의 강쇠파, 또는 모창귀의 갈고리파.
“얼굴 견적을 보면 갈고리보다는 강쇤데... 장기까지 턴다는 것 보면 갈고리같고”
“갈고리 그 새끼들은 모창귀 중심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잡혀들어가도 지랄이네.”
해수는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다잉나이트 떼폭 때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었다.
이 놈 팔을 꺾고, 저놈 코뼈 부수고, 저놈 얼굴 찍고... 아!
“깡새”
“뭐?”
“깡새라고 불렸던 놈입니다. 강쇠파.”
다잉나이트에서 누구보다 조폭들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했던 해수다.
그의 말에 오갱이 손뼉을 치며 동조했다.
“아, 아아 맞네, 맞아, 우리 깡새 살아있냐고 어떤 놈이 계속 부탁해서 알아봤었잖아.”
“맞습니다.”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
“우리 돌격이 기억력 미쳤네, 얘들아 봐라, 돌격이가 몸만 돌격이 아니야, 뇌도 돌격형이야.”
“칭찬 아닌 것 같습니다.”
“칭찬이야, 칭찬, 편하게 들어.”
“2팀 막내 덕분에 기억난 겁니다.”
해수의 공치사에 2팀 막내가 머쓱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게, 거기 막내가 큰 일 했네, 우리 막내는 그냥 큰데.”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팀장이 막내 근육몬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오케이, 내일 바쁘니까 오늘은 빨리 들어가서 맛있는 거 먹고 푹 자서 컨디션 최대로 올리고 와, 내일 아침부터 강쇠파 좀 털어보자.”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다음날.
팀장은 혹시나 깡새와 마주칠까 하여 사무실에 남고, 해수와 오갱, 막내가 강쇠파 조직원들을 찾아다녔다.
“수박, 수우박, 꿀이 뚝뚝 떨어지는 수우박 사려”
아파트 변두리에서 한 사내가 과일 트럭에 기대어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다.
해수는 그에게 다가가 시식용 수박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장사가 잘 안 되나 봐.”
“예이, 잘 됩니... 허억!”
사내는 해수를 보고는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기겁했다. 그러고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팔뚝을 매만졌다. 그곳에는 긴 흉터가 있었다.
“그거 내가 그랬냐?”
“에? 에, 에...”
해수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수박을 한 입 더 먹었다.
“그래도 열심히 사는 거 보니까 보기 좋네, 다른 애들은 어떻게 살아? 안 보이더라.”
“아... 그게.”
“대답은 사실만, 자세히, 안 물어봤으니까 안 알려줬다 라는 말을 가장 싫어해.”
사내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그러니까... 돌쇠 형님이 그렇게 되시고 나서...”
그의 말대로라면 강쇠파는 강돌쇠가 죽은 후에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도생했다. 그 중 절반은 이참에 평범하게 살자며 직업을 찾아 떠났고, 절반은 다른 조직에 들어갔다고 한다.
해수는 깡새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혹시나 그가 말을 전달하여 의심을 받을까 해서다.
“그래, 사기 치지 말고, 난 내 손에 중복으로 걸리면 가중진압이야.”
“네, 네 감히 누구 앞이라고... 이, 이거라도 하나 드십시오!”
“그래.”
해수는 그가 내민 수박을 하나 챙기고는, 오만 원 권 하나를 던져주고 그곳을 벗어났다.
“...팀장님, 이렇다고 합니다.”
-에이씨, 다 복귀해, 어차피 괜히 파다가 나가리 되는 것보다 나아, 이따 결판 지어야지.
*
그날 밤.
팀장은 깡새와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삶에 찌들어 보이는 중년인 두 명이 더 있었다.
깡새는 팀장을 반갑게 반겼다.
“형님 오셨수? 역시 약속 지켜주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약속 지키러 왔나? 돈 따러 왔지.”
“하하, 많이 따가시길 바랍니다. 곧 차가 올 때가 됐는데... 어, 오네요.”
선팅이 진한 봉고차 한 대가 온다. 그곳에서 험악한 인상의 사내 둘이 내렸다.
“핸드폰은 끄고 반납했다가 나가실 때 찾아갑니다, 검사 좀 하겠습니다.”
사내 한 명이 긴 막대기로 겨드랑이 사이, 가랑이 사이를 대충 훑었다.
치직 치직
그때, 팀장의 귓가로 해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들리십니까? 위치추적기 단추 카메라 꺼졌습니다.
그 말은 눈으로만 차를 쫓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절대 걸리지 않게, 팀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들리시면 욕 한번 해주십시오.
“에이 시펄, 뭐 이렇게 까다로워”
“죄송합니다. 보안을 철저히 해야 오래 재미있게 노실 수 있습니다.”
“니미럴... 얼른 갑시다. 기대 이해기만 해봐.”
그들은 이동할 때 안대까지 씌웠다. 이동 중, 팀장의 귓가에 소름 돋는 소식이 들려왔다.
-형님,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놓쳤어, 이 새끼들 똑같은 번호판 봉고차 두 대를 돌린 것 같아, 아니면 번호판이 중간에 바뀌었거나... 아무튼, 관제센터에서도 찾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자연스럽게 행동해, 여차하면 거기서 그냥 놀다가 나오면 돼.
‘제기랄...’
쿠궁 쿵쿵 쿵
그때, 비포장도로인지 차가 매우 많이 흔들렸다. 팀장은 조금이라도 힌트를 주고자 투덜거렸다.
“아오 토 나오것네, 바른 길 좀 가쇼.”
“금방 도착합니다. 안대 벗지 마세요.”
끼이익
이윽고 차가 멈추어 서고, 안대를 벗고 내리자 이미 어떤 건물의 차고 안이었다. 층고가 꽤 높다.
“아이고 고생들 하셨습니다. 이쪽으로, 별천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팀장은 깡새의 안내를 따라 허술한 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3층 높이는 될법한 높고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하고, 테이블마다 전구 하나만 의지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처럼 조립식 건물인데, 어두운 곳에 드문드문 빛나는 전구를 보고있자니 정말 별천지가 펼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땃다. 땃다. 땃어!!!”
“아우 제기랄!”
“내 돈 내놔 내 돈!!”
“이게 왜 니 돈이야! 내 돈이지!”
“어허, 거기, 앉으세요.”
수많은 종류의 도박들이 수많은 테이블에서 이뤄지고 있다. 수영복인지 속옷인지 모를 복장을 입은 젊은 여자들이 은쟁반을 들고 서빙을 하고 있다.
깡새가 한 여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는 그녀의 쟁반에 있던 포도를 하나 따 먹으며 말했다.
“담배와 안주, 술, 음료는 무료로 무한 제공입니다. 배고프면 저쪽으로 오세요. 라면에 밥도 제공합니다.”
팀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니 여자들에게 팁을 주고 무언가를 거래하는 모습도 보였다.
‘얼씨구, 약까지?’
범죄의 향연이 따로 없다.
팀장은 중앙에 있는 환전소로 가서 가져온 돈을 전부 올려놓았다.
“전부 칩으로”
이곳에서는 섯다도 칩으로 진행한다. 수사비로는 감당이 안 되어 해수의 도움을 받아 2억을 챙겨왔다.
“사장님은 처음 뵙는데, 많이 가져오셨네요.”
“총알이 많아야 패가 잘 붙거든”
“그런데 이것도 금방 잃을 수 있어요. 잃으면 여기로 와요.”
“오면, 돈 주나?”
“주죠, 건강검진 하고”
장기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팀장은 부르르 떨며 손사래를 쳤다.
“어으 무서워, 안 해.”
팀장이 뒤돌아서 다른 도박 테이블들을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 경특대가 부산에서 넘어오느라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합니다.
“아하... 대충 놀다 가야지 뭐.”
-순마 지원 요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눈치 챌 까봐, 도착 전에 땅이 많이 흔들렸던 것 외에, 위치를 특정할 만한 힌트는 없습니까?
“없네, 없어, 할 만한 게 없네... 보자, 보자...”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찾아서 켜는 것이 가장 좋지만,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무리하라는 건가...”
팀장은 여기저기서 적당히 돈을 잃으면서 구조를 눈에 자세히 담았다.
“어이구 많네 많아, 껌댕이가 많아.”
대충 보아도 테이블 중간 중간에 서 있는 놈들과 한쪽 구석에서 여자를 주무르며 쉬는 놈들을 합하면 최소 서른 명은 되어 보였다.
도박장의 크기나 조직원들의 수, 위치 보안에 철저한 것을 보니 이곳이 이들의 본부임은 분명했다.
‘그럼 동동이놈이 여기 잡혀있다는 건데, 이미 골로 간 거 아니야?’
그때, 밖에서 한 사내가 구석으로 달려가 대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대장이 인상을 쓰며 뭐라뭐라 말을 하니 쉬던 사내들이 일제히 일어나 일제히 흩어졌다.
느낌이 좋지 않다. 사내들 네다섯 명이 환전소로 가서 가방을 옮긴다.
“이 새끼들 짐 싸는데? 눈치 챘나?”
-그럴 수 있습니다. 차분히 안전을 도모하십시오.
팀장은 고개를 숙이고 작게 속삭였다.
“내가 저 놈들 중에 한 명 폰 빼앗아서 긴급통화 걸 테니까, 위치 따.”
-안 됩니다. 위험합니-
우당탕!!
그때, 팀장이 테이블을 엎으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내 돈 가지고 어디로 튀는겨! 여러분! 저것들 보소!!”
< #61. 별천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