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고모가 부엌칼을 들고 왁왁 소리를 질렀다.
“닥쳐 시발!! 다 죽여버릴 거야!”
막내는 제압을 도울 생각보다는 휴대폰을 들어 해당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지안 고모가 신해수의 배를 향해 칼을 쭉 뻗었다.
해수는 몸을 옆으로 틀어 칼을 피하며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쩌억-!
“꺄악!”
해수의 손바닥이 지안 고모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그녀는 옆으로 날아가 소파에 한 번 부딪혔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후두둑
해수의 따귀를 입을 벌리고 맞으면 치아가 성치 않다.
기절한 지안 고모의 입에서 하얀 치아 몇 개가 쏟아져 나왔다.
해수는 그녀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당신을 특수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남편을 살해한 완벽한 증거가 되려면 도배지나 장판을 지안 고모가 구매한 이력을 확인해야 했건만, 지레 찔려서 발작하는 바람에 더욱 명확해졌다.
*
남편을 살해한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지안 고모는 이전에도 몇 번 남편이 지안을 음흉한 눈으로 보고 은근슬쩍 어깨를 주무르거나 다리를 만지는 것을 보았다.
남편이 머리에 피가 난 채 들어온 날, 그녀는 차 블랙박스를 돌려보았고 소리로 들어 상황을 알아챘다.
-너 그 년 덮치다가 그렇게 됐냐? 쪽팔리지도 않아? 스무 살도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을, 뇌에 정액이 꽉 찼어?
-아 뭐 씨팔, 고분고분하게 돈 쳐받는 년이니까 만만해서 그랬다 왜? 니도 걔 사람으로 안 보잖아? 돈주머니로 보지? 아, 나도 돈 주머니로 보지? 그 이상한 게임 할 때 알아봤어.
-닥쳐 씨팔! 죽여버리기 전에!!
-지랄, 남편이 괴물 같은 놈한테 맞아 뒈지려고 하는데 고작 240만 원 때문에 일어나서 이기라고? 솔직히 말해봐, 그때 넌 나 죽든 말든 그 돈 받고 싶었지?
-그래, 이 미친 새끼야!
그렇게 지안 고모는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이고, 블랙박스로 그 장소로 다시 차를 갖다 놓아 지안이 죽인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
지안 고모가 잡혀 오자마자 김지안은 바로 풀려났다.
지안과 마주치자 고모가 다시 발작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 년아!!”
고모가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지안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으려 했고, 지안은 그 손을 날카롭게 쳐내고는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쿵!
지안에게 생전 처음으로 반격을 당한 고모는 충격에 넘어진 채 얼어붙어 있었다. 지안은 그녀를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줌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아줌마 욕심 때문이지... 평생 교도소에서 썩어버려.”
“이, 이 썅년이!! 꺄아악!!”
해수는 고모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러 입을 다물게 하고는 지안을 데리고 나갔다.
*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어.”
“...고맙습니다.”
해수는 지안을 동생들이 있는 리드 빌딩으로 데려다 주었고, 빌딩 앞에서 하루가 동생들과 함께 마중 나왔다.
해수는 지안을 반기는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잠깐이나마 그녀를 믿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뭐가 말입니까?”
“그냥, 미안해.”
“그러지 마십시오.”
“뭐?”
“저는 집주인님이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러지.”
해수가 다시 서로 복귀하기 위해 뒤돌아섰다가 발을 멈추었다.
그러면 그때 대체 왜 그곳에 있었던 거지? 지안이와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거지?
해수는 다시 돌아서려다가 말았다. 범죄모의가 아니라면 여자끼리의 비밀 대화를 캐묻기도 그렇다.
*
감자탕 가게와 그 뒤에 딸린 단독주택은 본래 할머니 명의였고, 지안이 스무 살이 되면 물려받을 유산이었다.
그러나 고모가 변호사에게 돈을 먹이고 유산을 냉큼 삼킨 것이다.
살인 혐의로 조사가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된 변호사가 제 발이 저려 자수를 했고, 고스란히 지안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고모가 가져갔던 돈은 물론 보상금까지 모두 가진 재산으로 회수하였다.
그리고, 삼남매의 법적 보호자가 해수가 되었다.
“어려서 살던 곳이라고 했지?”
“네... 근데, 다시 거기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고모와 고모부가 찾아왔고, 그때부터 지옥 같은 나날이 펼쳐졌다고 한다.
해수는 지안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단독주택과 감자탕 가게를 처분하고, 삼남매는 리드 빌딩 9층으로 이사를 했다.
삼남매가 살던 원룸에서 가져올 만한 짐은 박스 하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해수는 이웃이 된 선물로 침대와 쇼파, TV와 냉장고와 세탁기 등 침구와 가전기기를 채워주었다.
4평짜리 반지하에서 40평으로 이사를 하자 집안이 썰렁했지만,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했다.
지안도 동생들처럼 티를 내지는 않지만, 얼굴에 가득했던 그늘이 한층 걷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띵 동
해수의 집 초인종이 처음으로 울렸다.
“왔다.”
하루가 반가운 듯이 종종걸음으로 가서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새로 산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김지안과 지원, 지구가 방긋 웃으며 과자를 내밀었다.
“편의점에서 줬어요!”
“사장님 만나고 왔어?”
해수의 질문에 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기 사다 드렸어요. 우셨어요.”
“잘했다.”
지안은 편의점 사장님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사장님은 눈물을 훔치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셨다.
해수의 식탁에 보조의자까지 추가된 적은 처음이다.
오늘의 메뉴는 꽃게탕과 대하였다.
지안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저씨가 하신 거에요?”
“아니, 배달.”
“아하...”
하루는 신기할 정도로 대하 껍질을 잘 깠다. 살은 최대한 남기고, 껍질은 깔끔하게.
하루가 자신의 접시에 대하를 다섯 개쯤 쌓았을 때, 초장을 묻혀 지안의 밥에 하나 올려놓았다.
그 모습에 지안보다는 해수가 더 놀랐다.
밥을 한창 먹고 있던 지안도 그것을 보고는 멈칫했다.
“아”
지안은 대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이 촉촉해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그 모습에 하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게,게살도 발라줄게.”
지안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너무, 좋아요. 그래서, 불안해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진심이 짙게 묻어나는 지안의 말에 둘째 지원이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지구도 덩달아 울음을 터트렸다.
“형아 왜 울어으아아앙!”
“지구야 울지 마아으엉”
졸지에 식탁 앞에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지안의 말에 하루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얼마 전에 느꼈던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했을 것이다.
그러나 멍청하게도 저런 표현을 구사할 줄 몰랐었다.
하루는 손을 뻗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지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천천히 받아들여, 천천히... 행복에 스며들어라.”
마치 명령과도 같은 하루의 말은 지안의 가슴에 깊게 가닿았다.
지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하루를 보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삼남매의 눈물이 그치고, 집에서 한창 뛰어다니던 막내 지구가 소리쳤다.
“맨날 맨날 놀러 오고 싶다!”
그의 외침에 하루가 답했다.
“이틀”
“네?”
“이틀에 한 번, 매일 놀러 오면 질려서 소중함을 몰라.”
“앗싸!”
“야외 욕탕 갈래?”
“네? 아, 아니요.”
지구는 사색이 되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
강진 경찰서, 팔뚝에 문신이 가득 드러나 있고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경찰서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끼익
그가 향한 곳은 강력팀 사무실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형사에게 다가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물리치료 박사님을 뵙습니다!”
그의 커다란 인사에 강력팀 형사들의 이목이 쏠렸다.
신해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힐끔 보았다.
영락없는 조폭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편의점 조끼를 걸치고 있다.
“동동이 동생 아니냐.”
그는 전에 몇 번 보았던 동동파의 조직원 중 한 명이다.
“고정훈이라고 합니다. 형님이 무슨 일 생기면 박사님 찾아가라고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해수가 그쪽으로 의자를 돌리고 검지로 맞은편에 빈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얘기해봐.”
“제 잘못입니다. 영식이놈 따라서 도박에 손을 대서...”
사건은 이러했다. 정훈이 다른 조직원을 따라 도박을 하러 몇 번 갔다가, 자신은 그만뒀는데 영식은 계속 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연락이 잘 안 되더니 갑자기 김동동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일 억만 가져다 달라고, 안 그러면 장기 털리게 생겼다고...”
“그래서”
“형님이 의리 빼면 시체 아닙니까, 돈은 없지만 가서 해결하고 온다고 문자 하나 남기시고 사라지셨는데... 그 후로 연락이 안 됩니다. 이틀째입니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왔어, 지금 너도 동동이 찾는다고 갔으면 같이 실종이야, 막내야, 동동이랑 영식이 위치 좀 따봐.”
“예 선배님!”
정훈이 막내에게 전화번호를 주었고, 막내는 정보과에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아는 거 다 얘기해봐.”
“아는 게 이게 다라서... 아, 별천지라고 했습니다. 어딘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오갱과 해수의 눈이 마주쳤다.
“이거 거르기네.”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 듣는 말에 막내가 물었다.
“거르기가 뭡니까?”
“소박한 도박장에서 간 좀 보다가 영혼까지 털어먹을 애 골라서 제대로 된 도박장으로 데려가는 거지.”
“아하...”
그 사이 정보과에서 연락이 왔는데, 두 사람의 휴대폰이 모두 꺼져 있어서 추적이 불가했다.
어떻게 수사해야 할지 각이 나온다. 팀장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인상을 썼다.
“아... 도박장 수사비라, 서장님한테 멱살 한 번 잡혀야겠네, 누가 갈 거야? 전처럼 막내 라인?”
그때 고정훈이 입을 열었다.
“도박장에서 몸이 건장하고 젊은 남자면 어디 식구인지 먼저 확인했습니다. 확인이 안 되면 별천지로 데려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오갱의 시선이 팀장에게 향했다. 자연스레 해수와 막내의 고개도 팀장에게 돌아갔다.
“나? 내가? 나 팀장인데?”
*
그날 밤, 낙후된 동네의 후미진 골목길에 있는 중화요리 가게.
부스스한 머리, 비뚤어진 안경, 헤진 옷, 누가 봐도 삶에 찌든 중년인이 그 앞에서 우물쭈물거린다.
“드,들어간다.”
-왜 이렇게 떨어, 베테랑 형사가.
“장기도 터는 마굴에 들어가는데 안 쫄리겠냐? 나 잠입 5년 만이다... 으”
목소리 끝이 덜덜 떨리는 것이 진심인 듯했다.
-꾀병 부리지 말고 얼른 들어가.
-팀장님 믿습니다.
“젠장...”
팀장은 작게 투덜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크서클이 짙은 젊은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뭐 드실 겁니까?”
“입으로 들어가는 거 말고, 주머니에 들어갈 거 먹고 싶은데”
사내는 팀장을 힐끗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턱짓했다.
그를 따라서 방 두 개를 거쳐 뒷문과 통하는 마지막 방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도박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이블은 네 개, 인원은 스무 명 남짓, 팀장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힐끔힐끔 그를 스캔했다.
“아무 데나 앉으시면 됩니다.”
“어, 그려.”
팀장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구겨진 것에 어울리지 않게 오만 원 권 두 장이기에 사내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살짝 놀랐다.
팀장이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 사이에 자리를 잡자, 한 사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소?”
-니네 팀장님 팀원 시절에 별명이 뭐였는지 아냐?
팀장은 코를 훌쩍거리며 거만하게 턱을 들고 대답했다.
“꾼이 장 냄새도 못 맡을까? 바람 따라 들어왔지.”
“후각이 개새끼마냥 좋으시구먼? 패도 좋으신가 한 번 볼까?”
“자신 있으면 확인해보든가?”
-곽씨니까... 우유곽?
한 판이 끝나자 사내가 팀장에게도 패를 돌렸다.
그러자 팀장이 패를 까보지도 않고 옆에 있는 물컵을 뒤집어 사내의 손등에 내리찍었다.
쾅!
“악! 뭐하는 짓이야!”
-아니, 고암동 아귀.
“동작 그만,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어디서 첫 판부터 장난질이여?! 내껀 달 뜨는 팔땡을 줬을 것이고, 니는 삼칠 땡잡이를 쥐었다는데 니 손모가지를 걸지!”
< #60. 도박장 잠입 (유료 시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