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59화 (59/255)

하루의 실루엣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남들과 다르기에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하지만 칼질은 하루의 실력이 아니었다. 아니, 고도의 기술은 초짜가 흉내 내기 힘들지만 어색한 칼질은 고수가 흉내 가능하다.

게다가 간장과 폐 자상, 즉사가 아닌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게 하기 좋은 수다.

“왜, 뭐 좀 나왔어?”

“아, 아닙니다.”

신해수는 오갱의 말에 장면을 넘겼다.

이 장소는 일부러 온 것이 아니라면 우연히 들를 수 없는 곳이다.

섣부른 판단은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조사는 해야 한다.

해수는 일단 김지안을 찾아가 긴히 물었다.

“지안아, 그 현장에서 하루를 본 적 있어?”

해수의 질문에 지안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이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린다.

“아니요.”

“만났구나.”

지안은 해수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

며칠 전, 김지안은 다리 밑에서 고모부를 피해 도망치는 길에 누군가와 마주쳤다.

“어...”

전혀 의외의 인물, 하루였다. 이곳에 어떻게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루의 공허하고 건조한 눈동자는 지안이 겪은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지안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여줄까?”

천진한 얼굴로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그래서 더 진심 같다.

“아니요. 아니, 모르겠어요.”

하루는 혼란스러워하는 지안을 데리고 다리 아래 하천이 지나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고아원 출신이야.”

“...”

“다섯 살 때 원장이 날 어떤 남자에게 팔았어.”

고아원 출신이라는 말에도 아무런 동요가 없던 지안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내 살을 뜯어먹은 적도 있어, 살려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말에 지안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왠지 거짓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안 그래, 차라리 죽고 말지.”

담담하게 말하는 하루의 표정에서 지안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 깊은 슬픔이 엿보이는 것으로, 지안은 꽤 위로가 되었다.

“집주인님 눈에 보이면 삶이 축복 받아, 내가 그랬어, 너도 그럴 거야.”

“...정말, 그럴까요?”

“당연하지.”

하루의 대답에는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일어나자 하루가 입술을 지안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오늘 얘기는 우리 둘만의 비밀, 발설하면 혼나.”

“네? 아... 어, 네.”

따뜻한 듯하면서도 무서운, 이상한 언니와의 이상한 만남이었다.

*

지안은 문득 고모부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말이 떠올랐고, 하루가 범인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죽였다고 밀어붙여야 하나?’

곧이곧대로 이를 순 없다. 자신을 위해 죽인 건데.

“모르겠어요.”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하루를 도와주는 건 아니야, 시시티비에서 하루가 네 뒤를 쫓은 게 찍혔어, 이대로는 용의자로 몰려.”

금세 지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 모르겠어요. 정말 몰라요.”

“알았다.”

순간 고민했지만, 말하지 말라는 하루의 당부가 떠올라 결국 입을 다물었다.

지안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지만 해수가 알아낸 것은 많았다.

하루와 모종의 대화를 나눴다는 것, 하루를 만난 사실을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가 범행을 저지르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루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루는 아니야.’

하지만 생각이 긍정적으로 치우쳐질수록 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다른 형사들에게 하루가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를 받게 할 수 없다. 용의자가 아니라는 완벽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

신해수는 퇴근하고 김지안의 집 주소로 찾아갔다. 리드 빌딩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한 3층 주택에 반지하였다.

튱 튱-

“아저씨 왔다!”

“안녕하세요! 김지원입니다!”

“저는 김지구에요!”

아이들은 해수를 보고 밝게 인사했다. 말은 섞지 않았지만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그래, 인사도 잘하네, 누나랑 아까 통화했지?”

“네.”

“누나가 아저씨 엄청나게 좋은 경찰 아저씨라고 했어요.”

“그런 얘기도 했어? 의외네... 누나가 잠깐 공부하러 간 동안은 아저씨랑 같이 지내자, 가져갈 거 챙기고.”

“앗싸!”

“놀러 가자 놀러!”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좋아하며 장난감만 마구 챙겼다. 진짜 짐은 해수가 챙겨야 했다.

*

삑 철컥-

집 문을 열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우와!”

하루는 미리 문자를 보내서 알고 아이들을 맞이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이상하게 주눅이 들어있다. 하루를 보고 그렇다기보단, 크고 넓은 집 때문인 듯했다.

해수는 아이들의 짐을 빈방에 풀었다.

“너희 집처럼 편하게 있어, 막 뛰어다니고 만져도 돼, 저 누나 방에 있는 것만 빼고.”

“맞아, 내껀 만지지 마.”

“진짜요?”

“우와! 꺄아아!”

아이들은 그제야 신나서 엄청 뛰어다녔다. 어른 둘이 살 때는 쓸데없이 넓기만 했는데, 아이들이 오니 뛰어다니기는 좋았다. 아래층이 비어있어서 다행이다.

해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잠시 사건을 잊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주방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 한 줄줄이 소시지와 불고기를 해주었다.

새로 산 식탁에 처음으로 네 개의 의자가 채워졌다.

“밥 먹자.”

“네!!”

“네!”

식사하는 중, 별거 아닌 음식에도 아이들은 마치 하루처럼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했다.

그때, 막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흡, 흐어엉”

해수는 막내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난감해했다.

“지구야, 왜 울어?”

“너무, 너무 맛있어요... 누나도 이거 같이 먹어야 하는데, 누나가 없어요.”

해수의 젓가락이 멈췄다. 어떻게 지냈길래 이 한 끼가 이렇게 소중할까.

해수는 막내의 숟가락에 쏘시지를 올려주며 말했다.

“누나 더 좋은 거 먹고 있어, 걱정하지 마.”

“정말요?”

“그럼, 그리고 나중에 누나랑도 또 같이 먹으면 되지.”

“아싸!”

밥을 먹고, 해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밥 먹이고 나서, 씻기기.’

해수는 처음으로 야외 욕탕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아이들 먼저 집어넣고, 해수도 웃통을 벗고 들어갔다.

아이들은 갈비뼈가 몇 개인지 다 보일 정도로 비쩍 마른 몸이었다.

“우와!”

둘째 지원이가 해수의 흉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는 몸이 왜 그렇게 생겼어요?”

“이거? 나쁜 사람들 많이 잡아서 그래.”

“멋있다!!”

“나도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

“그럼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해.”

해수의 말에 지원이가 시무룩해졌다.

“많이 먹을 수... 없어요.”

“아니, 이제 많이 먹을 수 있어, 아저씨가 그렇게 만들어줄 거야.”

“정말요?”

“그럼”

끼익

그때, 하루가 야외 욕탕 문을 열었다. 들어올 생각인지 돌핀 수영복 팬츠에 운동용 티셔츠를 입은 상태였다.

“어, 남자들만 들어오는 곳인데!”

“나 들어오지 마?”

“아,아니요.”

“누나 예뻐요! 우리 누나는 못생겼어요!”

“니 누나 예쁜데”

“아닌데, 코끼리같이 생겼는데”

“우하핳 코끼리 코끼리!”

하루는 욕탕에 걸터앉아 발만 담그고 첨벙첨벙 물장구를 쳤다.

해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 지원이 그녀에게 물을 뿌렸다.

“받아랏!”

티셔츠와 얼굴에 물을 맞은 하루의 눈에서 순간 살기가 비쳤다.

“우아아 나도 나도!”

막내도 하루에게 마구 물을 뿌렸다. 해수에게는 무서워서 뿌리지 못했는데, 상대적으로 하루는 만만해 보였다 보다. 보는 눈도 없다.

하루는 가만히 맞다가 욕탕 안으로 들어와 기를 모으듯이 두 손을 펼치고, 아이들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최적의 동선과 최고의 효율로, 물줄기가 날카로워 보인다.

“우악 그,그만!”

“누,누나 항복, 항복이요!”

“시작은 니 마음이지만 끝은 내 마음이야, 공격할 때 이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하루는 아이들이 항복해도 주저하지 않고 계속 뿌려댔다. 결국, 아이들은 눈도 뜨지 못하고 밀려나다가 욕탕에서 나와 수건을 들고 도망쳤다.

아이들이 쫓겨나고(?), 해수와 하루 단둘만 야외 욕탕에 남았다. 해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금세 눈을 피한다.

“하루, 오늘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아... 운동했습니다. 게임도 했습니다. 산책도 했습니다.”

“어제는 뭐하고 지냈어?”

“어제는... 왜 그러십니까?”

하루의 역질문에 해수가 살짝 당황했다.

“그냥, 뭐 하고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니까”

“제가 뭘 하는지 궁금하십니까?”

하루가 왠지 신나하는 것 같다.

“어, 그렇지 뭐”

“안 알려줄 겁니다.”

“...왜? 이유가 뭐지?”

해수는 금세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더 궁금해하시라고.”

그녀는 미세하게 미소를 머금고는 욕탕에서 먼저 나갔다.

해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대체 무슨 뜻이지? 힌트를 주는 건가?

*

다음날 아침.

하루가 지원과 지구를 학교와 유치원을 보내기로 하고, 해수는 출근한다며 먼저 나왔다.

그러고는 리드빌딩 시시티비를 확인하여 사건 날에 하루가 나갔다가 들어온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다섯시에서... 아홉 시.’

사건 다음날, 신고가 들어오기 전까지도 확인했지만, 그 이후에 나간 적은 없었다.

해수는 시시티비를 따라가며 사건 날 하루의 동선을 체크했다. 그러나 시시티비로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사각지대나 없는 곳으로 움직인 것이다.

경찰서로 출근하자 막내 우강철이 부스스한 머리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밤 샜어?”

“아, 나오셨습니까? 선배님, 저 어린 게 유치장에 있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해수는 그의 마음이 기특하여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뭐 좀 나왔어?”

“그게, 제가 깜빡 졸아서 다음 파일로 넘어가서 화면을 보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말하는 게 뭐가 나오긴 나온 듯하여 해수는 몸을 기울였다.

“이 화면이 피해자 집에서 나오면 큰길가 있는 시시티비입니다. 여기서 이 시간에 이 차가 나옵니다.”

“뭐?”

해수는 화면을 확대하여 차 번호를 확인했다. 확실하다.

새벽 2시다. 전날 나오고 나서 실종된 게 아니다. 새벽에 또 나온 것이다.

지안 고모는 분명 전날 지안을 만나러 가고 나서부터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진술이 거짓이라는 것.

해수는 바로 국과수에 연락했다.

“...예, 강력팀 신해수입니다. 사망 추정 시간 나왔습니까? 새벽 2시에서 5시? 알겠습니다.”

사망 추정 시간을 듣자 실마리가 잡혔다는 기쁨보다는 안심이 들었다.

하루는 그 시간으로부터 한참 전부터 자신과 함께 집에 있었다.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정확한 알리바이가 생겼다.

“이 여자 집으로 누가 갔었지?”

“저랑 팀장님이요. 수색은 안 했지만... 새집처럼 깔끔했습니다.”

“새집처럼?”

“예.”

“가자.”

“예, 선배님!”

용수동 감자탕 가게, 지안의 고모는 웃으면서 멀쩡하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해수가 막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당신은...?”

“담당 형사입니다. 집안에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네? 갑자기 왜요?”

“남편분 소지품을 확인해야 해서 그렇습니다. 괜찮겠지요?”

“아... 자,잠시만요. 집안이 워낙 지저분해서”

“저흰 괜찮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죠.”

해수와 막내는 지안 고모가 말릴 틈도 없이 가게 뒤에 딸려있는 집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막내의 말대로 집안이 깔끔하다. 장판도, 벽지도, 그런데 거실 말고 다른 방은 헌 방 그대로였다.

“보통... 도배를 하면 다 하지 않나요?”

해수의 물음에 지안 고모가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매만지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며 대답했다.

“예? 아, 거,거실에 더러운 게 많이 묻어서.”

“아하...”

자세히 보니 이상하다. 전문가를 쓰지 않았는지 벽지가 많이 울었다.

해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며 바닥 장판도 보았다. 접착제 시공도 하지 않았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여러가지 의문들이 하나씩 돌아다니다가 제자리에 맞춰 들어갈 때, 확신에 가까운 촉이 온다.

“막내야, 문 닫아라.”

“예!”

막내가 집 문을 닫고 수문장처럼 문 앞을 지켜서자, 해수가 도배지를 잡고 넓게 쫙 뜯어냈다.

그곳에는 상당한 양의 피 얼룩이 묻어 있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나 아니야!! 내가 안 죽였어! 그 년이 죽였다니까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안 고모가 두 손으로 부엌칼을 잡고 해수를 겨냥하고 있었다.

“아줌마, 그거 안 내려놓으면... 많이 아프다.”

< #59. 진범 (무료 마지막)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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