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58화 (58/255)

신해수는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감자탕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김지안의 고모는 신해수가 뿜어내는 살기에 움찔했다. 그처럼 흉기 같은 몸에 후드까지 깊이 눌러쓰고 들어오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감자탕 하나 주십쇼.”

“예, 금방 갖다 드릴게요.”

해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장사는 그리 잘 되지도, 안 되지도 않았다.

해수는 감자탕을 천천히 먹고, 사이다 한 병을 시키고 그것을 홀짝홀짝 천천히 마셨다. 모든 손님이 다 갈 때까지.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가게가 끝날 시간이 되었다. 해수가 요지부동하자 지안 고모가 난감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눈치를 주었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해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이제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하는데...”

이들은 세 남매에게 나오는 국가지원금마저 빼먹는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다. 어느 유명 드라마에서 나왔던 상황이 떠올랐다.

해수는 남자를 힐끔 보고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그곳에서 10만원 짜리 수표를 하나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돈을 보자 남자와 지안 고모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나랑 게임 한 번 하겠습니까?”

“...네?”

“가위바위보를 해서 그쪽이 이기면 가져가는 겁니다.”

“지면?”

해수는 흉기와도 같은 손을 들어 올렸다.

“따귀 한 대”

“음, 뭐, 하죠.”

게임인데 뭐 얼마나 쎄게 때리겠는가? 쎄게 때린다고 해도 한두대 정도는 뭐 어떤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남자는 흔쾌히 수락했다.

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와 마주 보고 손을 내밀었다.

“가위바위 보”

“보”

해수는 가위, 남자는 보, 해수가 승리했다. 바로 손을 들어 휘둘렀다.

짜악-!

남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아... 어우.”

남자는 뇌가 흔들리는 느낌에 머리를 털었다. 생각보다 쎄다. 이걸 몇 번 더 맞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

그때, 해수가 수표 한 장을 더 꺼내어 위에 올려놓았다.

“맞을 때마다 한 장 더 적립”

“와, 참 화끈한 총각이네? 좋아, 다시 가위 바위 보!”

쩌억-!

“어윽, 어헉...”

남자는 입안에 잇몸이 찢어지고 골이 흔들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여,여보 괜찮아?”

그때 한 장이 더 올라갔다.

“해, 해, 다시 해! 가위바위 보!”

“보”

“이야쓰! 좋아!”

이번에는 남자가 승리, 그는 잽싸게 30만 원을 챙기고 두 번 뒷걸음질을 쳤다.

“여보 이제 그만해 그만.”

“어, 뭐...”

그때, 해수가 이번에는 두 장을 꺼내어 테이블에 올렸다.

“이번엔 두 배”

“가위바위 보!”

쩌억!

남자는 데미지가 축적되어서인지, 아니면 강도가 더 강해진 건지 헷갈렸다. 아무튼, 더 아팠다.

그리고 2장이 더 올라갔다.

쩍-!

남자는 이번에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지만, 테이블 위에 쌓인 60만 원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다,다시... 좋았으!!”

드디어 이기고 60만 원을 가져갔다.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90만 원을 번 것이다.

남자는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면서 헤헤거렸고, 지안 고모도 돈을 보며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해수가 세 장을 올렸다.

“세 배”

쩍!

여섯 장.

쩌억!

아홉 장.

쩍! 퍽! 퍼억!!

남자가 다시 쓰러졌다. 테이블 위에는 240만 원이 쌓여 있었다.

남자의 양쪽 눈은 실핏줄이 터져서 괴물처럼 빨갛고, 코피에 입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양쪽 볼은 퉁퉁 부어서 본래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때 지안 고모가 다가가 그의 팔을 부축했다.

“여보 일어나, 일어나.”

“어, 어? 괘,괜찮...”

남자는 부축을 받다가 지안 고모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좀 이겨봐, 쓰러지지 말고.”

남자는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안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고작 240만 원 때문에.

남자는 비틀거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지금까지 맞은 게 아까워서 포기할 수 없다.

“가위...바위... 보”

졌다. 남자가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정자세로 서서 손만 휘두르던 해수가 오른쪽 다리를 뒤로 빼고 허리를 비틀었다.

후웅- 쩌억!!

남자는 계산대까지 날아가 쓰러졌다.

“여보, 여보! 일어나! 게임 해야지!!”

지안 고모가 거칠게 흔들며 깨웠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해수가 돈을 챙기고 일어나자 그녀가 다급히 달려들었다.

“내가, 내가 대신할게, 부부는 일심동체잖아? 어?”

해수는 그녀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10만 원부터 시작입니다. 하시겠습니까?”

그녀가 멈칫하곤, 피떡이 된 남편을 힐끔 보았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남편만큼 버틸 자신이 없다. 저렇게 맞다간 죽을 수도 있다.

“그,그런 게 어디 있어?”

“하시겠습니까?”

“아,안 해! 이 미친놈아! 폭행으로 신고할 거야! 저기 시시티비에 다 찍혔어!”

해수는 고개를 스윽 숙이고는 감자탕집을 나섰다.

일부러 시시티비가 보이는 곳에서 진행한 것이다.

해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방향이고, 서로 합의 하에 진행하여 댓가로 금전까지 지불을 한 것이 버젓이 찍혀있으니 신고 접수조차 힘들 것이다.

*

며칠 뒤.

해수는 본격적으로 김지안 삼 남매와 고모에 대해 수사를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복잡한 수사도 필요 없다. 지안이를 만나서 진술만 받으면 된다.

열한 시, 리드 빌딩 편의점, 해수는 이제 대놓고 지안을 기다렸다. 오늘 하루는 일찍 잠을 청하여 오지 않았다.

지안이 오자 해수가 손을 들어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지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눈을 피한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이상하다.

“지안아, 아저씨랑 얘기 좀 할까?”

“아, 지금 동생들이 일어나 있어서,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지안은 잘못한 사람처럼 해수를 피해 급히 걸음을 옮겼다.

“왜 저러지...”

*

다음날, 강진서.

“...네, 네, 지원 요청은 다 돌렸고요? 알겠습니다.”

2팀 형사가 내선 전화를 받고는 벌떡 일어섰다.

“실종 신고입니다! 40대 남성, 어젯밤부터 안 보였답니다. 1팀 급한 거 없으면 같이 찾읍시다.”

1팀장이 키보드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며 대답했다.

“아 싫어, 우리도 주폭 조서 쓸 거 넘쳐, 우리가 안 쓰면 누가 쓰냐, 소는 누가 키워?”

“에이 진짜 치사하게, 가자, 이 남자 집이 어디야?”

“용수동에 왕맛 감자탕이라고...”

그 말에 해수가 벌떡 일어났다.

“잠깐, 실종자 신원 좀 알려주십시오.”

“에? 여기”

해수는 2팀 선임의 무전기 화면을 확인했다. 며칠 전에 해수가 신나게 따귀를 갈겼던 그 남자, 김지안의 고모부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겉옷을 챙겼다.

“팀장님, 이거 우리가 맡죠.”

“아 진짜, 돌격이 너 내가 네 말은 거절 못 하는 거 알고 그러지?”

“예.”

“에잇, 가자 가.”

그렇게 강력1,2팀에 지구대의 지원까지 받아 휴대폰 위치에서부터 찾기 시작했다.

수색을 시작한 지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여기 순 넷, 실종자 찾았습니다. 위치 공유하겠습니다.

“이런...”

“음...”

실종자의 상태를 말하지 않고 위치를 공유한다는 것은 이미 사망했을 경우다.

공유한 위치는 고가도로의 다리 밑, 으쓱한 곳이었다. 그곳에 덩그러니 주차되어있는 차가 보인다.

차 안을 보니 운전석에 그 남자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살인사건이네.”

“그러게요. 머리에는 둔기... 아니, 조금 더 뾰족한 건가.”

“배랑 옆구리에도 피가 많이 나왔습니다. 여긴 칼입니다.”

“블랙박스는 당연히 떼갔고.”

해수는 천천히 시체를 살피다가 미간을 좁혔다.

“옮겨졌네요.”

“어? 아, 그렇네.”

흘린 피가 너무 적다. 게다가 차 안에 피가 튄 곳이 극히 일부다. 이 정도 자상이면 차 안이 엉망이 되어야 한다.

확인해보니 트렁크에서 운전석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갱이 긴 머리카락 하나를 핀셋으로 잡아 해수 앞에 들이밀었다.

“이 남자 머리카락으로는 안 보이지?”

“여자군요.”

“그러게, 범인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보내야지.”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며칠 전에 김지안이 병원비를 받으러 간 일, 자신이 따귀를 때린 일, 지안이 자신을 피한 일, 모두 이 남자의 살해와 관련이 없을까?

강력팀은 CSI에게 현장을 인계하고, 팀장과 막내는 지안 고모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현장이 정리되고, 피해자 신원 확인 절차까지 마치고 강력팀은 서로 복귀했다.

“아이고, 어떡해, 우리 남편, 어떡해! 아이고...”

잠시 후, 눈물 범벅이 된 지안의 고모가 팀장과 함께 들어왔다. 해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알아봐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다.

“많이...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나쁜놈을 빨리 잡기 위해 자세한 진술 부탁합니다.”

“예... 예, 그래야죠, 흐윽.”

“네, 전날에 남편 분이 이상한 행동은 없었는지, 어딜 나갔다 왔는지...”

해수는 구석에 숨어 오갱과 함께 시시티비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차가 지나가는 고가도로에서 그 차가 언제 어디로 가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똑똑

“수고하십니다.”

한 여학생이 경찰관들과 함께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해수는 힐끔 보았다가 여학생의 얼굴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지안아.”

지안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신형사님이 아는 학생입니까? 이 학생이 자기가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자수했어요.”

“...뭐?”

김지안을 보자 고모가 일어나 발작했다.

“저 년이야!! 저 년이 우리 남편을 죽였어! 분명해!!”

“저기, 저기요!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저 썅년이 우리 남편 꼬셔서 죽였다고! 저 년이 저럴 줄 알았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뭘 그렇게 잘못했어? 어! 저년이 결국 내 남편 죽일 줄 알았어!”

고모는 결국 진정이 되지 않아 지안과 분리를 시켰다.

해수는 지안과 아는 사이임을 밝히고 1:1로 취조를 했다.

“...경찰한테 내가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 라고 자수했다고?”

“네...”

“확신은 아니었네? 고모부가 죽은 건 어떻게 알았어?”

“고모가... 아까 문자로 알려줬어요.”

해수의 눈빛이 빛났다. 그런 사이인데, 그 와중에 문자로 죽음을 알렸다?

“얘기 좀 자세히 들어볼까?”

“네, 그러니까, 어제...”

고모부가 병원비와 모자란 용돈을 준다며 불렀고, 차를 타고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거기가 혹시 여기야?”

해수가 고가도로 다리 밑의 사진을 보여주자 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취조실 밖에서 내용을 듣던 형사들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내심 아니길 바랐던 것이다.

“...거절했는데, 손목을 잡고, 강제로...”

지안의 설명에 취조실 밖 형사들이 이를 갈았다.

“이런 개...”

“미친, 죽어도 싼 놈이었구만.”

해수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짓누르며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차에 있는 고모부 가족사진으로... 머리를 마구 내리찍었어요. 고모부 머리에서 피가 나고, 쫓아 나오려고 해서 차 문으로 쾅 닫아서 고모부 머리 부딪히고... 저는 막 도망쳤어요. 그런데, 안 쫓아왔어요. 그게, 그 정도로 죽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 어떡해요. 아저씨? 제가 교도소 가면 동생들은...”

지안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술이 맞지 않는다.

“확실해?”

“네...”

“아저씨 앞에서는 솔직하게 얘기해야 해, 정말 액자로 머리를 내리치고 차 문으로 찍은 것 외에는 없어?”

“네... 솔직하게 말한 거에요.”

해수는 노트북으로 자료를 보여주려다가 멈추고, 말로 설명을 이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간장 및 폐 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야, 범인은 칼로 배를 여섯 방이나 찔렀어.”

“네? 저,저는 그,그렇게 안 했는데? 저 정말 아니에요! 제가 칼을 어떻게...”

놀람과 당황, 그리고 안심, 자신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안심이라는 감정이 섞여 있다. 이 아이는 살인범이 아니다.

“알아, 아저씨도 지안이 믿어, 그럼 이제부터 진범을 잡을 건데, 지안이가 도와줘야 해, 이 일은 고모한테는 밝히지 말자, 걱정하지 말고.”

“네? 어,어떻게 도우면 되는데요?”

“먼저 고모와의 관계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

지안은 고개를 돌려 취조실 유리창을 보았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고모 안 계시면 동생들이랑 다 헤어져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니, 원하면 지금처럼 너희끼리 살아도 돼, 기관에 들어가게 되어도 다 같은 기관 들어가도 되고.”

“그러면...”

“고모한테 용돈은 얼마나 받지?”

“한 달에 50만 원이요...”

해수는 이를 악물었다. 셋이서 하루 만 원 식비라고 쳐도 옷은커녕 다른 생필품 사기에도 빠듯한 비용이다.

“가스비나 수도세는 고모가 내?”

“...제가 내요.”

해수는 순간 욱했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너희... 너희 이름으로 나오는 돈이 147만 원이야, 이것저것 비규칙적으로 나오는 지원금을 합치면 150은 훌쩍 넘지, 그중에 너는 50만 원만 받고 있던 거야.”

해수의 설명에 지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게 무슨...”

“나머지는 고모가 챙기면서 생색을 낸 거지.”

“...제가 정말 멍청했네요. 그런 것도 모르고...”

“아니, 아이들을 갉아먹어서 배를 채우는 어른들이 나쁜 거지, 그럼, 이제 고모랑 인연이 끊겨도 괜찮아?”

“악연으로 이어져도 괜찮아요, 아니, 이미 악연이에요.”

지안의 눈동자가 비장하게 반짝였다.

*

해수가 믿는다고는 하지만 지안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임은 바뀌지 않았다. 지안은 유치장에서 지내게 되었고, 해수의 부탁으로 경찰서 형사들이 적극 신경을 써주었다.

해수는 지안의 부탁으로 퇴근 후에 그녀의 동생들을 챙기기로 했다.

진범을 하루빨리 잡아야 지안을 풀어줄 수 있다. 해수는 눈이 빠져라 시시티비를 돌려보았다.

그때.

현장 근처 시시티비를 보던 중, 해수의 손이 얼어붙은 듯이 멈추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 #58. 자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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