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는 바로 연락처에서 하루를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추었다.
‘차라리 잘 됐어.’
오늘 낮에만 해도 하루를 어떻게 독립시켜야 하나 고민했었다. 마침 좋은 타이밍이다. 나간다고 어디서 누구한테 해코지 당할 애도 아니고, 똑똑해서 알아서 잘 지낼 것이다.
함께 있으면 하루가 위험하다.
해수는 하루에게 문자 하나, 전화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저녁을 차렸다.
푸슈우우욱- 딸칵
그는 밥솥을 열고 멈칫했다. 자신도 모르게 하루가 먹을 양까지 함께 한 것이다.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시,시발 맛있습니다.
하루가 이상하게 감탄을 표현했던 때가 떠올라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그녀는 최근에도 밥을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감동하고 감사하며 먹었었다.
그 모습에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현재에 더 감사하게 되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씻고 나와서 습관적으로 침대 구석을 보았다.
-어쩔티비? 슈슈슉
-아 킹받네.
그곳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며 중간중간에 이상한 말을 툭툭 내뱉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던가, 몇 개월을 함께 지냈기에 집안 모든 곳에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피바다 가운데에 우뚝 서 있던 그 그늘진 모습이 떠올랐다.
‘잘 된 일이다. 잘 된 일이야.’
다시는 그런 일을 겪게 할 수 없다. 해수는 다짐하며 침대에 누웠다.
잠잘 때마다 소매를 잡아당기는 그 묘한 중력도 그립다. 이렇게 보니 정말 그녀가 해수의 삶 하나하나 녹아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꽤 많이 피곤한데도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밥은 어떻게 먹을까? 밖에서 혼자 사 먹은 적이 없는데... 누구를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잠은 어디서 잘까? 갈 데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이렇게 나가버리다니...
해수는 하루 걱정에 밤을 지새우지는 않았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
다음날.
신해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출근 전에 항상 황장수의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한다.
타닥 쿵!
해수가 먼저 달려들어 황장수의 고무 단검과 팔을 쳐내고 어깨로 몸을 밀쳤다.
황장수가 몇 걸음 물러나 머리를 털며 단검을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뻗기도 전에 다시 해수가 달려들었다.
투둑 퍽!
“컥”
해수가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여 장수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글러브를 끼고 있지만 오픈핑거 글러브이기에 충격흡수도 미세했다.
장수는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단검을 집어던졌다.
“안 해, 안 해!”
보통은 장수가 먼저 공격을 하면 해수가 막고 반격하는 식이었는데, 오늘따라 공격하는 자세만 취해도 들어왔다.
해수를 어려서부터 봐온 장수는 그의 무표정에서 감정을 찾아내고 물었다.
“무슨 일 있냐?”
“없어, 잡생각 좀 지우고 싶어서.”
“그래, 나도 쎄게 한다!”
“들어와”
탁탁 퍽!
장수는 다시금 뒷걸음질을 치며 배를 부여잡았다.
“으씨 진짜”
*
신해수는 황장수를 샌드백 삼아서 땀을 쫙 빼고 경찰서로 출근했다.
경찰서 입구에 기자들이 몰려 있다. 해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니 누군가가 알아보고 소리쳤다.
“엇, 신형사다!”
“신해수 형사다!”
“신형사님! 며칠 전 형사 보복 사건에 대해 한 말씀만 해주시죠!”
해수는 어리둥절하여 일단 그들을 무시하며 서 안으로 들어가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서장실 안에서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장이 해수를 호출했다.
“신형사.”
“예, 서장님.”
“개인의견은 존중하는데, 나는 자네가 이참에 깔끔하게 인터뷰 받고 저 사람들 보냈으면 좋겠어, 이참에 강진서 이미지도 더 좋아지지 않겠어? 물론 싫으면 내가 직접 치워주고.”
해수는 딱히 인터뷰를 피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경찰에 대해 좋은 인식이 퍼지는 것이니 환영할 일이다.
“그러겠습니다.”
경찰서 본관 옆 건물 빈 강당.
때아닌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수를 중심으로 기자들이 둘러앉아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대리기사 연쇄살인범이 범행을 계획했다가 잡았다는 신형사님과 동일인이신가요?”
“맞습니다.”
“복수를 계획한 조직폭력배들은 어떻게 상대하셨나요? 모두 칼을 들고 있었나요? 보여주실 수 있나요?”
“예, 네 명 모두 칼을 들고 있었고, 이렇게... 음, 네 분만 나오시겠습니까?”
“아, 보여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세 명은 사망했던데, 칼로 찔러 죽일 정도로 급박하셨습니까?”
“칼은 어린아이가 들이대도 급박해집니다. 당해보시면 알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범죄를 몰고 다니시나요?”
“모르겠습니다. 생긴 거?”
“생긴 건 방범용이신데요.”
“대중이 신형사님의 신원 공개를 원하십니다. 공개해주실 의향이 있습니까?”
“직업, 나이, 이름, 다 밝혀졌는데 더 공개할 게 있습니까?”
“얼굴이요. 얼굴.”
해수는 손사래를 쳤다.
“자랑할만한 얼굴도 아니고, 위장 잠입할 때도 많은데 사람들이 알아보면 곤란합니다.”
“사진 많이 찍히셨는데?”
“대충 찍힌 것과 모공까지 나오게 제대로 찍는 건 다릅니다.”
“그럼 대신 팔뚝만이라도 공개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복근까지 가능합니다.”
해수가 일어나 근무복을 벗고 딱 붙는 기능성 반팔 티셔츠를 입은 몸을 선보였다.
신소재 특수방검복은 아무리 얇다고 해도 여름에는 계속 입고 있기 힘들어 출동 때만 입는다.
“우오...”
“와...”
“몸이 개연성이었다.”
사람들은 해수의 강철같은 근육과, 쪼개진 근육만큼이나 많은 흉터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찰칵찰칵 촤좌좌작-
“신해수 경사님이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있으십니까?”
“아...”
해수는 고개를 돌려 한 기자의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쁜 짓 했으면 자수하십시오. 내가 잡으러 가면 많이 아플 겁니다.”
“어우”
“우으...”
그의 살벌한 기운에 기자들이 타자도 멈추고 단체로 몸을 뒤로 물렸다.
“마지막으로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한 여성 기자가 물었다. 긴 생머리에 흑발 머리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 언젠가는 독립을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자신이 민폐였다는 오해를 하고 떠나게 하여서는 안 된다.
해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집 나간 하루야, 돌아와라.”
“아, 반려동물 이름인가요?”
해수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이만 일 하러 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원한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신형사님!”
독점을 하지는 못했지만 사소한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해준 해수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호의로 명함을 주고 가는 기자들이 여럿 있었다.
***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 시간.
신해수는 여섯 시 땡 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어 뭐야? 끝나고 어묵 먹기로 안 했어?”
“내일 먹죠, 급히 할 일이 생겨서.”
해수는 바로 하루에게 전화했다. 전화기가 꺼져있다. 정영수에게 요청하여 휴대폰 위치를 추적해보니, 전화기가 켜져 있을 때의 마지막 장소는 장 보러 가는 마트 근처.
‘어딜 간 거야...’
해수는 그곳으로부터 이곳저곳 뒤져보고, 안서은에게도 물어보았지만, 하루를 찾을 수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해수는 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발이 무겁다. 집에 들어가니 하루가 깜짝 이벤트처럼 떡하니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척
집 앞에 도달하자 해수의 발이 우뚝 멈추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한 여인이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는 야무지게 챙긴 짐가방이 세워져 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해수를 올려다보았다. 하루 사이에 부르튼 그녀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저는, 민폐를 끼쳤습니다. 그러나... 집주인님과 같이 지내고 싶습니다. 떨어지기 싫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절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듯한 하루의 고해성사와 같은 말을 들으면서 해수의 눈이 단계적으로 점차 커졌다.
처음 듣는 하루의 진심, 지금까지 그녀도 독립을 원한다고 생각했었다. 하루빨리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훈련을 시켜왔었다.
독립을 해보지 않았으니, 또는 그 끔찍한 지하세계에서 나와서 처음으로 머문 사람 사는 곳이기에 미련이 더 깊을 수도 있다. 나중에는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답이 정해져 있다.
“찾았잖아.”
해수의 말에 하루의 눈이 동그래졌다.
해수가 손을 뻗었다. 하루가 그 두터운 손을 잡고 일어났다.
*
하루는 들어오자마자 폭풍 식사를 했다. 해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며 말을 걸었다.
“어디 있었어? 휴대폰은 왜 꺼져 있고.”
하루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돈이다. 오만 원 권 두 장에 만 원권 세 장.
“언제까지 집주인님께 기댈 수 없으니 돈 벌었습니다. 일하다 보니 휴대폰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 되니까 이 집도, 집주인님도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민폐인 줄 알지만...”
“민폐 아니야, 잘했어, 그래서 무슨 일을 했는데?”
하루는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든 채로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눈을 두 번 깜빡이고는 두 손으로 무언가를 옮기는 시늉을 했다.
“택배... 큰 상자들을 막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택배 상하차?”
“아 네, 맞습니다.”
해수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어쩐지 하루의 꼴이 좀 초췌하다 했더니, 하루 동안 밖에서 그냥 시간만 보낸 게 아니라 극한의 일까지 하고 수당도 제대로 받았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힘든 일을...”
“네? 괜찮았습니다. 옆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도와줘? 택배 상하차를?”
상하차 일은 누가 도와주고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자기 할당된 일을 처리하기에도 정신이 없다.
해수는 문득 어떤 미모의 여배우가 아르바이트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손님도 친절하고 동료도 친절하고 사장님도 친절했어요. 아, 세상이 친절한 느낌?
“네, 그리고 다들 친절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돈 벌어오겠습니다.”
역시, 얼굴이 친절과 도움 본능을 일으킨 것이었다.
본래 친절은커녕 감독관에게 처음 듣는 조합의 욕을 밤새 듣는 곳이 상하차다.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분간은 하지 마,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보는 것부터 하자.”
“아... 적성, 네 알겠습니다.”
꼬질꼬질해진 하루는 샤워하고는 금세 잠이 들었다.
해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외부침입이 어렵고 안전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인터넷 카페, [맞짱]
‘전국 싸움꾼들이 가입하여 서로 맞짱을 뜨고 서열을 정하는, 진정한 강자들의 모임’ 이라는 설명의 카페다.
[(링크)요즘 핫한 경찰, 질 수 없잖아?]
요즘 인터넷에서 물고 빠는 신형사라는 경찰임, 혼자서 보복하러 온 조폭 4명 역관광시킴, 3명은 사망, 1명은 중상인데 발목을 끊어버려서 불구라고 함ㄷ ㄷ
-마가99: 몸이 좋긴 한데, 이 정도 몸은 카페 행님들도 넘치지 않음?
-문디야: 문디야, 행님들이 훨씬 좋지, 저 짭새는 짜바리도 안 된다
-dlfader: 와 역시 행님들, 짭새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행님들 앞에서는 꼬리도 못 들지
-승우생각: 요즘 조폭들 비리비리해서 저거 믿을 거 못된다. 내가 동네 조폭 2:1뜬 적 있는데 개좁밥이었음, 조폭 그거 다 문신가오충들이야, 4명이 칼 들어봤자 다 한 방감이었을 거다. 별것도 아닌데 심하게 물고빠는게 거슬리네
-상사의장: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행님, 제가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이참에 저 경찰 정식으로 재끼고 영상 올려서 우리 카페 유명세 좀 태워보는 거 어떻습니까?
-승우생각: 저 정도 고수를 재끼면 은거고수들의 도전이 쏟아질 텐데...
-구름과빛: 나도 참가합니다.
-상사의장: 와씨 지려따!! 인천 지역구 맞짱대회 챔피언 행님 아니십니까? 이거 게임 너무 쉽게 끝나겠는데요?
-승우생각: 인천 행님 가시는데 나도 당연히 가서 보필해야지
-아우라조: 서울 강동구 짱도 참가합니다.
-상사의장: 지려따! 디져따 신형사! 제가 카메라 하겠습니다. 행님들 우리 맞짱 카페의 무서움을 한 번 세상에 널리 알려주시지요!
-구름과빛: 날 잡읍시다.
-문디야: 미친ㅋㅋㅋㅋ개재밌겠네 가서 현관해야지, 근데 어디있는 줄 알고?
-상사의장: 경찰서는 어딘지 아니까 그 근처에서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요. 제가 사전답사하겠습니다. 날 잡고 여기 공지 올리겠습니다 행님들!
< #55. 하루 가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