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54화 (54/255)

스크류바 막대가 쪼개져 끝이 날카롭게 변했다. 짧은 막대는 쓸 수 없어 버리고 긴 막대만 오른손에 들었다.

한 사내가 하루의 머리칼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핏 치이익-

사내의 팔꿈치 안쪽에 뾰족한 막대가 박혔다가 빠졌다. 피가 물총처럼 쭉 쏘아져 나온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사내는 가만히 바라보았고, 다른 사내들은 킥킥 웃음을 흘렸다.

“이런 썅년이”

사내가 반대 손에 쥔 칼을 뻗었다. 방향은 하루의 배, 그 칼끝에 망설임은 전혀 없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데 망설임이 없는 자다. 사람을 많이 죽여본 자들이다.

즉, 조절해가며 상대할 수 없다.

하루는 상체를 비틀어 칼을 피하며 사내의 손목을 잡고, 막대로 그의 팔꿈치와 목을 찍었다.

픽 픽, 푸슉-

정확히 경동맥이 끊긴 사내의 목구멍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구경만 하던 사내들의 자세가 바뀌었다.

막대도 끝이 뭉툭해져서 더는 써먹을 수 없다. 하루는 목에서 피를 내뿜고 있는 사내의 손가락을 꺾어 칼을 빼앗아 들었다.

우득

그 모습에 다른 사내들 셋이 칼을 들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루는 무력화된 사내의 배를 발로 차 다른 사내에게 보내고 몸을 바짝 숙였다.

서걱

머리 위로 칼날이 스치며 머리카락이 잘렸다. 하루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의 머리 위로 칼을 휘두른 사내의 아킬레스건과 오금을 베었다.

슥 삭-

“끅”

그를 지나가자 칼 하나가 목을 노리고 일자로 뻗어왔다. 하루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마주 칼을 뻗었다.

푹-

사내의 칼날이 하루의 쇄골 앞에서 멈춰 섰다. 사내의 팔꿈치에는 하루의 칼이 관통해 있었다.

뿌득

하루는 그것을 뽑으려다가 잘 뽑히지 않자 바로 포기하고 눈앞에 칼을 든 손의 손가락을 꺾어 빼앗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한 바퀴 굴러 뒤에서 찍어오는 칼을 피하고, 팔꿈치에 칼이 관통당한 사내의 옆구리에 칼을 꽂고 올라와 목을 찌르고 발로 등을 차 칼을 뽑으며 거리를 벌렸다.

픽 핏 츄아악-

방 안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 유일하게 부상도 당하지 않은 사내가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아아악!!”

하루는 다시금 확 몸을 낮춰 사내의 칼을 피하며 그의 발등에 칼을 꽂았다.

“욱!”

사내가 고통에 경직되었을 때 사타구니에 칼을 더욱 깊게 찔러 넣었다.

“끄으아악!!”

사내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를 때, 일어나며 무릎으로 그의 손을 찍어 칼을 놓치게 했다.

팅-

칼이 떠오르자 하루가 공중에서 그것을 낚아채며 한 바퀴 돌았다.

비명을 내지르던 그의 목에 선명한 혈선이 생겼다.

하루가 손으로 그의 턱을 잡고 들어 올리자 목이 아가미처럼 벌어지며 피가 폭포처럼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사내는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으으, 으으”

발목과 오금을 베인 사내가 하루에게 덤비려다가 멈추고 부들부들 떨었다.

찰팍, 찰팍.

그녀가 피를 밟으며 다가오자 사내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동료의 시체에 걸려 넘어졌다. 하루는 맹수처럼 달려들어 그의 목에 칼을 찔러넣었다.

턱-

칼 끝이 사내의 목에 닿은 상태로 멈추었다.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았다.

‘전투불능 상태,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어, 죽이지 않고...’

하루가 생각이 깊어 보이자 사내의 손이 슬며시 움직였고, 동시에 목에 닿아있던 칼이 그의 손등에 찍혔다.

푸욱-

“큭!”

하루는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움직이면 죽고, 가만히 있으면 삽니다.”

하루는 손에 묻은 피를 시체의 옷에 대충 문지르고는 해수가 사준 크로스 백에서 케이블타이를 주섬주섬 꺼내어 마지막 생존자의 손과 발을 묶었다.

그러고는 방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피바다가 된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렇게 따뜻했던 공간이, 이전에 살던 세상처럼 변해버렸다. 자신의 손에 의해.

뚝 뚝 투둑.

새하얀 얼굴에 묻은 핏방울은 더욱 빨개 보였다. 눈물은 피와 섞이며 붉게 변하여 바닥에 떨어졌다.

돌이킬 수 없다. 다시 이 끔찍한 세계로 돌아왔다. 어여쁜 치마도 붉게 물들었다.

집주인은 이런 자신을 보면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겠지? 버리겠지? 경멸할까? 정말 버릴까?

자신을 위해 바비큐 닭을 사오던 모습, 라면을 끓여주던 모습, 반찬을 밥 위에 올려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확신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하루에게 용기를 주었다.

하루는 피 묻은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집주인님’이라 적힌 연락처를 찾고, 통화 버튼에 손을 올렸다.

띠리리

-어.

통화음이 채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는다.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루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내뱉었다.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괜찮아, 어디야, 지금 갈게.

‘괜찮아’, 믿음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루는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

신해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안에는 바닥은 물론 집안 물건들, 벽지에도 피가 낭자해 있었다.

그 피바다 가운데에 하루가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구석에는 손목과 발목이 묶인 사내 한 명이 파닥거리고 있다.

해수는 말없이 하루의 손목을 잡고 욕실로 들어가게 하고, 그녀의 트레이닝복을 갖다 주었다.

“일단 씻어.”

“...네.”

욕실 문을 닫고, 해수는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유일한 생존자에게 다가갔다. 발목과 오금, 손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해수는 그의 목을 움켜쥐고 강제로 일으켰다.

“커,컥”

“말해봐, 여긴 왜 왔어.”

해수의 눈동자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여차하면 목을 바로 꺾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모,모창귀 형님의 보,복수를 위해...”

즉, 해수를 죽이려고 들어왔다가 엄한 하루가 같이 산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뻔했던 것이다.

“그렇구나...”

세 명이 죽고 하나는 불구가 되었다. 흉기를 든 사내 네 명을 혼자서 상대하며 상처 하나 없이 처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사건이 복잡해질 것이다. 하루가 어떻게 이런 실력을 지니게 되었는지, 그녀의 과거는 무엇인지 형사들은 끝까지 파헤쳐야 할 것이다.

해수도 궁금한 부분이지만 이런 식으로 밝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럼 내가 지금 널 죽여도 정당방위라는 건 알겠네.”

“사,살려주십시오. 뭐,뭐든 다 하겠습니다.”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엄지로 그의 쇄골을 눌렀다.

으드득

“끄으으윽!!”

“남의 목숨은 개미처럼 여기는 놈이 자기 목숨은 아까운가 봐.”

쇄골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에 사내는 벽에 붙어 부들부들 떨었다. 해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 놈들 전부, 내가 죽인 거다. 알아들어?”

“예,예,예”

사내는 의문 따위를 가질 정신이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해수는 진지하게 그도 죽일까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갑자기 튀어 나가더니, 뭔 일이냐?

“살인 사건입니다.”

-우리 돌격이는 하여튼 사건을 몰고 다닌다니까? 어디야?

“제 집입니다.”

-...어?

*

잠시 후, 해수의 집으로 강력1팀 형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피 칠갑이 된 집안 상태를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안녕하세요...”

그곳에 있는 하루를 보고 더 놀랐다.

어차피 시시티비를 분석하면 하루가 먼저 들어간 것이 확인되니 숨길 수 없어 현장에서 나가게는 하지 못했다.

“아,안녕하세요??”

해수는 놀란 팀원들과 하루 사이로 끼어들며 짧게 설명했다.

“어쩌다보니 잠시 제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와이프가 말한 아가씨가 이 분이구나?”

“그나저나... 처참하네.”

팀장이 시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루를 협박해서 절 불렀고, 제가 처리했습니다.”

“이 미친 새끼들이...”

“돌격이는 다친데... 없겠지, 이런 건 참 든든해서 다행이야, 팀원이 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들어서 참 좋아.”

팀장의 얼굴에 진심이 묻어난다.

“하루... 씨는 괜찮으십니까?”

하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갱은 구석에 쭈그려 앉아 시체들의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야야, 뭘 그렇게 봐 인마, 징그럽게, 얼른 넘기자.”

“예에”

*

해수는 당연하게도 정당방위로 인정되었다. 이후 조사해보니 알게 된 것이지만 그들은 모창귀의 충성스런 수하답게 악질적인 조선족 조폭들이었다.

이미 여기저기서 사고를 쳤고, 이제야 밝혀진 살인 건만 네 건이었다.

이번 사건 역시 기사가 실렸다.

[두목을 잡아넣은 형사에게 보복하려다가...]

-조직의 두목을 잡아넣은 형사에게 보복살인을 감행했던 조직폭력배 네 명이 역으로 당했습니다. 세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강진서 신00 경사는 작은 생채기도 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신씨면 그때 그 형사 아니야? 1년 전에 연쇄살인범 대리기사가 작업 쳤다가 역관광했다는

┗기억력 ㅈㄴ 좋네 경찰기사만 찾아보냐?

┗이번에는 네 명 역관광, 역관광 시키기 전문 형사냐?

┗나 방금 찾아봤는데 맞는듯 계급도 경장에서 경사

┗현실판 코난이냐? 사건을 몰고 다니네, 어떤 형인지 직접 보고 싶다. 대한민국 어떤 경찰이 지 담구러 온 조폭 네 명을 혼자 다 골로 보내냐? 이 정도면 한국판 히어로 아니냐?

┗나도 보고싶음, 누군지 알려줘라, 인터뷰 하나만 따자

┗신형사 인터뷰 공개 동의 선착순 1

┗선착순 2

┗...선착순 1088

이번 사건은 기사가 몇 개 나지 않았지만, 흔치 않은 내용 덕분에 SNS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벌써 강진서 홈페이지를 통해 해수의 이름과 나이까지 퍼져 나갔지만 당사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스읍

해수는 경찰서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

오갱의 집에 가서 형사 가족의 피해에 관해 들었을 때만 해도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하루가 끔찍한 일을 당할 뻔하자 고민이 깊어졌다.

하루를 하루빨리 독립시켜야 한다. 자신이 형사 일을 하는 이상,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

만약 하루가 감당하지 못할 자들이 온다면? 만약 모창귀가 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사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현재 집에 살다가 피해를 볼 까 걱정이 된다.

끼익

그때, 오갱이 옥상 문을 열고 와서는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담배 끊으십시오.”

“잔소리쟁이”

오갱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입을 열었다.

“니가 죽인 거 아니지.”

해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막내까지는 몰라도 오갱과 팀장은 형사 생활이 몇 년인데, 현장을 슬쩍 보기만 해도 눈치챘을 것이다.

감히 현장을 대충 보고 넘기라던 팀장의 말만으로도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넌 칼 안 써, 칼밭에 들어가도 맨손으로 때려 부수는 애가 고작 네 명을 상대로 칼을 쓴다고? 깊이도 얕아, 근력이 적은 사람이 죽였어, 가령... 그때 봤던 그 아가씨라던가.”

해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엉? 생각보다 순순하게 인정하니까 할 말이 없네.”

“저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는데, 더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 기억이 없다고 했었나?”

누가 천상 형사 아니랄까 봐 기억력도 좋다.

“예.”

“이번 사건 가벼운 거 아니야, 사람이 세 명이나 죽었어, 정당방위 아니면 그냥 안 넘겼어”

반대로 그냥 넘긴다는 뜻이다. 해수는 감사의 뜻으로 마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저도 그랬을 겁니다.”

오갱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말을 이었다.

후-

“근데 그 아가씨는 참 실력 좋다. 그 흉흉한 살인귀들을 상대로... 긁힌 상처 하나 없다고?”

“예, 다행히.”

“그 정도 실력이면 경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수는 순간 피바람을 휘날리는 하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

퇴근 후,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 깔끔하게 치웠어도 피비린내가 여전히 풍겨왔다. 그런데 하루가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 냉동칸 문에 분홍색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저는 살인자입니다. 집주인님이 살인죄 뒤집어쓰게 했습니다. 민폐입니다. 하루를 찾지 말아 주세요. ^-^]

글씨가 아이처럼 삐뚤빼뚤하지만,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표시가 그녀다웠다.

해수는 포스트잇을 떼어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하루가, 가출했다.

< #54. 슥삭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