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는 한 손으로 임기성의 얼굴을 움켜쥐고 끌고 가며 중간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땡땡이 커튼을 완전히 뜯어 챙겼다.
쿠당탕-!
화장실 안으로 놈을 던지고, 커튼을 그에게 덮었다. 동시에 강하게 말아쥔 주먹을 뻗었다.
퍽! 퍽, 퍽!!
어디에 어떻게 주먹이 꽂히는지 모른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 아예 바닥에 널브러진 놈을 향해 주먹을 쉴 새 없이 때려 박았다.
커튼이 붉게 물들었고, 이제는 신음도 비명도 나오지 않지만, 이대로는 임기성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멈춰지지가 않았다.
“흐읍”
그때, 주먹을 잠시 멈춘 그 찰나에 임기성의 것과는 다른 흐느낌이 해수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해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서 피해자를 보았다.
쿵쿵쿵
막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해수가 문을 열어주자 막내가 문을 부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구급차 불렀지.”
“예 선배님, 곧 도착할 겁니다.”
해수가 진입하기 전에 119를 미리 부르라고 했었다.
해수는 피 묻은 손을 바지에 대충 문지르고는 형사복을 벗어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가 움찔하며 살짝 몸을 물렸다가 멈췄다.
“경찰입니다. 김서영씨, 이제 괜찮습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덜덜 떨림이 느껴진다. 그럴 만도 하다. 그녀가 느낀 공포를 해수도 잠깐이나마 느껴봤으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막내는 화장실로 가서 커튼을 치우고 피떡이 된 임기성의 생사를 확인했다.
“이놈 이거, 가발이었네.”
커튼을 치우면서 그의 머리에 비뚤게 씌워져 있던 가발이 벗겨지고 삼자 탈모가 심한 짧은 머리가 드러났다.
막내는 그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임기성, 너를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다.”
여섯 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손가락을 잘라간 변태 연쇄살인마 임기성은, 10개월 만에 드디어 체포되었다.
*
“이런 제기랄...”
광수대 팀장이 전화를 받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요. 설마...”
“그 설마가 맞다.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임기성 유전자랑 일치하지 않아, 저 가발이랑도.”
“젠장...”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지만, 그동안의 살인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망고마켓 거래 내역과 월차라는 정황이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
“젠장, 손가락은 도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
팀장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
해수가 묵사발로 만들어 현재까지 혼수상태이기에 심문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파일러 양지은이 태블릿 펜을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군대에서도 그렇게 가까운 곳에 뒀으면, 분명 집에 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해수가 맞장구를 쳐주니 양지은이 그를 펜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쵸? 원래 수집가들이 수집한 것들을 만질 수는 없어도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보관하거든요. 자신이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곳에.”
한 번의 맞장구로 어쩔 수 없이 경청하던 해수는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가장 시간을 오래 보내는 곳에?”
“네? 네네”
해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라면을 먹고 있는 막내의 등짝을 내리쳤다.
짜악-
“우헉!”
“가자.”
“옙 알겠습니다!”
막내는 먹던 면을 끊어 뱉고는 벌떡 일어나 차 키를 챙겼다. 양지은이 그 모습을 안쓰러워했다.
“라면은 먹고 가게 해주시지...”
*
해수가 막내를 데리고 찾아간 곳은 임기성이 다니던 회사였다.
“광수대에서 나왔습니다. 임기성씨 책상이 어디입니까?”
“아, 네, 저기, 저쪽이요.”
사무실 가장 구석에 책상과 서랍장이 방치되어 있다. 지금처럼 형사들이 올 수 있으니 치우지 않고 한곳에 밀어둔 것이다.
해수는 바로 서랍을 뒤졌다. 마지막에 가장 큰 서랍장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열쇠를 찾을 필요는 없다.
콰직!
해수는 고민 없이 자물쇠를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쥐어뜯었다. 그러나 안을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서랍도 뜯을가요?”
“당연하지.”
해수와 막내는 서랍을 완전히 빼내었다. 그러자, 안쪽에 서랍과 서랍장 사이 공간에 무언가가 빛에 반사되는 것이 보였다.
“이런 미친...”
그것은, 금테를 두른 유리 상자였다.
마치 피규어를 보관하듯이 손가락들이 모여있다. 깨끗하게 씻기고 방부처리를 했는지 썩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고 깔끔한 모양새로 장식되어 있었다.
정사각형의 작은 유리상자가 일곱 개, 그 중 여섯 개가 채워져 있다.
“뭐, 뭐야...”
“허,허억... 저게 뭐야...”
“와씨, 나 임기성씨가 저 상자 들고 다니는 거 봤는데... 소름.”
“미쳤어 진짜...”
회사원들이 모여들며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자 해수가 빠르게 윗옷을 벗어 그것들을 덮었다.
“가자.”
“예 선배님.”
차에 타면서 해수가 무전을 쳤다.
“회사에서 피해자들 손가락 찾았습니다. 여섯 명입니다.”
-오씨, 잘했어, 역시 우리 돌격이!
-오오, 신경사 잘했어요!
-우리 막내도 잘했어!
해수와 막내는 본부로 복귀하여 손가락을 국과수에 넘겼다.
팀장이 수고했다며 커피를 한 잔 타서 건네주었다.
“아 맞아, 니네 근데 그때 주소는 어떻게 안 거야?”
팀장의 물음에 막내가 경직되어 눈길을 피했다. 해수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건너건너서 망고마켓 쪽 아는 사람한테 부탁했습니다.”
“아 그래? 발도 넓네, 아무튼 이번 사건은 진짜 우리 돌격이랑 막내가 다 했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허허허, 그래 그래, 수고 많았어! 오갱도, 광수대 떨거지들도, 다 수고 많았어!”
“아니 왜 우리는 그냥 떨거지냐고.”
팀장의 말에 광수대 대원들이 욱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팀장의 물음에 생각난 김에 정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통화연결음이 한 번 가자마자 받았다.
-제가 한 게 저 연쇄살인범 잡는 일이었어요?
말이 빠르고 흥분이 가득 느껴진다.
“그래.”
-와, 제가 엄청 큰 일 한 거에요?
“한 목숨을 살렸지.”
-소름...
“그래도 이런 일은 원래 하면 안 돼.”
-근데 왜 시켰어요?
“내가 하고자 할 때만 해, 그래서, 일당 얼마 줄까?”
-에이 됐어요. 좋은 일 한 건데요 뭐.
“알았다.”
-아니 한국사람이 무슨 한 번 밖에 안 물어봐요? 정 주고 싶으시면 20 정도?
“그래, 수고했다. 내가 요청할 때 외에는 이런 일 하지 마, 돈을 많이 주더라도, 나한테 잡힌다. 잡히면 아파.”
-네네 알겠어요. 저도 정신 차렸어요. 걱정 마세요.
해수는 그에게 40만원을 부쳐주었다. 마음같아서는 목숨 살린 값이니 그 열 배는 주고 싶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것이 걸렸다.
***
손가락이 모두 피해자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것이 확인되고, 연쇄살인범 임기성이 광수대에 의해 검거되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경기도를 공포로 물들였던 연쇄살인범, 검거되다!]
[경기 광수대, 연쇄살인범 임기성 검거!]
[연쇄살인범 임기성, 피해자들 손가락을 장식장에 장식하여 충격을 안겨-]
┗와 씨 미친 변태새끼 진짜
┗사형시켜라 사형사형사형사형
┗저새끼손가락도자르고후시딘바르고새살솔솔돋아나면또자르고후시딘바르자
┗광수대존나일못하네 진짜 피해자가 몇이냐
┗기사 본문에 여섯 번째 피해자부터 강진시 강력1팀이 합동수사했다는데? 레드문 게이트 연 팀 아니냐? 거기가 졸라 능력자네, 합류하자마자 바로 검거 ㅋㅋㅋㅋㅋㅋ
┗어디든 경찰이 결국 검거했다는 게 팩트 아닙니까? 대한민국 경찰 화이팅!
┗윗댓 니 견찰이지?
┗강진시 강력팀 포상해라! 특진시켜줘라!
┗임기성 혼수상태 만든 형사 특진시켜라!
┗맨날 존나 특진특진거리네 특진무새 레드문 얼마나 됐다고 또 특진 주겠냐?
여섯 명을 살해하고 그들의 손가락까지 장식하고 있던 연쇄살인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만큼 국민의 관심도 뜨거웠다.
경기 남부 경찰청장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광수대 팀장과 강진서 팀장이 기자들 앞에서 사건 브리핑까지 하게 되었다.
기자회견장 뒤쪽, 정복을 입은 광수대와 강진서 강력팀이 줄지어 서 서로의 복장을 점검해주고 있다.
“와씨 떨려 죽겠네.”
“아니 왜 기자회견을 해가지고...”
오갱이 땀을 뻘뻘 흘리며 중얼거린다. 평소 성격으로는 안 그럴 것 같은데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많이 떨린다고 한다.
“형사님들 들어오세요.”
그 말에 팀장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예! 예 여기 형사 갑니다!”
“아 형님 쫌.”
촤좌좌좌좌좍!
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모두 착석하고 가운데에서 광수대 팀장을 중심으로 사건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아... 이번 연쇄살인사건은 작년 9월 11일 처음 발생한 건으로...”
브리핑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각오했던 질문이 쏟아져나왔다.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강진 강력팀의 합류로 단번에 검거하게 된 게 맞습니까?”
“범인 검거한 신해수 경사와 우강절 순경도 강진 강력팀 소속 아닌가요?”
“이번 살인사건들도 경찰의 초동수사 실패로 일어난 비극이라는 말이 많은데요. 사실입니까?”
“범인은 검거했지만, 광수대는 무능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이번 일을 계기로 해체설이 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광수대 팀장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마이크를 잡았다.
“네, 말씀하신 대로 모두 강진서 강력팀의 합류로...”
쾅!
그때, 강진서 강력1팀 팀장 곽수철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고는 인상을 확 쓴 채 마이크를 가까이 대었다.
“아아, 범인은, 다 같이 잡았습니다. 광수대의 수사가 기반이 되지 않았으면 못 잡았습니다. 골을 넣은 사람만 경찰입니까? 골기퍼도 수비수도 패스한 사람도 모두 경찰입니다. 이상입니다.”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해수와 오갱, 막내도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
광수대 팀원들도 잠깐 눈치를 보다가 자신의 팀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 같이 일어나 그 자리를 벗어났다.
*
“형님 많이 혼났수?”
“혼나긴 뭘 혼나? 맞는 말 했는데, 기자새끼들은 맨날 경찰 깔 생각만 하고 해튼, 범인 잡아서 기분 좋았던 거 다 잡쳤어.”
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현상 같습니다. 자극적이고 나쁜 기사들의 클릭수가 훈훈한 기사를 압도하니까...”
“그래도 아빠 티비나온다니까 자식들이 좋아하더라.”
“승질부리는 장면만 기사 겁나 돌고 있던데?”
“그것도 좋아해.”
강진서 강력1팀과 광수대는 금일봉을 받고 팀 전체 표창장을 받았다.
얼마 전에 호봉 상승을 받은 강력팀과 달리 광수대는 특진을 기대할 만하건만 특진은 없었다. 그러나 광수대 팀원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광수대와 짧은 회식 후, 강력팀은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잡았습니다.”
“에이, 그런 말씀 마시고, 광수대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거기 근육 형사들도 수고 많았어요.”
오갱은 대답 대신 팔을 구부려 이두가 불끈 튀어나오게 했다. 그러자 막내가 재빨리 그 옆에 붙어 똑같은 자세를 했고, 해수가 마지막으로 양쪽 이두를 보여주었다.
“흐어”
광수대쪽 몸짱 형사도 흉근을 쥐어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강진시로 돌아가는 길, 해수는 오토바이도 챙겨왔기에 따로 가는 중이었다. 오갱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
-어 해수야, 회식도 일찍 끝났는데 우리 집 갈래? 여기 막내랑 형님이랑은 말 다 끝났다.
“알겠습니다. 주소 알려주십시오.”
*
오갱의 집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오갱이 팀원들과 함께 들어가자 와이프와 자녀들이 그를 반겼다.
“아빠와따!!”
“아빠아빠아빠!”
“아이고 울애기들!”
오갱의 허리춤도 오지 않는 조그마한 아이들이 쫑쫑쫑 달려와 폭 안겼다. 아들 딸 한 명씩, 아들은 여섯 살, 딸은 네살이다.
오갱은 둘을 번쩍 안아 들고 뒤에 들어오는 팀원들을 보여주었다.
“아빠랑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야.”
“안녕? 주호 주은이?”
막내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들어오기 전에 이름도 외워서 최대한 다정한 어투로.
“우애애앵!!”
“으허어엉!”
그러나 막내를 본 남매는 기겁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오갱이 난감해하며 둘을 데리고 거실로 급히 들어갔다.
“주호 주은이, 아빠 친구들이야 친구,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를 지켜주는 경찰 아저씨들이야.”
“아빠처럼 굥찰?”
“응 경찰.”
막내는 신발장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다. 해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찌르고는 아이들에게 향했다.
“안뇽? 아저씨는 나쁜 사람들 잡는 경찰이에요~”
“으아아앙!!”
“무서어엉!”
간신히 진정되었던 아이들이 다시 목젖을 보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이 오갱 형님 닮아서 울음소리가 우렁찹니다.”
“해수야, 그런 건 갓난아기 때나 하는 칭찬이다.”
“그렇군요.”
결국 오갱의 와이프가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 #52. 기자회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