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도 구름에 가려진 짙은 밤.
달동네 마당에 덩치 좋은 사내들 열댓 명이 숨을 죽이고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진짜 섬뜩했던 건, 우리 중대에 짬타이거라고 노란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거든요. 걔가 어느 날 죽었는데, 앞발 발가락이 다 잘려 있었어요. 누가 죽였는지는 모르고, 근데 그걸 나중에 임기성 제대하고 자리 정리하다가 캐비닛에서 발견했어요. 그 투명한 뽑기 알 같은 것에...”
정성철의 구체적인 설명에 형사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동물을 죽이고 발가락을 잘라서 모아놨다.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다.
지금 형사들의 생각은 신해수와 일치할 것이다. 해수가 물었다.
“군 생활은 어디서 하셨습니까?”
정성철은 눈을 들어 기억을 더듬었다.
“어... 동부경찰서, 경진 동부경찰서 기동1중대요.”
그의 대답에 오갱이 일어나 뒤로 빠지며 무전을 쳤다.
“여기 천셋, 신원 조회 바람, 경진 동부경찰서 기동1중대 141기 임기성, 용의자입니다.”
-용의자? 송팔
해수는 명함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 아? 그럼 저,저는 봐주시는 건가요? 저와 미쿠짱을 응원해주시는 건가요?”
해수는 골프 가방을 힐끗 보았다가 정성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뒤돌아섰다.
*
다음날, 수사본부.
-이름: 임기성
-직업: 회사원
-주소: 경기도 성정시 공이로22번길 30 303호
...
화이트보드에 임기성의 신상정보가 주르륵 나열되었다.
광수대 팀장이 서서 형사들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1팀은 임기성 부모, 2팀은 회사, 3팀은 임기성 자택으로, 지금 바로 출동해!”
“예? 아니 형님 그건 아니죠?”
“왜 3팀이 자택입니까?”
3팀은 해수의 팀을 지칭한다. 임기성과 마주칠 일이 가장 높은 자택을 3팀이 가니 반발이 심했다.
해수네 팀장이 광수대 팀장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승리한 결과다.
해수는 막내와 함께 그들의 반발을 무시하며 차 키를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오갱이 차 앞에서 멈춰 서서 말했다.
“해수야, 난 2팀이랑 같이 움직일게, 그게 나아.”
“예 알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하고”
기존 광수대는 강진서 팀이 아닌 자신들이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보공유가 제대로 안 될 우려가 있어서다.
*
해수는 막내와 함께 임기성의 자택으로 향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원룸 건물이다.
똑똑 똑똑
몇 분 단위로 노크를 했지만, 안에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2팀의 무전이 울렸다.
-여기 천둘, 임기성 자리에 없습니다. 오늘 월차 냈다고 합니다.
월차를 내고 어딘가를 갔다. 느낌이 좋지 않다. 용의자가 아니라면 불법이지만 가끔은 절차를 무시해야 할 때가 있다.
“막내 눈 감아.”
“옙.”
막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을 질끈 감자, 해수가 발을 들어 올려 문고리를 찼다.
팍! 퍼석!
단 두 번 만에 문고리를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매우 깔끔한 편이었다. 물건들이 모두 모서리에 맞춰져 있고, 수건도 각이 잡혀있다.
해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컴퓨터 좀 뒤져봐.”
“예 선배님.”
막내는 책상 주변에 굴러다니는 USB와 인터넷 검색 기록을 살펴보았다.
가까운 동네 위주로 중고거래를 하는 망고마켓이라는 사이트에 자주 접속한 것으로 확인된다. 사이트 로그인 유지가 되어있어 거래 내용을 확인했다.
“선배님, 조금 이상합니다.”
“봐.”
막내가 보여준 기록에는 임기성이 여성 옷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제대로 팔지 않고 허탕쳤다는 댓글도 꽤 달려 있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무전을 들었다.
“2팀, 임기성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월차 기록 좀 알아봐 주십시오. 빨리.”
-송팔
해수가 임기성과 거래를 했던 사람들의 아이디를 적는 중, 다시 무전이 울렸다.
-월차 기록 부른다. 작년 9월11일, 12월28일, 올해 4월17일...
오갱이 날짜를 부르다가 이상함을 알아챘다. 듣는 동안 해수의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오갱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시발 이거... 날짜가 겹치잖아.
연쇄살인이 일어난 날짜와 동일하다. 중간에 빠진 날은 주말이다.
망고마켓의 날짜를 확인해보니 사건 일보다 대략 일주일 전에 한 명 이상이 꼭 있다. 타깃을 망고마켓으로 찾은 것이다.
저렴하고 좋은 여성 옷을 직거래로 판매 글을 올려 허탕치게 하고 타깃 확인하고 미행하는 방식으로 예측된다.
-그럼 오늘 월차라는 건...
-썅 이 새끼 빨리 찾아!
-해수야! 거기서 뭐 더 나온 거 없어?
이번에도 하나가 있다. 사흘 전, 구매 희망자가 메시지를 보냈다는 댓글을 달아두었다. 웹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모바일 앱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인 듯하다.
모바일 메시지를 확인하더라도 직거래 특성상 약속장소만 확인 가능하고, 정확한 주소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망고마켓으로 타깃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흘 전에 한 명, 거래 카테고리는 강진시 용수동, 아이디는 팀장님께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아이디 주인 회원가입 정보로 집 주소와 휴대폰 번호, 휴대폰 위치 추적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정보과에 넘길게, 일단 다 용수동으로 출발해!
“송팔, 가자.”
용수동으로 가는 길, 팀장의 무전이 들렸다.
-야 씨, 이 새끼 폰 꺼놨어, 임기성은 위치 추적 안 된다. 마지막 위치가 걔네 집이야.
점점 임기성이 오늘 살인을 계획했다는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형사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젠장, 형님 그 아이디 주소는 아직 멀었어요?
-아오 그것도 아직 말이 없다. 정보과에 다시 물어보...
그때, 해수의 귀에 팀장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늘어졌다. 동시에 눈앞에 새까만 어둠이 뒤덮었다.
*
시야가 불안하게 흔들거린다.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시야 확보가 좋지 않다.
손은 얼얼한 고통이 느껴지고, 입은 답답하다. 재갈이 물려있는 듯하다. 눈 앞에 까만 바람막이 옷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시선의 주인은 두려움에 차마 눈을 들어 얼굴을 보지 못한다.
스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재밌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날 일은 없겠다.
남자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웃음을 견디지 못하고 숨넘어갈 듯이 킥킥거리자, 시선이 조금씩 올라갔다.
머리를 축 늘어트린 남자의 광기 어린 눈과 마주쳤다. 순간 견딜 수 없는 공포가 휘몰아친다.
-끄으읍!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그가 손에 든 장도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퍽 퍽 퍼석-
*
“꺼허억- 허억! 허억”
차에서 가만히 전방을 주시하던 해수가 돌연 죽다 살아난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자, 막내도 덩달아 놀랐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해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머리를 매만지다가 막내와 전방을 번갈아 보고는 입을 열었다.
“가자, 빨리.”
“네, 넵.”
해수는 방금 전 본 환상을 떠올렸다. 환상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 견딜 수 없는 공포, 손에 느껴지는 생생한 통증, 역한 피비린내, 스산한 목소리, 그것은 제3자의 눈으로 보는 느낌이 아니라 빙의에 가깝다.
빙의 미래시, 피해자의 처지를 온전히 겪고 나면 해수의 분노와 조급함이 배가 된다.
이번에는 피해자가 1시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현 상황에서 도움이 될만 한 힌트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정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형님? 무슨 일이십-
“망고마켓 해킹 가능해?”
해수는 정영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건을 말했다. 영수는 눈치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알아채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해볼게요.
“아이디 보낼 테니 그 사람 정보하고 주소 알아봐.”
-알겠어요. 시간은?
“당장”
-옙썰
전화를 끊고 마음을 졸인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영수에게 전화가 왔다. 해수는 벨 소리가 한 번 울리기 전에 받았다.
“어”
-이름 김서영, 25세 여자, 맞아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이나 성별은 임기성의 타깃에 들어간다.
“주소는”
-지정동 주장로22번길 30, 아름원룸 401호
막내는 운전 중에 바로 네비게이션을 다시 설정했다. 해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해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위치 변경되었습니다. 용수동 아니었습니다. 지정동 사람인데 용수동 거래를 받은 겁니다. 주소 다시 부릅니다. 지정동 주장로...”
-오케이,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1팀 송발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용수동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정보과는 아직입니까?
-아직 협조 못 받았대, 이 새끼들 진짜 답답해.
해수는 무전기를 내리고 긴급출동 사이렌을 차 위에 붙였다.
“막내야, 속도 올리자.”
“네 알겠습니다!”
막내는 힘차게 외치며 액셀을 깊게 밟았다.
부아아앙!
***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예쁘게 꾸며져 있는 원룸.
사회초년생 김서영은 처음으로 혼자 살면서 꿈을 키워오던 이곳이 지옥이 될 줄은 몰랐다.
“흡, 흐읍”
방바닥에는 피가 가득하다. 모두 자신의 피다.
“자, 다시 해봐요.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쥐고, 왜 이렇게 떨어요. 떨면 실패한다니까? 대학 축제에서 못 박기 게임 안 해봤어요?”
남자가 서영의 오른손에 장도리를 부드럽게 쥐여주었다. 서영의 왼손은 좌식 식탁 위에 올려져 있고, 손등에 칼이 박혀 있었다.
손등에는 이미 세 개의 자상이 있었다.
“한 번에 끝까지 박으면 사는 거고, 실패하면... 기회가 한 번 남는 거예요.”
“흐윽, 흑, 흑...”
입에 재갈이 물려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 서영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흥미진진해하던 남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빨리 해, 내가 한가해 보여?”
서영은 자신의 손을 망치로 치는 두려움보다 더 큰 공포에 눈물을 머금고 손을 내리칠 자세를 잡았다.
그제야 남자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좋아, 손가락 조심하시고, 쏘세요!”
팍!
“까으으윽!!”
장도리가 빗나가 엄지를 내리쳤다.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철철 흘렀다.
“손가락 조심하라니까, 아으 진짜, 속상해, 자, 이제 마지막 기회.”
츄아악-
남자가 거침없이 서영의 손에 꽂힌 칼을 뽑았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서영은 손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우으으! 으으”
남자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칼을 들고,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움직이지 마요. 가운데 안 찍히면 다시 찍어야 하니까.”
“흐으, 흐으”
“그렇지, 자!”
남자가 칼을 번쩍 들어 올려 서영의 손등에 다시 내리찍으려는 순간.
콰장창!
원룸 창문이 부서지고 땡땡이 커튼이 같이 뜯겨나가며 한 덩치 큰 남자가 굴러 들어왔다.
신해수의 눈에 칼을 들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임기성과 손에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가 보였다.
해수는 말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임기성이 휘두르는 칼을 손으로 쳐내고, 그의 멱살과 어깨를 붙잡고 위로 번쩍 들어 올려 머리통을 천장에 꽂았다.
콰광!!
천장이 부서지고 잔해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해수는 임기성을 천장에서 뽑았다. 얼굴 살이 뜯겨 피가 흐르고 있고 눈알이 뒤집혔다.
“기절하지 마, 깰 때까지 맞는다.”
해수는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화장실로 끌고 갔다.
< #51. 기절하지 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