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50화 (50/255)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1팀장이 먼저 짐을 들고 경기 광수대 수사본부로 들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그 뒤로 근육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아 예.”

“들어오세요.”

광수대 형사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자신들이 몇 달을 수사했는데 무능함을 인정하며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존심이 문드러지는 일이다.

그리고 1선 형사들의 의견도 아니고 서장이나 청장 같은 위에서 강제로 합동수사를 하게 했을 확률이 오만팔천퍼센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기에 1팀은 표정관리를 했다.

그때, 연이어 문이 열리며 삼십 대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광수대 여러분, 또 뵙네요. 어, 못 보던 분들도 있네, 강진 시에서 오셨나 보네요? 반갑습니다. 프로파일러 양지은이에요.”

“아 네, 반갑습니다.”

이제서야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급인력 프로파일러까지 상주시키기로 한 것이다.

원래 있는 광수대의 인원은 여섯 명이다. 강진서 1팀은 대충 짐을 풀고 광수대 팀에게 사건 브리핑을 받았다.

“하... 먼저, 어제 날짜로 여섯 명째 죽었습니다. 동일하게 손가락 열 개 잘라서 가져갔고요. 시시티비는 없는 구역이었고 블랙박스로만 봤을 때 멀리서 뒷모습만 찍혔고요.”

광수대라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꽤 많은 정보가 수집되어 있었다.

범인은 대범한 편으로 마스크나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뒷모습이 자주 찍혀 신장과 나이, 걸음걸이 등은 분석했지만 교묘하게 얼굴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사건 역시 경기도 이곳저곳에 강진 시에까지 중구난방이어서 다음 사건 장소를 예측할 수 없었다.

사건의 피해자는 혼자 사는 2~30대 여성으로, 모두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몇 가지 알아낸 범인의 특징은, 충동적이 아닌 철저히 계획적인 살인, 며칠 전부터 피해자 주변을 맴돌며 동선과 스케줄을 알아내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해서, 현장에서 발견한 머리카락은 유전자 분석을 해보았으나 전과자 중에서는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해수가 브리핑이 끝나자 손을 들었다.

“마지막 건 특이점이 경찰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건데, 어떤 티셔츠인지 확인됐습니까?”

해수의 질문에 광수대 형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투입돼서 잘 모르시겠지만, 이놈 보통 똑똑한 놈이 아니에요. 진짜 경찰 티셔츠를 구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 당연히 자기가 직접 제작한 거지요. 피해자들 속이려고.”

해수를 은근히 무시하는 말투에 오갱이 어금니를 물었다.

“이건 뭐해서 빼고, 저건 뭐해서 빼고, 그럼 뭐 수사하나?”

“뭐?”

오갱의 도발에 광수대 형사 몇 명이 욱했다.

“말 조심합시다. 거긴 몸으로만 수사해서 모르겠지만, 수사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법이거든, 무식하면 말이라도...”

오갱이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근육몬도 콧바람을 씩씩대며 일어나 팔을 구부리며 터질듯한 이두근을 보여주었다.

“맞아, 몸으로 설득당해볼래?”

오갱이 말까지 까면서 도발하자, 그쪽에 몸이 가장 좋은 형사가 나와 손을 모으고 가슴 근육을 쥐어짰다.

그 모습에 해수도 은근슬쩍 일어나 막내 옆에 서서 이두근을 보탰다.

1팀장이 광수대 팀장과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미세하게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프로파일러 양지은이 그 가운데로 나서며 손을 들었다.

“아...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네, 말씀할게요. 범인은 다섯 건을 성공하고도 수사망이 좁혀온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쓰고 있었던 마스크와 모자도 안 쓰고 있죠, 금품 갈취나 성폭행이 목적이 아닌 살인을 위한 살인을 하는 범죄자들은 범죄 성공에서 오는 성취욕과 우월감이 상당히 강해요. 그리고 지금이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의 연이은 실패로 범인의 방심을 불러일으킨 적기라고 봅니다.”

양지은이 따발총처럼 말을 내뱉자 형사들이 아무런 말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때 막내가 해수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선배님, 저분이 뭐라고 하신 겁니까?”

“음, 그러니까...”

해수가 말꼬리를 늘렸다. 그때 양지은이 검지로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경찰 티셔츠 조사해야 한다고요.”

그제야 막내가 깨달은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건 1팀 의견에 힘을 보탠 것이다.

그리고 그 티셔츠를 다각도로 캡처한 시시티비 화면을 보며 자세한 분석에 들어갔다.

“이거 경찰 글씨 뒤에꺼 숫자 같은데”

“숫자 맞습니다. 첫 번째는 1이 분명한데, 그 뒤로는 잘 모르겠네요.”

“이거 숫자면 굳이 넣을 필요 없는 거니까, 제작이 아니라 구했다는 데 무게가 쏠리네, 아까 브리핑했던 걔 어딨어.”

“어허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분석이나 해.”

그때 막내가 자신의 휴대폰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1...45?”

“뭐야, 막내 알아냈어?”

“아, 145 맞는 것 같습니다. 글씨체 비슷한 거 따라서 쓰고 멀리서 휴대폰으로 찍어서 보니까, 뭉개진 모양새가 거의 같습니다.”

“이야 그렇네, 그런 방법이 있었네, 막내 똑똑한데?”

해수는 막내를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찰 145면 기수겠군요. 순경 기수는 안 맞고, 전경도 아니고, 의경이네요.”

“의경 145기를 전부 찾아야 한다고?”

해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해야 300명입니다. 그중에 신장이나 지역으로 고르면 많이 추려질 겁니다.”

“젠장, 안 나올 수도 있는...”

오갱은 광수대를 힐끔 보았다가 금세 말을 바꾸었다.

“아니, 해봐야지 뭐, 수사는 원래 몸으로 하는 거니까.”

형사들은 의경 145기 중에 신장이 범인과 비슷한 175센티 내외, 현재 거주지가 부산이나 강원도처럼 매우 먼 곳인 사람을 거르다 보니 열한 명으로 추려졌다.

1팀장과 광수대 팀장은 열 한 명의 인적사항을 펼쳐놓고 팀원들을 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자, 이제 발로 뛸 때다.”

“나가라~ 근육몬! 오갱! 돌격!!”

“뭐야, 묘하게 이어지는 거 기분 나빠.”

*

전화를 해서 출석을 요구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출석을 요구하면 절반은 보이스피싱이라며 무시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출석을 요구했다가 그중에 범인이 있으면 경찰망에 걸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미리 경찰에 대비할 수 있어 어렵지만 직접 뛰는 것이다.

“후우... 몇 번째야.”

“이번이 우리가 맡은 사람은 마지막입니다.”

“계단이 많은 동네입니다. 하체 하는 날인데 다행입니다.”

“어휴.”

마지막 맡은 사람은 정성철, 나이 서른일곱, 영상 디자인 프리랜서다.

현재 거주 중인 주소로 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인기척이 없었다.

퉁 퉁-!

막내가 두드리니 낡은 고철 문이 부서질 듯이 흔들렸다.

“계십니까?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정성철씨”

“해수야, 전화 한 번 해봐.”

“예.”

해수가 전화를 하는 사이, 오갱이 문틈에 귀를 대고 벨소리나 진동이 들리는지 청각에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느낌이 쎄한데.”

“일단 주변 탐문 좀 해보죠.”

해수는 계단을 내려가 바로 언덕 구석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보았다.

“저기 언덕 위에 파란 대문에 사는 정성철씨 아십니까? 키는 175정도에...”

“아? 그 이상한 총각?”

머리에 분홍색 헤어롤을 붙인 아줌마가 인상을 좁히며 질문했다.

“경찰이유? 그 총각이 일 쳤지?”

“아니요. 물어볼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 총각... 여간 수상한 게 아니야.”

아줌마의 말에 오갱이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녀가 비밀을 알려주듯이 손으로 입을 반쯤 가리고 속삭였다.

“내가 전에 새벽에 담배 피러 나왔다가 봤는데, 아니 그 총각이 지 몸만 한 커다란 가방을 메고 낑낑대면서 내려오더라니까? 그게 사람 아니고 뭐여?”

해수와 오갱의 눈이 마주쳤다. 오갱이 긴히 물었다.

“그게 언제입니까?”

“며칠 됐지?”

“왜 경찰에는 신고 안 하셨습니까?”

“아니 내가 말한 거 알고 보복하면 어떡혀? 그날도 오줌 지릴 뻔 했다니께?”

오갱이 해수에게 눈짓하고, 아줌마에게 조금 더 자세히 캐물었다.

해수는 뒤로 빠져 팀장에게 무전을 했다.

“여기 이백하나, 탐색 대상 중에 수상한 사람 발견”

-천하나 탐문 완료, 그쪽으로 합류하겠습니다.

광수대까지 합류하고 정성철의 자택 근처에 봉고차를 주차하고 잠복을 시작했다.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지고, 형사들의 눈이 절로 감겨왔다.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이거 며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오갱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한 시, 그때, 골골거리는 차가 굴러 와 계단 앞에서 멈춰 섰다.

해수는 오갱의 어깨를 툭툭 치고, 졸고 있는 막내의 팔뚝을 팔꿈치로 찔렀다.

“아,안졸았슴!”

“쉿.”

해수가 검지로 가리킨 곳에 헌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달빛에 비친 얼굴이 사진으로 보았던 정성철과 흡사했다. 키나 체형도 동일하다.

“택배 도착”

-천하나 택배 확인

“대기”

-송팔

송팔은 '알았다'의 음어다.

맞은편 봉고차 안에 대기 중인 광수대도 눈을 빛내며 남자를 주시했다.

남자는 차 트렁크를 열더니 커다란 골프가방을 꺼내어 들쳐메고 낑낑대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연쇄살인범은 시체를 옮기지 않았다.

막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합니다. 골프가 취미라니”

“골프 가방이 저렇게 무거울 리도 없고”

“저,저기, 아래쪽 끝 부분에 살짝 열린 곳에 뭐가 보입니다...”

해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확인했다. 달빛에 비치는 하얀색, 그것은 분명 사람의...

“손가락”

해수의 말과 동시에 오갱이 지퍼를 올리고 막내가 수갑을 챙겼다. 삽시간에 봉고차 안에 공기가 긴장감으로 가득해졌다.

“이백하나 송발합니다.”

-천하나가 송발합니다.

해수가 미간을 좁혔다. 오갱이 작게 구시렁대며 차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철컥 스으으-

1팀이 내리자 반대편 광수대 형사들도 우르르 내렸다. 수상한 남자는 충분히 멀어졌지만 뒤돌아서면 계단 아래는 다 보이는 상황, 계단 옆 언덕에 건장한 사내 여덟 명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스운 장면이 펼쳐졌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광수대 주임급과 오갱이 서로 표정과 입 모양으로 싸웠다.

‘좋은 말 할 때 여기 있어라, 니네 집 위치도 정확히 모르잖아.’

‘니가 여기 있어라, 우리가 파던 거다.’

‘놓치면 니가 책임 질 거야?’

‘내가 왜? 니가 책임 져야지.’

한창 무언의 말싸움 중일 때, 해수가 자세를 낮추고 그들 사이로 지나갔다.

‘?’

‘?’

철컥 철컥, 끼이익-

남자가 골프 가방을 끌고 파란 대문 앞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시 문이 닫히고 잠그기 직전.

쾅!

해수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그를 덮쳤다.

“우와악!”

해수는 그의 팔을 뒤로 꺾고 등을 눌러 제압하며 말했다.

“정성철씨, 당신을 시체 유기 및...”

해수가 말을 하다 말고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골프 가방 끝 부분에 지퍼가 살짝 열린 부분이다.

그곳에는 사람의 손가락이 보이기는 하는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그때, 철문으로 형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정성철은 해수에게 팔이 꺾인 채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했다.

“자,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반응이 무언가 이상하다. 해수는 다른 형사들에게 맡기고 홀린 듯이 골프 가방으로 가서 지퍼를 열었다.

“아, 안 돼, 미쿠짱!”

안에 들어있는 것은 팔다리 몸통이 조각조각 분리된 사람... 모양의 인형이었다.

“음...”

“이,이게 뭐야?”

다른 형사들도 인형을 보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알고 보니 정성철은 현재 통관이 논란을 빚고 있는 리얼돌이라는 성인기구 인형을 비밀리에 수입한 것이었다.

이전에 슈퍼 아줌마가 보았던 것은 구형 모델을 중고로 팔았던 때였다.

제대로 헛다리에 형사들은 힘이 쭉 빠졌다.

해수는 그에게 사과를 하며 어떤 사건인지는 인지하지 못하도록 대략적으로만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탐문 수사 중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팔을 꺾은 부분은 죄송했습니다. 병원 다녀오셔서 진단서를 제출해주시면...”

“아,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당.”

말투는 조금 이상하지만 다행히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해수는 이참에 그에게 질문했다.

“의경 145기 시죠? 이 옷이 보급용 활동복 맞습니까?”

“네? 네 145기... 아 그 티셔츠 맞는 거 같아요. 그거 제대할 때 반납하는 건데... 어?”

범인의 뒷모습 화면을 본 정성철의 반응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해수의 눈동자가 빛났다.

“아는 사람입니까?”

“아...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한 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은 내 동기 아니라능.”

“누굽니까?”

“같이 군 생활했던 선임이요. 착하긴 착한데 가끔 섬뜩한... 임기성이라고, 141기입니다. 평소에는 순둥이인데 진압술 훈련 때만 되면 눈깔 뒤집고 달려들어요. 현장에서도 그래서 시위대들 방패로 대가리 찍다가 깜빵 갈 뻔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막내가 휴대폰으로 시시티비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 맞습니까?”

그것을 한참 쳐다보던 정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걷는 거 보니까... 맞는 것 같아요.”

헛다리라며 실망했던 형사들의 눈에 기대감이 깃들었다.

< #50. 합동수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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