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49화 (49/255)

정영수는 섬뜩한 목소리에 어깨를 떨며 신해수와 거리를 벌렸다.

“어으, 누가 형사님 아니랄까봐, 정신이 번쩍 드네요.”

“농담 아니다.”

“형사님, 괜찮은 딜이기는 한데요. 제가 경찰 월급 다 알거든요? 형사 월급이 뭐 얼마나 된다고... 기껏해야 2~300 받는 거 아닙니까?”

해수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2~300억 있다.”

“네?”

“농담이고, 어머니 완쾌될 때까지 치료할 돈은 넉넉히 있다. 그리고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야, 10년 무이자.”

“알아요. 당연히, 나 그지 아니에요. 내가 이자까지 쳐서 갚으려고 했어요.”

“그럼 그렇게 알고, 내일 올 테니까 어머니 모시고 병원 가자.”

“그런데 형님, 나 왜 도와줘요? 범죄자에, 사실 생판 모르는 남인데.”

호칭이 갑자기 바뀌었지만 해수는 신경쓰지 않았다.

해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고, 나는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면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정영수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열아홉, 짧다면 짧지만 본인에게는 짧지 않은 거친 인생을 살아온 자신에게, 처음으로 어른다운 어른을 만난 듯했다.

“형님 되게 순진하시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 형님같은 사람이 나중에 사람 살리려고 CPR하다가 성추행으로 신고 당하는 거예요.”

영수의 말에 해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그런 적 있었나보네, 에휴 속상해.”

“나중에는 잘 풀렸어.”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죠...”

영수는 해수를 가만히 보다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해수는 손을 휘휘 젓고는 뒤돌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

다음날, 해수는 정영수와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대성 병원을 찾았다.

검사를 받고 바로 입원수속을 받는 중, 뒤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해수씨?”

뒤돌아보니 수행원과 함께 온 안서은이 서 있었다. 새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리본넥, 검은 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왠지 교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안서은씨.”

“전화만 하다가 직접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옆에 선 정영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 봐도 재벌 느낌이 물씬 풍기는 미모의 여인이 해수와 연락을 자주 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신형님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여신들을 많이 아네요?”

“뭐?”

안서은이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눈웃음이 부드럽게 지어졌다.

“재밌으시네요. 그럼 일 보세요. 가보겠습니다.”

“예.”

해수는 정영수에게 어머니에게 가보라고 손짓하고 안서은을 따라왔다.

“안서은씨.”

해수가 따로 따라나와 부른 건 처음이기에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뜬 서은이었다.

서은은 수행원들을 엘리베이터로 보내고 해수와 일대일로 마주했다.

“해수씨?”

“전에 레드문 건, 힘드셨을 텐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난처한 일은 없으셨습니까?”

해수의 물음에 찰나 안서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지만 금세 사라졌다.

“난처한 건 우리가 아니라 죄 지은 사람들이죠, 제가 난처할 일은 없었어요. 좋았어요. 저 학생은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서은이 말을 돌리는 게 느껴졌지만 해수는 자연스럽게 받아주었다.

“이번에 맡은 사건 피의자입니다. 이전에 중학교 때도...”

해수는 정영수와의 관계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안서은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들었다.

“그래요? 백화점 쪽 요즘 보안 문제로 골치 아픈데”

“그렇습니까? 그런데 아직 학생이고 실력이 전문가 기준으로 어떤 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영수가 고등학교를 다시 제대로 다녀서 졸업하기를 원하시기도 하고요.”

“원래 화이트해커는 프리랜서가 많아요. 보안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면 뚫리는지 확인해보고 뚫리면 보안방법 제안하는게 끝이라서, 매일매일 사무실을 나올 필요가 없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라, 죗값을 제대로 치르고 연결 부탁드립니다.”

안서은이 해수와 정영수가 들어간 병실을 번갈아 보다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해수씨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요. 범죄자는 얄짤없이 때려부수는 줄 알았는데”

“저 그렇게 단순한 사람 아닙니다.”

“단순해보이는데”

“크흠”

해수가 차마 부정을 못하고 목을 가다듬자 서은이 살풋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면도 있으시네요.”

해수는 귀여움의 귀짜도 가까이 한 적이 없기에 지금 표현은 상당히 생소하여 당황한 얼굴로 서은을 보았다.

그런데 서은이 마주한 눈을 피하지 않고 말없이 가만히 눈을 반짝였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온다.

그대로 1초, 2초...

“신형님?”

“어 그래.”

정영수의 시선에서는 복도 벽에 서은이 가려져 있기에 해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해수는 반사적으로 휙 돌아서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안서은도 뒤돌아서 몰래 가쁜 숨을 골랐다.

*

차후, 정영수는 약속대로 자백을 했다.

범행 중에 살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제지하고, 피해 금액을 회수할 수 있게 힘쓴 점을 정상참작 받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는 특수폭행 및 금품갈취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합니다."

판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내가 벌떡 일어나 반발했다.

“왜 나는 6년형이고 저새끼는 집행 1년이에요?! 저 새끼가 나쁜 새끼에요! 다 들었잖아요!”

“맞아요! 저 새끼 순 개새끼에요! 이게 뭔 개같은 판결이야! 야이 판새야!”

정영수는 자신의 요청에 의해 사내 둘과 떨어져 앉아 있었다. 영수가 지랄발광을 하는 그들을 보며 작게 고개를 젓자, 그들이 달려와 주먹질까지 했다.

잠시 일었던 소란이 가라앉자 판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반성하지 않고 죄를 전가하려는 점, 정결해야 할 재판장에서 소란을 피우고 폭력을 행한 점을 반영하여 2주 후 추가 심리를 진행 하겠습니다.”

탕 탕 탕

사내 둘은 잠깐의 흥분에 추가 심리를 받게 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만히 판사를 올려다보았다. 둘은 차후 8개월을 추가로 구형받았다.

*

안서은은 대성백화점 보안팀장과 정영수를 연결시켜주었고, 팀장이 놀랄만 한 실력을 보이며 테스트에서 통과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맡게 되었다.

해수는 영수에게 화이트해커로 일할 수 있는 장비를 지원해주었다.

장비를 옮겨주고 정영수의 집을 나서는 길, 영수가 문 앞에서 해수를 불렀다.

“신형님.”

영수는 어머니를 도와준 후부터 이상한 호칭으로 해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수가 돌아서자 그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 사실 중학교 때 신형님 보고 나서부터 경찰이 꿈이었어요. 사이버팀, 이 같잖은 재주로 나쁜놈들 잡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구해주신 일자리에서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

전과자는 경찰을 할 수 없으니 그의 꿈은 꿈으로만 남아버린 것이다.

해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하다보면 기회가 있을 거다.”

해수는 그에게 한 손을 휙 흔들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

신해수의 집, 좁디좁은 원룸 거실 중앙에 해수와 하루가 비장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있다. 해수의 오른손에는 삼단봉이 쥐어져 있었다.

훙-

해수가 봉을 휘두르자 하루가 발끝을 살짝 트는 것만으로 그것을 피하고는 손 끝으로 겨드랑이를 공격했다.

해수는 재빨리 팔뚝을 내려 그것을 막았다.

해수가 살짝 인상을 좁히자 하루가 뜨끔하며 손을 거두고 고개를 푹 숙이며 반성의 자세를 들어갔다.

저 희고 가느다란 손 끝이 어찌 송곳처럼 따끔한지 해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잘 했어, 그런데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상대가 아니라면 관자놀이, 턱 아래, 목보다는 목 아래 상체나 하체 위주로 공격하는 게 좋아.”

“네, 알겠습니다.”

하루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다시 해수와 위험상황을 재현해보았다.

“이럴때는 팔을 꺾어서 무력화시키는 게 좋은데, 음, 힘이 달려서 쉽지 않으니까... 손가락 위주로 꺾어.”

“네, 손가락 위주로.”

하루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조금씩 커졌다.

“무력화가 되면 이거로 상대의 손목 발목을 봉쇄해, 꼭 팔은 뒤로 해서 두 손목이 교차되게 해서 묶어야 해.”

해수는 자신이 현장에서 자주 쓰는 케이블타이를 하루가 자주 메고 다니는 크로스백에 챙겨주었다.

하루는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그것을 보며 기뻐했다.

“이게 모자라면 팔에만 묶고 다리나 발목은 부러트려.”

“네, 네!”

해수의 설명을 듣는 하루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반짝인다. 하루는 해수가 제압술을 가르쳐주는 이 시간이 매우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스슥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인적이 드문 거리, 한 젊은 여성이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철퍽 철퍽 철퍽

뒤에 후드를 눌러쓴 남성이 보인다. 한참 전에도 보았는데 여기서도 마주쳤으면 우연이 아닌 것 같아 두려움이 닥쳐왔다.

그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오늘따라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전화 통화를 하는 척했다.

“어 오빠, 나 지금 집에 가는 길이지, 여기 퐁퐁슈퍼 앞에, 데리러 온다고? 아 나와있다고, 응 나 곧 도착이야...”

그녀는 계속해서 뒤를 힐끔거리며 비슷한 말로 통화를 이어갔다.

후드남은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른 길에서 나온 남자가 그녀가 가야 할 방향으로 걸어갔다. 남자가 그녀보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여자는 어둡지만 남자의 티셔츠 등판에 붙어있는 하얀색 글씨를 정확히 보였다.

-경찰 145

“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예?”

“저기,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요. 죄송하지만 가시는 길까지만 같이 가주실 수 있으세요?”

“아...”

남자는 뒤돌아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여자는 그 모습이 매우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러죠, 여자 혼자 밤늦게 이런 길 돌아다니면 위험해요.”

“네... 어쩌다보니...”

남자는 흔쾌히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여자의 원룸 현관문 앞.

“여기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예, 들어가시는 거 보고 갈게요. 요즘 스토커는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방심하면 안 돼요.”

경찰이 하는 말이기에 괜히 신뢰가 간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문을 열고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까지 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여자만 내리고 남자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고했다.

“들어가세요.”

“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삑삑 삑삑, 철컥-

그러고는 여자가 도어락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저절로 닫히니 손으로 직접 닫지는 않은 상태로.

턱-

문이 거의 다 닫히기 직전, 두터운 손이 문을 잡았다.

끼익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에 여자가 구두를 벗다가 말고 화들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 남자다. 그가 들어와 문을 닫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영지씨, 혼나야겠어요.”

“꺄아-읍”

남자의 커다란 손이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입을 덮쳤다.

*

강진서 강력반 사무실.

쾅-

1팀장은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1팀 1팀! 오갱 돌격 근육몬! 얼른 짐 싸라!”

“엥? 갑자기 웬 짐?”

“연쇄살인 또 터졌다. 경기 광수대가 우리한테 SOS 쳤어, 오늘부터 우리랑 합동수사한다. 알아들었으면 짐 싸!”

< #49. 방심하면 안 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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