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고기집.
덩치 큰 사내들 여럿이 흥에 겨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서장이 오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때 봤습니까? 진짜 서장님 오시고 엄청 쭈그러있는데 우리 서장님이! 야 나 전화선 뽑았다! 니네 겁 먹지 말고 다 질러! 짤리면 내가 치킨집 차려서 다 책임질게! 캬!! 진짜 우리 서장님 최고!”
“나도 그때 진짜 소름 쫙 돋았지, 내가 일거리는 잘못 걸렸어도 서는 잘 들어왔구나 싶었다.”
“허허허, 거짓말이었는데.”
서장이 웃으며 잔을 비웠다. 본래는 저렇게 인자한 미소를 달고 사는 순박한 서장이지만,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는 그때처럼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막내 우강철은 입원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회식에 참석했다. 오갱은 막내를 옆에 끼우고 그때의 무용담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우리 형님이 검사를 딱 붙잡더니, 똥냄새 나, 좀 씻고 다녀.”
“크... 팀장님 멋지십니다! 검사를 상대로!”
“별로 멋있진 않았어, 쫀 게 다 티가 났거든.”
“야 나 하나도 안 쫄았거든? 검사가 뭐! 내가 어! 강진서 강력1팀 팀장이야! 안 그러냐 돌격아?”
“맞습니다.”
“그럼 노래 한 곡 뽑아.”
“예, 알겠습니다.”
팀장의 갑작스런 명령에 신해수는 빼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하며 일어났다.
“해수 진짜 남자다 남자. 므찌다!”
“야야야 얘들아! 우리 돌격이가 노래 한 곡 뽑는단다!”
“우와아아!!”
“돌격 돌격 돌격!”
그 사이 막내가 사이다병에 숟가락을 꽂고 해수에게 마이크 대용으로 건네주었다.
“필요없어.”
“아, 넵”
해수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허리춤에 두 손을 얹혔다.
때맞춰 오갱이 소리쳤다.
“아 헛, 둘, 헛 둘 셋넷!!”
“무궁화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
해수가 눈을 부릅뜨고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며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형사들은 순간 멍- 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가다. 분위기가 단번에 박살나고 적막이 가득한데도 해수의 얼굴에는 진지함을 넘어 비장함이 가득했다.
“경찰가가 이렇게 비장했냐”
“저걸 가사 안 보고 완창할 수 있는 거야? 진짜 신형사는 찐이다.”
그때, 막내 우강철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쥐고 흔들며 외쳤다.
“영광과 임무-를 어깨에 메고-”
“쟤는 왜 저래!”
“야 니네 막내 말려 말려”
오갱은 막내의 돌발행동에 아랫입술을 씹었다.
“에이 씨”
그도 벌떡 일어나 다음 가사를 함께 외쳤다.
“이 땅에! 굳게 서다- 민-주-경-찰!!”
“우아아아!!”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팀장도 참여하고, 마지막 후렴구에는 떼창이 되어버렸다.
“지성을! 다하 리라- 민-주-경-찰!!”
“민-주-경-찰!!”
경찰가가 끝나자 서장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
해수는 경찰가 아래에 대동단결 된 형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저 놈 또 한 번 노래 시키면 사람이 아니다. 으 닭살 돋아.”
“고수입니다. 고수.”
팀장의 말에 오갱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몇 시간 후.
읍, 우웨엑
오갱이 건물 밖 하수구에 토를 한 가득 쏟아냈다. 해수가 처음과 같은 얼굴로 그의 등을 일정하게 두드려주었다.
“해수야.”
“손가락 넣어드립니까?”
“웹, 웩 퉤, 젠장, 해수야.”
오갱의 눈빛이 꽤나 아련하다.
“예.”
“우리 처음 말 틀 때 기억나냐?”
“다잉나이트 칼부림 건 때 말입니까?”
“맞아 맞아, 그때 근무복 하나가 유독 튀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지, 너 그때 진짜 영화같았다.”
“조폭 때려잡는데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크... 난 네가 좋다. 너 보고 있으면 사그라들었던 열정이 되살아나.”
해수는 가만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죄책감 덮...”
그때,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우아아아!”
“야야! 막내 말려 막내! 너 그러다 상처 덧나!”
“너 그거 고성방가야 이 새끼야! 현행범으로 잡히고 싶어?”
멧돼지같은 막내가 두 팔 벌리고 달리니 아무도 막지 못하고 허둥지둥대고 있다.
막내가 돌연 멈추더니 저 높이 달빛을 비추고 있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세상아 덤벼라!! 강력반이 나가신다!”
가게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막내와 팀장을 구경하던 형사들은 일제히 얼굴을 가렸다.
“어우 씨”
“난 못 말리겠다.”
***
“아으... 술냄새”
“와아, 어제 길바닥에 안주 뱉은 놈이다.”
오갱이 손을 휘휘 저으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어제 주사가 두 번째로 심했던 사람 치고 얼굴은 멀쩡하다.
“해수 넌 어제 혼자 안 마셨나?”
“마셨습니다.”
“돌격이 너보다 많이 마셨어.”
“이야, 넌 진짜...”
“앉아라, 이제 회식도 끝났겠다. 슬슬 일상에 적...”
띠리리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선 전화가 울렸다.
“예 강력1팀 신해수입니다. 예, 사건 없습니다. 예...”
“역시는 역시야.”
해수가 전화를 끊자 팀장이 바로 물었다.
“뭔데?”
“현피 건입니다.”
“현피? 그게 뭐야.”
이번에는 오갱이 팀장의 질문을 받았다.
“현실 피케이, 게임 용언데, 게임에서 시비가 붙어서 현실로 만나서 싸우는 거지, 아무튼 폭행 건이라는 거지.”
“뭐 싸울 게 없어서 게임에서까지 시비가 붙어서 싸우냐, 쯧쯧”
해수가 상황실로부터 사건 파일을 받아서 신고 내용을 읊었다.
“현실에서 만나서 싸우자고 하고, 3인조가 협박 폭행해서 게임자산을 갈취까지 했다고 합니다.”
“고작 게임인데 뭐 얼마나 된다고 그런 짓을 한대?”
오갱이 의자를 쭉 끌어 해수 옆에 붙었다.
“지금 신고 들어온 사람이 갈취당한 게임 자산의 현금 가치가... 1억2천?”
“뭐,뭐?”
“일단 현장 따야겠습니다.”
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막내가 없으니 더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오갱이 바로 뒤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몇 시간 후.
탁 탁 탁 탁
“형님, 살살 좀 두드려, 쎄게 두드리면 범인 나오나?”
“이러다 가끔 나와.”
“어휴”
강력1팀이 사무실에서 시시티비를 분석 중이다. 피해자는 현재 병원에 있어 소환이 불가하여 전화로만 그때 상황을 전해들었다.
탁
“얘넨가보네.”
주르르륵
팀장의 말에 오갱이 의자를 쭉 끌어 다가왔다. 해수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시간, 설명했던 외형, 옷차림 일치합니다.”
“응... 그래, 싹 다 가렸네.”
피해자의 말에 따르면, 맨 처음에는 약속 장소에 왜소한 체구의 남자 혼자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싸우러 만났으니 친구와 함께 나왔고, 왜소한 남자를 무시했다.
남자는 으쓱한 곳으로 그들을 유인했고, 모자에 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튀어나와 야구방망이와 각목으로 그들을 구타했다.
그러고는 왜소한 사내가 피해자의 휴대폰을 잠금해제해서 가져가 그 자리에서 아이템을 빼갔다.
아이템은 바로 거래소에 팔아 현금화하였기에 해킹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잠깐, 그 자리에서 아이템을 가져가? 피시방 안 가고?”
“요즘은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이랍니다.”
“일단 바람잡이의 몽타주를 부탁했습니다. 피해자가 그림을 어느정도 그린다고 직접 그려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키보드를 툭툭 두드렸다.
“이거 꽤 골치 아프게 생겼다.”
“그러게, 언제 또 어디서, 어떤 서버에서 누구에게 시비를 걸 지 모르니...”
사이버팀에도 지원 요청을 하여 해당 캐릭터의 접속 아이피를 땄지만 모두 공공장소 아이피였다. 게다가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계정이었고,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얘네 진짜 치밀하네,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아, 피해자가 분명 있어, 더 모아서 용의자 정보를 좀 취합하자.”
“예 알겠습니다.”
*
게임사에도 요청해서 ‘피해자가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라.’ 는 공지를 띄우게 했다.
그렇게 세 명의 피해자가 신고를 했다. 동일한 수법에 외형을 들어보니 같은 3인조였다.
“피해금액이 총 2억3천... 와, 이 새끼들 보이스피싱보다 더하는데?”
해수는 사무실에서 런지를 하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꼭 잡아야 합니다.”
“근데 돌격이 왜 이렇게 인상을 써? 무서워.”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그치? 나도 그래.”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발로 뛰어서 해결되는 건이 아니니 형사들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사이버팀의 소식이나, 또는 다른 피해자가 신고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수는 문득 하루가 떠올랐다. 요즘 게임에 빠져있는데, 아마도 동일한 게임을 했던 것 같았다.
피해자가 그려준 몽타주는 꽤 그럴싸했다. 몽타주와 시시티비에서 찍힌 얼굴을 참조하여 공개수배를 해야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때.
딩 디링 딩 띵띵
진동 설정을 뚫고 울리는 벨소리, 하루다. 하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먼저 전화 한 적이 없다. 가끔 문자만 했을 뿐.
해수는 벌떡 일어나 전화을 받았다.
“무슨 일이야.”
-저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해수는 바로 의자에 걸쳐있는 겉옷을 낚아채며 나갔다.
***
몇 시간 전.
한국어 학원을 마치고, 하루는 오늘도 침대에 누워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녀의 고운 미간이 이따금씩 좁혀졌다.
“아... 킹받네.”
하루는 해수가 인터넷에서 배운 용어를 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용어를 쓸 때의 그 묘한 쾌감 때문에 쉽게 끊을 수가 없었다.
사냥하는데 자꾸 툭툭 치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열받게 하는 캐릭터가 있다.
-하루룽: 절루가셈
-토끼빤스: 시룬데시룬데 나 교회 갈껀데?
-하루룽: ?
-토끼빤스: 이해 못했구나, 아무튼 어쩔? 죽이기라도 하시게? 현실에서 만나면 조빱인게 겜이라고 겁나 폼 잡네, 함 현피 뜨까? 내가 지면 내 템 다 너 줄게
-하루룽: 뜨자
-토끼빤스: 장소 불러, 당장 갈 테니까
-하루룽: 강진시 고암동...
*
고암사거리 대한은행 지점방향 편의점 앞.
하루는 움직이기 편한 회색 후드티에 레깅스를 입고 시간에 맞춰 현피 장소로 나왔다.
키가 작고 왜소한 남자, 정영수도 그곳에 도착하여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현피 상대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영수는 게임에 접속하여 상대방 캐릭터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토끼빤스: 어디셈? 쫄아서 튀었구만?
-하루룽: 왔는데
-토끼빤스: 나도 왔는데
톡톡
그때, 정영수의 어깨를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저기.”
정영수는 뒤돌아섰다가 하루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런 여신이... 나 번호 따는 거야?’
그는 최대한 젠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무슨 일이시죠?”
하루는 그의 손을 재빨리 낚아채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게임 화면이 보이고, 방금 전에 귓속말 대화 내용이 떠 있었다.
“어엇, 초면에 이러시면 오예...”
“니가 토끼빤스구나.”
“...예?”
< #47. 현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