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46화 (46/255)

강지태 검사에게 사건이 정상적으로 송치되고, 하실장과 유마담은 구치소로 보내면서 레드문 게이트 건은 강력반의 손을 떠났다.

이번 사건으로 얻은 건 레드문이 아버지의 죽음과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의 배후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레드문에 약점이 잡힌 권력자들은 곁가지일 뿐, 뿌리는 따로 있다. 그들이 진짜다.

해수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팀장이 퇴근 준비를 하며 말했다.

“신이라 살해 건은 이렇게 묻혔네.”

“아무래도 국민 화력이 집중되어야 하니까 뭐...”

“그렇긴 하지, 일도 마무리 됐는데 막내 병문안이나 갈까?”

막내 얘기에 해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시죠.”

*

안서은은 대성 병원을 경찰 복지혜택이 가능하도록 추가하였다. 덕분에 멀리 있는 경찰 병원보다는 대성 병원을 이용하는 경찰들이 많았다.

막내 역시 대성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똑똑 드르륵-

병실에 들르니 젊은 여자가 막내 옆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강력1팀 팀원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누,누구세요?”

“엇, 팀장님.”

막내가 알아보고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팀장이 두 손을 휘휘 저었다.

“워워 일어나지 마, 편하게 누워있어 누워있어.”

“아닙니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팀장이라는 호칭을 썼음에도 여자친구는 그들을 경계하며 막내에게 귓속말을 했다.

“자기... 경찰 맞지?”

그러나 귓속말이 다 들릴 정도로 커서 막내가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아이고 얼굴이 다들 이래 생겼어도 경찰 맞습니다. 우강철 순경과 함께 일하고 있는 팀장입니다.”

“아...네, 네,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오지연이에요.”

오갱과 해수는 사온 과일바구니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9할은 사건 얘기였다.

해수는 막내가 다친 것을 보고 속상함을 금치 못했다.

“아프지.”

“아닙니다. 선배님도 많이 다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거 잡아봐, 그 손으로.”

“이이...”

“아프네, 많이 다쳤네, 다리 봐봐.”

해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막내의 상처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걱정하고 속상해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막내 여자친구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어찌됐건 일을 하다가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다쳤으니 속상하고 불안한 마음이 큰 여자친구였다.

“그쪽 팔로 턱걸이 20개 가능할 때까지 복귀할 생각 하지마.”

“그,그건 멀쩡할 때도 못 했습니다.”

“막내야, 서는 걱정 말고 이참에 푹 쉬어!”

“간다. 우리 막내 잘 부탁드립니다.”

“네,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

병문안이 끝나고, 해수는 팀원들과 헤어지자마자 바로 구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이메일 보고 전화주셨습니까? 이번에 부동산값이 폭등해서 그때 구입했던 건물이 무려 71프로...

“아, 그렇군요. 그것보다 그때 주셨던 특수제작 방검복 있잖습니까?”

-여,역시 안 보셨어... 감동할 뻔 했는데...

“그거 대량생산 가능합니까? 20개 정도”

-그거 얼만지 못 들으셨습니까? 2억입니다 2억, 20개면 40억.

“어차피 돈 쓸 데도 없습니다. 리드빌딩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데 문제 없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대는 마세요. 그거 수제작이라서 하나 만드는데 8개월 걸린 거예요. 그 신소재도 희귀하다고 했었어요.

“제가 가진 돈 다 써도 되니까 부탁 좀 드립니다.”

-진짜... 이래서 내가 신사장님 못 미워해, 이거 팀원들 주려고 하죠? 누가 남을 위해서 40억씩 쓰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답변 받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며칠 후, 구치소에서 전화가 왔다.

-신해수 경사님이십니까?

“예, 무슨 일이십니까?”

-하지운씨가 자살했습니다.

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로 가겠습니다.”

“해수야 뭔 일?”

“하실장이 죽었답니다.”

“이런 씨”

해수의 말에 1팀원들도 바로 일어섰다.

구치소로 가서 시신을 확인하고, 현장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나 누가 죽인 것인지, 진짜 자살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간에 기습이라 할지라도 하실장이 누구에게 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독방에 있는데 누가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인 흔적도 없고, 신이라 사건도 있으니 그냥 넘길 수도 없고, 이거 또 골치 아프게 생겼네.”

“흠...”

하실장에게는 들을 말이 많았기에 아쉬움이 컸다.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면 왜 유언장 하나 없이 죽음을 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수는 그 길로 가까운 유마담을 찾아갔다.

“왜 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나는 그쪽같은 스타일 별론데...”

“하실장이 자살했다.”

이죽거리던 유마담의 얼굴이 시간이 정지된 듯이 굳어버렸다.

“하, 하하”

그녀는 이내 실성한 여자처럼 웃음을 흘렸다.

“자기 목숨보다 당신을 아끼던 남자야.”

“맞아, 그러니까 죽었지.”

“무슨 말이지?”

“자살 맞다고, 그러니까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고.”

유마담의 시선이 허공을 잠시 바라보았다. 눈가가 붉어진다. 이렇게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

“배후세력에 관해 들었다. 알고 있는 걸 털어놓으면 널 보호해주겠다.”

“보호? 하, 니네는 못해, 그들이 죽이고자 하면 죽는 거야.”

“그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신이라... 그럴수도”

그녀는 고개를 내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린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난 괜찮아, 신이라를 죽여서 니가 날 찾은 것처럼, 걔네도 괜히 날 건드려서 눈에 띌 필요가 없거든.”

마지막 말을 하는 유마담의 눈동자에 슬픔이 담겨있다.

해수는 그제야 유마담의 말에 숨은 뜻을 깨달았다.

“하실장이 널 살리려고 죽었구나.”

침묵이 길어진다. 긍정이다.

위험요소가 둘이면 드러날 것을 감수하더라도 둘 다 죽일텐데, 죽음이라는 협박이 통하지 않는 하실장이 자살을 택했으니, 눈치 빠른 유마담이 입을 열지 않을 것을 그쪽에서 알고 당분간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하실장은 그것까지 내다보고 자살을 택한 것이다.

유마담이 하실장을 향한 감정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그의 희생은 유마담의 입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해수는 더 이상 그녀를 심문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의 이목이 흐트러지면 그들이 널 찾아오겠지, 시한폭탄의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없애는 게 안전하니까, 하실장의 복수를 할 생각이 들면 날 찾아.”

해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유마담이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해줄 것도 없어.”

해수가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목줄이 끊어졌으니 주인이 직접 움직이겠지.”

해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입술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눈으로 복수를 말한다.

해수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고 접견실을 벗어났다.

그녀의 말은 힌트다.

세상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채야 한다.

해수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반드시 잡는다.’

***

[’레드문 게이트 명부’ 검경, 정재계 인사 58명]

[’레드문 게이트’ 강진서 강력반을 필두로 일망타진]

[불도저 검사 강지태가 또 나섰다. 줄줄이 검찰 출두]

[연예인도 울고 갈 ‘레드문’ 여직원들 미모]

┗이 정도면 나라 마비되는 거 아니냐?

┗응아님

┗진짜 헬조선 탈출하고 싶다 더러워

┗여기 나가면 너 총맞아죽음

┗맨날 징징거려도 치안1위는 ㅇㅈ

┗큰 일했다 경찰들, 웬일이냐

┗요즘 경찰들 일 잘하는듯

┗또 강진서임?

┗원래 강진서가 일 ㅈㄴ 터짐

┗그 수준이 아니자나? 전국구 급인데?

┗와 ㅅㅂ 청장이고 부장검사고 싹 다 잡네?

┗대충 보이는데도 졸라 이쁘다

┗유마담 무죄, 유마담 풀어줘라

┗(링크)이쁘면 무죄 유마담 팬클럽 주소임니다

┗개샛키들 지네만 저런 애들과

┗뭐? 니도 쟤네랑 똑같은 쓰레기임

속칭 ‘레드문 게이트’ 사건은 인터넷 기사 1면을 도배했다. 너튜브, 뉴스,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레드문 게이트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아무리 엄청난 인물들이 성접대와 마약을 했다고 한들,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금세 사라진다.

이를 알고 해수와 안서은이 짧게 치솟는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하여 유마담과 레드문 여직원들의 얼굴을 일부 공개했다.

연예인 뺨치는 그들의 미모에 국민들의 관심이 차고 넘칠 정도로 쏟아졌고, 덕분에 해당 사건도 같이 불타올랐다.

명부에 이름이 안 나온 인사들도 갑자기 환멸을 느낀다며 사표를 낸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초거대 사건에서 살아남은 강진서 강력반은 한층 더 돈독해졌다. 1,2,3팀 모두 팀별로 금일봉을 받고, 1팀은 전원 1호봉 상승이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현재 년차가 차지 않아 특진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는 특진에 버금가는 최고의 보상이다.

경찰청 측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알고, 청장이 잡혀들어가 깎인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쇄신하고자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이다.

강력반 사무실, 1팀장이 책상을 밟고 벌떡 일어나 법인카드를 추켜들며 외쳤다.

“오늘 강력반 전체회식 있는 거 알지? 사건도 시기 가린다고 이런 날 흔치 않으니까 다들 참석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당연히 갑니다!”

사무실 분위기는 전에 없이 활기가 넘쳤다.

***

[인생고기]

새하얀 간판에 새빨간 고기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이 찍혀있는 간판이 보인다.

덩치 크고 인상이 험악한 무리가 그 간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형님 우리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겁니까?”

“고암동 피바다는 언제 만드실 겁니까?”

“저는 이제 택배업이 적응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택배를 배달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는 것이 무섭습니다.”

오랜만에 뭉쳐서 회식을 하기로 한 동동파 조직원들이었다. 김동동은 씁쓸하게 아랫입술을 잘근 씹다가 입을 열었다.

“요즘 분위기 못 봤냐, 잠룡은 승천할 때를 가리는 법이다. 기다려라, 기다리면 때가 올 것이...”

“어이구 다들 몸이 좋으시네, 잠깐 지나갑니다.”

비장하게 연설하던 김동동의 말이 끊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등산복을 입은 중년인이 겁도 없이 덩치들을 비집고 지나갔다.

김동동의 오른팔이 욱하여 소리쳤다.

“이 늙은이가 어딜 감히 형님 말을 끊어?! 형님 제가 저 늙은이로 회를 썰어오겠습니다!”

“어허, 됐다. 일반인 건드는 거 아니다. 우리도 들어가자.”

김동동과 조직원들은 등산복 중년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안에는 오늘따라 덩치가 좋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김동동을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훗, 알아본 건가.’

김동동이 그 사내가 어디 식구인지 고민하는 순간.

“서장님 오셨습니까!”

사내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이 후다닥 일어나 외쳤다.

“서장님 오셨습니까!”

“서장님 오셨습니까!!”

덩치 수십 명이 일어나 서장을 외친다. 서장이라는 호칭은 김동동이 알기로 경찰서장 말고는 없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앞에 있는 중년인이 김동동을 힐끗 보았다가 미소지으며 한 손을 들었다.

“어어, 앉아요 앉아, 강력반이라 그런지 목청이 아주 강력하네.”

“와하하하!!”

“서장님 아 너무 재미있으십니다!!”

김동동과 그 일행들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중년인, 아니 경찰서장을 회 친다던 김동동의 오른팔은 경기라도 일으키듯이 몸을 후덜덜 떨고 있다.

앞에 형사들 중에는 전에 보았던 물리치료 박사 일행도 보였다.

김동동은 팔꿈치로 조직원을 툭 치며 작게 말했다.

“오늘은 닭이다. 나가자, 조용히.”

“저,저도 오늘은 닭이 먹고 싶었습니다.”

동동파는 발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수는 가만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암동 피바다를 외치던 그때와 달리 각자 복장이 다르다.

편의점 조끼, 택배의상, 커피숍 앞치마 등등, 고암동 피바다의 희망은 버리지 않되 각자 자리에서 일은 열심히 하는 듯하다.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 #46. 오늘은 닭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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