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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취조실.
팀장이 증거품을 찾으러 간 사이, 하실장은 몇 시에 어떻게 집 안으로 침입하여 어떤 방법으로 신이라를 죽였는지 자세히 서술했다.
하지만 중요한 게 쏙 빠졌다.
“왜 죽였지?”
“간단합니다. 국회의원 김상태씨, 아이돌 강민씨 건으로 경찰에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에 레드문에 해악하다고 판단하여 독단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이건 하실장 단독이 아닌 레드문의 입장이다. 거짓이 아닌 진실된 살해 동기다.
“그럼 다음은 김상태였겠네?”
“네, 그러나 이미 빼돌리셨더군요.”
“내가 범죄자 목숨을 구했네.”
하실장의 자백을 토대로 범행 당시 옷을 찾아 시시티비에서 보았던 그 수상한 남자가 하실장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그 옷에서 신이라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발견하여 검사를 보냈다.
그러나 예상했듯이 어디에도 유마담이 시킨 증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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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는 바로 지상으로 올라와 유마담을 취조했다.
“하실장이 다 불었어.”
“하하”
유마담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듯이.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유사장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유마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해수는 하실장이 알려준 증거물 위치와 신이라를 왜 죽였는지 이유까지 모두 말해주었다.
유마담의 여유로웠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멍청한 놈...”
“매일 붙어 있었으니까 일을 시킨 증거는 없겠지, 하지만 하실장은 악수 하나도 너의 명령 없이는 하지 않는 놈이야, 그런 놈이 독단적으로 살인? 가당치도 않지, 나와 악수를 할 때의 동영상을 토대로 상하관계, 수많은 정황들로 네게 살인교사 혐의를 추가시킬 거다.”
“그래, 알았어.”
그녀는 의외로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미 자포자기를 한 듯 보였다.
해수는 취조실 밖을 힐끗 보고는 마이크를 끄고 긴히 입을 열었다.
“신정석, 기억나나?”
“신정석? 그게 누구야? 뭔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은밀히 묻나 했네.”
“니네가 13년 전에 죽였어, 신이라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몰라.”
그녀의 어감이 이상하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기억하기 힘들다는 뉘앙스.
“국회의원 이성진 살인 사건 때 레드문을 찾아간 경찰.”
“이성진...”
해수의 말에 유마담이 이성진의 이름을 곱씹으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검지를 들었다.
“아, 그 경찰? 내가 안 죽였는데?”
“시치미 떼지 마, 방식이 동일한데, 올가미 매듭까지...”
“그 방식은 쟤네들 다...”
유마담은 말을 하다 말고 해수를 가만히 보았다가 말을 바꿨다.
“입 싼 하실장한테 물어보지 그래?”
“그래.”
방금 유마담의 반응으로 알게 된 사실은 두 가지다.
실장급 인물들이 살인을 하는 방식이 동일하다는 것, 아버지의 죽음이 레드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 그러나 레드문 측에서 죽이지 않았다는 유마담의 말도 사실인 것 같아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레드문 실장급 인물들 중에 해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보았던 그 남자는 없었다.
유마담 말마따나 하실장이 더 잘 알 수도 있다.
해수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 하실장과 대면했다.
“...우리는 아닙니다. 그 경찰 기억합니다. 이성진씨 건을 파면서 레드문에 접근하여 거슬렸지만, 경찰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실장급이 더 있구나.”
하실장의 눈동자가 찰나 흔들렸다. 해수가 아버지 살인자를 알고 있는 것을 모르니 순순히 대답해줬던 것이다.
그는 돌연 입을 닫았다.
“그렇군, 한두 명이 아니야, 레드문에서 너흴 키워낸 게 아니라, 다른 집단에서 너희를 레드문에 보낸 거야, 그럼 레드문이 몸이 아니라 꼬리네.”
하실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해수는 그의 긍정적인 반응에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레드문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뒤흔들 정도인데, 그들을 산하에 둔 집단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니네 대체 정체가 뭐야?”
하실장의 입이 처음처럼 굳게 다물어진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열었던 이유는 유마담 때문이다. 지금 다시 입을 다문 이유는?
“유마담이 위험하구나.”
마치 정곡을 찔린 듯이 하실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너희가 신이라를 처리한 이유와 동일하겠지, 알량한 희망 따위 버려, 지금 입을 다문다고 그들이 유마담을 처리하지 않을까? 나한테 털어놓으면 유마담 보호를 약속하지, 김상태 봤잖아.”
하실장은 테이블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경찰은 사장님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끝으로 하실장의 입은 완전히 닫혔다.
*
해수가 취조를 그만두고 나와 지상으로 올라갈 때, 계단에서 오갱과 마주쳤다.
“아이고 찾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무슨 일이십니까?”
“이거, 예상보다 스케일이 너무 커, 경찰에 검찰에 정치인까지 줄줄이... 곧 뺏길 것 같은데,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실속이 없으면 말짱 꽝이잖아, 네가 방어막 좀 써줘.”
해수가 대성의 힘을 업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오갱은 해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무리 기사를 빵빵 터트리고 영상매체에서 다룬다고 해도, 사건이 검찰에 잘못 넘어가면 잘린 꼬리들만 잡혀 들어가고 대충 마무리가 될 수 있다.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이 없는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해수는 바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제대로 벌을 받게 하려면 안서은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좀 크네요. 나도 겁나는데?
“안 하셔도 됩니다. 대성에도 세 명이 있으니, 피해가 클 겁니다.”
-에이, 사건 가려서 받으면 안 되죠, 같은 배 탔잖아요. 믿을만 한 검사 찾아서 붙일게요.
“알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같으니,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밀어보겠습니다.
해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경찰이니까 그렇다 치고, 기업인인 안서은은 그룹에 피해가 클 수도 있는데도 어떤 정의감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득 계약할 때 그녀가 내뱉었던 말과, 그때의 공허한 눈빛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너무 더러워서.’
그녀의 위치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
강력반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장이 직접 찾아왔다.
“...서장님.”
“서장님이 여기까지...”
왜라는 말은 뱉지 않았다. 청장이 얽힌 사건이다. 서장은 당연히 가장 강하게 외압을 받았을 것이다.
형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서장을 바라보았다.
“자, 모두 하던 일 멈추고.”
“서장님...”
“기도합시다.”
“...에?”
의외의 말에 형사들이 얼떨떨해하는 와중에, 서장이 강력반 가운데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화선을 뽑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변경했습니다. 외압으로부터 우리 강진서를 지켜주시고, 잘못한 개새끼들에게 잘못했다고 알려주고 벌을 줄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아자!”
형사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크다. 서장은 손뼉을 한 번 강하게 치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정의가 없냐? 지금부터 압력 넣는 새끼는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해도 명부에 넣고 조사 준비해, 우리 다 잘리면 내가 치킨집 차려서 종업원으로 써줄 테니까 걱정 말고 질러,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형사들의 대답이 강진서에 크게 울려 퍼졌다.
서장이 비장한 각오로 형사들의 전의를 불태우고 강력반을 나섰다.
형사들은 다시 활기차게 대한민국 쓰레기들을 엿먹일 준비를 했다.
*
그렇게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을 때.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며 정장을 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누군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형사들의 시선이 금세 사무실 입구로 쏠렸다.
“어.”
“어?”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형사 한 명이 그를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강지태 검사님?”
강지태, 별명 황시목, 황시목은 한 인기 드라마에 나오는 정의로운 검사의 이름이다. 권력에 절대 굽히지 않고 무조건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는 검사로 유명하다.
진작에 묻혀야 했지만 능력이 좋아서 살아남았고, 2년 전 검찰개혁 때 앞장서서 검찰을 뒤짚어 엎으며 스타 검사로 거듭났다.
“동부지검 형사5부 소속 검사 강지태입니다. 신해수 경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접니다.”
해수가 나서자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볼이 쏙 들어간 것에 비해 악력이 강하다.
“이번 레드문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는 신해수 형사님께 직접 전달 받으라고 들었습니다.”
“빠르네요. 아직 송치도 못 했는데.”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여기저기 똥이 묻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강지태가 씨익 웃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비해 미소는 시원시원해보였다. 해수는 그와 마주 웃었다.
*
뚜걱 뚜걱 뚜걱
강지태 검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 검은 무리가 등장했다.
“자, 지금부터 하던 일 멈추세요. 전 중앙지검 부장검사 김인철입니다. 이번 레드문 게이트 건은 지금부터 중앙지검에서...”
너구리같이 생긴 검사다. 1팀장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친 채 삐딱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말을 잘랐다.
“어, 넘겼는데?”
“...네?”
“그 뭐랬더라, 돌격아 누가 가져갔지?”
“동부지검 형사5부 강지태 검사에게 넘겼습니다.”
“강지태...”
부장검사 김인철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도 강지태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걸 덥썩, 하... 가자!”
그가 휙 뒤돌아섰다. 그때 팀장이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잠깐, 부장검사 김인철님?”
김인철 무리가 멈춰서자 팀장이 가까이 다가가 코를 벌름거렸다.
킁킁 킁킁
“뭐하는 겁니까?”
“아, 똥냄새가 나서, 좀 씻고 삽시다. 어차피 이제는 지울 틈도 없겠지만.”
“뭐,뭐요?!”
김인철이 욱하자 해수와 오갱이 일어나 팀장 양옆에 찰싹 붙었다. 팀장은 팔짱을 끼고 기세등등하게 턱을 추켜들었다.
김인철은 그들의 몸과 인상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에 멈칫하더니, 이를 갈며 다시 돌아섰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게 경찰이야? 조폭이지...”
< #45. 저게 경찰이야? 조폭이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