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43화 (43/255)

끼이익-

새까만 차 한 대가 5성급 호텔 앞에서 멈추어 선다.

신해수가 내리기 전, 지연이 2G 휴대폰 하나를 건네주었다.

“오빠, 이걸로 연락하면 어디든 데리러 올게요. 오늘 즐거웠어요.”

1회 방문에 천만 원이니 어디든 신나게 데리러 가겠지.

“가.”

해수는 차에서 내려 5성급 호텔로 들어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마이크 부분을 손수건으로 감싸고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701호.’

호실을 찾아가는 해수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카드로 잠금을 해제하고 문을 열자 팀장과 오갱, 막내가 해수를 맞이했다.

이번 작전이 끝나기 전까지 이태수로 살기 위해서 대성이 운영하는 호텔을 빌린 것이다.

“해수, 너는 정말 간이...”

해수는 검지로 입술을 가리키며 오갱을 조용히 시키고 휴대폰을 들어보였다. 오갱이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이며 휴대폰을 받아 도청기능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없네, 없을 것 같았어, 거기가 상대하는 웬만한 사람은 다 도청 확인할 위치일 텐데, 걸리면 이렇게 길게 장사 못하지.”

“위치는 어딥니까?”

해수가 겉옷을 벗으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수사본부화 된 거실이 눈에 띈다.

팀장이 화이트보드에 빔 프로젝트를 쏘며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퀸 클럽이랑 거의 붙어있어, 한 시간 뺑뺑이 돈 거야 그냥, 근데 이거 봐, 어디서 그런 공간이 나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니까.”

“아마 출입 자체도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몇 번 더 다녀봐야죠.”

해수의 말에 오갱이 음흉하게 웃으며 어깨로 툭툭 건드렸다.

“왜, 아시바라 승무원 지연씨 보게?”

“일입니다.”

“아쉬워하는 게 보이던데?”

“기분 탓입니다.”

*

레드문, 정석승 매니저는 복귀한 지연에게 보고를 받았다.

“...망나니가 고자였어? 그래서... 그래서 저따위로 성질이 더러운 거였어, 이거 생각보다 쉽겠는데?”

돈은 많은데 성욕은 풀 수 없고, 다른 걸 찾을 것이다. 돈 많은 망나니가 찾을 건 하나밖에 없다. 이미 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너, 그 망나니 또 오면 상황 봐서 권해봐.”

“예? 벌써요?”

“돈 많은 망나니 고자가 약 말고 뭐하겠냐? 이거밖에 더 있어?”

매니저는 주먹을 들어보였다. 지연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해수의 우락부락한 근육이 떠오른다. 그 손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아,알겠어요.”

*

며칠 후, 레드문.

쾅 쾅! 콰직!

“꺄아악!”

문이 부서지며 해수가 복도로 튀어나온다. 그의 손에는 지연의 머리채가 잡혀 있었다.

해수는 성난 황소처럼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시팔!! 여기 대가리 나와!”

그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가드들이 금세 튀어나왔다. 매니저 정석승도 재빨리 달려왔다.

“고객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무슨 일 씨발!”

해수는 울고 있는 지연을 놓고 매니저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작은 유리병에 담긴 약을 보여주었다.

“이걸 얘 혼자 권했다고?”

“그건...”

매니저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보통 이럴 때 선을 넘으면 동영상으로 협박하는데, 상대가 고자이다보니 그것도 불가하다.

“이새끼가 나를 호구로 봐?!”

쿠당탕!

해수가 매니저를 내던졌다. 그러자 가드들 세 명이 좁혀왔다.

“지금 니네가 날 어떻게 해보겠다고?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어?! 니네 대가리 나와!”

“이러시면 안 됩니다.”

“소란을 피우시면 제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압? 하, 미친 놈들이!”

해수는 다가오는 가드 한 명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훙-

가드가 몸을 뒤로 빼며 주먹을 피하자, 나머지 두 명이 해수에게 재빨리 달려들었다.

“이거 놔 이 새끼들아!!”

가드들이 해수를 둘러쌌지만, 보이는 근육만큼이나 워낙 힘이 쎄서 세 명이 끌려다녔다.

쾅 쾅!

해수가 복도 벽에 몸을 마구 들이받자 가드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해수는 마지막 하나 남은 가드의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뒤질려고 이 새끼들이! 어디에 손을 대?”

또각 또각 또각

그때, 복도에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도 끝에 한 여인과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해수가 난리를 부리는 것을 보며 작게 입을 열었다.

“하실장”

타다다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실장이라 불린 남자가 해수를 향해 튀어나갔다. 해수는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타닥 탁-

해수에게 도착하기 직전, 하실장은 복도를 타고 올라가 몸이 2미터 가까이 뜬 상태에서 무릎으로 해수의 얼굴을 찍었다. 해수는 두 손을 들어 막으면서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넘어졌다.

“억!”

쿵!

하실장은 바로 달라붙어 해수의 팔을 꺾고 무릎으로 목을 눌렀다.

-오우, 아프겠다.

-쟤 뭐야, 날라다니는데?

“켁,켁! 아,안 놔! 컥!”

또각 또각 또각

급박한 해수와는 달리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해수와 얼굴을 마주했다.

가운데가 벌어진 원피스이기에 속옷이 해수에게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태수씨?”

목소리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진한 향수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얼굴은 쉬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많고 어찌보면 이십대같았다.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교태로운 눈웃음을 쳤다.

“여긴 그쪽 말고도 귀한 손님들이 많아서, 소란을 피우면 곤란해요.”

“하,항복, 이,이것 좀...”

“하실장.”

그제야 목이 자유로워졌다.

해수는 그대로 누워있는 상태로 하실장이라 불린 남자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여인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저를 찾으셨다고?”

*

레드문 집무실.

고풍스런 테이블을 두고 양쪽으로 여인과 해수가 마주앉아 있다. 여인의 뒤로 하실장과 매니저가, 해수의 뒤로 가드 세 명이 서서 대기하고 있다.

“제가 레드문의 대표입니다. 유마담이라고 불러주세요. 무슨 일로 절 찾으셨죠?”

해수는 마약이 든 유리병을 꺼내어 보였다.

“내 방에 들어온 애가 이걸 권하던데? 여자 파는 거랑 약 파는 건 다르지, 장사 접고 싶어?”

“신고해요.”

“뭐?”

“하세요. 잡혀 들어가죠, 뭐.”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이 사뭇 여유롭다.

“하 참, 안 통하네, 그래, 본론 들어가지, 이거 어디서 가져온 거야? 나한테 팔아, 상품이 좋네.”

유마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다리를 꼬고는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위에서 가져왔어요.”

“위?”

“선하나 넘어가면 나오죠.”

‘북한’

북한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마약 중에 질이 가장 좋다. 그냥 찔러봤는데 정말로 최고급 마약이었다. 중국이나 베트남 것과는 순도로 비빌 수 없다.

보통 그람 당 50~100만 원이지만, 북한산은 그람당 300부터 시작한다.

“어차피 니네도 많이 팔면 좋잖아?”

유마담이 애교를 부리듯이 코를 찡끗거렸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여자다. 말투는 중년인데 얼굴은 이십 대, 마치 마녀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자주 놀러오세요.”

그녀는 그렇게 축객령을 내리며 일어났다.

“백 억”

그녀의 걸음이 멈추었다. 해수는 쇼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한쪽 손을 거만하게 걸쳤다.

“첫 거래는 백 억부터 시작하지, 선금 10프로.”

유마담은 다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외모처럼 배포도 남자다우시네요.”

그녀가 허공에 가느다란 손을 내밀자, 하실장이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주었다. 역시나 2G 휴대폰이다.

그녀는 해수에게 그 휴대폰을 밀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걸로 연락드릴게요. 모셔드려.”

“오케이, 얼굴처럼 시원시원하네!”

해수가 시원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다가 하실장 앞에서 멈추어 섰다.

잠깐의 정적, 하실장은 그에게 뺨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어금니를 물었다.

“좀 하더라?”

그의 각오와 달리 해수는 한 손을 내밀었다. 하실장이 그 손을 쳐다보기만 하자 유마담이 눈짓으로 허락했다. 그제야 하실장이 손을 맞잡았다.

*

해수가 사무실을 나간 뒤.

유마담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고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다.

“정매니저, 쟤 뒷조사 좀 해봐, 기껏해야 하청업체 사장 아들이 백 억을 턱턱 쏘는 게 이상하잖아?”

“네, 사장님.”

***

콱!

5성급 호텔, 신해수가 701호로 들어서자 오갱이 그를 꽉 껴안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두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해수야, 괜찮아? 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어딨어, 간 어딨니?”

“진짜 여기서 보는데도 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나였으면 절대 못했어, 그 전에 걸렸어.”

“선배님! 무사히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해수는 겉옷을 벗고 넥타이를 풀며 대답했다.

“그래.”

오갱은 해수에게 따라붙으며 조잘거렸다.

“맞는 연기 잘하더라.”

“연기 아니었습니다.”

“어?”

“저,정말? 맞아, 그 놈이 날아다니긴 하던...”

“저도 목 누르면 아픕니다.”

“아,아이 놀랐잖아.”

막내가 목을 앞뒤로 움직이며 끼어들었다.

“저는 그래서 최근에 목 근육 강화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어휴 근육괴물...”

해수는 자신의 손바닥을 보며 말했다.

“그 하실장이란 놈, 진 처럼 지문이 없었습니다.”

“음흉한 곳이네... 아주.”

“시시티비 좀 돌려보죠.”

“나도 비슷해보여서 다 체크해놨지.”

팀장이 신이라의 거주지에서 찍힌 수상한 사내를 다각도로 보여주었다.

풍채나 키, 콧대, 하실장과 비슷하다. 그의 걸음걸이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쉽다.

“현장에서 훼손된 지문 하나 나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보관하고 있지.”

현장 감식 때 문드러진 지문이 하나 찍혀있었다. 지문을 지운 놈들의 특징이 안심하고 장갑을 끼우지 않는 것이다.

그 지문이 예전에 진이 왔다 가면서 찍힌 것인지, 하실장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인지는 하실장을 잡아서 대조해보면 알 일이다.

어찌됐건 하실장이 살인자가 맞다면, 이 사람보다 이 사람에게 살인을 시킨 사람을 잡는 게 중요하다. 아마도 유마담이다.

해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실장은 서른 중반에서 마흔... 나이는 맞지만 몸이 달라.’

해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13년 전 아버지를 죽인 자는 하실장보다 키도 더 크고 어깨도 넓었다.

각기 다른 사람인데 살인수법이 같다? 혹은 하실장이 죽이지 않았다?

전자로 의혹이 쏠린다. 하실장이나 진도 그렇고, 하루는... 어찌됐건 동일한 수법으로 지문이 지워져 있으니, 훈련을 받고 살인 청부를 받는 무리가 있다고 가설이 세워진다.

*

해수는 레드문에 한번 더 들렀을 때 현찰 10억을 선금으로 주었다.

그리고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마음껏 시켜먹으며 짧은 호화를 즐기던 그때.

지이잉

“문자 왔나보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미팅: 7시15분, 23시]

7월15일을 뜻한다. 연결된 곳이 제조능력 뛰어난지 100억인데도 거래일이 금세 잡혔다.

약속 당일.

강력1팀은 경찰 특공대 2개 소대를 대기시켰다. 양동작전이다.

해수와 막내는 마약 거래 현장.

오갱과 팀장은 레드문 빈집털이를 진행한다.

해수는 막내와 함께 멀끔하게 차려입고 호텔 앞에서 대기했다. 막내의 오른손에는 검은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끼이이익-

잠시 후, 새까만 그랜져가 그들 앞에서 멈추어 섰다. 해수와 막내가 돈가방을 들고 그 차 안으로 들어섰다.

*

한 편, 해수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경찰 특공대 1소대.

치직

이상한 잡음이 들렸다. 소대장은 미간을 좁히며 무전을 쳤다.

“이백하나 해달, 해달 들리면 단추 두 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잡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수가 그들의 차에 타자마자 전자파가 차단된 것이다. 무전은 물론 위치추적도 끊겼다.

소대장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소리쳤다.

“젠장, 차단됐어, 따라가!”

“놓쳤답니다!”

“관제센터에 무전 쳐! 검은색 그랜져 34무773!”

약속 장소에서 특공대가 진입 준비가 된 줄 알고 정체를 밝히면 두 형사는 죽은 목숨이다.

소대장은 마음이 다급해져 애꿎은 차 내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

스으윽-

신해수와 막내를 태운 차가 부둣가 구석에 위치한 창고 앞에 멈추어 섰다.

둘은 전자파가 차단된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선글라스를 낀 사내 둘이 창고에 들어가기 전 몸을 수색하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해.”

꼼꼼한 몸 수색이 끝나고 그들이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철컥, 철컹.

둘이 안으로 들어서니 창고 문이 닫히고 밖에서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창고, 그 가운데에만 불이 켜져있고 쇼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유마담이 보였다.

그녀가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턱을 살짝 들었다.

“오셨어?”

해수가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유마담의 말투가 바뀐 것도, 약속 장소의 분위기도, 무언가 틀어진 것을 깨달았다.

“물건은 어딨지?”

“돈 먼저 볼까?”

“물건은 어딨냐고.”

치이익-

유마담은 재털이에 담배를 비비고는 해수를 보며 이죽거렸다.

“너 돈 없지, 짭새야.”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해수와 막내가 멈칫했다.

그 모습에 유마담이 깔깔 소리내며 웃었다.

“우리가 목줄 쥐고 있는 청장이 몇 명인데, 경찰을 못 알아보겠니?”

저벅 저벅

그녀의 말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어둠 속에서 사시미칼, 장도리, 쇠파이프를 든 사내들이 좁혀왔다. 대충 보아도 스무 명이 넘었다.

“아 지원? 안 와, 기대하지 마, 오더라도 니네가 물고기밥이 된 후에 오겠지.”

“유마담...”

“없애버-”

쾅!!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해수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두 걸음 빠르게 옮기며 가장 가까운 사내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쿠웅-!

사내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해수는 얼굴에 묻은 피를 엄지로 닦으며 유마담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가 흠칫했다.

“조사를 덜 하셨네, 너무 적잖아.”

< #43. 너무 적잖아.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