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는 벽에 기대어 두 번 눈을 깜빡이고 등을 떼었다.
“신경사님?”
“아, 괜찮습니다. 그래서 증거는 나왔습니까?”
“증...거요?”
임경장이 의문을 표했다. 해수는 그녀의 반응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직은 타살이라는 정황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아, 예전에 보았을 때 자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서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현장은...”
해수가 주변을 둘러보자 임경장이 금세 눈치채고 말했다.
“혹시 몰라 최대한 보존했습니다. 현장 훼손은 안 됐을 거에요.”
“잘 하셨습니다.”
곧이어 1팀 팀원들이 도착하고, 해수의 말을 따라 타살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나온 머리카락, 손톱, 작은 것들도 증거물로 담고 지문도 채취했다. 올가미도 증거물로 보내었다.
아직 정확한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머리카락도 모두 신이라의 것과 길이나 색이 일치하고, 어떤 의심되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신이라는 일가친척이 없기에 시체를 바로 국과수에 보내며 해수가 당부했다.
“목 매달기 전에 죽었는지, 정황상 자살하는 사람이 보기에 이상한 점은 없는지 자세히 분석 부탁드립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1팀은 시시티비와 블랙박스를 수거하여 경찰서로 다시 모여서 분석 노가다를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동태 눈깔을 하고 시시티비를 돌리던 팀장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돌격아, 현장 보니까 의심할 거 없이 자살이던데, 행동이 꼭 타살로 확신하고 조사하는 거 같다?”
“아버지...”
“엉?”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합니다. 안방 베란다, 건조대 줄, 올가미 매듭 방식까지... 스톱”
해수의 말에 막내가 본능적으로 스페이스를 눌러 동영상을 멈추었다. 영상에는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있었다.
몇 층에서 나오는지는 모르고 신이라 사망시간과 비슷한 시간대에 해당 건물에서 나온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그 남자, 따라가 봐.”
“옙 알겠습니다. 여기로 꺾었으니까...
“정주로 16번 파일”
“아, 넵.”
시시티비로 후드남의 동선을 체크하다보니 팀장이 검지로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수상한데?”
오갱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 새끼 사각지대나 얼굴 안 보이는 각도로만 가고 있어, 시시티비 위치를 확실히 아는 놈이야.”
“여기서 끊겼습니다.”
시시티비가 없는 골목이 나오는 곳에서부터 끊겼다. 거기서부터는 범위가 넓고 주거지도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추적은 쉽지 않다.
“이 사람이 자살로 위장 시킨 게 확실하다면... 전문가네.”
전문가가 아무 이유없이 자살로 위장 살인을 할 리가 없다.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해수는 문득 박영철 경위의 말이 떠올랐다.
-정황도 증거도 없으면, 피해자의 삶에서 범인을 찾아야지.
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왜.”
“막힐 땐 발로 뛰어야죠.”
“아씨...”
혹시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 시시티비 분석으로 팀장을 사무실에 두고, 1팀원들은 신이라의 집으로 다시 향했다.
그곳에서 신이라의 옷, 구두, 휴대폰 검색 기록, 소지품, 그녀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조사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범행동기로 의심될만 한 기록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통화내역에는 국회의원 김상태같은 남자들만 있고 수상한 연락은 없었다.
의심되는 것은 단 하나, 김상태를 조사할 때 알게 되었던 레드문이라는 고급 술집에 신이라가 다녔다는 것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한 방식의 죽음, 아버지 수첩에 적혀있던 레드문, 신이라가 다니던 곳 역시 레드문.
두 사람의 죽음에 레드문이라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레드문은 아무리 검색해보아도 나오는 곳이 없었다.
탁 탁 탁탁탁
“대 한 민국”
팀장은 막내에게 엄지를 추켜올렸다.
“우리 막내 애국잔데? 젊은 친구가 이걸 어떻게 알지?”
“녹화영상 많이 돌려봤습니다.”
“형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우리 해수 얼굴 심각한 거 안 보여?”
“어 나도 그래, 그러니까 레드문, 레드문이라는 데가 확실히 의심이 되기는 하네, 이렇게 안 나오니까 더”
“남자관계가 손님이었던 놈들 아니면 없는 것 같던데, 그 진이라는 놈이 손님은 아닐 거 같고, 걔를 만나볼까?”
해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교도소 좀 다녀오겠습니다.”
*
강진 교도소 접견실.
면회자와 재소자 간에 칸막이가 없는 곳이다.
끼익
전 국회의원 김상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해수를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날 쳐넣으신 분이 왜 찾아왔을까?”
해수는 그를 데리고 온 교도관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시시티비, 감청 꺼주십시오.”
“예, 형사님.”
그 말에 김상태가 움찔하며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다.
“신이라씨가 죽었습니다.”
“...뭐?”
“자살로 위장한 타살입니다. 짚이는 바가 있습니까?”
김상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나,난 몰라 아무것도”
“잘 생각하십시오. 만약 신이라씨를 죽인 자가 당신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은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을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김상태는 뒤를 보았다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몸을 앞으로 숙여 작게 말했다.
“어떻게...?”
“흔적 없이 교도소를 옮기고,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독방에서 지내게 해드리겠습니다.”
“도,독방? 그건 좀...”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겁니다. 이대로 죽을지, 살지.”
“하... 내가 이렇게 드럽게 엮일 줄 알았어.”
그는 주변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년, 그 여자를 어떻게 알았냐면...”
김상태는 그의 연수원 동기인 부장검사를 따라 어쩌다 보니 레드문을 들어갔다.
레드문은 복도에서 스치는 여자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미인들만 있었다. 나름대로 텐프로도 많이 다닌 김상태지만 그런 곳은 처음이었다.
“...거기 처음 가면 휴대폰을 줘, 그걸로 연락하면 어디에 있든지 픽업을 와, 난 당연히 자주 갔지, 천국인 줄 알았거든, 천국을 가장한 지옥인 줄 모르고.”
입장부터 퇴장까지 완벽하게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니 국회의원인 김상태도 부담이 없었다고 한다.
“...관리자가 유마담이라고 불리는 사십대 여잔데, 신이라나 거기 여자들이 유마담을 아주 무서워해, 겉으로는 아닌데 마음 속 깊은 곳에 커다란 공포가 자리잡은 게 은연중에 느껴졌지, 유마담을 향한 눈빛이나 말투, 작은 행동에서...”
그는 여자들을 따라하듯이 겁 먹은 눈빛과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고 망설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겟지만 사람 관찰 잘 하는 나는 알 수 있었어, 그건 단순한 고용주와 종업원 관계가 아니야.”
김상태는 레드문에 관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것이 처음인지라 해수가 이끌지 않아도 신이 나서 설명을 이었다.
“거기는 가드들이 유독 많아, 그 중에 실장이라 불리는 놈들이 가끔 있는데 눈빛만 마주쳐도 솜털이 오소소 솟는 놈들이야, 진이라는 놈도 그 중 하나였어, 원래 실장들은 안 보이는데 신이라를 자주 찾다보니 걔는 자주 봤었지.”
“진도 레드문 출신이 맞군요.”
“그렇지, 아무튼 무서운 곳이야 거긴.”
김상태는 이제 할 말은 다 했다는 듯이 팔짱을 껴고 시선을 피했다.
해수는 손을 뻗어 그의 턱을 잡고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끝입니까? 다 털어놔야 저도 당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경찰을 압박까지 해서 신이라를 감싸준 이유, 교도소에 들어가는 마당에도 감추려던 그거, 털어놔야죠.”
“그건 당연히...”
김상태는 해수 눈치를 보다가 자포자기하듯이 힘을 풀며 말을 툭 내뱉었다.
“동영상이지 뭐 시발... 그 새끼들이 싹 다 동영상을 가지고 있더라고, 약도 권유해서 중독시키고, 지 손님들을 노예로 만들어, 물론 나는 약 거부했어, 그건 너무 티 나잖아.”
그가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해수는 손을 들어 계속 말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걸 보고 생각했지, 잘못 걸렸구나, 얘넨 진짜 무서운 놈들이구나, 얘넨 무슨 일이든 하겠구나, 그러나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더라고.”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레드문에 약점이 잡혀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독립영화인 줄 알았는데 블록버스터였다.
“레드문이 어디 있습니까?”
“몰라, 양옆에 선팅 찐하고, 운전석이 철판으로 막힌 차로 픽업 와서, 이동할 때도 뭐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차에서부터 서비스가 들어간 것이다.
“거기 막 쳐들어가면 안 될텐데? 그리고 거긴 추천제야.”
“추천... 추천할 사람 있습니까?”
“그 부장검사 한 명밖에 몰라, 걔도 지금 잘 살아있나 모르겠는데.”
부장검사에게 접근하면 의심받을 수 있다. 김상태가 유일하게 아는 레드문 회원이니.
그때 김상태가 긴히 말했다.
“내가 신이라한테 들었는데, 딱 하나 방법이 있긴 있는데...”
***
강진서 강력반 사무실.
1팀 형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속닥거리고 있다.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음... 좋은데, 좋은 작전이긴 한데, 제일 중요한... 돈은?”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그때 그 소문이 사실인 건가, 재벌집 숨겨진 아들이라는...”
신해수는 오갱의 말을 막았다.
“현장은 저와 막내가 들어가겠습니다.”
해수의 말에 오갱이 발끈했다.
“왜! 나도 잘할 수 있어!”
“오갱아, 너는 여기에서 이미 빠꾸잖아, 마음은 나도 굴뚝같지만... 우리는 지원이다.”
“크흑”
오갱은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막내가 벌떡 일어서며 파이팅 넘치게 외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잘 해보겠습니다!”
*
[퀸 클럽]
둥둥 둥둥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온다. 클럽 정문에는 젊은 남녀가 양쪽으로 나뉘어서 줄을 길게 서 있고, 가드들이 여럿 대기하고 있다.
-배우 진입합니다.
-오케이
브르릉-
저 멀리서 낮고 굵은 배기음과 함께 새빨간 스포츠카가 등장했다. 말이 앞발을 들고 있는 앰블럼이 돋보인다.
스포츠카는 그냥 지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클럽 앞으로 돌진했다.
끼이이익-!
“우어어-”
“허업”
스포츠카가 클럽 바로 코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어 섰다. 사람들은 부딪힐까 봐 겁을 먹었다.
운전석이 열리며 새빨간 수트를 입은 남자가 내렸다. 베스트에 깔끔하게 넥타이까지 멘 신해수였다.
조수석에서는 투버튼 스트라이프 수트를 입은 막내 우강철이 내렸다. 그들의 피지컬에 욕을 중얼거리던 말소리가 순식간에 들어갔다.
해수는 여유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 중에 가드 한 명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차키를 번쩍 들어올렸다.
“키 받아라-!”
해수는 차키를 마치 야구를 하듯이 위에서 아래로 던졌다. 가드는 식겁하여 두 손을 펼쳤다.
착-
다행히 손에 딱 들어왔지만 워낙 쎄게 날아와 떨어트릴 뻔했다. 이 차키 하나만 수백 만 원 짜리다. 그는 두 손을 버둥대며 간신히 다시 잡았다.
해수의 셔츠 단추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갱과 팀장이 동시에 외쳤다.
-오우! 부잣집 망나니 컨셉!
-요우! 싸가지!
< #41. 배우 진입합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