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40화 (40/255)

“야야 어디가!”

“뭐,뭐야 사건이야?!”

신해수의 다급한 모습에 오갱과 팀장이 소리쳤다. 그러나 해수는 그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덜컹

“하루야!”

프랜즈 어학원, 현관 문을 열자마자 데스크 앞에 휴대폰을 들고 있는 선생님과 하루가 보였다.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흔들어보였다.

“급히 오실 건 없었는데... 다시 전화해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남자친구분이 하루씨를 많이 좋아하시나보다.”

학원을 등록할 때 보호자라고만 했지 둘의 관계를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더니, 연인 관계라고 생각한 선생님이었다.

“피해자는, 피해자는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다쳤습니까?”

“네? 피해자라니요?”

선생님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하루가 나섰다.

“저... 사람 안 팼습니다.”

“아... 그러면?”

“아,하하, 그... 하루씨가 받아쓰기 백 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굳어진 분위기를 풀고자 더욱 밝게 말했다.

하루는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해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칭찬해달라는 눈빛이 강렬하다.

“테스트때보다 실력이 하루하루 일취월장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상급반으로 올리는 건 어떤가... 그거 상의하려고 전화드렸던 거예요.”

선생님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잘못한 마음에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해수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하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했어, 상급반 올라가고 싶어?”

“네...”

“그래, 상급반으로 올려주세요.”

“잘됐네요. 상급반에 나이 맞는 분들도 훨씬 많고 재미있을 거예요!”

그렇게, 출동하듯이 나간 하루 건은 싱겁게 끝이 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휴일이기에 해수가 집에 있으면서 학원을 다녀오는 하루를 맞이하는 모양새가 펼쳐졌다.

하루가 박자도 맞지 않는 이상한 콧노래까지 부르며 기분좋게 들어오자 해수가 물었다.

“학원에서 친구들은 생겼나?”

“친구... 생겼습니다. 샘킴, 데이비드오, 서태양, 하정후...”

해수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죄다 남자 이름이다.

“반에 남자와 여자가 몇 명이지?”

“남자... 여섯, 여자 여덟 명입니다.”

심지어 여자가 더 많은데 남자인 친구들만 생겼다.

“착하고... 친절합니다.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까, 오빠가 재밋는데 데려가줄까, 오빠가 영화 보여줄까, 오빠랑 술 마실래, 오빠랑 모...”

해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하루는 그 모습에 무서워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하루는 그저 네네 알겠습니다 대답만 했다고 한다.

해수는 하루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머릿속으로 상상이 떠나질 않았다. 음흉하게 생긴 외국인들이 하루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이 보인다. 순진한 하루가 홀딱 넘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물리력을 사용하면 하루가 어련히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이런 음흉한 친절은 돌파하기 힘들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

해수는 천장을 보며 누워있다가 몸을 돌려 잠을 청하려는 하루에게 말했다.

“하루, 다음부터 그 남자들이 말을 걸면...”

*

프랜즈 어학원.

쉬는 시간이 되자 남자들이 어김없이 하루에게 다가왔다.

하루는 재빨리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남자들은 하루의 휴대폰 배경화면을 보고 놀라워했다. 배경화면에는 살벌한 흉터와 몸을 지닌 남자가 상의탈의를 하고 운동하는 사진이 설정되어 있었다.

“아, 하루 몸 좋은 사람 좋아하는구나? 이 오빠도 근육 좀 있는데, 만져볼래?”

“남자친구입니다.”

“아, 남자친구가 있구나, 당연히 있겠지, 하루는 아름다우니까.”

골키퍼가 있어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외국인 마인드, 하루는 마치 증명을 하듯이 사진첩을 열어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무슨 증명사진을 찍듯이 하루와 남자 둘 다 정면을 보고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얼굴에 점같은 것이 몇 개 묻어 있었다.

“정말이네, 근데 여기 뭐가 묻어있는데?”

“피입니다. 나쁜놈들 잡는 형사입니다. 피를 자주 묻히고 옵니다.”

“아...”

남자들은 그제야 슬금슬금 뒤로 피하기 시작했다.

***

강진 경찰서.

동남철 해임 날이다. 그의 아버지는 당에서 쫓겨나지는 않았으나 이번 일로 인해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

불명예 해임을 당한 동남철을 신해수가 배웅했다.

“고맙다.”

“뭐,뭐? 뭐가”

“니 손으로 직접 일 저질러줘서, 깜빵에 못 쳐넣은 게 아쉽지만, 앞으로 경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이 개새끼가 끝까지...”

해수는 입꼬리만 올리면서 한 손을 내밀었다. 동남철은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분노를 삭히는 한숨을 내쉬며 잡았다.

“하... 아아악!”

해수는 그의 손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는 손을 빼지도 못하고 경찰서 정문 앞에서 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욕 하지 마, 혼나.”

해수는 싸늘한 경고 후에 손을 놔주고 뒤돌아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동남철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시팔놈, 힘은 무식하게 쎄서...”

혹시나 들릴까 매우 작게 중얼거리며.

*

사무실로 들어서는 해수의 얼굴은 근래에 보기 드문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앓는 것을 넘어서서 썩은 이가 뚝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해수는 1팀 파티션을 두드리며 말했다.

“퇴근 후 사우나 가시겠습니까? 제가 사겠습니다.”

“집돌이가 웬일이냐? 옆 팀장이 2연속으로 날아갔는데 저리 밝은 표정이라니.”

“진짜 해수가 먼저 어디 가자는 건 처음이네, 근데 나 오늘 애들 어린이집 데릴러 가야돼, 아쉽네.”

“나는 와이프님 생신, 내일 가는 건 어떻냐?”

그때, 막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가겠습니다!”

“뭐야 근육몬, 여자친구랑 약속 있다고 안 했어?”

“방금 다음에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수는 눈을 반짝이는 막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강진서가 있는 고암동의 외곽에 위치한 온천, 세삼천.

“어흐”

“어으”

동물 그림을 온 몸에 그린 덩치들 네 명이 어슬렁거리면서 들어온다.

먼저 씻고 있거나 탕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흠칫하며 슬금슬금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독사형님, 형님은 어째 몸이 점점 더 좋아지십니다.”

독사라 불린 사내는 가슴근육을 튕기며 대답했다.

“그렇냐? 어제 가슴을 좀 조졌지, 너는 이게 뭐냐? 비계 아녀 이게 다, 내가 니 나이때는 날라다녔어, 도끼질 한 번에 강두파 새끼들 대가리 두 개씩 쪼갰어.”

“그때가 블루나이트 학살 때 아니십니까? 삼선 쓰레빠 신으시고.”

“그렇지, 그때 쓰레빠 아직도 안 끊어졌어.”

“역시, 살아있는 전설, 야들아, 독사 형님이 바로 그 유명한 용수동 쓰레빠이시다.”

“대단하십니다. 형님!”

“허허, 다 옛 말이여, 옛 말...”

독사가 말을 끌면서 입구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사내들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울끈, 불끈.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독사의 이목을 잡아끈 이유는 키가 저렇게 큰데도 몸이 매우 두꺼운 것이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터질듯한 근육들이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거들먹거리던 문신남들이 조용해졌다. 독사가 그를 경계하며 작게 말했다.

“처음 보는 놈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저런 인재가 드문데...”

“저런 놈들이 몸만 좋지, 실전은 젬병이야, 몸에 흉터 하나 없잖아.”

“역시 독사 형님이십니다. 어디 식구인지 알아볼까요?”

“아냐, 괜히 일 시끄럽게 만들 필요 없다. 지켜보고...”

그때, 뒤이어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온 몸에 흉터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총상으로 보이는 것까지 있는 남자였다.

근육남이 잘 관리한 터질듯한 근육이라면, 이 남자는 강철같은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신남들은 그를 보았다가 본능적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곁눈질로 그들을 관찰하던 독사의 눈에, 근육남이 흉터남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탕에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라.”

둘이 말을 섞는 것을 보고 문신남들이 긴장했다.

스으으

근육남이 같은 탕에 들어오자 문신남들이 그를 힐끗힐끗 보았다. 혹시나 들릴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흉터남도 들어왔다.

“후우...”

흉터남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천천히 탕을 둘러보았다.

문신남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고, 독사는 마지막까지 버티려다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생존본능이 발동하여 고개를 홱 숙였다.

흉터남은 코를 한 번 찡긋하고는 근육남에게 고개를 돌렸다.

“막내, 그때 그 시체는 어떻게 마무리했어.”

“토막 건 말입니까?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살벌한 몸, 살벌한 얼굴에 살벌한 대화, 문신남들은 움찔했다. 이들은 허세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잘했네, 시체는 처음 봤나?”

“세 번째입니다.”

“그래,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마음 단단히 잡고 있습니다. 잘 이끌어주십시오.”

둘이 대화하는 중, 독사가 먼저 참지 못하고 탕에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아... 물이 좀 뜨겁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문신남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소리가 나지 않게 극도로 조심히 발을 옮겼다.

그러나 몸에 그려진 문신들이 화려하여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흉터남의 시선이 그들을 따라 움직인다.

“거기”

네 명이 동시에 움찔하며 정지화면처럼 멈추어 섰다. 맨 앞에 가던 독사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거기 붕어.”

붕어가 온 몸을 두른 문신을 한 사람은 독사밖에 없었다. 독사는 하는 수 없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착하게 웃는 낯으로.

“저...요?”

“떼밀이 떨어트렸어요.”

흉터남의 검지를 따라 아래를 보니 초록색 떼밀이가 바닥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재빨리 그것을 집어들고 엄청난 속도로 나갔다. 질세라 다른 문신남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신해수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문신한 거...? 아닐까요.”

“그런가, 요즘은 문신이 유행인가보네, 순박해보이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

다음날, 강진 경찰서 강력반.

열정적으로 전완근을 괴롭히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임시아 경장]

지구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임순경이다. 이제는 임경장이 되었다.

“신해수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경사님, 저희 지금 지정동 자살 신고 들어와서 왔는데요. 사망자가 경사님 팀에서 맡았던 사건 관련자라고 해서 연락드렸어요.

“사망자 신원이 어떻게 됩니까?”

-20대 초반... 여성이고요. 이름이, 신이라씨입니다.

신이라, 연예인 살해 건과 국회의원 사이에 있던 여자다.

“지금 갑니다.”

해수는 전화를 받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막내와 눈이 마주쳤다. 해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막내가 마주 끄덕이고는 바로 차키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그 모습에 팀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뭐야, 니네 언제부터 눈빛으로 대화했냐, 형 서운하다.”

“신이라씨 자살했답니다.”

“이런 씨”

팀장과 오갱이 동시에 일어났다.

*

강력 1팀은 봉고차를 타고 이동하고, 해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오토바이를 타고 따로 이동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한 시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사건 장소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해있던 지구대 경찰들이 해수를 알아보고 경례를 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임경장이 그를 맞이했다.

“신경사님.”

“오랜만입니다. 사망추정시간은 나왔습니까?”

“4시간 전후입니다.”

리셋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신이라의 시신은 안방 바닥에 놓여 있었다. 목에 상흔이 심하다. 목을 매달고 자살한 것이다.

“어디에 매달려 있었습니까?”

“여기, 안방 베란다입니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베란다로 향했다. 천장형 건조대를 지탱하는 줄로 올가미가 만들어져 있다.

올가미를 만든 매듭을 보자마자 눈앞이 흐릿해지며 어떤 환상과 겹쳐졌다.

“어”

해수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움을 느껴 비틀거렸다.

“신경사님!”

매듭의 방식, 자살 방법, 목을 매단 장소, 모두 동일하다.

해수의 아버지가 자살한 방식이다.

< #40. 낯익은 매듭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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