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38화 (38/255)

어두운 거실, 식탁 등만 켜진 곳에 신해수와 경준 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엄마 없이 키워서... ‘아들을 믿는다.’ 라는 말로 합리화시키고 신경을 쓰지 못한... 제 탓입니다.”

경준 아버지는 심하게 자책했지만 위로해줄 수 없었다. 집단 괴롭힘이 자살까지 가는 경우, 아이가 부모에게 3회 이상 구조요청을 한다. 부모가 그것을 알아챌 정도로 유대관계가 있는지는 별개다.

“...원래 밝은 성격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중학교 가면서부터 급격히 어두워졌던 것 같아요.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어깨도 좁히고 다니고...”

생각해보니라는 말은 이전까지는 보아도 깊게 생각했던 적이 없던 것이다. 무관심이 낳은 일이다.

해수는 부서진 이경준의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포렌식으로 살려낸 것이다.

“이전에 경준이와 친구들, 아니 가해자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입니다.”

원래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는 단체방이 없었다. 가해자들이 경준을 내쫓고 다 나가서 방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백왕님: 이경준 튀어와.

백왕님: 이경준 내일까지 80찍어라.

백왕님: 이경준 기어와.

성식: 이거 봐라 씨발, 존나 더러워

성식: [영상]

정선: ㅋㅋㅋㅋㅋㅋㅋ

영상에는 메뚜기, 지렁이, 개구리 등을 경준에게 먹이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경준이 참지 못하고 토를 하고, 주변 학생들은 더럽다며 그를 혐오스럽게 쳐다본다.

주도적으로 괴롭히는 학생들은 그를 발로 마구 때린다.

-야야 얼굴 때리지 마, 배나 허벅지 위주로 병신아, 하루이틀 해보냐?

-어어 미안

먹지 못할 것을 먹이거나 구타, 괴롭히는 영상이 수십 개였다. 영상들을 보는 경준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영화에서 보면 손톱 뽑아서 막 고문하잖아, 그거 진짜 그렇게 존나 아플까?

-몰라, 아프겠지?

-그럴까? 경준아?

-어,어? 나는 잘... 아악!!!

손가락을 부여잡고 피 철철 흘리며 경악하는 경준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어흐, 어헉”

경준의 아버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친구들이랑 농구하다가 다쳤어...’

그때의 힘없는 목소리가 지금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눈치를 챘어야 했다. 미치도록 후회가 된다.

경준 아버지는 두 손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식탁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증거는 충분합니다. 이 가해자들, 죗값 톡톡히, 아니 넘치게 받게 하겠습니다.”

경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크게 어깨를 떨었다.

***

쏴아아아아-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연립주택 앞에 한 중년인이 검은 우비를 입고 가만히 서서 비를 맞고 있다.

그의 눈은 멍하니 초점이 없다. 마치 죽은 자와 같은 눈동자였다.

툭-

교복을 입은 키가 큰 남학생이 중년인과 어깨를 부딪혔다.

“아이 씨발...”

남학생은 그를 째려보며 욕을 내뱉고 우산 털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초점이 없던 중년인의 눈동자가 그제야 움직인다. 그는 남학생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남학생, 백정필의 집은 가장 마지막층인 4층이다. 그런데 자신 외에 발소리가 계속 따라오자 뒤돌아서 보았다. 아까 그 우비를 입은 중년인이다.

“아저씨, 뭐에요?”

중년인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백정필과 눈을 마주했다.

“학생, 사과해.”

“뭐요? 하 시발, 어이가 없네, 길은 아저씨가 막았잖아?”

“우리 경준이한테...사과해.”

“뭐, 뭐?”

백정필은 계단을 한 칸 내려가 중년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폭행 건 때 경찰서에서 보았던 경준의 아버지가 맞다.

백정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 싫다면? 어쩔건데? 아저씨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

“너는... 죽어야 돼.”

“뭐?”

푹-

경준 아버지는 품에서 칼을 꺼내어 백정필의 배에 쑤셔 넣었다.

“어, 어...?”

백정필은 따끔한 느낌에 고개를 내려 배를 보았다가 칼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아 씨,씨발”

푹푹 푹!

“죽어, 죽어, 죽어!!”

경준 아버지는 분노에 가득 차 칼을 백정필의 배에 마구 찔러 넣었다.

정필은 몸을 비틀며 칼을 옆구리로 받았다.

“아, 어으, 아 씨바, 씨...”

쿠당탕탕-

정필은 도망치려다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계단에 굴러 떨어졌다.

경준 아버지는 엄지가 칼에 베여 너덜너덜해졌는데도 신경쓰지 않고 살기 가득한 눈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저벅 저벅 저벅

“아,아저씨, 살려, 살려줘요. 내,내가 잘못, 잘못...”

정필은 삐져나오는 창자를 집어넣다 말고 시뻘건 두 손을 모아 경준 아버지에게 빌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에 살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아,아 제발 살려줘...”

정필은 생존본능으로 손으로 기어서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천천히 내려오는 경준 아버지에게 따라잡혔다.

“지옥에도... 따라갈게.”

“씨...이-”

푹!

경준 아버지의 칼이 정필의 목을 꿰뚫었다. 정필은 혀를 쭉 내밀고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하, 하...”

경준 아버지는 정필의 시체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공허한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른다. 칼을 거꾸로 잡은 그의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경준아... 아빠가 미안하다.”

푹-!

혼신의 힘을 다하여 찌른 칼날이 경준 아버지의 목을 단번에 꿰뚫었다.

엄청 아플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마치 마취를 한 것처럼 목에 뭔가가 들어왔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저, 눈이 아직 보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것마저도 점점 흐릿해지고, 어둠이 세상을 천천히 메운다.

“...아버님, 경준 아버님!”

지금 절대 들리지 않을 목소리가 들리며, 새까만 세상으로 떨어졌다.

.

.

.

-툭

“아이 씨발...”

키가 큰 남학생, 백정필이 그를 째려보며 욕을 내뱉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경준 아버지는 눈알이 빠질 듯이 크게 뜨고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손에 피도 묻지 않았다. 품 안에 묵직한 칼은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고, 눈 앞에 뒷모습은 백정필이 확실하다.

놀란 눈도 잠시, 경준 아버지는 이내 서늘한 눈빛으로 변하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기 직전.

턱-

팔을 잡는 엄청난 악력에 그는 미간을 좁히며 뒤돌아섰다.

“아버님.”

형사, 경준의 사건을 맡은 신해수 형사였다. 경준 아버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렸다.

지금 몸을 뒤지면 어떡하지? 백정필의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백정필을 죽여야 하는데?

그때, 형사는 그 모든 것을 묵과하는 듯이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 경준이가 일어났습니다.”

“...예?”

“아버님께서 경준이 옆에 계셔야죠.”

털썩.

경준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두 무릎을 바닥에 찧었다.

형사의 말대로, 경준이 깨어나면 자신이 무조건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경준이는 포기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되려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는 떨리는 두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피가 묻어있지 않다. 매우 생생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혼란스럽지만,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인 것이 그저 다행스러웠다.

그는 해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형사님 죄송합니다. 형사님 감사합니다...”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

대성 병원.

경준 아버지는 칼을 품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정신없이 병실로 뛰어갔다.

“경준, 경준아!”

“아...빠...”

아버지는 경준에게 달려가며 두 손을 펼쳤다가 멈추고, 경준의 손을 꼬옥 잡았다.

“경준아, 우리 아들, 아들, 아빠가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죽을 죄를 지었어, 아빠가...”

경준은 가만히 누워 고개만 살짝 돌린 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반대편 손을 힘겹게 움직여 아버지의 손 위에 포개었다.

“미안해요... 아빠.”

“아냐, 아니야, 우리 아들은 잘못한 거 없어, 하나도 없다. 없어, 이게 다 못난 아빠 탓이야.”

경준 아버지의 어깨는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경준 역시 침상에 누운 채 눈물을 흘렸다.

감동의 재회의 순간, 해수의 건조한 목소리가 둘을 갈라놓았다.

“이제 할 일이 많습니다. 경준 학생, 아저씨가 했던 말 기억하지?”

경준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그래, 이제부터 차근차근 부숴줄 건데, 경준이의 도움이 필요해, 힘들겠지만, 그들을 더 힘들게 하기 위해서, 누가 어디서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상세히 얘기해봐.”

경준은 아버지와 눈을 마주하더니,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해수에게 시선을 마주했다.

“중학교 1학년, 입학식 때였어요...”

경준은 1년이 넘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직접 경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의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몇 시간에 걸쳐 모든 이야기를 듣고, 영상이나 대화 내용과 꼼꼼히 맞춰보고, 해수는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기다려야 합니다.”

“...예? 기다리다니요?”

“조금이라도 더 큰 벌을 위해.”

***

용수 중학교 2학년3반.

이경준이 자살시도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조사는커녕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몸을 사리던 백정필은 이제 더 기가 살아나서 더욱 심하게 행패를 부렸다.

“이랴! 이랴! 왜 이렇게 느려? 돼지 새끼라서 그런가?”

백정필이 뚱뚱한 학생의 위에 올라타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고 있고, 뚱뚱한 학생은 맞을 때마다 꿀꿀 소리를 냈다.

백정필은 돌연 인상을 찌푸리며 내려와 뚱뚱한 학생을 발로 찼다.

퍼억!

“꾸울!”

“아 씨발 존나 재미없네, 이경준 그새끼가 괴롭힐 맛이 있었는데, 슬금슬금 반항하는 눈빛도 보이고, 그런 새끼 없나... 똥식아, 담배.”

“옙썰!”

백정필은 똘마니가 건네준 담배를 물고 창문가에 걸터앉았다.

그때, 교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신해수가 생일 케이크에 초까지 꽂고 노래를 부르며 들어온다. 음정이 일정하고 목소리는 퍽 건조했다.

정필이 다급히 담배를 창문 밖에 버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해수를 보았다.

해수는 처음부터 정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다가갔다. 그러고는 정필 눈 앞에서 멈춰서서 똑바로 마주보았다.

“좆같은 백정필, 생일 축하합니다.”

그는 백정필에게 케이크를 내밀었다. 촛불을 불어서 끄라는 눈짓이다.

“뭐에요. 아저씨는?”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자신이 불어서 초를 껐다.

“생일축하한다. 청소년.”

퍼억!

해수가 들고 있던 케이크를 백정필의 얼굴에 꽂았다.

“뭐야 이 시팔!!”

백정필은 케이크를 치우며 해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그의 주먹이 해수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 #38. 생일 축하한다. 청소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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