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정은 현재 재혼하여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가 거주하는 아파트, 강력1팀은 지하주차장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고수정씨, 당신을 김고청씨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고수정은 정말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차분하게 부정했다.
“저 아닌데요. 제가 당했는데?”
“서에 가서 얘기합시다.”
“저 남편 위에 있는데, 남편 데리고 오면 안 돼요?”
“타세요.”
고수정이 차에 타고, 해수는 뒤돌아서 막내에게 물었다.
“봐.”
“조금 흔들렸습니다.”
“괜찮아.”
막내는 해수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조금 흔들리기는 했어도 고수정 위주로 잘 찍혔다. 해수는 동영상을 전송하고 바로 안서은에게 전화를 넣었다.
“고수정씨 검거 영상도 추가로 보냈습니다.”
-예, 봤어요. 이건 오히려 그쪽에서 더 좋아하겠네요. 역대급으로 자극적이겠는데요?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죠, 수단은 안 가립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해수씨 찍은 거잖아요. 1심 이후에 방영할 수 있게 준비하면 되는 거죠?
“예, 어떤 판결이 나오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니.”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아직 판결 전인데, 절 믿으십니까?”
만약 무죄가 나오거나 진짜 진범이라며 누군가가 자수라도 한다면 방송사는 물론이고 대성, 파일을 넘긴 해수와 강력1팀은 큰 타격을 입을 도박인 것이다.
그러나 안서은은 별다른 질문 없이 해수가 부탁한대로 따랐다.
-안 믿으면 전에 편의점에서 이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죠.
“...알겠습니다.”
*
고수정의 집안은 부유했다. 검거한 지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유능한 로펌 변호사 세 명이 진을 쳤다.
“저는 안 죽였어요. 제가 성폭행 당했어요.”
그녀는 앵무새처럼 그 말만 반복했다.
1차 공판, 고수정은 법원에서 범행을 계속 부인했다. 펜션 화장실에서 남편의 피가 검출됐다고 하니 말을 바꾸었다.
“성폭행하려 해서 칼로 찔렀으나 죽이지 않았어요. 조금 다쳤을 뿐이에요. 그 피겠죠.”
뻔뻔한 거짓말과 판사의 판결.
“정황은 있으나 계획살인이라 보기 어렵고, 증거가 불충분합니다. 무죄를 선고합니다.”
탕 탕 탕
“뭐,뭐요?”
“무슨 미친!!”
재판에 참관한 1팀장과 오갱, 그리고 피해자 김고청의 동생이 판결에 절망했다.
그와중에 고수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판사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다시 일어나는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갱은 그녀의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렸다.
*
무죄 판결을 듣고 해수는 바로 안서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죄 판결 났습니다. 방송 준비해주세요.”
-미쳤네요. 이렇게 증거와 정황이 확실한데...
분노의 감정이 실린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걱정 마세요. 방영 후에는 세상이 고수정씨 얘기로 뒤덮일 테니까.
“믿겠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실제 범죄나 범죄 의혹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그것을 알고 있다. 진행자 김중앙입니다. 오늘은 실제 진행 중인 사건을, 경찰 측의 협조를 받아 방영해드리려고 합니다. 한 아이의 아빠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입니다.]
방송은 해수가 건네준 디테일한 사진과 영상들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분노와 감성을 자극시켰다.
[그저 아들을 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부정은 짓밟혔습니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검출된 수면제 성분, 그날의 물감놀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씨가 선상에서 버린 것은 정말 일반쓰레기일까요?]
진행자는 잠깐의 침묵으로 집중을 유도하고는 다시 찬찬히 입을 열었다.
[해당 사건은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여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입니다. 판결대로라면 김씨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제 곧 2차 공판이 열린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정의로운 판결에 힘을 실어줄 겁니다.]
항상 해왔던대로 진행자는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방송이 마무리가 되었다.
방송에 피해자와 피의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하였지만,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다음날까지 기다릴 것 없이 그날 밤부터 난리가 났다. 국민청원도 당연히 올라오고, 해당 사건은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링크와 링크가 난무했다.
[오늘자 그알, 정황 증거 완벽한데 무죄]
┗와 씨 이거 뭐냐?
┗한줄요약/시체만 없으면 완벽범죄.무죄
┗탕탕탕 무죄
┗고씨 잡으러 갈 파티원 구함
┗졸라... 아빠 차에서 노래부를 때 눈물남
┗희대의 쌍년을 저렇게 사회에 풀어놓는다고?
┗미쳤네 진짜, 판새 개객끼야!
┗돈먹었다 조사해라
*
강진서 강력1팀.
난리가 난 인터넷과는 달리 사무실은 초상집같은 분위기였다.
아무리 방송의 힘을 빌리더라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뒤집힐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수정은 방송사와 경찰, 기자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상태였다.
팀장도 시무룩해 있었지만 맏형답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팀원들을 다독였다.
“야야 정신 차려라, 어차피 우리 손 떠난 일이야, 최선을 다했잖아? 이 여자 말고도 나쁜 놈 졸라 많거든? 얼른 일하자.”
“예에...”
그때 막내가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습니다. 시체 찾아야겠습니다.”
“뭐, 어디서 찾게.”
“바다!”
“미친놈”
“다녀오겠습니다!”
“야 야 어디가?!”
막내는 말릴 새도 없이 차키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해수가 재빨리 일어났다.
“그래 돌격아, 니가 쟤 좀 말려봐.”
“다녀오겠습니다.”
“엉?”
해수와 막내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시체를 찾으러 해남으로 향했다. 혹시나 해안가로 떠밀려 왔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고.
그렇게 한창 생고생 후에 다시 서로 돌아온 해수와 막내는 거지 꼴에 가까웠다.
“에휴, 저 꼴을 보니 하루쟁일 일 안 했다고 뭐라 할 수도 없네, 야, 와서 라면이나 먹어라.”
둘은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치웠다. 해수는 여전히 이 사건에 빠져 있었다.
“남편을 왜 죽인 걸까요?”
지속적으로 범행을 거부하니 살해 동기를 취조 때 드러난 그녀의 성향을 바탕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취조를 담당했던 오갱이 중얼거렸다.
“전남편이 자꾸 전화와서 아이를 보여달라고 해서 짜증이 났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 현재의 삶이 완벽해야 하는데, 새로운 남편과의 삶에 자꾸 전남편이 끼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지.”
팀장이 말을 보탰다.
“양육 공방도 심했다며, 법원은 결국 엄마 편을 들어줘서 고수정이 아이를 데려왔는데, 그러고는 친정에 애를 맡기고 자기는 보지도 않았대, 그냥 남편이 애를 데려오고 싶어하니까 복수심으로 애를 빼앗은 거지.”
“진짜 미친년이네.”
“고작 그런 이유인 건가, 지금 삶에 걸림돌이 없어야 하니까...”
가만히 그녀의 심리를 추측하던 해수의 세상이 돌연 까맣게 변했다.
*
달그락, 달그락.
접시위에 놓인 카레가 보인다. 고급 식탁도 보이고, 어린이용 숟가락으로 접시를 긁는 작은 손도 보인다.
“왜, 맛이 없니?”
시선이 돌아간다. 시선 끝에는 친절한 미소를 보이는 고수정이 보였다. 그녀의 새남편도 보인다. 그가 시선의 주인공을 나무랐다.
“정민아, 대답해야지?”
“맛...있어요.”
정민의 대답에 고수정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다 먹어, 남기지 말고.”
그녀의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눈이 점점 감겨왔다.
“아빠, 나 졸려요.”
“그래? 아빠도 조금 졸립네, 오늘은 일찍 자자.”
그 말을 끝으로 시야가 완전히 닫혔다. 그러고 얼마 후,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눈을 떴는데도 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얼굴을 꽉 막은 느낌이다.
우웁, 우웁!
버둥거렸지만 얼굴을 짓누르는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때, 고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ASMR처럼 작지만 정확한 소리.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
꺼, 컥!
“선배님! 선배님!?”
해수는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까뒤집고 몸을 부르르 떨다가 벌떡 일어났다.
“커헉! 허억, 허억, 허억”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눈을 부릅뜨고 팀장을 보았다. 팀장은 흠칫하더니 몸을 뒤로 물렸다.
“왜,왜 그래 갑자기 무섭게?”
시간이나 상황을 보니 현재의 시간은 하나도 흘러가지 않은 듯했다.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처음이지만 피해자의 시선이었다.
“고수정 새남편, 아이가 있습니까?”
“이,있지, 열 살, 이름이 정민이었나...”
환상에서 들었던 이름과 일치한다. 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수정의 새 삶에 걸림돌은 전남편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아이를 묻고 나서 걸림돌을 얘기하는 해수의 말에 다른 팀원들이 무슨 뜻인지 눈치를 챌 때쯤, 해수는 벌써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야야, 쟤 따라가 따라가! 눈빛이 사람 하나 죽일 눈이었어!”
팀장의 말에 팀원들도 그의 뒤를 재빨리 쫓았다.
*
쾅쾅쾅 쾅쾅쾅!
고수정의 집.
문을 아무리 세차게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다. 해수는 발로 도어락을 옆으로 걷어차 부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안방에서 남편은 그렇게 문을 두드렸는데도 죽은 듯이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고수정이 아이 위에 올라타 베개로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성을 잃은 듯이 해수를 돌아보지도 않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죽어, 죽어, 빨리 죽어버려!”
해수는 다급히 달려가 고수정의 몸을 발로 찼다.
퍽!
“꺄악!”
그녀를 날린 뒤 아이의 코에 손을 대보니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해수는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끼야아!”
그때 어느새 부엌칼을 가져온 고수정이 해수의 목을 찌르려고 칼을 휘둘렀다. 해수는 뒤돌아서며 칼을 맨손으로 쳐냈다.
챙그랑!
그러고는 고수정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바닥에 강하게 내리 찍었다.
쾅!!
죽을까 봐, 여자이니까 사정을 봐줄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 한 번에 고수정은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찍히며 그대로 기절했다.
해수는 그녀를 신경쓰지 않고 다시 아이 심폐소생술에 들어갔다. 곧이어 형사들이 몰려들어와 아이의 상태를 보고 급히 휴대폰을 들었다.
“예 아이가 숨을 안 쉽니다. 심폐소생술 중입니다. 여기가...”
***
천만 다행으로 아이는 다시 살아났다. 신해수는 심폐소생술을 계속 하여도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아 마음을 졸였었다.
그러나 119가 도착했을 때 숨이 트였고, 아이는 제때 산소가 공급되어 뇌 손상도 오지 않았다.
고수정은 계획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게다가 검사 측에서 따로 조사하여 고수정 담당 판사가 뇌물을 받고 무죄 판결을 냈다는 것까지 밝혀냈다.
“피고 고수정은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 살인미수 뇌물수수 혐의로 법정 최고형,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탕 탕 탕-
판사의 입에서 고수정의 형량이 선고되자, 피해자 김고청씨의 동생은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렸다.
“끄흐윽...”
1팀 대표로 출석한 신해수는 그를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감히 가족을 잃은 그에게, 고수정이 받을 벌을 제대로 받아 다행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저 마지막까지 3센티 뼛조각 하나밖에 찾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
법원에서 나오는 해수는 바로 안서은에게 전화를 했다.
-안서은입니다.
“이번 일 고마웠습니다.”
-재판 잘 끝났나보네요?
“무기징역 선고 받았습니다.”
-사형이 아니라 아쉽네요.
고운 목소리로 조근조근 섬뜩한 단어를 말하니 오묘한 느낌이 든다.
-그알에서도 해수씨한테 감사 인사 전했어요. 재방 시청율이 역대 최고라고, 다큐 국장님이 한 번 뵙자고 하시던걸요?
“정중히 거절해주십시오. 잡으러 갈 때 빼고는 높은 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서.”
해수의 농담 아닌 농담에 안서은이 작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한결같으시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에요. 잘 부탁 드립니다.
*
기분 좋게 칼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해수는 멀리서 트레이닝복에 후드를 눌러 쓰고 나오는 하루를 발견했다. 그녀의 두 손에는 재활용 쓰레기가 들려 있었다.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여 걱정이 깊어 자주 전화했었는데, 생각보다 혼자 잘 지내고 있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을거리 구입이나 쓰레기 버리기도 하는 중이었다.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에 도와주려고 다가가는데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아줌마, 일로와봐요.”
분리수거장 구석에서 쪼그려앉아 담배를 태우는 여학생 네 명이다.
해수는 하루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여 걸음을 멈추고 전봇대에 숨어 지켜보았다.
하루는 자신을 검지로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나?’라고 물었다.
“그래요. 님아, 너요. 너밖에 여기 누가 더 있어요?”
하루가 가까이 다가오자 한 학생이 일어나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뭐야 썅, 키 크네? 아줌마,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런데, 저기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만 사줄래요?”
하루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지금 상황에서 죽이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하루는 감정 없는 얼굴로 작게 뭐라 입을 열었다.
“...줄까?”
“뭐? 시팔 뭐라는 거야?”
여학생이 하루에게 귀를 가까이 대었다. 하루가 여학생의 귀에 작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목을... 잘라줄까?”
< #33. 새로운 능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