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32화 (32/255)

팀장은 막내의 머리통을 탁 치며 자리에 앉았다.

“실종자, 김고청씨, 나이 43세, 전 부인이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무죄추정원칙 알지? 나랑 오갱이는 전 부인한테 가보자, 돌격이랑 막내는 실종 추정 위치 따서 시시티비 싹 수거해 와.”

“예 알겠습니다!”

“어딥니까?”

신해수의 질문에 팀장은 오갱한테 고개를 돌렸다. 오갱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제주도.”

*

이틀 전에 실종이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경찰들은 비효율적이라도 살아있다는 전제 하에 움직인다.

해수와 막내는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강진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인 군산으로 가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천천히 움직이자 소도 때려잡을 몸집을 지닌 막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아, 후읍.”

“왜 그러냐?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처럼.”

막내는 해수와 눈을 마주치더니 스르르 내리깔았다.

“뭐야, 처음이야?”

“예, 그렇습니다...”

해수는 긴장한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죽었을까?”

해수의 질문에 막내의 얼굴에 긴장이 사라지고 심각함이 자리 잡았다.

“살아있을 겁니다. 살아있어야 합니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생각을 돌린 것이지만, 피해자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열망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를 보고있자니 한창 형사 신입이었을 때가 떠오른다.

살해가 의심되는 피해자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살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큰 만큼 죽음을 확인한 후에 허망감도 크다.

그것이 반복되다보면 머리는 피해자가 살아있다는 전제로 움직이지만 가슴은 뛰지 않는다.

“그래, 올해 몇 살이지?”

“스물 여섯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놀랐다. 얼굴은 해수보다 형이라고 해도 믿을만 했다.

비행기에 탄 지 한 시간이 될 때쯤, 착륙 안내가 흘러나왔다.

해수와 막내는 미리 나와있는 제주도 형사의 픽업을 받아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으로 가는 길에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브리핑 받았다.

“...그래서 지구대 직원들 동원해서 펜션 중심으로 수색 중입니다.”

“뭐 나온 건 없습니까?”

“하나, 잘린 허리띠 하나 나왔습니다. 칼은 아니고... 톱같은 걸로 자른 것 같은데.”

제주도 형사의 말에 해수와 막내가 동시에 미간을 좁혔다. 옷을 입은 상태로 톱으로 피해자의 신체를 자른 것으로 추측시키는 물건.

피해자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

“크...”

피해자와 전 부인, 아이가 만났다는 무인 펜션 안으로 들어서자 락스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안은 매우 깨끗했다.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지만 지독한 락스 냄새로 이곳에서 범행이 일어났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해수는 따라 들어온 현지 형사에게 물었다.

“루미놀 검사는 아직이죠?”

“루미놀이요? 아, 예, 곧 CSI팀이 올 겁니다.”

루미놀은 블루 블러드 스프레이라고도 불리는 혈흔 감식 방법이다. 외관상 보이지 않아도 스프레이를 뿌리고 주변을 어둡게 하면 산화되면서 야광으로 빛나는 반응을 볼 수 있다.

곧 제주도 CSI팀이 도착하고, 루미놀 검사를 실행해보았다.

“헙...”

“...”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거실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화장실 안에는 끔찍하리만큼 많은 혈흔이 벽 여기저기에서 발광하고 있었다.

해수와 막내는 확신했다.

‘이곳에서 살인이 일어났고, 김고청씨는 죽었다.’

이제 이 시점에 맞춰서 조사를 해야한다. 해수는 먼저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제주도 도착했어?

“예, 루미놀 검사도 마쳤는데 여기 펜션 화장실에서 죽인 것 같아요. 벽에 튄 피 양만 상당합니다.”

-이런 씨팔...

“팀장님은 고수정씨 만나봤습니까?”

-어 뭐, 일단 출석하라고 했지, 이상한 얘기만 하고.

“무슨 얘기 말입니까?”

-남편한테 성폭행을 당했대, 지 눈물이 증거라고, 그래서 도망쳐 나왔다고.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우리도 고수정씨 집 근처 시시티비 따고 있을게, 뭐 나오면 공유하고.

“예, 수고하십시오.”

해수와 막내는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현지 경찰들과 함께 시시비티를 분석했다.

펜션에 찍힌 시시티비에서는 고수정이 밤에 아들을 업고 나오더니, 한참 사라졌다가 다시 혼자 펜션에 왔다. 그러고는 하루 뒤에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혼자 나왔다. 매우 차분한 모습으로.

“넌 저게 성폭행 당한 사람으로 보이냐?”

“그렇게 안 보입니다.”

그녀가 차로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을 가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미 사흘이 지나 쓰레기장으로 간 것이다.

“16일이요? 그때 수거한 건 다 소각 됐죠.”

“하...”

“그럼, 소각된 쓰레기가 어디 있습니까?”

“에헤, 찾기 힘들텐데, 어제 새벽에 소각됐을테니까... 이쯤 되겠네.”

“감사합니다.”

해수와 막내는 현지 경찰들과 함게 완전무장을 하고 타다 만 쓰레기들을 뒤적거렸다.

“여기! 뭐를 발견했습니다!”

현지 경찰이다. 그가 고수정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더미를 발견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톱과 칼, 3센티 길이의 뼛조각이 나왔다. 그것이 동물뼈인지 사람뼈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는... DNA 검출이 안 될 텐데...”

그들은 톱과 칼, 뼛조각을 증거품 보관비닐에 조심스레 챙기고 쓰레기장을 나왔다.

그리고 고수정의 동선을 쫓아보니 그녀는 막배를 타고 육지로 나간 것이 확인되었다.

그녀의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모자라지 않는 집안에서 살았기에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이 의심되었다.

고수정이 배를 탄 그 시간, 배 시시티비로 고수정의 이상행동이 발견되었다.

“이건... 뭐하는 짓이지?”

캐리어를 갑판 위로 힘겹게 끌고 올라오다니, 기념이라도 하는 것처럼 휴대폰으로 캐리어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각도를 바꿔서 몇 번을 찍고는, 캐리어를 열고 그 안에서 검은 비닐로 싸인 무언가를 꺼내어 다섯 차례 바다에 던졌다.

“저 정도 부피면... 사람이 아닌데.”

“그렇다고 쓰레기 투기를 저렇게 할 것도 아니고, 일부만 버렸다고 봐야지.”

“일부만...?”

해수와 막내의 눈이 마주쳤다. 바다에 버린 건 찾을 시도조차 하기 힘들다. 해수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었다.

-어, 돌격이, 뭐 좀 나왔어?

“배에서 뭔가를 버렸는데 시체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그 양이 일부만 버린 듯합니다.”

-일부만? 그럼 나머지는 그 전에 버렸나?

“알 수 없죠, 건너가서 버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알았어, 배 도착했던 날이 언제라고 그랬지?

“16일 밤 9시입니다.”

-그럼 니네가 육지에서부터 동선 따와, 고수정씨 핸드폰이랑 컴퓨터 압수해서 뒤져봐야겠다.

“예”

-아 맞다. 그리고 고수정 친정이 거기 제주도란다. 애도 거기 있으니까 한 번 들러봐, 주소 보낼게.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한번 더 뒤지고, 다음날 아침에 고수정의 친정 집으로 가서 아이를 만났다.

여덟 살 아이의 눈은 천진난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때의 일을 묻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되는 것처럼.

“아빠 만난 날, 엄마가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어? 생각나는 거 얘기해봐.”

“...아빠랑 물감 놀이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껴주지 않았어요.”

“혹시 물감이 엄마한테 묻어 있었어?”

“네.”

해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는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색이었니?”

“빨간 색이요.”

아이의 말을 들은 해수와 막내의 안색이 확 변했다. 이로써 살인 정황은 분명해졌다.

아이는 그 뒤로 너무 졸려서 잠을 잤다고 한다.

시체 없으면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시체를 찾아야 한다. 일부라도.

*

“다녀왔습니다.”

“아이고, 고생했다 우리 돌격이, 막내도.”

“아닙니다! 선배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소리지르니 꼭 끝난 것 같잖아, 지금부터 시작인데.”

팀장의 말대로다. 며칠만에 만났지만 시체는 결국 찾지 못했다.

해수와 오갱은 서로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시간대별로 나열해보았다.

“이건 고수정씨 데스크톱 검색 기록이야.”

무인팬션, cctv, 사골 쓰레기. 피 지우기 방법.

“이건 범행 일주일 전에 마트에서 구매한 목록.”

대용량비닐봉투, 김장봉투, 톱, 락스.

“포인트도 알뜰하게 적립했어.”

팀장이 오갱의 말을 거들었다.

“어이없는 건, 범행 후에 안 쓴 건 환불했다는 거야, 이 여자 보통 사람이 아니야.”

“이후에 쓰레기 버린 것들은 다 소각됐어, 의심되는 것들이 꽤 있었는데...”

“잠깐, 이것도 이상하네요.”

“뭐가?”

해수는 캐톡 기록을 가리켰다.

-고수정: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그래? 성폭행으로 신고할 거야

-김고청: 미안해 내가 술을 먹어서 진짜 미쳤었나 봐, 한 번만 용서해 주라

“여기 시간이 10시 44분인데.”

해수는 혹시나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기에 직접 시시티비 파일을 틀어서, 고수정이 펜션에서 나오는 부분에서 멈추었다.

“나오는 시간은 10시 53분, 9분 뒤네요. 남편과 같은 장소에 있는데 보낼 이유는 없죠.”

“지가 조작한 거네.”

“아... 진짜”

“니네 뼛조각 말고 또 없는 거지?”

“없습니다...”

“후... 미치겠구만.”

사전 준비부터 아이의 증언, 조작된 캐톡과 선박에서의 이상행동까지, 모든 것이 고수정이 김고청을 살해했다고 가리키고 있는데 정작 시체가 없어서 답답할 따름이었다.

팀장은 안 그래도 별로 없는 머리채를 뜯으며 괴로워했다.

“분명한데, 분명한데 시발... 시체가 없어서 문제네, 남편 차 블랙박스는 찾았어?”

“예, 이겁니다.”

“뭐 좀 나왔어?”

“별건 아니고...”

해수는 덤덤하게 블랙박스를 재생시켰다. 비오는 날,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블랙박스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행복의 꿈을 꾸겠다 말해요~우리 성운이를 꼭 보겠다 말해요~

생전에 김고청씨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 사무실이 순간 적막해졌다.

가사까지 개사하면서 아이를 오랜만에 볼 생각에 설레여하던 남편이었다.

형사들은 인상을 확 쓰며 올라오는 감정을 짓눌렀다.

근육몬은 눈까지 시뻘개져서는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거, 이거 꼭 잡아야 합니다. 꼭 그 여자 쳐 넣어야 합니다!”

“우리도 그러고 싶은데... 시체가 없어, 시체가.”

“뼛조각 있잖습니까!”

그렇게 깍듯했던 막내가 흥분하여 소리까지 지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닫고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알아, 알아, 니 맘 다 아는데, 뼛조각은 아마 DNA 검출 안 될 꺼야, 바다를 뒤져봐야 하나...”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럴 땐 법이 원망스럽다. 억울한 사람 나오지 않게 하려고 만든 것이겠지만, 법을 악용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해수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가볍게 치며 입을 열었다.

“일단 기소하죠.”

“뭐?”

“기소합시다. 이 정도면 정황과 증언도 차고 넘치고, 국민의 힘을 좀 빌리는 겁니다.”

“국민의 힘?”

*

신해수는 사무실에서 나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서은입니다. 이번에는 무슨 사건인가요?

“사건 인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안서은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건 외에는 저한테 전화 안 하시잖아요?

그랬던가, 그랬던 것 같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입니다. 파일 첨부해드릴테니 여론 좀 움직여주시죠, ‘그것을 알고 있다.’도 긴급 편성 좀 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 #32. 시체 없는 살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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