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는 미묘한 눈으로 하루를 바라보았다. 진심어린 눈빛이나 표정, 떨고 있는 몸은 자신을 놀리려고 저러는 것은 아니다.
지하세계 그 나쁜 곳에서 거친 언어만 듣다 보니 그런 말만 사용할 줄 아는 건가? 아니면 휴대폰 사용법 알려주면서 검색하면 다 나온다고 했었는데, 잘못된 정보를 접했나?
해수는 놀란 눈을 거두고 그녀의 밥 위에 김치를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네?”
“정말, 진짜, 이런 거 붙여, 시발, 존나, 이런 거 말고.”
“네,네! 정말 진짜 죄송합니다!”
“...먹어.”
해수는 하루를 생각하며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디서 어떻게 가르켜야 하나? 다 큰 애를 초등학교를 보내야 하나?
그러나 해수의 복잡한 생각은 침묵으로 이어졌고, 하루는 해수가 화가 났다고 판단하고 온종일 그의 눈치를 보며 속상해했다.
‘잘 보이고 싶었는데, 오히려 밉보이게 됐어...’
***
“없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종자 데이터는 다 돌렸는데 일치하는 게 없어요.”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신해수는 혹시나 하여 하루의 칫솔을 가져가 실종자 유전자 데이터와 비교해보았지만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신분을 찾아주는 것은 실패다. 이러면 무적자 등록을 해야하던가...
해수는 오늘 반차를 썼다. 다시 복귀해도 되지만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으니 다른 곳을 들르기로 했다.
그는 며칠 전 진이라는 사내를 떠올렸다.
‘보통은 아니었지.’
리셋 후에는 기습으로 쉽게 잡았지만, 리셋 전에는 추격전 중에 칼에 한 번 베이고 놓쳤었다.
모창귀에는 못 미치지만 까다로운 상대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해수는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희망 캐피탈]
블링블링한 간판과는 달리,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은 어두컴컴하고 칙칙했다.
쾅!
문을 거칠게 열자 책상에 앉아있는 사내가 그를 보며 반색했다.
“뭐야, 해수 아니냐!”
해수의 동창이자 학창시절 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 황장수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해수를 반겼다.
“니가 여긴 어쩐 일이냐? 내가 전에 했던 제의 생각해본 거야?”
안에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 세 명이 더 있었다. 해수는 장수가 어깨동무를 걸쳐오자 차갑게 쳐내며 차갑게 말했다.
“헛소리 말고, 너 칼도 쓰냐?”
해수의 질문에 장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금세 풀렸다.
“칼? 왜? 요즘 일수에 무슨 칼을 쓸 일이 있겠냐? 주먹도 안 써.”
“지랄하지 말고.”
스윽
그때, 가만히 듣다가 참지 못한 사내가 인상을 확 쓰며 해수에게 다가왔다.
“거 참, 입이 더러우시네, 이쁜 말 좀 씁시-”
퍽!
그는 돌연 날아오는 장수의 따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장수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일어나며 유리로 된 재털이를 집어들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우리 야두 많이 컸네, 형이 친구랑 대화 중인데 껴들기도 하고?”
“죄,죄송합니다.”
뻑!
“죄송할 짓을 왜 해, 친구 앞에서 쪽팔리게? 엉?!”
턱-
그때 해수가 장수의 손목을 잡았다. 한 번은 빗맞았지만 이번에 맞으면 머리가 찢어졌다.
“넌 경찰 앞에서 폭력질이냐? 깜빵 밥이 그리워졌어?”
해수의 말에 장수의 싸늘한 표정이 금세 식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미안 미안, 이것들아, 이 친구가 형이 말한 그 경찰 친구다. 경찰, 니네 한 트럭이 덤벼도 손가락 하나 못 꺾으니까 개기지 마,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해수는 장수의 당부가 부담스럽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폼은...”
“근데 칼은 왜?”
“너, 모창귀라고 아냐?”
“아...”
장수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그는 옛 일을 떠올리는지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걔 잡은 게 너였냐?”
해수는 모창귀에게 찔렸던 흉터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어쩐지, 경찰들이 그놈을 어떻게 잡았나 했네.”
“잘 아나보네?”
장수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뭐 거의 전설처럼 불리던 놈이니까, 나쁜 쪽으로, 나도 한 번밖에 못 봤는데... 꽤 강렬했거든.”
“너는 모창귀 잡을 수 있어?”
“나? 나는...”
장수는 자신의 부하들을 힐끗 보고는 쇼파에 등을 기대며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누구냐? 황장수여 황장수!”
허세가 조금 끼어있지만 부하들은 믿는 눈치다. 그들의 눈이 선망의 눈으로 바뀌는 것이 보인다.
해수는 고등학교 때 체육관에서 스파링하는 것 외에 황장수와 제대로 맞붙은 적이 없다. 주먹 대 주먹으로는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였다.
“여기 지하에 체육관 있던데, 쓸 수 있나?”
“아 그거, 우리 꺼야.”
“좋네, 칼 하나 챙겨.”
해수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장수가 난감해했다.
“엉? 지금 당장?”
“형사는 원래 시간이 금이다.”
“나는 무슨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네, 야, 잘 지키고 있어, 누구 오면 전화하고.”
“예 알겠습니다. 형님!”
지하 체육관, 해수와 장수는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그러니까, 모창귀 때문에 칼 든 놈들이랑 싸우는 훈련 좀 해보려고 날 찾아온 거야? 그 전에는 뭐했고, 너 경찰 된 지 꽤 되지 않았냐?”
“필요성을 못 느꼈어.”
“괴물이고만, 모창귀도 괴물이고.”
“칼 들어.”
“내가 뭐 맨날 칼을 들고 다니는 줄 아나보네.”
해수의 말에 장수가 창고로 가서는 모형 칼을 하나 꺼내왔다. 날 부분이 고무로 된 칼이다.
“그런 게 왜 있지?”
“어... 그야 뭐, 우리도 대비 차원?”
해수가 말없이 자세를 잡자 장수가 이번에는 또 어떤 통을 가져와 고무 칼을 그곳에 푹 담갔다가 뺐다. 그러자 빨간 물감이 칼날을 감쌌다.
“물로 잘 지워지니까 이거 묻히고 하자고, 그래야 어디 찔린 지 알 수 있지.”
“이상하게 체계적이네, 들어와.”
“너는 뭐 안 들어?”
“난 원래 맨 손으로 싸워.”
“힘들텐데.”
“들어와.”
해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수가 칼을 뻗어왔다.
터덕- 턱 턱-
뻗어오면 칼 옆면이나 팔을 쳐내고, 휘둘러오면 뒤로 물러나거나 막았다.
그렇게 해수는 장수의 공격을 막기만 했다. 어느 순간 장수가 공격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죽었어.”
“뭐?”
장수가 검지를 들어 그의 몸을 가리켰다. 검지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빨간 물감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대부분 급소를 피하고 팔뚝이나 허벅지에 베인 표시가 있었지만, 옆구리와 쇄골 언저리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음...”
해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도 알고 있던 부분이다. 막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으로 방어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공격을 하지 않아 허용된 치명상이다.
아무튼 이것으로 확신이 들었다. 황장수는 모창귀처럼 잔인하거나 빠르지는 않지만, 훈련 상대로는 충분한 실력을 지녔다.
“너, 앞으로 나랑 훈련 좀 하자.”
“친구 부탁이면 언제든 가능하지.”
“매일 아침 여섯 시, 여기에서.”
자신만만하던 장수가 바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섯 시는 조금... 일곱 시?”
“다섯 시.”
“오케이 여섯 시 여섯 시, 오랜만에 부지런히 생활해야겠네.”
해수는 장수와 훈련 약속을 정하고 그곳을 나왔다.
***
[...집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세요.]
┗얘 전에 그 외노자네.
┗뭔가 졸라 안타깝다.
┗도와주자, 열심히 하는데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관계가 어떻게 되는데? 쓰니 남자야 여자야? 집주인님은?
키보드 앞에서 만큼은 모두 전문가인 사람들은 하루의 인적사항을 물어보았고, 하루는 정직하게 모두 대답하였다.
젊은 남자와 여자가 같은 집에 산다. 그런데 둘이 연인 관계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작성자는 여자다.
이 사실만으로 심심풀이 유머나 올라오는 그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저들은 극도로 흥분했다.
그들은 하던 일도 미루고 하루에게 열성으로 지도했다.
┗일단 호칭에서 ‘집’부터 빼
┗이쁘냐?
┗이 옷 남자들이 좋아한다
┗나는 이거
┗왜 니가 좋아하는거 추천ㅋㅋ
┗나도 남자임.
┗ㅈㅅ
┗근데 안 쫓겨나려고 주인한테 점수 따는 게 주목적 아니야? 꼬시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 요리나 청소 이런 걸 해봐.
┗작성자: 청소는 매일 합니다. 요리해보겠습니다.
┗그 주인님 ㅈㄴ부럽다 진짜 ㅅㅂ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하루는 요리에 도전해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그녀는 집에 있는 음식으로 김치찌개를 도전했다.
처음 하지만 인터넷에 적혀있는대로 최대한 맞춰서 해내었다. 나중에 냄새는 꽤 그럴사하여 먹어보니 맛도 처음 치고 맛있었다.
‘얼른 오셨으면 좋겠다.’
하루는 해수가 자신이 차려준 음식을 먹고 맛있어하는 상상을 하자 기분이 붕 떴다.
띡띡띡 띡 철컥-
“오셨습니까...”
신해수는 신발을 벗다 말고 하루가 차려준 저녁밥상에 행동이 정지되었다. 그는 그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고개만 돌려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녀가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는 손으로 밥상을 가리켰다.
“인터넷 보면서 해보았습니다.”
“...그래.”
그리고 침묵의 식사 시간이 되었다.
하루는 자신이 만들어서인지, 아니면 긴장이 되어서인지 김치찌개가 맛이 없었다.
그러나 해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읍”
해수의 이상한 신음에 울적한 표정으로 있던 하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해수는 그 모습에 억지로 티를 내지 않고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맛있습니까?”
해수는 그녀의 질문에 눈동자가 흔들리며 고민했다. 바닷물을 담아서 김치찌개를 끓인 듯했다.
해수는 먹던 것을 꿀꺽 삼키고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맛있어.”
해수의 칭찬에 하루의 굳은 얼굴에 실낱 같은 미소가 사르르 번졌다.
그날 밤, 해수는 TV를 보는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납치가 8년 전이라고 하면 나이를 최저로 잡아도 열 두 살에 납치당했다는 건데, 마치 다섯 살 아이를 가르치는 듯 했으니.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학습한 것까지 잃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상할 따름이었다.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이 어려울까 하여 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언제까지고 의문을 묻어둘 순 없다.
“하루, 기억은 하나도 안 돌아왔어?”
해수의 질문에 하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해수를 보지 않고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작게 입을 열었다.
“네...”
“언제 기억부터 없어? 납치 당하기 전? 후?”
하루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그 행동에 해수의 의문은 더욱 짙어졌다. 이 행동으로 보이는 감정은 죄책감이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루는 힘겹게 그 말을 내뱉고는 두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떨었다.
해수는 그녀의 행동에 확신했다.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감추고 싶은 거였어.’
해수는 흐느끼는 그녀의 작은 등을 토닥이려다가 멈추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아주 살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미안, 미안하다.”
하루는 등에 닿는 그 투박한 손에서 전달되는 온기를 느끼며 다시금 다짐했다.
‘절대, 절대 얘기하면 안 돼, 얘기하면... 집주인님에게 버림받을 거야.’
***
“흡, 후, 흡, 후”
숨소리를 따라 팀장의 몸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 아래에는 막내가 깔려 있었다.
오갱이 들어오며 중얼거렸다.
“저 근육몬은 사무실에서도 운동을 멈추지 않네, 사건 받아라.”
해수도 아령을 들다가 바닥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뭡니까?”
“실종”
“젊은 여성?”
“40대 남성”
“우와악!”
그 말에 해수와 막내가 벌떡 일어섰다. 덕분에 막내 위에 올라타 있던 팀장이 넘어질 뻔했다.
납치 가능성이 높은 젊은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의 실종은 둘 중 하나다.
자살이거나 피살이거나.
해수와 막내가 모여들자 오갱이 자리에 앉으며 사건을 브리핑했다.
“동생이 신고했어, 이혼남인데 며칠 전에 전 부인이랑 아이 만나러 갔다가 그 다음부터 연락이 안 된대.”
< #31. 숨겨둔 기억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