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30화 (30/255)

엘리베이터 안.

김상태는 잘못 들었나 싶어 인상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개새끼라서 사람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는구나.”

“허, 허허, 미친 놈이네 이거, 죽여.”

김상태의 명령에 덩치 경호원들이 신해수에게 손을 뻗었다. 해수는 반 박자 먼저 움직여 그들의 턱을 올려쳤다.

쾅 쾅 콰직!

해수가 누구인지 어떤 실력을 지녔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거리를 두기도 힘든 밀폐된 공간에서의 전투, 경호원들은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딩동

-지하 1층입니다.

고작 1층에서 지하 1층, 딱 하나 내려가는 동안에 네 명이 쓰러졌다. 나머지 두 명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가만히 있고, 김상태는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쳤다.

“뭐,뭐해 이 새끼들아!”

“김상태 이 국개의원님아, 반갑습니다.”

문이 열리자 지하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장과 오갱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막내는 혹시 몰라 1층 출입구에서 대기 중이다.

해수는 어리버리한 경호원 두 명은 놔둔 채 김상태의 멱살을 끌고 나왔다.

“어,어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당신들 형사야? 내가 누군 지 알아? 나 김상태!-”

철썩!

해수의 따귀 한 대에 김상태의 고개가 반대로 180도 돌아갔다. 한쪽 눈 실핏줄이 터져 벌개졌고, 입 안이 터져 피가 주르륵 흘렀다.

“이,이런 시팔!-”

쩍-!

다시 반대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번에는 하얀 공깃돌 두 개가 튀어나왔다. 김상태는 따귀가 이렇게 폭발적인 위력을 지닌 줄 처음 알았다. 너무너무 아프고 정신이 혼미했다.

그런데 이 앞에 무시무시한 얼굴의 남자는 다시 또 손을 추켜올리고 있다.

“야야 돌격아, 그러다 죽이겠다. 참아 참아.”

팀장이 말리는 모습에 김상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해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너, 너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찰 그만-”

퍽!

그때, 팀장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팀장은 뒤로 자빠진 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여야지, 이 새끼는.”

*

강진 경찰서 강력팀 취조실.

따귀의 충격으로 김상태가 가장 무서워하는 해수가 취조를 했다.

“나는 정말 몰랐다고, 내가 한 거 아니라고, 나도 그 년한테 협박 받아서... 흡.”

“협박? 신이라한테?”

그가 입을 다물자 해수가 타자를 치던 손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그가 움찔거리며 의자를 뒤로 뺐다.

“이,이러지 마, 경찰이잖아 경찰...”

해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해, 그 여자의 협박거리가 살인교사보다 강하면 입 다물고 있고, 아니면 니가 뒤집어 써, 연예인 살인교사에 경찰 뇌물수수 혐의까지, 무기징역에 모범수여도 20년은 살다 나오겠네.”

김상태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간다. 해수는 한층 다독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거 빼면 네 죄가 그리 무겁지 않다. 경찰 뇌물수수는 개새끼지만 경찰이 자수했고, 넌 그저 여자 소개시켜준 것이 다니까, 그 여자가 강민을 마약에 찌들게 할 줄은 몰랐을 거 아니야?”

“그,그렇지? 진짜 몰랐어 그건...”

“신이라, 어디 있어.”

“아 몰라...”

그러면서 김상태는 신이라의 휴대폰 번호와 주소를 일러주었다.

팀장은 취조실에서 나오는 해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오갱에게 손짓했다.

“오갱아, 막내랑 가서 신이라씨 좀 모셔와.”

“아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돌격이가? 뭐 그래라, 도토리 키재기지만 니가 그나마 페이스가 여자들이 덜 무서워하니까.”

해수는 주차장으로 나와 따라나오는 막내에게 말했다.

“난 따로 간다. 주소 알지.”

“예! 선배님!”

“그래.”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나갔다. 근육돌 막내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차를 끌고 그 뒤를 쫓았다.

***

삑삐삐삑 철컥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늘씬한 여인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옷은 가슴이 깊게 파이고 다리는 옆이 길게 트여 새하얀 다리를 시원하게 내놓고 있었다.

고혹적인 기운을 풍기는 그녀는 조금 피곤한 듯이 들어오자마자 불도 켜지 않고 쇼파에 쓰러졌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가 미간을 좁히며 다시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진?”

스윽-

그녀의 말에 거실 커튼 뒤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내가 몰래 내 집에 들어오지 말랬지?”

“이렇게 안 하면, 안 만나주잖아.”

그녀는 일어나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이 미친놈아! 어쩌자고 걔를 죽였어?”

“널 힘들게 했잖아.”

“니가 뭔데? 회사에서 알면? 회사가 얼마나 독하고 치밀한 지 몰라? 회사 몰래 덮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어쩌라고!”

쾅!

그때, 돌연 진이라고 불린 사내가 여인을 벽에 강하게 밀쳤다.

“너 때문에 그랬다고, 신이라, 널 위해서!”

그는 소리치며 신이라의 입술을 덮치고, 손으로는 옷을 확 찢으며 몸을 탐닉했다.

신이라는 다급히 그를 밀쳤다.

“뭐하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왜 나는 안 돼? 아, 그 국회의원 늙은이때문에 그래? 내가 싹 다 죽여줄게, 알잖아, 나 그런 거 잘 해.”

“닥치고 내 눈앞에서 평생 꺼져! 제발.”

신이라의 절규에 가까운 말에 진의 목소리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내가... 널 죽일거라고는 생각 못하는 거야?”

섬칫한 기운, 그의 눈에서 살기가 보인다. 신이라는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딩 동-

쿵 쿵 쿵

-경찰입니다. 신이라씨, 안에 있는 거 알아요. 문 여세요.

그 소리에 신이라와 진의 눈동자가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다급히 진을 데리고 장롱 안에 넣었다.

“여기 숨어, 숨도 쉬지 말고 있어.”

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신이라가 문을 열자 신해수가 경찰 공무원증을 들이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신이라씨? 강진경찰서 강력1팀 신해수 경사입니다. 협조 가능하십니까?”

“형사... 보통 2인1조 아닌가요?”

신이라는 진의 살기를 본 순간 여러가지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형사 한 둘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이들과 함께 나가는 방법을 택해야겠다.

“곧 올 겁니다...”

해수는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신이라를 훑어보았다. 립스틱이 뭉개져 있고 옷이 흐트러져 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방을 살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뭘 그렇게 훔쳐봐요? 변태에요?”

해수는 그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장롱 옆에 서서 물었다.

“신이라씨, 도움 필요하지 않아요?”

“...네?”

“당신, 원래 방금 죽었어.”

신이라는 순간 등골에서 소름이 찌르르 돋아났다.

동시에 해수가 장롱에 주먹을 뻗었다.

쾅!

장롱 문짝이 해수의 주먹 모양으로 구멍이 뚫렸다. 해수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몇 번 더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콰직 퍽!

바주카포같은 주먹질이 멈추자 걸레짝이 된 문이 완전히 뜯겨져 나가며 피떡이 된 남자가 쓰러져내렸다. 그의 한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해수는 그의 칼을 빼앗고 팔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반갑다. 살인범.”

리셋이 또 한 생명을 살렸다.

*

강진서 강력팀.

근육돌 막내가 연예인 강민 관련 시시티비 분석하다가 살인범 진을 스치듯 봤던 게 진범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진이라는 이 살인범은 살인범이라는 증거 외에는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얘 봐요. 손에 지문이 하나도 없어, 불로 지진 것 같아, 맨들맨들해.”

“어 걔 지 이름도 모르드라, 진은 가명같고, 진짜로 이름 모르는거 같애, 어떻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지?”

“신이라와 밀접한 관계로 보입니다. 취조하다 보면 나올 겁니다.”

그러나 취조로는 국회의원 김상태가 신이라의 스폰서라는 것 외에는 알아낸 게 없었다.

확실한 건 진이라는 사내가 신이라를 흠모하여 강민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강민 살인사건은 해결되었다.

취조 외에 김상태와 신이라의 행적을 밟아 어떻게 스폰을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신이라가 소속되어있는 레드문이라는 고급 술집에서 만난 사이였다.

‘레드문...?’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헤집었다. 낡은 수첩에 적혀있던 단어다.

‘아버지...’

아버지의 사건 수첩에서 보았던 단어다. 그때는 의미를 몰라서 넘겼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레드문... 그 진이라는 사내도 그렇고... 수상한 점이 많아, 휴일에 다시 파봐야겠어.’

해수는 아버지 사건을 생각하며 퇴근 준비를 했다.

“어, 뭐야, 해수 퇴근하냐? 오늘 다 같이 사우나 가기로 했잖아.”

“잠은 집에서 자야 합니다.”

“허 참, 수상하단 말이야... 알았다. 내일 보자.”

“예, 가보겠습니다.”

해수가 몸을 돌리자 막내가 부리나케 일어나 허리를 접었다.

“선배님 들어가십시오!!”

“너는 임마 목소리 좀 줄여, 다른 팀 놀라는 거 안 보이냐?”

***

신해수가 막 출근하던 시간.

문이 닫히고, 해수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방 안에 적막이 찾아오자 하루는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녀는 오히려 이전보다 눈이 더 똘망똘망해져서는 해수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방을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10평짜리 원룸이지만, 하루에게는 벽지, 몰딩, 화장실, 장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하루는 정말 이 공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공간의 주인이자 자신을 빛으로 끌고 나와준 해수도 좋았다.

-언제까지 나랑 같이 살 수는 없으니까, 지금처럼 틈날 때마다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울 거야, 잘 기억해둬.

하지만 해수가 했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언젠가 이 불안한 행복이 끝날 것을 예상했지만, 죽는 날만 기다리며 죽지 못해 살던 때와는 다르다.

살고 싶어졌고,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어졌다.

하루는 그 긴 시간, 혼자 좋아하다가 괴로워하는 것을 반복하며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잃지 않을 거야.'

뭐라도 해서 운명을 바꿀 노력을 할 것이다.

하루는 작은 주먹을 꽉 쥐고는 물티슈 두 장을 들고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집안은 물론 화장실마저도 머리카락 한 올 없이 깨끗한 상태지만, 그래도 닦고 또 닦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왜 안 오시지...?’

평소 퇴근하는 시간을 넘어, 짙은 어둠이 세상에 깔릴 무렵,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이었다.

삑삐삐삑, 철컥-

한 손에 물티슈를 쥔 채 벽에 기대어 졸고 있던 하루는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달려갔다.

“읏”

“앗”

터덕-

하루는 해수의 얼굴을 보고 급정거하다가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고, 해수는 자연스레 그녀를 받쳤다.

“요란하게 반기네.”

“죄,죄송합니다.”

“됐고, 일어나.”

“네,네...”

해수는 어정쩡하게 떨어지는 그녀에게 손에 든 종이백을 건네주었다.

“회사꺼 반납하고, 이거 써.”

해수가 자신의 명의로 구매한 스마트워치와 휴대폰이었다.

하루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꾸벅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를 표했다.

“씻고 나와서 사용법 알려줄테니까, 기다려.”

“네...”

해수는 겉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이제 슬슬 물때가 끼고 있던 슬리퍼가 깔끔해졌고, 타일 사이 줄눈도 깨끗해졌다.

혹시나 하여 세면대를 살펴보았다. 광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변기 역시 마찬가지.

자신이 하지 않았으니 범인은 단 한 명, 해수는 조금 흐뭇해졌다.

‘...착하군.’

씻고 나서 해수는 12시가 넘도록 하루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잠자기 전, 해수가 먼저 눕자 하루가 반사적으로 그의 소매에 손을 뻗다가 시선을 느끼고 멈칫했다. 해수는 달빛에 비친 하루의 손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해수가 하루의 손목을 잡아 끌자 그녀는 처음에는 살짝 떨다가 금세 떨림이 멈추었다.

20대 초중반 여성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이리저리 갈라져 있다.

그런데 가장 이상한 것은, 손 끝이 마치 그 사내 진처럼 맨들맨들하여 지문이 없는 것이다.

‘네 정체는 대체 뭐야... 무슨 인생을 살았던 것이냐...’

해수는 다시 한 번 정말 자신이 이 여자를 데리고 있어도 되는지, 감당할 수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

하루는 19년 전에 고아원에서 정체불명의 단체에 팔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였고, 문화와 언어가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었다.

그래도 젊음이 좋은지 금세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혔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올리면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금세 답을 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을 자주 애용했다.

[크게 맛있으면 뭐라고 합니까? 크게 좋을 때는 뭐라고 합니까?]

┗이 사람 뭐임? 외노자임?

┗불법체류자 절로가라 니네 나라로 가라!!

┗왜그려 다같이 사이좋게 살아야지, 그건 간단혀, 쓰니야, 우리나라 접두사는 이 네 개면 끝이여, [아니/근데/...

하루는 해수가 해준 밥을 먹었을 때의 그 맛과 감동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그 사이트를 통해서 많은 표현들을 알아내었다.

‘좋은... 곳이야.’

*

그날 밤, 해수가 퇴근을 하였고 이번에는 매운 라면을 계란도 풀어서 끓여주었다.

찬 밥은 덤이었다.

“먹자.”

후루룹

오늘은 ‘먹어’가 아닌 ‘먹자’라고 했다. 하루는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해수를 따라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젓가락질로 라면을 한 입 크게 먹었다.

“허읍”

입 안에서 풍기는 그 매콤하면서도 달고 짠 맛이 하루의 말문을 막았다.

지금까지 이 집에서 몇 가지 음식을 먹어봤지만 단연 이 라면만큼 맛있는 것은 없었다.

하루는 이 감동이 끝나기 전에 어서 해수에게 고마움을 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시발... 맛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감탄사라고 했다. 어쩐지 지하세계에 그들도 이 말을 그런 식으로 자주 썼던 것 같다.

하루는 배운대로 적재적소에 잘 써먹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러나 그 말에 해수의 젓가락질이 멈추고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뭐?”

덩달아 하루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배운대로 한 건데, 이대로 그에게 밉보이면 절대 안 된다.

하루는 다급히 손을 내리고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조,존나 죄송합니다!”

< #30. 하루의 하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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