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고급 아파트.
딩동
-15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신해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서은을 발견했다.
“왜 나와 계십니까?”
“저는 해수씨와는 다르게 시체 보는게 쉽지 않아서요.”
해수에게 지금까지 그녀의 이미지는 외관은 여리지만 속은 단단한 여자이기에 이 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도 이쪽으로는 일반인은 일반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거실에 대자로 누워있는 강민의 시체가 보였다. 해수는 그의 자상을 살피려고 한쪽 무릎을 꿇다가 미간을 확 좁혔다.
“누가 문을 열어놓았습니까?”
“아, 제가, 피 냄새가 역해서...”
서은의 비서 강실장이 대답했다.
“문을 열어놓으면 실내온도가 떨어지고, 사망시간 추정도 어려워집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다급히 해수를 따라 창문들을 닫았다.
안에는 단순 강도가 든 것처럼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금품도 사라진 듯했다.
매니저가 연락을 몇 시간 째 안 받아서 올라와보니 죽어있었다고 한다.
‘목에 두 방, 옆구리에 세 방, 가슴에 두 방...’
마구 찌른 것처럼 보이지만 깔끔하다. 피가 튄 방향을 보면 돌아다닌 것도 없이 한 곳에서 빠르게 이루어졌다. 전문가일 확률이 크다.
해수는 시신의 직장온도를 체크했다.
‘31도...’
실내에서 보편적으로 한 시간에 0.8도씩 떨어진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가 봄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4시간은 지난 것이다. 리셋해도 살릴 수 없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휴대폰을 들었다.
“팀장님, 접니다. 연예인 강민 살해당했습니다. 지금 현장입니다.”
해수의 부름에 강력 1,2팀, 그리고 감식반이 같이 왔다.
2팀은 강민이 살해된 것을 확인하고는 머리채를 쥐어잡으며 힘들어했다. 당연한 행동이다. 그들이 수사하고 있던 사람이 죽었으니 직접적인 원인이 없어도 경찰에게 똥물이 튀는 경우가 많다.
해수는 유독 이질감이 느껴지는 2팀장을 자세히 관찰했다.
조사하던 사람이 죽어서 큰일났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는 느낌이다.
‘죽을 줄은 몰랐다 이건가...’
“소문이 사실인가보네, 대성이랑 신경사랑 친하다는 거, 아무튼 알려줘서 고맙고, 이제부터 우리가 할 테니 1팀은 들어가.”
감식 중, 당연히 2팀이 계속 수사를 이어나가려고 했고, 1팀장은 해수만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때 안서은이 나섰다.
“저희는 신해수씨에게 이번 사건 맡기겠습니다. 그쪽이 우리 애 조사하다가 이렇게 됐잖아요?”
“...예?”
2팀장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게... 우리가 압박조사를 해서 강민씨가 자살한 것도 아니고, 살해당한 거잖아요? 이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대표님, 우리가 지금까지 조사해오던 게 있는데...”
안서은은 해수에게 시선을 돌리며 2팀장의 말을 잘랐다.
“사건 이관, 불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단호한 해수의 말에 1팀장이 입을 쩍 벌렸다. 25년 형사의 감으로 둘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흠... 성관아, 나랑 잠깐 얘기 좀.”
“그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얘기는 뭔 얘기?”
1팀장은 2팀장을 불러서 긴히 얘기했고, 2팀장은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피해자 측에서 강경하게 원하니 어쩔 수 없이 이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넘기기로 결정이 나고, 1팀은 남아서 근처 폐쇄회로와 시시티비, 블랙박스 등 다방면으로 분석물을 확보했다.
*
경찰서에 복귀한 1팀은 2팀이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와 안서은이 찾아낸 정보를 취합하여 해수가 브리핑했다.
“...간단하게, 강민이 마약하게 된 계기는 신이라고, 그 여자는 국회의원 김상태가 강민에게 소개시켜준 것이라 이거지?”
“예.”
“그런데 자료에는 김상태도 신이라도 없는데? 어떻게 안 거야?”
“대성 측에서 따로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대성이...”
그때 오갱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해수야, 안서은 대표하고 무슨 관계야? 너 혹시... 우리는 모르는 재벌이나 정치인 아들 그런 거라서 약혼녀 그런 거 아니야?”
해수는 실눈을 뜨고 오갱을 감정없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갱이 눈을 피하며 얼버부렸다.
“미안해 미안해, 그렇게 쳐다보지 마.”
팀장이 손뼉을 치며 정리했다.
“자자, 옆으로 새지 말고, 아무튼 지금까지 대충 보면 국회의원 김상태와 신이라, 강민 이 셋 간에 모종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 이거지?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분석부터 하자고, 마약은 마약, 살인은 살인이니까.”
단순 강도사건이라기에는 시기가 안 좋지만, 일단 정공법은 팀장 말대로 마약과 살인 건은 따로 분류하여 시야가 좁아질 수 있는 것을 막야아 한다.
지금 해야할 일은 CCTV를 분석하여 용의자를 특정하는 것이다.
스윽
그때, 2팀장이 나가는 것이 보였다. 해수는 바로 그를 따라 일어났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해수가 급히 사무실을 나가자 팀장이 닫힌 문을 보며 투덜거렸다.
“쟤는 맨날 혼자 어디 나가?”
근육질 막내는 볼을 붉히며 작게 중얼거렸다.
“멋있습니다.”
“멋있기는 개뿔.”
그 모습에 오갱이 막내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치며 물었다.
“막내야, 군대에서 미대나왔으면 뭐 시키디?”
“족구 줄 긋기 시킵니다.”
“그렇지, 너 눈 좋냐?”
“2.0입니다.”
“그럼 니가 이만큼 분석해.”
“예 알겠습니다!”
오갱이 막내에게 파일의 절반을 밀어주었다. 팀장이 혀를 끌끌 찼다.
“에라이 자식아, 돌격이한테는 안 그러더니 또 옛날 버릇 나왔네.”
“돌격이는 또 뭡니까? 해수는... 무서워요.”
“근육으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막내가 더 무서운데?”
“에이, 그게 다가 아니지, 시비 걸지 말고 형님도 얼른 분석이나 하쇼.”
“하고 있다... 아 분석 진짜 싫다. 노안한테는 고문이야 고문.”
탁탁 탁
팀장은 눈을 비비며 귀찮음 가득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눌렀다.
*
아무도 없는 경찰서 옥상, 2팀장은 전화기를 들고 화를 내고 있다.
“...아니 갑자기 이러면 저는 어떡합니까?”
그는 전화기를 들고 바닥에 내려치려다가 멈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예, 모르시겠죠, 아무튼 강민 건 신해수 있는 1팀으로 이관됐으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제 손 떠났습니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한 발자국 내밀었을 때였다. 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덮쳤다.
쾅! 콰득-
2팀장은 강력한 괴력에 이끌려 몸이 옆으로 한 바퀴 돌고 등을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숨이 턱 막혀옴과 동시에 굵직한 팔뚝이 그의 목을 압박했다.
“케,켁, 너, 왜, 왜 이러는...”
목 뼈가 부러질 것 같은 강한 압박에 그는 말은 커녕 숨도 쉬지 못했다.
기습의 주인공, 신해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김상태입니까? 서장님입니까?”
“그,그게 무슨 소리...끄윽.”
해수는 그의 품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번호를 확인했다. 저장이 안 된 번호다. 서슴없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너 이 새끼 계속 이 번호로 전화 걸거야? 다 죽고 싶어서 그래?
서장 목소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해수는 전화를 끊고 다시 2팀장을 노려보았다.
“살인죄까지 뒤집어 쓰고 싶지 않으면, 지금 내려가서 돈 뱉고 자수하십시오. 후배로써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래도 한때 칼 밭에서 같이 등을 맡긴 사람이기에 자수로 배려한 것이다.
2팀장의 눈빛이 공허함으로 물든다. 해수가 팔에 힘을 풀자 2팀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알았다.”
해수는 그의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건 잠시 빌리겠습니다.”
2팀장은 해수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터덜터덜 내려갔다.
*
“야 돌격아, 뭐하다가 이제 와?”
“화장실 갔다 왔습니다.”
“우리 돌격이가 속이 많이 안 좋았구나? 화장실에서 20분씩 있고.”
국회의원을 잡으려면 영장이 있어야 한다. 2팀장이 자수하고 난 뒤에 물증을 가지고 잡을 생각이다.
곧이어 2팀장이 사무실에 들어서고, 해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2팀 팀원들 앞에서 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얘들아, 내가 너희한테 미안하다.”
그 모습에 2팀원들이 다급히 달려들어 그를 일으켰다.
“왜 그러십니까, 팀장님?”
“팀장님 일어나십시오!”
2팀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몇 초간 있다가, 자신의 책상에 가서 무언가를 꺼내어 1팀장에게 다가왔다.
“큰 놈이 이번에 대학 가는데... 돈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을 포기하려고 고민하더라, 그래서... 내가 눈이 잠깐 돌아갔어, 미쳤지.”
“뭐, 뭔데 이 새끼야? 아니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팀장이 부정했지만, 2팀장은 그의 앞에 현금인출 카드를 내놓았다.
“이 카드와 연계된 통장에 목돈 들어온 게 있다. 3천, 김상태한테 받은 거야, 아직 안 건드렸다. ...”
팀장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이 흔들렸다. 2팀장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조건은, 강민 마약 사건에서 김상태랑 신이라 이름... 안 나오게 하는 걸로.”
팀장은 자리에서 쏘아지듯이 튀어나와 2팀장의 멱살을 잡았다.
“야, 야이 개새끼야!! 경찰이 그러면 돼?! 경찰이 시팔!!”
1팀과 2팀 팀원들이 나와 그 둘을 말렸다. 모든 것을 들은 그들의 눈동자에는 깊은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1팀장도 같은 강력팀으로써 오랫동안 같이 일하며 정이 많이 들어 가족 같았고, 그래서 더 화나고 속상한 것이다.
소신을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기에는... 공권력은 너무 빈곤했다.
해수는 속상해하는 팀장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나 건들지...아,아,아! 아파아악!”
팀장은 강제로 해수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고, 해수는 분노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돈으로 경찰 유린한... 개새끼 잡으러 갑시다.”
해수의 말에 오갱과 막내가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눈빛은 전투력이 충만했다.
***
강진시 태원동, 번화가에 위치한 골드리치 빌딩, 최상층.
다다다닥
구두소리가 바쁘게 울린다.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 여섯 명이 한 중년 남성을 경호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중년 남성, 김상태는 전화 통화를 하며 미리 열려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시팔,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 아무튼 너도 당분간 숨어있으라고, 내 탓하지 말고, 뭐? 그거 풀면 진짜 너 죽고 나 죽는 거...”
그는 중간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굳게 닫혀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다.
“요즘도 엘리베이터에서 전화가 끊기네, 빌어먹을.”
“세울까요?”
“세우긴 뭘 세워 이 멍청한 새끼야, 한 시가 급한 마당에, 이 새끼들은 하여튼 빡대가리야 빡대가리.”
“죄송합니다.”
딩동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김상태 일행은 지하 1층으로 가는 길, 1층에서 지하1층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의문을 품으며 앞을 보았다.
“실례합니다.”
그의 경호원만큼이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한 명이 몸을 비집고 들어와 탔다.
한 명밖에 없기에 김상태는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남자가 상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으로 모자라 휴대폰을 들어 김상태 옆에 붙이고 화면에 떠 있는 사진과 비교까지 했다.
“뭐,뭐야 당신?”
남자, 신해수는 건조한 눈으로 김상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반갑다. 개새끼.”
< #29. 가난한 경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