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8화 (28/255)

김동동은 곁눈질로 사내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부하들 앞에서 오른 주먹을 들어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오랜만에 피를 맛볼 생각에 내 강철 주먹이 우는구나.”

그가 소매를 걷자 팔뚝에 긴 흉터가 보여 그를 더욱 흉악하게 보이게 했다. 예전에 팔을 심하게 다쳐 철심을 박은 것이다.

그 모습에 그의 부하들이 감탄했다.

“드디어 전설의 강철 주먹을 보는 겁니까?”

김동동은 부하들과 함께 벌떡 일어나며 다가온 사내들을 맞이했다.

“오늘 밤은 피를 보지 않고는 잠이 들 수 없겠...”

그리고 뒤돌아서는 순간, 그의 입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다물어지고 몸이 얼어붙었다.

그의 시선 끝에 사내, 신해수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피바다?”

해수의 목소리에 동동은 찬 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어 다급히 걷은 소매를 내렸다.

“물리치료 박사님을 뵙습니다!”

물리치료 박사님이라는 호칭은 물리치료를 조금 더 과하게 받은 조폭들이 부르는 별명이다.

동동파 조직원들은 본 적은 없지만 그 별명은 김동동에게 귀가 닳게 들었었다.

“물리치료...?”

“물리치료 박사님?”

그들은 김동동의 얼굴이 새하얘진 것을 보고는 소문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인사드립니다! 물리치료 박사님!”

박사님이라는 말에 해수가 그를 기억해냈다. 해수는 자신이 합의금을 많이 낸 조폭들은 기억한다. 김동동은 해수가 오른팔을 아예 아작내서 천 만원 가까이 낸 자였다.

해수는 김동동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동동이구나, 오랜만이네, 팔은 괜찮고?”

“덕분에 건강합니다!”

“건강해서 문제네, 그래서 고암동을 피바다로 만든다는 거구나.”

해수의 말에 김동동이 팔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닙니다. 나,낚시 동호회 모임인데, 고,고기를 잡아서 피바다로... 하,하하.”

“그래, 그래, 낚시 동호회구나, 만난 김에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고 이름도 적고 가자.”

“예,옙 알겠습니다!”

해수는 그들을 일렬로 세우고 사진도 찍고 이름과 번호, 주민번호까지 받았다.

그 모습에 오갱은 엄지를 추켜올리며 말했다.

“이야 우리 해수가 유명하니까 손 쓸 일도 없고 편하네.”

“오갱아, 신돌이라 부르기로 했잖아?”

“아 입에 잘 안 붙어서, 형님 2차 갑시다.”

“오케이, 2차는 어디 갈까? 막내야 가고 싶은 데 있나?”

“어디든 괜찮습니다!”

“짜식, 군기가 아주 바짝 들었네, 맥주 가자 맥주!”

강력1팀 형사들이 나가는 길, 동동파 조직원들은 그들을 큰 형님 대하듯이 일렬로 서서 배웅을 했다.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십시오!!”

“그래 동동아, 착하게 살고, 눈에 띄지 말고.”

“예 박사님, 명심하겠습니다!”

고기집을 나와 호프집으로 가는 길, 해수는 시간을 확인하고 누군가가 떠올랐다.

“팀장님, 저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엉? 왜, 집에 두꺼비 신부라도 있냐?”

“우렁각시겠지.”

“그거나 그거나! 안 그러냐 막내야?!”

“맞습니다!”

“막내야, 맞다고? 내가 븅신이네?”

“죄송합니다!”

오갱이 난감해하는 막내를 보며 익살맞은 표정으로 웃었다. 해수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그에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장난이다. 짬도 있고 지구대 인연도 있으니 하지 않았던 듯했다.

“그런 건 아니고, 속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내일 월차입니다.”

“아 맞네, 내일모레 봐!”

“해수야 들어가!”

“들어가십시오!”

덩치 막내가 허리를 넙쭉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어쩐지 동동파 인사를 받을 때와 느낌이 똑같은 듯했다.

*

삑삐삐삑, 철컥.

“앗 깜짝...”

집에 들어가자마자 코 앞에 하루가 서 있었다. 나름대로 맞이한 듯한데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다.

해수는 눈을 피하는 그녀를 보고 어색하게 물었다.

“어, 그래, 잘 있었어?”

“네...”

“그래.”

TV를 보니 맨 처음에 켜두었던 그 채널 그대로다. 채널을 한 번도 안 돌린 것 같다.

집 안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집에 사람이 있었지만 없었던 느낌, 모든 것이 제자리다.

밥통도 열어보고, 냉장고 안에 반찬들도 보았다. 밥을 한 끼도 먹지 않았다. 심지어 물 한 잔도.

“너...”

해수는 말보다 먼저 물부터 챙겨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두 잔을 연속으로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에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 여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화를 가라앉히고 식사를 차려주기 시작했다.

밥을 퍼주고,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다 말고 문을 열어둔 채 말했다.

“하루.”

바람소리가 나도록 하루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여기 있는 거 다, 네가 먹어도 돼.”

충격받은 얼굴이다. 눈동자가 티나게 흔들리고 있다.

“이리와.”

해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전기레인지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식사를 다 차리자 하루가 식탁에 앉아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해수는 말을 하다 말고 그냥 밥을 퍼서 그녀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 입 먹자 그제야 그녀도 숟가락을 들었다.

그녀는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도 한 입 먹을 때마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감동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잘 시간이 되었다. 하루는 또 해수의 소매를 잡고 자고 있었다. 해수는 중간에 일어나 자기 옆 바닥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그녀는 흠칫하며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서 자.”

“네...”

*

다음날, 신해수는 아침부터 고민이 많았다. 그는 전기레인지를 키다가 손을 데어 흐르는 물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하루를 보고 있었다.

‘이 여자를 언제까지 데리고 있어야 할까.’

젓가락질도 못하는 성인 여성, 갓난아이처럼 세상을 통째로 가르쳐야 한다.

조폭들 말대로라면 열 셋, 넷 쯤에 납치당한 것인데 이런 것도 모른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아무래도 이전 기억을 잃은 것이 큰 몫을 한 듯했다.

‘오래 걸리겠지...’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옷장을 보았다가, 신발장을 보았다.

해수는 그녀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발."

하루는 해수가 뭘 하려는지 몰랐지만 거절이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발을 들었다.

그녀의 발은 굳은살이 깊게 박혀있고, 발톱은 다 망가져 있었다. 스무 살 중반 여성의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해수는 그녀의 발바닥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대었다. 손 크기와 맞춘 것처럼 딱 맞는다.

"여자 발은 생각보다 작구나."

새삼 전에 헤어진 채연의 발 사이즈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수는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며 말했다.

"기다려."

삑, 철컥-

해수가 나가고, 문이 닫히고, 몇 초가 지나서야 적막한 방 안에 하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해수는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들어왔다. 오른손에는 하얀 운동화 한 켤레를 들고.

"신어."

손으로 사이즈를 재고 간 덕분에 신발은 그녀의 발에 딱 맞았다.

“나가자.”

“네?”

하루는 하얀 운동화에 커다란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해수와 함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트에 가는 길, 하루는 해수의 등에 머리를 계속 콩콩 찧었다.

“왜 이렇게 땅만 봐?”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아니고, 앞에 잘 보고 걸으라고.”

“네.”

해수의 말에도 하루는 틈날 때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이 신은 신발을 보았다. 휴지처럼 새하얗고 예쁜 신발,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드르륵

해수가 쇼핑카트를 끌며 하루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언제까지 나랑 같이 살 수는 없으니까, 지금처럼 틈날 때마다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울 거야, 잘 기억해둬.”

“...”

하루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언젠가 이 분에 넘치는 행복이 멀어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들으니 심장에 칼이 박힌 것처럼 아파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아...”

그러나, 금세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여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에 비해 해수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흠...’

피딱지와 먼지들을 말끔하게 씻고 난 하루는 모델처럼 키도 크고 눈에 띄는 외모였다. 게다가 그녀가 해수의 옷 뒤 꽁지를 잡고 있어 거동이 불편했다.

"이건 좀 놓지, 아니면 빨리 빨리 따라붙던가."

하루는 모기처럼 작게 '네' 대답하곤 옷을 잡는 것은 포기하지 못하고 해수의 등에 바짝 붙어 따라다녔다.

장을 보고 나오는 길, 계산대 맞은편에 여성 옷들 이월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해수는 그 옷들과 하루의 옷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걸로 한 벌 골라."

하루는 자신이 입은 옷을 움켜쥐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옷이 좋습니다."

"이건 내 옷이잖아, 니꺼 골라."

그러나 하루가 옷을 고를 수 있을리 만무했다.

해수는 직원에게 추천 받아 딱 붙는 청바지에 편한 면바지 하나, 만 원에 세 장 짜리 면 티를 구매하여 그곳 탈의실에서 바로 갈아입혔다.

하루는 지하세계에서 나와 처음으로 새로 갈아입은 해수의 트레이닝복도 좋았지만, 새 옷을 구매하여 자신의 소유가 된 옷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트레이닝복처럼 후즐근하고 큰 것이 아니라 마치 맞춤 옷처럼 몸에 딱 맞고, 화룡점정으로 그 아래 새하얀 신발이 발을 산뜻하게 하여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싶었지만, 해수가 싫어할까 꾹꾹 눌러 참았다.

*

이곳저곳 들르다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하루는 보기와는 달리 체력이 좋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그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제 만났던 동동파 조직원 중 한 명이 해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딱 봐도 ‘나는 조폭이다’ 티를 내는 옷차림과 인상이었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내가 왜 니 형님입니까?”

“예? 아니 그게 아니라...”

“깡패 새끼가 형사한테 친한 척 하는 거 아닙니다. 알겠어요?”

“죄,죄송합니다.”

“가.”

그가 부리나케 사라지고, 돌아서니 하루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그들 보고 적사회를 떠올라 무서워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하루! 하루야!”

걱정과는 달리 하루는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포장마차 안에서 먹을 것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해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손을 꼬물거리며 한참 서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어묵을 꺼내어 먹는 것을 보고 자기도 조심스레 꺼내어 먹었다.

‘그래, 배고플테지, 하나, 둘, 셋, 넷, 잠깐 몇 개나 먹으려고...’

결국 열 개를 채우고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이 배를 매만지며 포장마차를 나섰다. 당연히 계산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장마차 주인 아줌마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붙잡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수가 들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물었다.

“왜 그냥 두십니까?”

“아, 젊은 아가씨가 얼굴에 사연이 그득하잖아.”

해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륜으로 한 눈에 그녀의 기구한 인생을 알아본 듯하다.

“많이 파십시오.”

해수는 계산대에 오만원 권 두 장을 놓고 그곳을 나섰다.

그 사이 하루에게 껄렁한 양아치들 세 명이 접근했다.

해수는 그들을 보며 이곳이 범죄의 도시 강진시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와, 졸라 쌔끈하게 생기셨네, 오늘 같이 노실래요?”

“...”

“뭐야, 벙어리인가? 같이 가자, 죽이는 데 데려가줄게.”

한 사내가 하루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때.

타닥! 끄득-

하루가 그의 손목을 쳐내고 목 울대를 움켜쥐었다.

“커,컥”

그러고는 서슴없이 그의 눈에 어묵 꼬치를 찔러 넣었다.

턱-

뾰족한 끝부분이 동공 앞 한 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해수가 붙잡은 것이다. 양아치 사내는 처음 느껴보는 살기에 바짓가랑이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수는 하루를 노려보다가 양아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꺼져.”

그들은 해수의 온 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착하게 꺼졌다.

해수는 하루의 손목을 붙잡고 다그쳤다.

“정신 차려, 여기는 그 지하가 아니야, 사람을 절대 해치면 안 돼.”

“절대...?”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눈빛, 해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골랐다.

“널 해하려는 사람 빼고.”

“해하려는?”

“때리려는...”

“...네.”

마치 성체 야생의 맹수를 길들이는 느낌이다. 해수는 그녀를 포획(?)하여 터덜터덜 집으로 복귀했다.

***

다음날, 출근하여 시덥잖은 주폭 조서를 처리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강력1팀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해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구세주 실장이다.

“신해수입니다.”

-네 신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왜 이메일은 안 읽으세요?

그의 목소리에서 작은 분노가 느껴진다.

“알아서 잘 하고 계시잖아요.”

-제가 삥땅치면 어쩌려고.

“저 형사입니다.”

-아이구 무서워, 한 해 실적 얼마나 오른 지는 아십니까?

“잘...”

-41프로 올렸거든요? 사장님 자산이 건물포함 200억 됐다고요. 근데 잘했다 한 마디도 없으시니 일 할 맛이 나겠습니까?

“아하... 잘하셨습니, 잠시만요. 전화 들어오네요. 제가 이따 전화드리겠습니다.”

-네? 여보세요. 여보세끼-

해수는 구실장의 찝찝한 마지막 말을 무시하며 통화를 전환했다.

“신해수입니다.”

-저에요. 안서은.

“예, 오랜만입니다.”

-거기 2팀이 연예인 강민 마약건 맡고 있죠? 걔가 제 회사 애거든요.

“예.”

-그거 해수씨가 맡아주세요.

잠시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다시 입을 연 해수의 목소리는 한층 차가웠다.

“그럴수는 없습니다만, 이러려고 절 후원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요. 이러려고 후원한 거.

“제가 이사님을 잘못 봤군요. 이만 끊겠-”

-강민, 죽었어요. 방금.

방금이라는 말은 꽤 충격적인 말이다. 해수는 대답 없이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연예인들 잘 관리한다고 나름 노력했는데 많이 속상했어요. 그래서 누가 우리 회사 애를 꼬셨나 개인적으로 알아보니까, 제가 건드리기도 쉽지 않은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요.”

-근데, 제가 알아낸 걸, 형사들은 모르더라고요.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2팀을 보았다. 정말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하거나, 하지만 수상한 냄새는 귀신같이 아는 것이 형사들이니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수씨가 맡아줬으면 해서요. 제가 알고 있는 가장 믿을만한 경찰이, 해수씨 한 명 뿐이라.

해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맡아야겠네요.”

< #28. 길들이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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