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는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당연히 13년 전 그자는 아니다. 그는 덩치가 지금 자신보다도 큰 남자다. 하지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 눈빛은 흡사를 넘어 동일하다.
푸슉-
그때, 여자가 사내에게서 칼을 뽑아내자 그 눈빛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속이 텅 빈 공허한 눈동자로 변했다.
그녀는 해수가 다가오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고 아린을 제 다리 위에 놓고 칼을 거꾸로 쥐었다. 그러고는 자기자신의 심장을 찌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자살이었다. 리셋 전에 죽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자살이었다.
해수는 다급히 뛰어가며 소리쳤다.
“살릴 수 있어!”
심장을 정확히 찌르던 칼 끝이 멈추어 섰다. 이미 그녀의 가슴에 살짝 파고 들어 피가 새어 나왔다.
해수는 칼을 쥔 그녀의 손을 잡아 조심스레 뒤로 뺐다.
“살릴 수 있어, 아린이, 그러니까 이 칼 내려놔.”
아린이라는 이름을 알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제야 경찰이라는 것이 믿기는 것이다.
해수는 아린을 내려다보며 무전을 쳤다.
“여기 막내, 지하2층 오른쪽 끝방 아린이 찾았습니다. 119 불러주세요.”
-지하2층 오케이
해수는 여자의 상태를 먼저 체크했다. 피를 뒤집어썼지만 심각한 외상은 없었다.
그녀에게서 아린을 조심스레 데려와 바닥에 반듯이 눕히고 눈꺼풀을 뒤집어보았다. 동공이 축소되어 있고 호흡을 하지 않는다. 아니, 아주 미세하게 숨이 나오고 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맥박은 살아있다.
마약에 장기간 중독된 현상이다.
“넌 팔다리 주물러. 난 심장 압박할 테니까.”
여자는 해수의 차분한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칼을 쥔 손을 놓았다.
“얼른, 안 그러면 죽어.”
그녀는 아린의 몸을 어설프게 주물렀다. 주무르기보다는 그저 손을 갖다 대는 정도다.
“더 세게! 세게 주물러!”
그제야 힘을 줘서 열심히 주무른다. 그 사이 팀장과 오갱이 들어왔다. 그들은 복도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와따...”
“이게 무슨... 내분이라도 있었나.”
“설마 우리 돌격대장이 다 썰어버린 거 아니지?”
낯선 남자들의 등장에 여자가 흠칫하여 경계했다. 해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설명했다.
“우리 팀원이야.”
그래도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주무르는 건 열심히 했다. 온 몸을 주무르고 심장을 압박하자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아.”
아린의 눈에 띄는 변화에 여자의 얼굴이 미세하게 환해졌다.
해수는 아린의 눈꺼풀을 들어올려 눈동자를 확인했다. 그래도 아직 좋지 않다.
“팀장님, 응급차 오고 있죠?”
“아마도, 이제 도착할 때가 됐는데, 오갱아 니가 나가서 여기로 안내 좀 해, 길 복잡하잖아.”
“이미 가고 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이미 들어오고 있었는지 오갱은 나간 지 1분도 되지 않아 같이 들어왔다.
그들이 아린을 들것에 실어 데리고 나가고, 팀장도 나가고 해수도 나가려는데 여자가 가만히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의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묶여있는 듯했따.
“먼저 나가계십시오.”
“어? 그래 그래, 잘 챙겨서 와.”
해수는 뒤돌아서 그녀에게 다가가 마주섰다.
피를 온 몸에 뒤집어 쓰고 있어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그녀는 나시티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해수는 점퍼를 벗어 그녀에게 입혀주고, 지퍼까지 쭈욱 올렸다. 품이 큰 원피스를 입은 모양새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소매를 건네주었다.
“잡아.”
그녀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소매를 한 번 잡았다가, 더욱 꽉 쥐었다.
“놓치지 마.”
해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
아린은 그 지하세계에서 나오자마자 응급실로 향했다.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고비는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분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여자는 의사가 자신을 지목하자 길고양이마냥 뒷걸음질을 하며 경계했다. 눈빛이 날카롭다. 금방이라도 의사를 공격할 것만 같았다.
해수는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 분은 괜찮습니다.”
“예? 아...”
의사도 여자를 멀리서나마 자세히 살펴보니 피가 여기저기 묻어있지만 심각한 외상이 딱히 보이지 않아 넘어갔다.
팀장은 아린의 부모에게 바로 연락했다.
“...아 예, 맞습니다. 여기가 대성병원이고요. 네, 네...”
*
아린은 긴 꿈을 꾸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흑 속을 헤매고 다니는 꿈.
그곳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고 끌어당겼다.
눈꺼풀이 매우 무겁다. 눈이 쉬이 떠지지 않는다. 촉감과 냄새 먼저 느껴졌다.
공기처럼 맡았던 퀴퀴하고 답답한 냄새가 아닌, 이상하지만 왠지 모르게 안정감이 드는 냄새.
왼손에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손을 잡고 있다. 손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설마 언니?
스르르
아린은 이제야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뿌연 시야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오며 초점이 잡혔다.
‘꿈인가?’
그 지옥에서 잠을 잘 때면 항상 꿈꿔왔던 얼굴, 그 얼굴이 눈앞에 있다. 설마, 그럴리가 없는데.
“...린아, 아린아, 정신이 들어?”
“...엄...마?”
“우리 아가!!”
어머니가 아린을 확 껴안았다. 그 옆에 있던 아버지도 둘을 같이 껴안았다.
아린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어리둥절했다. 꿈인 것 같아서, 이 꿈이 깨어날까 두려워 엄마를 밀어내고 얼굴을 다시 보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더 더 기억하고 싶어.’
하지만, 엄마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진짜고,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도 진짜였다.
아린은 한참 뒤에야 엄마를 제대로 껴안으며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나, 나 무서웠어, 엄청 무서웠어, 엄마...”
“그래, 그래 이제는 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애기...”
자식을 잃어버렸던 부모가 한 달만에 되찾은 심정은, 감히 문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감동의 재회가 이루어지던 그때.
오히려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뒷걸음질을 치는 이가 있었다.
터벅 터벅.
여자는 아린이 가족과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린은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갔다. 그 지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신의 존재는, 떨어져야 마땅하다.
*
아무도 아린에게 그때의 일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린도 통째로 그때의 기억을 잊은 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게 생활했다.
그러나, 이따금씩 젊은 여자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돌려 한참을 주시하곤 했다.
***
이번에 강진서 강력팀이 친 거대 암흑 조직은 적사회라는 중국과 연계된 조폭이었다. 게다가 규모가 컸는데도 본거지가 아닌 지부였다.
그 지옥같은 지하세상에서 구해온 자들만 성인 여성 열두 명에 아이 스무 명이다. 죽이지 않고 검거한 조폭들도 스무 명이 넘었다.
덕분에 강진서 강력팀은 조서를 작성하느라 손이 매우 모자랐다.
해수도 조서 작성을 위해 병원에는 지구대 경찰들에게 맡기고 서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쨍그랑!
“꺄악!”
간호사가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치료 키트를 떨어트렸다.
그 여자가 볼펜을 칼처럼 들고 병상 구석에 붙어 간호사한테 하악대고 있다. 다가오는 다른 여경에게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하...”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매우 이상한 여자다. 정신적 충격이 심한 것인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위험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큰 사고를 칠 수 있다.
“팀장님, 전 남겠습니다.”
“뭐? 우리가 할 일이 산더미...”
팀장은 말을 하며 해수의 시선을 따라가 여자를 보았다. 팀장도 그녀가 조폭 한 명을 살해했다는 말을 해수에게 들어 알고 있다.
“그래 뭐, 빨리 와라, 기다린다.”
“예.”
해수가 다가가니 그녀가 볼펜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옷 소매를 잡았다. 손 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분노나 다른 감정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이 여자 대체 뭐야...’
해수의 손짓에 따라 간호사나 경찰들이 멀리 가고 그대로 가만히 있으니 점차 호흡이 안정이 되었다.
해수는 그녀를 병상에 앉히고 마주앉았다.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야 해.”
어차피 치료 받고 서로 데려가면 조서 써야하니 미리 쓰기로 했다.
“이름”
“...”
“이름 없어?”
“야, 너, 썅년, 시발년, 개년...”
해수는 당황했다. 그냥 욕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이름으로 그리 불려왔다는 걸 뜻한다.
“진짜 이름은 기억 안 나?”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부모님 이름은”
조금 더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젓는다.
“언제부터 거기서 지냈어?”
여성이라고 해도 적사회의 일원일 수 있지만, 그녀의 몸에 난 수많은 흉터들과 최근 흉터들까지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바닥을 펴고는 손을 들어 허공에 멈추며 입을 열었다.
“이때부터...”
예상하기로는 키를 뜻하는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름이 기억 안 날 만도 했다.
그 이전에 것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을 정말 잃었는지, 대답하기 싫은 것인지는 모른다.
유전자가 등록되어 있지 않는 한 신분을 찾아줄 길이 없다.
성인 여성은 어딘가에서 납치를 하거나 빚 때문에 이곳에 팔린 자들로, 성매매와 노리개로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 여자만 흉터가 심하다. 그 눈빛도 이상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
강진 경찰서.
해수는 여자를 경찰서로 데려와 조서를 마저 작성하려 했다. 그러나 통 입을 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때 오갱이 조사하던 조직원이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 투견이에요, 투견.”
“투견? 자세히 얘기해봐.”
여자가 말이 없으니 그녀의 정보를 조폭들에게서 모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10년 전에 지부장이 데려왔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마약 제조는 시키지 않고 격투 경기에만 참가 시켰다.
“...맨날 만신창이가 돼서 오는데 항상 살아남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니까!”
“내가 니 친구냐?”
“...요.”
“그러니까 불법 격투 경기 전문 선수라 이거네, 저 여자가?”
“예, 경기 데리고 다니는 놈 말로는 링 위에서는 나름 잘 싸운다고는 하는데...뭐 봤어야 믿죠.”
그녀를 데려왔다는 지부장은 검거 중에 죽었으니 이전에 과거를 알 길이 없다.
대충 얼굴로 보면 스무 살 초중반, 10년 전이면 많이 쳐줘야 열다섯 살인 아이를 살인이 난무하는 격투 경기에 내몰았다는 뜻이다.
“...쓰레기 새끼들.”
불법 격투 경기는 남녀 분간 없이 붙는다. 여자가 맞는 모습 즐기는 변태들도 많으니 형사들은 그녀가 그런 고객들의 취향 저격용으로 이용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납치 피해자에 조폭을 죽인 건 정당방위 판결이 났으니 그녀를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사정을 들어 알기에 이렇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껄끄러운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납치되어 지문등록도 되어있지 않고, 기억도 없어서 가족을 찾을 수도 없다. 혹시나 하여 실종자 유전자 등록센터에 유전자를 보내놓았지만 일치하여 찾은 적은 5프로 미만이다.
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아가씨 어떡하나, 돈도 없고 집도 없을 거 아니야.”
“그래도 뭐, 어떻게 해요? 성인이라 어디 보낼 곳도 마땅치 않고.”
“저 새끼들 지부라고 했잖아? 혹시 모르니까 팔찌 하나 드려.”
"예, 팀장님."
해수는 캐비넷에서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하나 가져와 그녀의 가느다란 팔목에 채워주었다.
“손을 이렇게 흔들면 112로 니 위치가 전송돼, 위험할 때 흔들어.”
여자는 건조한 눈으로 팔찌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활동복 점퍼 주머니에 오만원 권도 몇 장 넣어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경찰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하아암-”
그날 밤, 해수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펴며 조서 작성 끝맺음을 자축했다. 드디어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쾅-!
그때, 딱 봐도 날 티가 나는 사내가 강력팀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그는 누구에게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붓고 코피도 흘리고 있었다.
“경찰 아저씨들! 저 밖에 미친 여자가 사람을 막 패요! 묻지마 폭행 묻지마 폭행! 얼른 좀 잡아줘요!”
여자라는 말에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일어났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막내야, 가는 길에 퇴근도 해버려.”
사내를 따라 밖으로 나가보니 경찰서 맞은편 버스 정류장 구석에 두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다.
“저 년이에요. 저 년!”
가까이 다가가니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이 말했다.
“저 아저씨가 저 언니한테 찝쩍대다가 쳐 맞은 거에요. 쌤통”
그 말에 해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내는 돌연 등골이 싸늘해지자 해수에게 떨어지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저런 거지꼴 여자를... 아무튼 경찰 양반! 저 년 꼭 깜빵에 넣어줘요!”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저 멀리 사라졌다. 해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 공허한 눈동자가 해수의 구두, 바지, 팔을 천천히 타고 올라가 얼굴을 마주했다.
“갈 데 없냐.”
그녀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당연한 대답이다. 감금 당한 채로 사람도 아닌 투견으로 살아오다가 10년 만에 한 푼도 없이 사회로 나왔으니 갈 곳이 있을 리 만무하다.
“후...”
이 발톱이 유독 날카로운 길고양이를 가만히 방치해둘 수는 없다. 해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녀가 해수의 소매를 꼬옥 붙잡았다.
*
신해수의 집은 화장실에 주방까지 다 합하여 8평 짜리 원룸이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좁은 집 안에서 그녀와 단 둘이서 마주 보고 있었다.
< #26. 투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