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1화 (21/255)

구급차 앞.

신해수는 다리에 감각이 없다는 여학생의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리셋, 리셋, 리셋!’

속으로 리셋을 계속 외쳤지만 돌아가지지 않았다. 오늘 리셋을 한 번 썼기 때문에 돌아갈 리 만무했다.

해수는 임시 보호자로 구급차를 따라 병원까지 따라갔다. 여학생은 보호자가 오기 전에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실 앞.

“우리아가, 우리아가, 아이고 우리아가!”

한 할머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다.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것이 일을 하다가 연락을 받고 급히 온 것이 분명했다.

할머니는 간호사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해수는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그제야 해수가 눈에 들어왔는지 할머니가 물었다.

“누, 누구신데 여기...”

그러자 간호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분이에요. 이 분 아니었으면 손녀분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고 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할머니는 해수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강하게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연신 감사인사를 전하지만 떨리는 손과 눈물은 손녀를 향한 진한 걱정 뿐이었다.

잠시 후, 이웃이라는 중년남성과 여인이 와서 할머니를 보살폈고, 해수는 병원에서 나왔다. 그때까지 가해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해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출근 전에 다시 병원을 들렀다.

할머니는 여전히 수술실 벤치 앞에 있었다. 수술실의 수술 시간은 11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경찰 양반... 우리 현아 어떡해, 우리 현아가 나오지를 않아요...”

“수술 잘 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까?”

해수의 물음에 힘없던 할머니의 눈빛에 독기가 살짝 어렸다.

“그, 그 찢어죽일 년이 아까 잠깐 왔다 갔어요. 시꺼먼 옷 입은 남자들이랑 같이, 그 년이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살아있어요? 이 한 마디만 하고 갑디다!”

해수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때, 수술실이 열리며 여학생을 실은 병상이 나왔다.

“현아, 우리 현아, 현아야!!”

병상에는 한층 창백해진 얼굴의 여학생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는 다급히 떼어내고, 지친 표정의 의사가 땀을 훔치며 설명했다.

“장파열, 골반뼈 골절, 척추뼈 골절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장파열이 심하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요.”

“감사합니다! 아이고 의사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하체 신경에 반응이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의사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부러진 척추뼈가 신경을 찢으면서 하반신 마비가 온 것 같습니다. 정확한 건 시간이 지나봐야 압니다.”

의사의 말에 할머니가 반쯤 입을 연 채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해수는 재빨리 할머니를 부축했다.

“그게, 그게 말이... 고작 열일곱인데, 열일곱에 하반신 마비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날 데려가시지, 늙어빠진 이 몸을...”

할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넋이 빠져 있다가 여학생이 깨어났다는 말에 부리나케 입원한 병실로 갔다.

해수는 여학생과 할머니가 끌어안고 하염없이 우는 모습을 보다가 찝찝한 마음을 안고 병실을 나왔다.

출근하는 길, 그는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휴대폰을 들었다.

-안서은입니다. 이렇게 빨리 전화주실 줄 몰랐네요. 무슨 일이시죠?

“하반신 마비 판정 받은 환자, 신정병원보다 더 좋은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습니까? 병원비는 가해자 측에서 부담할 겁니다.”

-네, 당사자가 원하면 사람 보내서 바로 이원할게요.

그녀는 무슨 일인지, 환자가 어떤 관계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앞으로 그쪽의 힘을 쓸 때 어떤 식으로 한다는지 대충 감이 오는 대우였다.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에 다시 연락드리죠.”

-네, 기다릴게요.

*

강진시 동부지구대.

신해수는 그 여학생을 생각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지구대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중년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 옆에는 수행원으로 보이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한 명도 있었다.

중년 여인을 보자 해수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여학생을 짓누른 그 여인이었다.

해수가 벌떡 일어서자 그녀도 그를 발견하고 검지로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진짜 경찰이 맞았네, 나라가 망하려고 이딴 놈이... 저기, 나 이 사람 신고하려고 왔어요. 이 사람이 내 차 부수고 날 차 안에서 강제로 끌어내서 넘어트렸어, 여기 무릎도 까지고, 진단서도 다 뗐거든?”

지구대 팀장과 팀원들은 무슨 연유인지 몰라 해수와 여인을 번갈아 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해수는 싸늘한 눈으로 여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여학생에게 사과하셨습니까?”

“뭐? 사과? 보상해주면 될 거 아니야! 안 죽었잖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내가 그 년한테 왜 사과를 해야돼? 나도 재수없게 이 일때문에 손해가 얼만데? 너나 사과해! 여기 까진 거 안 보여? 내 차는 어떻게 할 거야? 니 월급으로는 택도 없어!”

“차요?”

“그래! 내 차!”

해수는 유리문 밖에 주차된 그 하얀색 차를 발견했다. 일부러 고치지 않았는지 운전석 유리창이 부서진 상태 그대로였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며 허리춤에서 삼단봉을 펼쳤다.

촤라락-

“이 차요? 이 차.”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수석 유리도 삼단봉으로 후려쳤다.

콰직!

“이러면 얼마 드려야죠?”

“꺄악! 뭐하는 짓이야!”

여인은 물론 그 옆에 있는 수행원, 지구대 대원들도 기겁했다. 그러나 해수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앞유리다.

콰장창!

“이거는”

다음에는 보닛을 삼단봉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쾅 쾅!

“이거는!!”

얼마나 쎄게 내리쳤는지 삼단봉이 부러지자 그것을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보닛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쾅!!

보닛은 해수의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해수는 손아귀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손을 들어 여인을 검지로 가리켰다.

“차 타고 다니지 마세요. 지금 이따위 차가 중요합니까? 당신 때문에 그 학생은 평생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미,미친새끼 아니야 진짜!! 경찰, 경찰 불러!”

“사모님 여기가 지구대입니다.”

수행원도 해수의 그 살벌한 기세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여인을 말렸다.

여인도 겁이 났는지 뒷걸음질을 치며 해수에게 소리쳤다.

“너, 너 두고봐, 내 남편이 누군 줄 알아? 어디 경찰 나부랭이가! 경찰 짤리고 감빵 갈 준비 하고 있어!!”

그녀는 도망치듯이 지구대를 빠져나갔다.

그제야 지구대 팀장과 임순경이 다가와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신경사님... 괜찮으세요?”

해수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수가 들어가서 사건 연유를 설명하자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더욱 분개하며 여인을 욕했다.

그러나 지구대 앞에서 남의 차를 부수는 행위는 이유야 어찌됐건 경찰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기에 시말서부터 써놓았다.

점심시간, 해수는 바로 신정병원에 입원해 있는 여학생을 찾아갔다.

여학생의 이름은 강현아, 올해 고등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는 꽃다운 나이였다.

그녀는 누운 채 창문밖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아 학생.”

현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해수를 마주했다.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가 촉촉했다.

“누구...”

“아저씨 경찰, 할머니는 어디 가셨니?”

“할머니 일하러요... 아, 저 도와주신...”

해수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고개를 푹 떨구며 다시 눈물을 떨어트렸다.

“감사합니다...”

해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조금 더 낮추며 현아에게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아저씨 아는 분이 대성병원에 있는데, 현아 사정 말하고 부탁했더니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괜찮다면 병원 옮겨보는 건 어떨까?”

“알겠어요. 감사합니... 흐윽”

현아는 버튼이 고장난 것처럼 주구장창 눈물을 흘렸다.

한창 뛰어 놀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실수도 아니고 남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을 것이다.

해수는 할머니에게도 허락을 맡고, 안서은에게 바로 전달했다.

그러자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은이 대성병원 의료진들을 보내어 현아를 조심스럽게 이동시켰다.

수술을 신정병원에서 했기에 아주 자세한 수술기록과 환자상태 자료까지 싹 다 챙겨갔다.

해수는 현아가 대성병원 응급차에 실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서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방금 현아 대성병원으로 출발했어요. 감사합니다. 잘 좀 부탁드려요.”

-피도 한 방울 안 섞였으면서 자기 일처럼 돕네요. 원래 경찰이 다 그런가요? 아니다. 아니지.

확신하는 말투,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다수는 그럴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특별히 신경써볼게요.

해수는 전화를 끊고 지구대로 복귀했다.

그런데 해수를 보는 지구대원들의 표정이 이상하다.

그때 팀장이 와서 말했다.

“경찰서에서 전화 왔는데 아까 그 여자 말이야, 자네 앞으로 고소했대, 불안감 조성, 차량 파손, 폭행?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예상했던 바이기에 해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때 임순경이 다가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신경사님,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보여준 것은 너튜브에 올린 한 영상이었다. 제목은...

“K-경찰, 일반인 여성 폭행?”

영상에는 해수가 차로 달려와 창문을 깨고 여인을 끌어내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해수의 머리 위로 ‘경찰 신xx 경사’라고 자막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그로성 너튜브로 구독자가 많은 인기 너튜버가 올린데다가 매우 자극적인 제목에 조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해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이 아줌마... 바본가?”

***

같은 시각, 대성 E&M 대표실.

안서은은 해수와 같은 기사를 보고 있었다.

“하하.”

이미 전후사정을 모두 파악한 그녀는 해수처럼 어이없는 웃음을 짓다가 돌연 싸늘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강실장.”

“예, 이사님.”

“사고 당시 영상 수집 끝났죠?”

“예, 현아양 얼굴 모자이크 작업 중입니다.”

“그거 올리고, 디특대 가동시켜요.”

“이 사건에 디특대를...말입니까?”

안서은은 연예인을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이니만큼 자신만의 특별한 부대를 꾸리고 있다.

디특대, 바로 댓글 부대다.

허위사실유포나 사실 조작은 하지 않지만, 사실 기반으로 한 사건의 눈길을 효과적으로 돌리거나 빠르게 소문을 번창시키는 역할을 하는 부대다.

“예, 저 너튜버하고 저 아줌마, 확실하게 짓밟아버려요.”

< #21. K-경찰, 일반인 여성 폭행?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