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귀는 비릿하게 웃으며 부러진 손에 쥐어진 칼을 떨어트리고 왼손으로 받아 해수에게 뻗었다. 무섭도록 빠른 스위치다.
턱-
칼 끝이 신해수의 목 바로 한 치 앞에서 멈춰 섰다.
해수가 맨 손으로 칼날을 잡은 것이다. 손아귀가 베여 피가 손목을 따라 흐르고, 총을 맞은 등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방검복이 방탄 역할을 했어도 총알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 것이다.
"크으으"
놈은 왼팔에도 총상을 입어 힘으로 딸리자 입으로 칼자루를 물고 더욱 세게 몰아붙였다.
뿌득 드드드-
해수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칼 끝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모창귀의 멱살을 잡은 오른손을 놓으면 몸으로 미는 힘이 강해져 칼에 분명 찔릴 것이다.
해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칼 끝의 방향을 비틀고 손을 놓았다.
푹!
놈의 칼이 해수의 어깨에 깊이 박혔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놈의 눈이 동그래졌다. 해수는 피가 가득한 왼손을 휘둘러 놈의 눈에 피를 뿌려 시야를 가리고.
촤악-
눈을 질끈 감는 사이 손바닥으로 턱을 올려쳤다.
쾅!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갔다. 놈의 몸이 살짝 들썩이며 기분나쁜 무언가가 해수의 얼굴에 튀었다. 놈의 입이 강제로 닫히며 혓바닥 일부가 잘려나간 것이다. 눈알이 뒤집히며 흰자가 보인다.
해수는 칼이 어깨에 박힌 왼손으로 놈의 머리채를 잡아 벽에 붙이고 주먹을 두 번 더 꽂았다.
퍽 퍽!
그러고는 쓰러져내리는 놈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퍼석!
경쾌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경찰은 경찰 총에 안 죽어, 이 새끼야..."
해수는 그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그 자리에 같이 쓰러졌다. 흐릿해져가는 시야로 눈을 동그랗게 뜬 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허억, 여기 지하, 지하에 모창귀... 제압, 형사 총상...”
***
꿈뻑 꿈뻑.
하얀 천장, 소독약 냄새, 창문너머로 들어오는 햇빛.
신해수는 상체를 일으키려다가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만 살짝 들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일어서서 팔짱을 낀 채 뉴스를 보고 있었다.
[강진시를 공포로 물들였던 폭력조직 갈고리파의 두목 모창귀 외 조직원 27명이 검거되었습니다. 치열한 저항으로 인해 경찰 측 부상자가 10명이 넘었는데요. 그 중에 중상을 입은 신모경장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여 국민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괜히 창피하다. 해수는 무겁게 단내나는 입을 열었다.
“사망자는 없습니까?”
사내, 오강석은 뒤돌아서 해수를 보고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 경찰은 죽은 사람 없어요.”
“...다행입니다.”
오강석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신경장님 회복되는대로 표창장 플러스 특진 예비되어 있습니다. 다른 거 신경쓰지 마시고 회복에만 힘쓰십시오.”
“고맙습니다.”
“제가 미안하죠, 괜히 불러서.”
“아뇨, 아주 잘 부르셨습니다.”
리셋 전 경찰 네 명의 시체를 발 아래에 두고 그들의 피를 뒤집어쓴 모창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지 않았더라면 모창귀는 잡혔을까? 미지수다. 긴급출동이라 경특대도 투입되지 않았던 상황, 형사가 얼마나 죽어나갔을지 상상으로도 끔찍하다.
“모창귀는 어떻게 됐습니까?”
“바로 옆방에 입원했어요. 그 놈도 의식은 아직 못 차렸습니다. 명줄은 길어서 죽지는 않는답니다.”
“아깝네요.”
해수는 오강석의 도움으로 일어나 옆방으로 가보았다.
온 몸에 붕대를 두른 모창귀가 가지런히 누워있다. 양손은 침상과 연결하여 수갑을 채운 상태다. 안에 형사 둘, 출입구에 한 명이 지키고 있다.
모창귀의 멀쩡한 두 손이 거슬린다. 마음같아서는 칼을 다시는 잡지 못하게 손뼈를 모두 부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해수는 꾹 참으며 병실에서 나왔다.
“...몸조리 잘 하시고,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오강석은 바로 서로 복귀했다. 안 그래도 갈고리파 조직원 검거때문에 바쁠 텐데 해수를 위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사건 날로부터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났다고 한다.
담당의사가 왔다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실장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신사장님, 제가 그날 진짜 여기서 얼마나... 이렇게 일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머리가 울립니다. 작게 얘기해주세요.”
“아니 그리고 경찰 방어장비가 너무 허술한 거 아닙니까? 이참에 제가 사설업체를 찾아봐서 방어장비 좀 주문을 해보려고... 웁”
해수는 구실장이 깎아놓은 사과를 하나 집어 그의 입에 넣었다. 그제야 조용해졌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또 올 사람이 없기에 해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문이 살며시 열렸다.
동시에 구실장이 입을 쩌억 벌렸다.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될까요?”
안서은이었다. 새하얀 정장에 빨간 하이힐,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스타일인데 남다른 태와 얼굴로 소화시켰다.
그녀의 뒤로 강실장이 과일과 음료를 들고 들어왔다. 구실장이 가져온 것과 비교되게 고급스러운 포장이었다.
잘린 줄 알았던 김실장도 함께 들어왔다.
“일어나셨다고 해서 왔어요. 실례가 된 건 아닐까요?”
“소식 빠르네요.”
서은은 미소를 지으며 병상에 대성로고를 가리켰다.
“대성병원이니까요.”
아직 몰랐는데, 위중하여 경찰병원이 아니라 가까운 대성병원으로 온 듯하다.
구실장은 해수와 안서은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보다가 일어났다.
“저는 이만, 일이 바빠서.”
구실장은 문을 나서기 전에 해수와 눈을 마주하고 주먹을 꽉 쥐며 소리없이 화이팅을 외쳤다.
해수는 고개를 미세하게 저으며 안서은과 눈을 마주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병문안 올 정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말씀 섭섭하게 하시네요.”
해수의 말에 그녀가 살짝 토라진 듯이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여자였던가?
강비서실장도 그 표정을 처음 보는지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해수도 난감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연히 와야죠, 우리 병원이면 더더욱.”
“대성 E&M 대표지, 병원이사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사장이 내 사람이니까 우리라고 해도 돼요.”
“무서운 분이군요.”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흔한 매니큐어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돌연 웃음기가 사라지며 예의 그 반짝이는 눈으로 해수를 바라보았다.
“병원비는 우리가 낼게요.”
“국가에서 주는 걸 왜 그쪽이 냅니까?”
“세금 더 내는 셈 치죠, 뭐.”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해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기 돈 안 나가는 건 매한가지다. 세금보다 기업 돈 쓰는 게 더 낫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허락한 걸로 알게요.”
안서은이 강실장에게 뭐라 얘기하자 그가 바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병원비 건을 즉시 처리하려는 듯했다.
“이번 사건, 근무 중이 아닌데 강력팀 형사가 개인적으로 불러서 간 것, 맞나요?”
“맞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안서은은 대답 없이 미소지으며 턱을 살짝 들었다. 마치 ‘나 안서은이야.’라고 말하는 듯이.
“눈빛에 경계가 사라지지를 않네요. 알겠어요. 이제 본론을 꺼내죠. 저는 신해수씨를 후원하고 싶어요. 정확히는 신해수 경장님의 경찰 활동을.”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에요. 경찰 활동에 있어 필요한 것들, 금전 혹은 외압 방어, 권력이 필요하다면 권력, 또는 언론, 나 대성그룹의 안서은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그보다 넘치는 능력이 있기에 한 치도 과해보이지 않는다.
“뭘 원해서? 아니 왜 하필 나입니까? 경찰 고위직이랑 손잡으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그럴 힘이 있을 텐데?”
“신해수씨가 고위직이 되시면 되죠.”
해수는 도무지 안서은의 속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정공법이다.
“장사꾼이 손해만 본다는데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해수의 질문에 그녀는 살짝 눈을 내리고 침묵했다. 반짝이던 눈빛이 복잡한 감정으로 얽힌다. 그녀가 다시 눈을 들었을 때는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대한민국이 너무 더러워서.”
눈빛에 어울리지 않게 주변이 환해지는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장사에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요즘은 연예인 뿐만 아니라 정치인, 기업도 모두 이미지 싸움입니다. 이번 갈고리파 관련 부상자 경찰분들 병원비 대성병원에서 다 처리했다는 기사 뜨고 대성그룹 관련 다방면의 주식이 소폭 올랐습니다. 소폭이지만 병원비의 수백 배지요.”
그녀의 말이 맞다. 요즘은 기업도 이미지가 좋아야 장사가 잘 된다. 경찰 후원으로 이미지 관리, 타당한 이유다. 하지만 전자가 진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상관없다. 그녀의 뜻에 동조하니까.
“기업을 등에 업은 경찰이라... 그만큼 깨끗해야 할 텐데요.”
서은은 자신있는 얼굴을 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적어도 제 산하에 있는 계열사들은 깨끗합니다. 탈탈 털어보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제가 뭐 대성로고 달린 경찰복 입고 활동해야 하는 조건은 아니지요?”
“제가 원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대성이 도움을 준 건은 기사에 대성의 이름이 실리는 겁니다.”
“콜”
“역시 시원하시네요. 계약 성사입니다. 일단 VIP실로 옮기시죠.”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저놈 옆에 있어야 합니다.”
“그럼 같이 옮기세요. 자리 있습니다.”
“그것도 싫습니다. 저놈이 VIP실을 쓰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가 다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지었다. 눈이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재밌으시네요. 알겠습니다. 제 직통은 전에 드렸고, 제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강실장이 재빨리 다가와 그의 명함을 해수에게 건네주었다.
“강실장에게 연락주시면 저와 동일한 권한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예, 그러죠.”
안서은 일행이 나가고, 마지막으로 경호원 김실장이 문을 닫기 전에 해수와 눈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절도 있게 숙였다.
해수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
병원 이사장과 동격인 안서은이 신해수의 병실로 병문안을 왔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담당의 외에도 과장급 이상의 의사들이 수시로 와서 불편한 곳이 없는지 묻고, 심지어 병원장도 왔었다.
“신해수 환자분, 불편한 건 없으십니까? 원하시면 VIP병실로 옮기셔도 됩니다. 당연히 추가되는 비용은 없어요.”
해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손을 들었다.
“아뇨, 그것보다 담당의사 외에 의사 선생님들이 너무 자주 오는데, 원래 이런 겁니까?”
병원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닙니다.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병실에서 사라졌다.
*
입원한 지 사흘 째, 모창귀는 연기인지 아직도 의식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해수는 운동을 하지 못하여 찌뿌둥한 몸을 약한 스트레칭으로 달래며 잠을 청했다.
그날 새벽.
투두두 투두두
“니네 뭐야! 이 새끼들아!”
퍽 퍽 콰장창!!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을 자던 해수는 벌떡 일어났다.
‘갈고리파?’
그는 주삿바늘을 뽑고 링거를 다는 철봉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열댓 명의 사내가 보였다. 그들의 손에는 야구방망이, 망치, 쇠파이프 등의 둔기가 들려 있었다.
바닥에는 쓰러져 있는 형사들이 보인다.
저벅 저벅 저벅
한 덩치 큰 사내가 모창귀를 어깨에 메고 가고 있다. 수갑은 절단기로 잘랐는지 창귀의 두 손이 자유로워져 있었다.
해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니네 뭐하냐?”
중저음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들이 뒤돌아섰다가 해수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리치료사다.”
“물리치료사도 있다는 말 없었잖아.”
“...시팔”
해수를 알아본다. 다잉나이트에 있던 놈들은 다 잡혀들어갔다. 그래도 알아보는 것은 갈고리파가 아니라 강쇠파라는 뜻.
몇 명 낯익은 얼굴을 보니 확실해졌다. 며칠 전에 결국 사망한 지네들 두목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해수는 철봉 끝으로 모창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내려놔, 내가 잡은 거야.”
< #19. 기업을 업은 경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