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나이트 입구, 수많은 경찰차와 구급차가 어지럽게 주차되어 있다.
안쪽에서는 피칠갑을 한 환자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끄으으”
“아악, 사,살살...”
현장은 급속도로 정리가 되었다.
신해수가 중앙을 쳐서 기세가 꺾이자 투입된 다른 경찰들도 적극적으로 제압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상자가 많아 순찰차로 경찰서보다는 병원으로 조폭들을 옮겨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행인 것은 경찰 중에 중상이나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는 경찰 측에 사망자가 한 명 있었다는 과거는 해수만이 아는 사실이다.
해수는 양쪽 어깨에 칼로 베인 상처가 대여섯 줄은 나 있었고, 허벅지에는 손도끼로 찍힌 자상이 있었다.
허벅지 상처는 리셋 후에 사망했던 경찰 한 명을 무리하게 구하다가 난 것이다.
치료를 받고 있는데 예전에 보았던 강력1팀 형사가 다가왔다.
키는 조금 작지만 다부진 근육에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형사, 오강석이었다. 그도 손과 어깨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신경장님?”
“예, 수고하십니다.”
“오늘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그... 물리치료사, 맞으시죠?”
해수는 잊고 있던 별명을 듣자 그때를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깡패들이 그렇게 부르던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 소문으로 듣고 검거 스타일이 멋있어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생각 많이 했었는데... 어쩌다 지구대를 지원하신 겁니까?”
“음...”
보통 형사과에 있다가 현장에 뛰기 힘들 나이가 들면 청이나 서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직 젊은데도 지구대로 오자 무슨 연유가 있어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해수는 자신이 지원한 것도 아니고 이런 질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 대답어려우시면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아쉽네요. 이런 인재가 강력팀이 아니라니... 다시 강력팀에서 일할 생각은 아예 없으신 겁니까?”
해수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작게 대답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아...?”
오강석은 해수의 대답이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반대로 생각하면 기회를 놓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강력팀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밀려났다고 유추할 수 있다.
강식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쁜 놈들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죠,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팀에서 가끔 순넷 콜해도 됩니까?”
눈치가 빠르다.
해수는 임순경을 슬쩍 보았다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그도 마주 명함을 꺼내어 해수에게 주었다.
‘강력 1팀 오강석 경위’
“연락주십시오.”
“옙! 그럼 수고하십시오.”
해수는 알고 있다. 지구대 대원들은 모두 경찰서로 넘기면 끝이지만, 형사들은 조폭들이 싸운 경위부터 해서 피해상황 조사와 브리핑 준비 등등 이 뒤에도 해야할 일이 산더미라는 것을.
‘이럴 때 보면 지구대가 편한 것 같기도 하네.’
근무 당시에는 더 바빠도 정시 출퇴근이 정해져 있으니.
해수는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응급실을 나섰다. 밖에는 사복을 입은 임순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순경, 왜 여기 있습니까?”
“신경장님 기다렸습니다. 차 없으시잖아요. 데려다드리겠습니다.”
부상이 없는 그녀는 바로 지구대로 가서 순찰차를 반납하고 자신의 차를 끌고 온 것이다.
“음, 예, 감사합니다.”
택시를 잡아도 되지만, 기다린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다.
임순경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조용히 운전만 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신경장님 따라다니다보면...”
해수는 그녀를 살짝 보았다. 무엇때문인지 감성이 가득한 눈빛이 되어버렸다.
“사명감이 절로 생기는 것 같아요. 경찰로서, 부끄럽지만... 원래 사명감같은 거 진짜 없었거든요.”
해수는 그녀의 말을 곱씹다가 대답했다.
“원래 그렇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경찰 면접 때 사명감, 정의감 있다는 건 열에 아홉은 거짓일 겁니다. 세상에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상에 불쌍한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자주 보다보면 사명감이 쌓이는 겁니다.”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이다... 같은 느낌이네요. 그래도 안 생기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해수는 문득 동남철을 떠올렸다. 그는 왠지 사명감따위는 쓰레기통에 쳐박아놓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놈은... 경찰 그만둬야지요. 경찰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종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하...”
해수의 극단적인 대답에 분노의 감정이 깃들어 있어, 임순경은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
강진서 형사과, 몸의 절반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조폭들로 가득 차 있다.
“똑바로 앉아 이 새끼야!”
“아이, 머리 때리지 마세요. 머리 나빠져!”
“저희는 정말 억울하거든요 형사님, 먼저 칼을 뻗는데 가만히 찔리면 죽는 거잖아요.”
“우리 깡새는, 깡새 살아있나요?”
“형사님, 저는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다잉나이트 패싸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갈고리파, 중국 지하세계에서 유명했던 칼잡이가 한국으로 넘어와서 만든 신생 조직이다. 조폭들도 각기 지키는 선이 있는데 그들은 따로 선 없이 마약 성매매 장기장사 등 돈이 되는 건 모두 손을 대면서 무지막지하게 세력을 넓혀왔다.
그러다가 강쇠파 세력권으로 들어온 것이다. 다잉나이트는 강쇠파 두목 강돌쇠의 애인 김마담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강진시에서 꽤 잘 나가는 강쇠파이기에 그녀는 갈고리파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서 굴러온 싸구려 양아치 새끼들이 썩은 내를 풍기고 지랄이야? 꺼져.
김마담의 무시와 혐오에 눈깔이 돌아간 갈고리파는 다잉나이트에 상주하는 강쇠파 부하들을 싹 썰어버리고, 그녀는 납치해서 장기를 적출한 뒤 속이 텅 빈 시체를 강쇠파 본거지 앞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다.
시체를 발견한 강쇠파 두목 강돌쇠는 눈이 돌아가 갈고리파 조직원들을 모두 죽여버린다고 모임이 있을 때 다잉나이트를 쳤다.
결과적으로, 강돌쇠는 그때의 충돌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헤- 헤- 헤엑-
그는 호흡 보조기를 달고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치명상으로는 폐에 칼 두 방, 목에 한 방, 몸 이곳저곳에는 열 방 넘게 찔렸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형사의 수첩에 글씨를 썼다.
[그 새끼들, 꼭 잡아주시오.]
***
택시 운전사와 응급차 접촉사고 건은 강진시 교통계에서 처리했다.
두 차량의 블랙박스를 대조했고, 택시 운전사는 사기,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업무방해, 공갈미수 혐의로 택시 면허 취소 및 벌금형 800만원을 받았다.
신해수는 순찰차와 택시 두 차량 수리비로 300만 원을 보상했다.
사망자만 여덟 명이 나온 다잉나이트 칼부림 사건은 뉴스 일면을 차지했다.
해수는 영광의 상처를 얻고 2박3일간 특별 휴가를 받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오후에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라면을 한 젓가락 크게 집어 들었을 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강력1팀 오강석 경위]
그는 라면을 입에 넣으려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신해수입니다.”
-예 신경장님! 오강석입니다. 몸은 괜찮습니까?
“다 나았습니다.”
-어허, 그러면 사람의 회복력이 아닌데, 아무튼 뉴스 보셨습니까? 이번에 사망자가 많이 나오긴 했어도 경찰들 대처가 좋았다고 칭찬이 많습니다.
“다행입니다. 경찰도 많이 다쳤는데 사망자 많다고 질타하면 억울하죠.”
-남의 일처럼 말하시네요. 공적에 신해수 경장님 이름을 특별히 강조해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팀장님께서도 동의하셨고요.
“그럴 필요 없는데, 감사합니다.”
-욕심도 없으시네, 챙겨야 합니다. 굳이 목표가 권력과 돈이 아니라도, 그래야 해야할 일을 할 때 방해가 없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조언이다. 해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예, 수고하십시오.”
호탕한 사내다.
내주서 강력팀은 다들 인성은 좋았지만 능력이 좋지는 않았다. 앞장서서 폭력배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사람도 해수 혼자였다.
그러나 어제 현장에서의 오강석은 그렇지 않았다. 해수도 배울 점이 있을만큼 제압술이 안전하고 뛰어났다.
해수는 그와 같은 팀이 되면 어떨까 상상해보며 다시 라면을 한 크게 젓가락 떠서 입에 넣기 직전.
띠리리리
[자산관리사 구세주 실장]
해수는 그 상태로 멈춰서서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전에 뺑소니 건이 있으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예, 구실장님.”
-신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저랑 같이 갈 곳이 있어요. 시간 언제 되십니까?
“급한 일입니까?”
-네, 나름대로 급한 일이죠, 대한은행 본사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이번에 해커한테 고객정보가 3만 건이 털렸대요. 근데 그 중에 신사장님 확인해보니까 있더래요. 아직 거기서 문자 안 왔죠?
“네”
-이 사람들 빨리빨리 처리 안 하고, 아무튼 정보만으로는 뭐 할 수는 없지만 신사장님 휴대폰까지 있으면 해킹해서 돈 옮길 수 있거든요. 불안하니까 은행 같이 가요. OTP랑 보안카드랑 계좌까지 다 재발급 받아야해요.
“그런 거라면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아뇨, 같이 가요. 이럴 때 확실하게 얘기해야 관리를 잘 해주죠, VVIP이시잖아요.
“그러죠.”
-그럼 집으로 갈까요?
“아뇨, 은행에서 봅시다.”
-예, 거기서 뵙겠습니다!
해수는 전화를 끊고 라면을 보았다. 다 탱탱 불어서 우동 면빨처럼 변했다. 그것을 한 젓가락 들어올렸는데 무슨 두부처럼 다 끊겼다.
해수는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옷을 챙겨입었다.
***
대한은행 동부지점.
은행직원 김은미는 점심시간이 되어 밖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았다.
-...다잉나이트 클럽 칼부림은 두 조직 간에...
뉴스에서 비춰지는 경찰들이 눈에 밟힌다. 이게 다 그때 소개팅 때문이다.
‘지가 뭐 그렇게 잘났다고 나를...’
은미는 신경질적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에잇, 밥맛 없어.”
“뭐야, 다 먹어놓고, 밥알 세 개 남았다 세 개.”
동료 직원들이 킥킥거렸지만 은미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처음으로 까였고, 그래서 더 미련이 남았다.
‘돈도 없고 돈도 못 버는 게...’
그렇게 이유야 어찌됐건 그를 생각하며 은행으로 복귀했는데, 대기의자에 낯익은 어깨가 보였다.
대기자가 열 명이 넘지만 그 자기주장 강한 어깨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은미는 힐끔 보았다가 다시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어머”
“은미씨 왜 그래?”
“아니 저, 소개팅, 하 웃기네 진짜.”
은미는 말로는 어이없어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왜, 헙! 저 어깨 깡패가 그 소개팅남이야? 찾아온 거야? 웬일이야 진짜!”
“그러니까, 해튼 남자들은 막무가내라니까”
“어우 여우, 해튼 얼굴 이쁘고 봐야 한다니까, 얘기 좀 하고 와요.”
은미는 어깨가 한껏 올라가 동료에게 손을 휘휘 젓고는 세상 도도한 표정으로 신해수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저 여기 일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임시아한테 물어봤어요? 일하는데 불쑥불쑥 찾아오면 안 되요.”
은미의 말은 차가웠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해수는 은미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대한은행 직원이라는 것은 기억하지만,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놀랐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하 참, 뭐야, 컨셉?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객님?”
“아 예, 저는 잠시 아는 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 말에 은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다가 대답했다.
“예 예 그러시겠죠, 그런데 저는 그쪽이랑 할 말 없거든요? 정 말하고 싶으면 끝나고...”
그때, 한 남자가 불쑥 들어왔다.
“신사장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길이 좀 막혀서.”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은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수에게 사장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많이 봤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름 돈 있는 사람들만 관리한다는 자산관리사다.
‘저 사람이 왜...? 그럼 나 진짜 착각한 건가?’
은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행 지점장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동부지점장 우진학입니다. 저희 지점 관할의 로얄 고객님을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에?’
지점장이 직접 나서서 맞이하는 것은 물론이고 로얄 고객이라고 표현까지 했다. 로얄은 다른 말로 VVIP고객으로 백억 이상 자산가를 뜻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금전사정과 직업을 알고 있으니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 중에 하나라면 자산관리사에게 말하는 거겠지.
“반갑습니다.”
그러나, 은미의 생각과는 달리 해수가 지점장의 손을 맞잡았다.
< #16. 강력1팀 오강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