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선 도로, 택시 운전사는 신해수에게 끌려가며 아득바득 소리를 질렀다.
“이거,이거 안 놔! 대한민국 경찰이 선량한 시민한테 이래도 돼?! 내 차 부수고 나 막 패고! 사람들이 다 찍고 있어! 넌 이거 영상 다 퍼져서 매장당할 줄 알아! 어!”
쾅!
해수는 손바닥으로 택시의 보닛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 커다란 소리에 택시 운전사는 화들짝 놀라며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블랙박스 돌아가고 있고, 번호 어떻게 됩니까?”
“번호는 왜...”
“번호.”
“공일공...”
해수는 그의 번호를 휴대폰으로 받아적어 전화까지 걸어 확인했다.
“며칠 안에 연락 갈 겁니다. 블랙박스 돌아가는 거 확인했으니까 조작하지 말고”
해수는 명함을 꺼내어 공포와 당황이 뒤섞여 멍하니 있는 택시 운전사의 손에 쥐어주었다.
“차 고칠 때 연락하세요. 다 보상해줄게요. 또 응급차 막는 짓 하지 마시고, 다음에는 택시가 아니라 아저씨 받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해수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남기고, 멍하니 서 있는 택시 운전사를 뒤로 하고 순찰차로 향했다.
*
주폭 건을 처리하고 지구대에 복귀했을 때 팀장이 해수를 불렀다.
“신경장! 택시 박았어?”
“예, 순찰차와 택시 보상은 사비로 하겠습니다. 택시 운전사가 연락 왔습니까?”
“아니 응급차 쪽에서, 위급한 환자였는데 덕분에 때맞춰 왔다고 감사하대, 수고했어.”
“아... 아닙니다. 수고하십시오.”
그 뒤로 주폭 건을 몇 건 더 처리하며 순찰을 마치고 복귀하는 중이었다. 이제 교대하는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간다.
지구대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임순경이 긴장이 풀렸는지 하품을 길게 하다가 다급히 입을 가렸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신경장님이 하품하는 건 한 번도 못 본 것 같습니다. 로보캅이신가?”
해수에게는 트라우마와도 같은 말, 해수는 입만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따라 일이 많아 해수의 얼굴에도 살짝 고단함이 보였다.
“저도 하품 합니다. 집에서.”
“역시 로보캅이야.”
“저 로보캅 안 좋아합니다.”
“앗, 죄송합니다. 아 이제 곧 끝나네요. 오늘은 진짜 바쁜 하루였습니다.”
임순경의 말에 해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직 교대자 안 왔는데, 그런 말 하면...”
-허억 허억, 여기 이백하나! 다잉나이트 떼폭! 이 새끼들 대가리수도 많고 칼부림 심합니다!
이백하나는 강진서 강력1팀이다. 목소리가 다급한 것을 보니 현장에서 무전을 친 듯했다.
-여기 백하나, 출동 가능한 순마 전부 다잉나이트로 송원 바랍니다.
-순열하나 송발합니다.
-순열넷 송발
-순열다섯 송발
다잉나이트는 서부지구대 관할이기에 서부쪽 순찰차들이 먼저 출발한다는 무전이 울렸다.
해수는 임순경과 눈을 마주하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순넷 송발, 임순경 들어가서 방검복 챙기세요. 팀장님한테 얘기해서 총 챙기시고.”
“예,옙!”
심상치 않은 오더에 임순경은 군기가 바짝 들어 크게 대답하고는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해수는 순찰차로 가서 미리 트렁크에 넣어두었던 방검복을 챙겨입었다.
현장으로 가는 길.
차 안에는 적막한 공기가 맴돌았다. 중간 중간 현장에 도착했다는 순마들의 무전만 들릴 뿐이다.
임순경은 옷자락을 꼭 붙들고 침을 꼴깍 삼켰다.
“칼부림 현장 가는 건 처음입니까?”
“예... 항상 여경이라는 이유로 빼서,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무섭긴 하지만... 데려가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전방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여경뿐만 아니라 형사들 외에는 대부분 이미 무력화된 자들 검거만 합니다. 가시면 뒤에서 형사들이 제압한 놈들 손목에 수갑만 채워주십시오. 눈 뒤집혀서 덤비는 놈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허벅지에 총 쏘시고.”
“...옙, 알겠습니다.”
대답이 시원치 않자 해수가 고개를 돌려 임순경을 보았다. 그 눈빛이 꽤나 매서웠다.
“망설이면 순직하는 겁니다. 마음 단단히 잡으세요.”
“옙!”
마침 다잉나이트 현장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피비린내가 확 풍긴다.
해수는 가라앉은 눈을 하고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갑시다.”
***
다잉나이트 내부, 검은 무리가 한데 뒤섞여 칼부림을 부리고 있다.
피가 사방에 낭자해 있고, 바닥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손가락들이 뒹굴러 다녔다.
정문과 후문, 양쪽에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무리가 있다. 바로 강력팀 형사들이었다.
강진서 강력1,3팀, 형사1,2팀 다 모였지만 그래봤자 스무 명 이하, 싸우는 인원은 대충 보아도 육십이 넘어가 한참 역부족이었다.
“야이 새끼들아 멈추라고!!”
타앙!!
천장을 향해 공포탄을 쏴도 잠시 멈칫할 뿐, 바로 눈앞에 상대가 칼을 들이미니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저 새끼들 봐! 눈 돌아갔어, 가서 좀 말려봐!”
“전 방금 이 새끼 잡다가 어깨 찔려서, 오갱아!”
“잡고 있습니다!”
오갱이라 불린 날카로운 인상의 형사는 한 명씩 끌고 나와서 확실하게 제압을 하고 있었다.
놈들은 형사들을 귀신같이 구별하고 안 건드린다. 대놓고 덤비면 총이라도 쏠 텐데 이럴 때는 난감하다.
이런 두 조직 간의 칼부림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건 싸움을 말리는 순간이다. 싸우는 도중에 끼어들면 반사적으로 칼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강력1팀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오갱이라는 형사를 제외하고는 다들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새끼들이 단체로 약을 빨았나, 경찰 앞에서 살인하고 지랄이야!”
아무리 노련한 형사라도 피튀기는 현장에 몸을 들이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순열다섯 송착
-순열하나 송착
“도착하면 다 바로바로 들어와요! 인원이 모자라!”
형사의 외침에 경찰복을 입은 경찰들도 진입했으나 조폭들의 살벌한 기운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우어억!”
몇 명은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피를 밟고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순넷 송착, 진입합니다.
형사들은 눈에 띄는 경찰복을 입은 자들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진짜 도움 안 된다니까”
“이런놈들 잡는 건 우리가 전문이지, 쟤네가 전문이냐? 차라리 내주서 강력팀에 지원 요청할까?”
“걔네 도착할 때면! 얘네 다 죽어!”
오갱이 또 다른 조직원들을 말리며 소리쳤다. 다른 형사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검거하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강요할 수는 없었다.
“시팔 그냥 다 쏴버릴까?”
강력1팀 팀장이 고민하던 때였다. 반대편 뒷문 쪽이 술렁술렁거렸다. 원인은 시꺼먼 조폭들 사이로 깊숙이 들어온 한 경찰이었다.
‘근무복?’
*
저벅 저벅 척
신해수의 뒤를 따라 나이트클럽 뒷문으로 들어온 임순경은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찌르르 돋아나고 몸이 얼어붙었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때문도 아니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손가락 때문도 아니다.
‘살기...’
사람이 사람을 반드시 죽이고자 할 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그 지독한 살기가 장내를 꽉 채우고 있어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흉기를 휘두르는 현장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임순경, 임순경!”
“예!”
임순경은 반사적으로 크게 대답했다. 동시에 가출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제야 현장을 보는 시야가 조금 더 커졌다.
“정신차리고, 나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다른 경찰분들과 같이 대기해.”
“예? 아닛, 저도 따라...”
임순경은 차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임순경은 물론 다른 남자 경찰들도 피를 뿌리는 다른 조폭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트너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임순경은 이를 악물고 해수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니, 총도 안 가지고,대체 어떻게 하려고...’
해수는 총도, 진압봉도 들지 않고 그저 방검용 장갑 하나만 착용하고 거침없이 칼부림하는 조폭들에게 다가갔다.
“뭐야 이 시팔!!”
한창 적에게 칼을 찔러대던 사내가 해수가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동자에는 멈출 수 없는 광기와 진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이 미친 칼질을 멈추려면 방법은 하나다.
턱
해수는 칼을 쥐고 있는 그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손목을 비틀었다.
“끄악!”
손목 뼈가 부러졌어도 칼을 쉬이 놓지 않는다. 칼을 놓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
“죽어!”
그 사이 다른 사내가 해수가 잡고 있는 사내에게 손도끼를 휘둘렀다.
해수는 사내를 뒤로 끌어당겨 손도끼를 피하게 하고, 손도끼를 든 사내의 가슴팍을 발로 차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잡고 있는 사내의 팔을 확 꺾었다.
우드득!
“아아악!”
아까보다 더 큰 비명이 들려왔다. 사내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팔꿈치 안쪽이 마치 팔꿈치처럼 툭 튀어나와 있고 살이 찢겨져 있다. 그곳에는 허연 뼈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제야 사내는 칼을 놓치고 말았다.
해수는 이제 무기가 없는 그를 뒤쪽 경찰들이 모여있는 곳에 밀고 다음 상대를 찾아갔다.
경찰들은 해수가 던진 사내에게 재빨리 붙어 수갑을 채웠다.
임순경은 처음 이 단체 살육 현장을 들어왔을 때 느꼈던 충격만큼, 해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해수의 행동은 단순했다. 상대가 덤벼들면.
“이야아!”
턱
무기나 팔을 잡고,
우드득
“끄아아악!”
비튼다.
어설프게 비틀지 않는다. 반대편 살이 찢기고 힘줄과 혈관이 끊어지고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비틀어 일시적으로 무력해진 상대를 뒤로 밀어버린다.
마치 경찰관들에게 뒷처리 할 먹잇감을 던져주듯이.
“뭐,뭐야 저 사람은?”
“미쳤네, 겁 없네 진짜.”
“손속이 잔인하잖아...”
경찰들은 저마다 해수를 보고 감상평을 뱉었다.
그때, 해수는 안 되겠는지 제압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수가 너무 많아, 더 빠르게...’
잡고 꺾고 던지는 방식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사이 공격도 받는다. 벌써 해수의 양쪽 어깨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확실하게 제압하지는 못해도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해수는 오른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턱
“야.”
해수가 어깨를 붙잡자 한 사내가 확인도 안 하고 돌아서며 손도끼를 휘둘렀다.
해수는 가드를 올리며 가까이 붙어 그것을 막고 주먹을 뻗었다.
퍽
코를 정통으로 맞은 사내가 비틀거리는 사이 한 번 더 주먹을 휘둘렀다.
뻑!
해수의 주먹이 턱에 꽂히자 사내는 눈을 뒤집어 까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한 놈이 후다닥 달려와 쓰러진 사내의 목을 칼로 찌르려고 했다.
해수는 달려오는 그에게 주먹을 올려쳤다.
콰앙!!
달리는 속도에 더하여 해수의 주먹을 맞은 사내는 지면에서 3센티 쯤 붕 떠올랐다가 그대로 엎어졌다.
퍽 퍽! 쾅!
해수가 제압이 아니라 주먹을 쓰자 장내에 쓰러지는 조폭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임순경은 해수가 지나간 길을 따라 늘어져 있는 조폭들을 보며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괴물이랑 일하고 있었구나.’
*
강력1팀 팀원들은 급속도로 전쟁터 중앙으로 파고 드는 경찰관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뒤로 다른 경찰관들은 그가 무력화시킨 조폭들의 손목에 수갑만 열심히 채우고 있었다.
“뭐야, 저거 누구야?”
“누구냐? 우리 오갱이만치 하는데? 아닌가?”
“그 형사, 아니 그 경장이네! 이번달 검거율 1위! 그그 신해수!”
날카로운 인상의 형사, 오강석은 한 조직원의 팔을 꺾고는 눈을 좁히며 경찰관을 힐끔 보았다.
‘저 모습 낯이 익는데... 신해수, 신해수, 내주서 형사 출신...’
“아! 생각났다.”
“뭐가?!”
“물리치료사! 물리치료사였네! 신경장이”
물리치료사, 조폭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별명이다. 한 번 그의 눈에 띄면 반 불구가 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현장 뛸 때마다 본인은 금융치료 쎄게 받는다는 이상하고 무서운 소문이 난 형사였다.
덕분에 그가 현장에 뜨면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잡히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오강석은 예전에 내주서와 합동수사를 했을 때 저 모습을 본 기억을 용케 떠올린 것이다.
‘맞아, 이름은 몰랐지만 그가 분명해.’
< #15. 떼폭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