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4화 (14/255)

‘제가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자입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신해수는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구실장이 겪은 일로 인해 그것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해수가 직접 인정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구실장이 아무리 심성이 선하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돈을 다루는 사람이다.

사람은 권력과 돈 앞에 수없이 변한다. 천사가 악마로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신의 능력을 말하고 상대가 믿는다면 이 선한 사람도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든 이용하고 싶어할 지 모른다. 상대도 망칠 수 있는 길이다.

그에 반해 장점은?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없다. 생각나더라도 치명적인 단점을 커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 혼자만 아는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

“외상 후 기억 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맡았던 사건의 피해자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사고가 만약 크게 났으면 어떻게 될지 극단적인 상황을 뇌가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아, 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그때 행동에 대해 설명하라면, 저는 그저 리드 빌딩을 보러 가는 중에 차가 역주행 하는 것을 봤고, 아슬아슬해 보여서 뛰어든 것 뿐입니다.”

구실장은 해수의 흔들림 없는 눈을 바라보다가 다짐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시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신사장님이 저를 구해주셨다는 겁니다. 다시 살아난 목숨, 신사장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부담스럽습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사장님을 부유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라면이나 드십시오. 다 뿔었습니다.”

“넵!”

후루룹 챱챱

해수와 구실장은 국물을 쭉 빨아들여 퉁퉁 불은 라면을 한 입에 들이켰다.

그날 밤.

해수는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구실장이 유독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리셋은 고작 한 시간, 한 시간이면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다. 대상을 살리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의 능력이 의심받지 않기 위해 행동한다?

‘안되겠다.’

해수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이런 걸 신경 쓰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대상이 죽는다면?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리셋 후에도 놓친 생명이 둘, 그때부터 밤마다 눈을 감으면 그때 상황이 떠오르며 ‘이렇게 하면 살릴 수 있었을까? 이렇게 했다면?’ 수만 가지의 상황을 시물레이션하며 불면증이 생겼다.

그나마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최선을 다했었다.’라는 것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무너질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것만 생각하자.’

***

다음날.

신해수는 새벽부터 일어나 런닝복을 입고, 하천을 따라 길게 나 있는 산책로를 뛰었다.

오늘은 비번이기에 오랜만에 2시간을 채우려다가 거의 다 채웠을 때쯤 칼에 찔린 상처가 따끔거려 그만두었다.

‘불편하네.’

이십대 초반에는 금방 아물었는데, 역시 나이가 드니 회복력도 전과 같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피도 살짝 새어나온다. 해수는 환부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장 신해수입니다.”

-안서은입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차분하고 절제된 어투, 목소리도 깔끔하고 좋은 편이라 마치 아나운서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예, 괜찮습니다.”

-만나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언제 시간 괜찮으신가요?

재벌 딸이 왜 경찰을 만나자고 할까? 그것도 저 밑바닥 경찰을, 해수는 긍정적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 앞에서의 행동을 떠올리면 그녀가 나쁜 의도로 접근하지는 않을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지금 시간 됩니다.”

해수의 답변에 수화기너머로 듣기 좋은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약간 사람같다.

-호쾌하시네요. 어디로 갈까요?

“예, 여기가...”

잠시 후, 해수의 집 앞 편의점.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외제차가 편의점 앞에 주차되어 있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는 해수와 안서은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의자에는 강실장이 깔아놓은 손수건이 놓여있고, 강실장은 그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서 있었다.

해수는 단지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그녀에게 밀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투 플러스 원이라 괜찮습니다.”

“투 플러스...예.”

해수가 또 하나를 강실장에게 건넸다. 강실장은 당황하다가 안서은의 눈빛을 받고나서야 받아들였다.

서은은 빨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해수를 힐끗 보고, 빨대에 붉은 입술을 대고 바나나 우유를 한 번 쭉 빨아들였다.

신기하게 빨대에 립스틱이 묻지는 않았다.

“이사님이 이 밑바닥 경찰을 만날 이유를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더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단도직입적이시네요. 그때 옆에 있던 김실장님은 대성 가드에서 팀장직을 하던 나름대로 실력 있는 경호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을 속수무책으로 밀어낸 난동자를 신해수 경장님께서는 손쉽게 제압하셨죠.”

“시간은 짧지만 손쉽지는 않았습니다. 힘이 남다른 놈이라”

안서은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해수에게 눈을 똑바로 맞추었다. 전처럼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인다.

“신해수씨를 개인 경호원으로 채용하고 싶습니다. 연봉은 만족스럽게 맞춰드리겠습니다.”

만족스러운 연봉, 안서은 개인이 직접 스카웃하는 것이니 최소 1억은 될 것이다.

대성그룹의 본부가 흉흉한 강진시에 있으니만큼 경호원은 필수인데, 믿음직스러운 실력자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대부분 운동 조금 했던 깡패들이니.

해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침묵을 지켰다.

한 번에 쭉 들이킨 빈 우유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제야 해수가 입을 열었다.

“안서은씨 옆에 있으면 나쁜놈 많이 잡습니까?”

“예?”

“나는 돈 벌려고 경찰 하는 게 아니라 나쁜놈 많이 잡으려고 합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아... 저, 까인 건가요?”

“아마도요.”

그녀가 살풋 웃음지었다. 제안을 거절당한 사람의 반응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고급스럽다.

“어쩔 수 없죠, 신해수씨 같은 분을 경찰직에서 빼내는 것도 국가 치안에 큰 손해겠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곤 핸드백에서 금색 봉투를 꺼내어 해수에게 밀었다.

“이건 원래 드리려던 선물이니 놓고 갈게요. 신경써서 준비했으니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거...”

“돈 아니에요.”

해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을 그 자리에서 열어보았다. 고아원 기부 증서다. 신해수 이름으로 1억.

“음...”

해수의 애매한 표정에 안서은이 미소지었다.

“고민 많이 했는데 절반은 성공한 것 같네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은... 예, 선물은 잘 받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녀는 거절을 당하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더 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고상하게 발을 내딛으며 편의점에서 퇴장했다.

잠시나마 편의점이 고급 레스토랑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재벌 3세들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모난 구석이 없다더니, 그게 진짜인가보네.’

재벌마다 극과 극이지만, 어설픈 졸부들 외에 해수가 만난 첫 재벌인 안서은의 언행은 재벌의 편견을 깨기 충분했다.

“아”

차 문이 닫히기 직전, 해수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이자 그것을 빠르게 캐치한 안서은이 문을 닫는 강실장을 저지했다.

“그리고 그 김실장이라는 친구는 다시 받는 걸 추천합니다. 상대가 안 좋았지, 대처가 나쁘지 않았거든요. 제가 없었어도 안서은씨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음... 그건 고려해보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해수는 안서은이 탄 차의 뒷모습을 잠시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고 야외 테이블에 놓인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

차 타고 돌아가는 길, 안서은은 사이드미러로 그 모습 보았다.

“참 경찰이네요. 그쵸?”

“네, 신해수씨같은 경찰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강실장은 해수가 자신에게 바나나우유를 건네준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좋은 쪽으로.

“실장님 신해수씨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강실장은 뜨끔하여 강하게 부정했다.

“제가요? 아니요? 경찰 싫어하면 벌 받습니다.”

안서은은 입을 가리며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참 경찰이라...’

***

“아니 그러니까 계산한다니까! 카드 받으라고 카드! 현금 줘야돼??!”

“계산 안 해도 되니까 앉으세요. 그거 카드도 챙기시고, 뭐야 이 카드는, 유희왕?”

“아니 이 아줌마가 먼저 나한테 추파를 날렸다니까?”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 이 할아배야!”

신해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구대는 여전히 술냄새가 풀풀 풍긴다.

해수는 임순경과 함께 한 주취자 여성을 지구대 의자에 앉혀놓고 한숨 돌렸다.

“에고, 오늘따라 주폭 신고가 많네요.”

“술이 웬수입니다.”

-여기 백하나, 용수동 주폭 신고입니다.

“후, 순넷 송발합니다.”

오자마자 바로 또 주취자 난동 신고다. 해수는 무전기로 대답하고 바로 발을 떼었다.

상황실에서 전송한 위치로 네비게이션을 찍고 가는 길, 좁은 이차선에 차가 막혀있는 것이 보였다. 근처에 신호등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뭐지, 사고 났나봐요.”

가운데에 차 몇 대가 엉켜있어서 양쪽 차로가 꽉 막힌 상태였다. 그곳에는 응급차와 택시도 보였다.

택시 운전사로 보이는 중년인이 나와서 응급차 운전수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다.

“사고 났잖아! 거기가 중앙선 침범해서! 어딜 튀려고?”

“저희가 응급환자가 있어서 빨리 가야합니다. 양해좀 해주십시오. 갔다 와서 얘기하자고요.”

“응급환자? 시팔 웃겨서 진짜, 환자 뒤지면 책임 질 테니까 119 불러서 보내! 내가 사설 응급차 안 해봤을 것 같아? 다 알아! 니네 차 안에 응급구조사 없어서 빨리 가려는 거지?”

“있습니다. 좀 비켜주세요.”

“있어? 시팔 내가 확인해야지, 이 사기꾼 새끼들.”

대화를 조금만 들어도 상황이 파악되었다. 상황 파악이랄 것도 없이 응급차가 있고 환자가 있다면 우선순위는 뻔했다.

해수는 차선을 이탈하여 앞차를 넘어가며 말했다.

“임순경 꽉 잡아요.”

“예? 예!”

부아아앙 콰앙!

해수의 순찰차가 택시를 과감하게 박아버렸다. 밖에 있던 택시운전사는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콰직!

그리고 한 번 더, 그제야 택시가 차선을 이탈하여 도로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뭐,뭐하는 거야 이 미친 경찰 새끼야!!!”

해수는 짖어대는 택시 운전사를 무시하며 차를 뒤로 빼며 응급차 운전수에게 말했다.

“먼저 가십시오.”

“아... 예! 감사합니다!”

응급차 운전수가 차에 타려고 하자, 택시 운전사가 이를 악물며 따라붙었다.

“어! 어딜 가려- 컥!”

해수는 차에서 내려 택시 운전사의 멱살을 잡고 구석으로 질질 끌고 갔다. 블랙박스나 휴대폰 촬영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저씨는 나랑 얘기합시다.”

< #14. 응급차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