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신해수의 세상이 한 꺼풀 벗겨진다. 퇴근 전으로 돌아왔다.
해수는 나비효과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비슷하게 행동하며 동일한 시간에 퇴근을 하고, 오토바이에 올라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하필...’
해수는 카메라에 찍히든 말든 빠른 속도로 사고가 났던 사거리로 향했다.
신호 대기 중, 손이 덜덜 떨린다. 그냥 시체를 만졌던 감촉같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리셋은, 자신의 손에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부담감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기에.
게다가 지금처럼 일촉즉발의 상황일 경우에는 더더욱.
부아아앙!
해수는 사고가 났던 강화 사거리에 리셋 전보다 최소 5분 정도 빠르게 도착했다.
그는 역주행 차량 빠른 대응을 위해 횡단보도 쪽에 오토바이를 정차시키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원래 자산관리사는 전화 잘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해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며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구실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찾아가서 미리 막으려다가 만나지 못하면 막을 수 없다. 이곳에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변수는 가장 낮다.
‘음?’
맞은편에 수상한 사람이 보인다. 후드 깊게 눌러 써서 얼굴을 가렸다. 체형을 보니 여성이다. 그녀의 입이 계속 움직이는 것을 보면 통화를 하는 듯했다.
그녀는 초록불이 떠도 건너지 않아 해수의 의심을 돋웠다.
그녀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돌아서며 입 모양이 약간 격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에 닿았던 곳에 구실장이 나타났다.
구실장이 뛰어온다. 리셋 전과 똑같이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아슬아슬하게 건넌다.
부아아앙!
연이어 역주행으로 거칠게 달려오는 차가 보였다. 해수는 구실장을 보며 소리쳤다.
“구실장 멈춰!!”
호랑이 같은 포효에 구실장이 화들짝 놀라 멈추었다. 말은 잘 듣는다. 그는 횡단보도 정중앙에 멈춰서 있었다.
이전보다는 다른 위치지만 감이 안 좋다. 달려오는 승용차의 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해수는 급하게 오토바이의 액셀을 확 당겼다. 검은색 승용차가 리셋 전과는 달리 핸들을 꺾어서 구실장에게 대가리를 들이미는 것이 보인다.
끼이이익-! 쾅!
간발의 차이로 해수가 구실장을 낚아 챔과 동시에 검은색 승용차의 앞범퍼가 오토바이의 뒤꽁지를 박았다.
“큭”
“으악!”
오토바이가 빙글 돌며 해수와 구실장이 같이 튕겨나가 도로를 굴렀다. 차는 그대로 도주했다.
해수는 다급하게 일어나 구실장을 살폈다. 다행히 어디 하나 부러진 곳 없이 간단한 타박상으로 보인다.
구실장은 헬멧이 벗겨진 것을 보고 해수를 알아보았다. 그의 눈이 토끼 눈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신사장님?!”
“병원부터 가세요.”
해수는 짧게 말을 남기고 바로 오토바이를 일으키고 액셀을 당겼다. 뒤가 살짝 부서졌지만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해수는 저 끝에 보이는 검은색 승용차를 쫓으며 112에 전화를 걸었다.
한시가 급할 때는 상황실에 전화하는 게 지원을 받기 좋다.
-긴급출동 112입니다.
“동부지구대 신해수 경장입니다. 뺑소니범 현장에서 보고 쫓고 있습니다. 강화 사거리에서 고가도로 방향으로 도주 중, 검은색 소타나, 21 무지개 무 330”
-21 무 330, 대포차량 같네요. 놓치면 안되겠어요. 통화 지속 가능하시면 위치 계속 알려주세요. 지원 순마 보낼게요.
브르르릉!
해수는 검은색 소타나를 쫓으며 위치를 계속 전송했다. 쫓는 중에 아까 횡단보도에서 보았던 그 수상한 여자가 떠올랐다.
‘지금은 저 차 잡는 데 집중한다.’
조금 따라가니 신호가 빨간 불이어서 차들이 정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줄이 평소와는 달리 긴 것이 도착한 경찰이 신호기를 조작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검은색 승용차는 지체 없이 바로 역주행을 시도했다. 때마침 순찰차 두 대가 튀어나와 소타나의 앞을 완벽히 가로막았다.
브아아앙! 콰아앙!!
소타나는 마치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것처럼 고민없이 순찰차를 박아버렸다. 두 개의 순찰차가 붙어있는 그 사이를 박아버려 길을 개척하고 다시 뚫고 지나갔다.
시간이 촉박하여 스파이크 트랩은 설치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덕분에 해수의 오토바이와 검은색 소타나의 거리가 확 좁혀졌다.
바로 옆에 달라붙자 운전자가 쌍심지를 켜고 해수를 보더니 핸들을 확 틀었다.
끼이익-!
해수도 재빨리 바퀴를 틀어 소타나와의 충돌을 피했다.
운전자가 다시 부딪히려고 각을 재는 모습이 보인다. 해수는 살짝 뒤로 빠져 잘 보이지 않는 뒷좌석에 붙으며 발로 창문을 깠다.
쾅 콰직!
그리고 창문이 부서지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오토바이를 발로 박차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 개새끼야!!”
해수가 간신히 들어오자마자 운전자는 품에서 칼을 꺼내어 뒤돌아서 휘둘렀다.
푹 턱-
한 번은 대응할 시간이 없어 어깨에 찍혔지만 잠깐 따끔할 뿐 타격은 거의 없었다. 두 번째에는 칼을 잡고 있는 놈의 손목을 잡아챘다.
다른 손으로 놈의 목울대를 잡고 차 천장에 올려쳤다.
쾅!
“컥!”
아직 칼을 놓지 않았으니 한 번 더.
콰앙!!
그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3시 방향에 덤프트럭이 덮치고 있다. 해수는 놈을 버려두고 다급히 사이드브레이크를 확 당기면서 핸들을 꺾었다.
끼이이이익- 콰장창창!!
해수와 운전자가 같이 앞유리를 깨고 밖으로 튀어나가 나뒹굴었다. 다행히 덤프트럭에 깔리지는 않았지만 배가 따끔거렸다. 고개를 내려보니 배에 칼이 박혀 있었다.
“이런”
“끄, 끄으...”
운전자가 뒤늦게 일어나 비틀거리며 해수와 반대편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때 막 도착한 경찰들이 놈을 포위했다.
“이, 이야아아!!”
지지지지지-
놈은 포기하지 않고 덤비려다가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졌다.
***
대성병원 응급실 입구, 119 구급차 한 대가 도착했다.
뒷문이 열리며 배에 칼이 박힌 남자가 자기 발로 내려 걸음을 옮겼다.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그를 부축했다.
“괜찮습니다. 혼자 가겠습니다. 계속 수고해주십시오.”
“아... 그럼.”
해수는 구급대원을 보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배 안으로 들어온 칼날이 안을 휘젓지 않게 아주 천천히.
해수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는 아닌지라 119에서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아 의료진이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해수가 칼을 한 손으로 받힌 상태로 응급실에 들어가자 사람들의 이목이 확 집중되었다.
간호사 한 명이 그 모습 보고 다급하게 달려왔지만 바로 바짝 붙지는 못했다. 살짝 경계 눈빛이 보인다.
“화,환자분 이리로 오세요. 강선생님 경찰에 연락 넣어주세요.”
칼 총 등 흉기로 다친 경우 경찰에 연락을 취하는 것이 의무다. 해수는 품에서 경찰공무원증을 꺼내어 간호사에게 보여주었다.
괜히 형사들 바쁜데 쓸데없이 왔다갔다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신고 들어간 건이라 괜찮습니다.”
“아, 아 경찰이셨구나,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그제야 간호사의 얼굴에 긴장이 사라지며 의사를 부르러 갔다.
그렇게 잠시 대기 중인데 옆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시,신사장님!!”
목소리의 주인은 구실장이었다. 그도 타박상으로 같은 병원에 와 있던 것이다. 그는 해수의 배에 칼이 박힌 것을 보고 기겁했다.
“이,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아까 차 쫓았잖아요!”
“목소리 좀 낮추십시오... 그 뺑소니범이 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잡았으니 걱정 마십시오.”
구실장은 해수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덜덜 떨었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저때문에...”
“별거 아닙니다. 전화는 왜 안 받습니까?”
“아, 떨어트렸는데 박살나서... 어떻게 배에 이런 칼이, 아직 젊으신데, 다 누리지도 못하셨는데...”
“누가 죽습니까? 왜 멀쩡한 사람을 죽여요.”
구실장은 해수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고개를 떨군 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이렇게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나?’
그때 마침 의사가 왔고 구실장은 쫓겨났다.
해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칼을 뽑고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장기는 다치지 않았지만 열 바늘을 넘게 꿰매어야 했다.
입원을 권했지만 해수는 통원치료를 하기로 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 구석에 구실장이 먼저 가지도 않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기다리셨습니까?”
“당연하지요! 제 생명의 은인이 생사를 오가는데...”
“생사 오가는데 당일 퇴원합니까? 아 구실장님, 시간 됩니까?”
“조금 중요한 약속이 있긴 있는데...”
“취소하고 같이 경찰서로 갑시다.”
“...예? 제가요? 제가 왜...”
경찰이 경찰서로 가자고 하니 구실장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무서워했다.
“그 뺑소니범 단순 사고 아닙니다. 계획범죄 가능성 있어요.”
“그게 무슨... 그럼 저를 누가...”
“예, 그러니까 가서 확인해야죠.”
“알...겠습니다.”
해수는 구실장과 함께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병원 정문 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
“에이 시팔!!”
“어어어!”
“어억”
보통 성인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덩치 큰 사내가 욕을 내뱉으며 몸을 비튼다. 그러자 그에게 달라붙어 있던 병원 경비 네 명이 흔들흔들거렸다.
바닥에는 덩치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도리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강선미만 내놓으라고! 말로 한다고!”
“으윽!”
덩치의 힘이 장사다. 네 명이 한 명에게 끌려다니는 귀한 모양새에 구경꾼들이 많다.
또각 또각 또각
그때, 정문 안쪽에서 검은색 투피스를 입은 한 젊은 여자가 의료진을 대동하며 도도하게 걸어나왔다.
그녀의 양옆에는 남자 둘이 딱 붙어 있었다. 스프라이트 정장은 비서, 검은 정장은 경호원으로 보였다.
그녀의 등장에 구경꾼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텄다.
그녀는 겁도 없는지 덩치 사내와 두 발짝 사이에 마주 섰다.
“무슨 일이시죠?”
“넌 뭐야? 강선미 데리고 오라고!”
덩치가 위협적으로 노려봐도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강선미씨 데려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덩치도 그녀의 옷차림이나 뒤에 경호 중인 사내들을 보고 높은 직책이라고 생각했는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 년이 나만 보기로 해놓고 딴 새끼들도 만지고 지랄하는 거 다 봤어, 꼭지가 안 돌겠어? 어?! 그 년 데려와! 대가리 빠갤라니까!”
설명하다보니 다시 흥분한 덩치였다. 해수의 눈에 사람들 사이에 유난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간호사가 보였다. 명찰에는 강선미라고 적혀 있었다.
뻔하다. 환자로 있을 때 조금 잘해주니 간호사에게 반하여 애인이 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스프라이트 정장을 입은 사내가 여자에게 다가가 속닥거린다.
그러자 여자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고는 뒤에 숨어있는 강선미와 사내를 번갈아 보았다. 상황파악이 완료된 듯하다.
그녀는 처음보다 차가운 눈으로 덩치를 보며 입술을 열었다.
“더 들을 것 없네요. 경찰에 넘기세요.”
“뭐, 뭐이 시팔년아?! 너부터 죽여줄게!”
경찰 얘기에 그가 발작하며 품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경호원이 재빨리 여자의 앞을 막아서며 그의 칼 든 손목을 낚아채었다.
타닥-
“이거 안 놔 씨팔!!”
여자는 한 걸음 물러섰고 경비들도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손목이 워낙 두꺼워서 경호원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옆으로 밀린 것이다.
그 틈에 덩치가 칼을 여자에게 뻗었다. 찰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자신에게 칼을 뻗으며 다가오는 덩치의 얼굴이 지옥에서 막 나온 악귀처럼 보였다.
턱
그때, 덩치의 얼굴에 커다란 손이 덮쳐졌다. 그러고는 아무도 말리기 힘든 난폭한 멧돼지같던 사내가 무기력하게 운동방향의 정반대로 넘어갔다. 칼도 당연히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쿠우웅!
뒤로 넘어간 덩치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주 가까이에 낯선 남자가 보인다.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을 넘어트린 장본인임을 눈치 챘다.
덩치는 상체를 일으키며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넌 뭐야! 이 새-”
콰앙!!
덩치는 뭘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다시 무기력하게 바닥에 찍혔다. 뒷통수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으득
“끄, 끅”
그 남자가 덩치의 목울대를 지그시 밟으며 내려다보았다. 벌레만도 못한 것을 보는 그 눈빛, 자칫하면 이 하찮은 목을 부러트리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덩치는 생존본능이 발동하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얼어붙어 있었다.
남자가 그 자세 그대로 휴대폰을 들었다.
“동부지구대 신해수 경장입니다. 대성병원 정문 흉기난동 건 있습니다. 제압했으니 검거할 순마만 보내주십시오.”
< #12. 배에 칼이 박힌 경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