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이 된 호프집.
“꺄아악!”
직원이 쓰러지자 손님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은미 역시 동요 되어 안색이 파래져 있었다.
“으으”
“일어나 이 새끼야!”
덩치가 직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강제로 일으켰다.
그 모습에 신해수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덩치가 다시 직원의 따귀를 때리기 위해 손을 번쩍 들어올렸을 때, 누군가의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턱.
“저기.”
해수가 일어나는 것을 곁눈질로 본 덩치는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가 뒤지려고 환장했...”
말꼬리가 늘어진다. 덩치의 눈이 점점 커진다. 그의 눈동자에 싸늘한 눈빛의 해수가 가득 찼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던 덩치의 표정이 단계적으로 순하게 펴졌다. 그는 해수의 눈을 피해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며 최대한 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요. 형사님께서 여기 계신 줄도 모르고 제가 감히 시끄럽게 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순발력 있게 뒷말을 바꿨지만 해수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자, 유리조각과 술이 널브러진 바닥에 절하듯이 바짝 엎드렸다.
뒤에 있던 덩치들도 해수를 발견하고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몸을 떨며 똑같이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해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얼굴이 기억 나지 않는다. 지금 그들의 손과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면 직접 손봤던 자들은 분명하다.
호프집 안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해수에게 초집중되어 있었다.
형사님이라는 말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해수는 그저 조직 두목으로 보일 뿐이다.
해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은미를 슬쩍 보았다가 그들을 보았다.
“일어나요.”
“용서해주시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않겠습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자, 해수의 목소리가 한 음 더 낮아졌다.
“일어나.”
터덕 터더덕
그 싸늘한 목소리에 위협을 느낀 덩치들이 재빨리 일어나 해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눈치를 아예 말아먹지는 않은 듯했다.
“어디서 왔어요. 거기 뒤에는 직원분 일으켜주시고.”
“옙 알겠습니다!”
조폭들은 자신의 조직명을 입에 담지 않는다. 조직명을 두고 활동한다는 위법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개송동에서 왔습니다. 형사님.”
“개송동... 뒤돌아서 직원분께 사과하시고”
해수의 말에 세 명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직원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직원분은 사과 받아주지 않으셔도 되고, 경찰 불러서 폭행 건으로 넣으셔도 됩니다.”
해수의 말에 급 고분고분해진 덩치의 모습에, 같이 있던 여자가 덩치 중 한 명의 팔을 잡아당기며 쫑알거렸다.
“뭐야? 왜 이 지랄이야, 셋이서 한 명한테?”
“제발 아가리 좀 싸물라, 쉿, 쉿”
따귀를 갈겼던 덩치가 직원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제 잘못이니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청소도 해야죠.”
“옙, 당연합니다!”
그들은 얼굴이 벌개진 상태에서도 술이 확 깨서는 직원과 손님들께 사과를 하고 청소까지 했다.
해수가 경찰을 부르기를 추천했지만 직원은 보복이 무서워서 인지 극구 부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덩치는 감동을 받아 합의금 대신으로 지갑에 있는 5만원 권을 전부 그의 주머니에 꽂아주었다. 10장 가까이 되어 보였다.
해수는 소개팅 중에 상대방 앞에서 무력을 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저분한 곳이 다 정리되고 덩치들이 가게에서 나가자, 그제야 은미의 가출한 정신이 돌아왔다.
‘뭐야, 이 박력은...’
물리력은커녕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았는데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것도 건장하고 험악한 사내들 세 명을 상대로, 이런 경험은 은미에게 생전 처음이었다.
따귀를 내려치려는데 손목을 잡아 채는 모습은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았다.
‘팔뚝에 힘줄도 장난 아니었지.’
그때, 건조한 목소리에 걱정 한 방울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자리 옮길까요?”
“아...뇨, 방금 나간 사람들은... 왜 그런 거예요?”
“음, 저도 이전에 그들의 대화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아뇨, 그쪽한테”
“그건, 전에 내주서 있을 때 마주쳤던 폭력배들이어서 제가 형사인 것을 알아봐서 그렇습니다. 형사와 폭력배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라기에는 심하게 떨던데...’
김은미는 해수를 힐끔 보았다. 저 날카로운 인상과 태평양 같은 어깨가 매우 든든해 보인다.
은미는 해수와 눈을 마주했다.
‘계획 변경.’
그녀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긴 속눈썹이 돋보인다.
‘잠깐 만나보는 것도 괜찮겠어.’
그녀는 해수가 보는 앞에서 단추를 하나 풀고,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그녀의 도발적인 행동에 해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귀엽긴, 아주 좋아 죽네.’
“우리, 짠 할까요?”
“...예.”
해수와 은미는 몇 잔을 더 마시고 술집에서 나왔다.
오토바이는 대리를 부르지 못하기 때문에 택시를 잡으러 큰 길가로 나왔다.
둘은 작별 인사를 위해 서로 마주 보았다.
은미는 흔들 흔들거리며 해수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오늘... 뭐 나름 재밌었어요.”
“그렇군요.”
‘그게 끝이야? 나 이제 택시 타야 하는데? 아 밥도 떠 먹여줘야 하는 거야?’
은미는 해수가 아무 말이 없자 팔짱을 껴고 턱을 도도하게 들었다.
“다음에는...”
“죄송합니다.”
“...에?”
은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까이는 경우의 수는 아예 뇌에 없었다. 얼굴 예쁘지, 몸매 되지, 능력 좋지, 은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미씨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예? 뭐, 뭐요?”
은미는 뒷목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해수를 째려보았다.
“저도 사실 그쪽 마음에 안 들거든요? 임시아 생각해서 예의상 한 번 더 만나주려고 했던 건데, 차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는 남자를 내가 무슨, 취향, 하! 참”
“그렇군요.”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이고 오히려 미안함이 살짝 보이는 게 더 열 받는다.
“됐고, 시아한테는 아무 말 하지 마세요. 앞으로 절대 보지 맙시다!”
“예, 그럼.”
해수는 그녀에게 목례로 작별 인사를 취했다.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하이힐로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찍으며 택시에 탑승했다.
“아가씨? 어디로 갈까요?”
“하 참 진짜 웃겨, 자기보다 잘난 남자들이 줄을 서는데 무슨, 감사한 줄도 모르고, 감히 지가 나를, 와 진짜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네...”
“아가씨? 어디로 가냐니까?”
“산동아 아파트요!”
“아, 알겠어요.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은미는 택시기사를 째려보며 휴대폰을 들어 임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
띠리리링 띠리리링
아직 출근시간이 멀었는데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해수는 손을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보았다.
[자산관리사 구세주 실장]
“예, 실장님”
-안녕하세요. 신사장님, 어 주무셨어요?
“야간 근무여서”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급한 건이기도 해서
“괜찮습니다.”
-제 사무실이 있는 리드 빌딩이요. 주인이 회사 부도 막으려고 급하게 내놓으려고 해서요. 여기 수익률이 8프로로 수익률만 보면 강진시 동부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빌딩입니다.
“얼마입니까?”
-40억입니다. 이거 기간만 여유롭게 잡으면 50억에도 팔릴 겁니다. 가만 두시고 임대료만 받으셔도 되고요. 일단 이런 매물은 귀해서 구매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네, 해주세요.”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그럼 계약하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얼떨떨하다. 100억이 통장에 있을 때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 커다란 빌딩이 자신의 것이 된다니 기분이 묘했다.
일어난 김에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출근을 위해 옷을 입었을 때, 구실장이 다시 전화가 왔다.
“예, 실장님”
-좋은 소식입니다. 37억에 체결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건은 공인중개사 수수료는 얼마나 나옵니까?”
-밥 벌어먹으려면 열심히 살아야죠, 제가 자격증 있어서 직접 했습니다. 수수료는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사장님, 그럼 수고하십시오!
*
동부지구대로 출근하여 순찰차에 타자마자 임순경이 입을 열었다.
“은미랑 잘 안 되셨다면서요.”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찬 것처럼 얘기하는데 은근히 화풀이를 하는 뉘앙스를 보니까 차인 것 같던데, 은미 어디가 마음에 안 드셨어요? 걔 제 친구 중에 제일 이쁘고 인기 많은데”
해수는 소개팅 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방범의지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눈 앞에서 단추를 풀던 아찔한 때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저는 보수적입니다.”
“아, 음... 은미 이 년 대체 뭘 한 거지...”
임순경은 해수의 눈치를 힐끔 살피며 더 말해주기를 바랬지만, 해수는 더 이상 소개팅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
퇴근길.
새벽 1시부터 9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근무는 야근수당 외에도 좋은 것이 다음날 비번인 날이 잦았다.
신해수도 내일 비번이기에 오늘은 매매한 리드 빌딩을 한 번 들러볼 생각이었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신호대기 중, 보행자 초록불이 깜빡인다. 뿔태 안경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급히 횡단보도를 뛰어간다.
해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구실장님이네.’
사무실에서 어딘가로 나가는 중인 듯했다.
그가 없어도 리드 빌딩 내부를 둘러보는데는 별 상관 없으니, 목적지를 변경하지는 않았다.
브아아앙-
풀액셀을 밟는 소리가 들리는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해수가 서 있는 곳은 아직 빨간 불, 앞에 보행자 신호는 초록불, 해수를 기준으로 차도 양옆은 대기 중인 차로 꽉 차 있다.
그런데 풀액셀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그것도 점점 가까워진다?
해수는 헬멧 앞유리를 올리고 고개를 돌렸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옆으로, 차가 없는 차도에서 역주행으로 한 검은색 차가 빠르게 달려온다.
콰앙-!
검은색 승용차는 정확히 구세주 실장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얼마나 쎄게 받았으면 구실장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른 채 몇 미터 날아가다가 다른 차에 한 번 더 부딪히고 바닥을 굴렀다.
“꺄악!”
“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검은색 승용차는 애초에 멈출 생각이 없었는지 그대로 고가도로 방향으로 사라졌다. 해수는 그 번호를 확인할 새도 없이 바로 오토바이에서 내려 구실장에게 달려갔다.
사차선 도로로 이루어진 사거리의 정중앙에 구실장이 널브러져 있다.
그곳에는 사람의 몸에서 쏟아진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피가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었다.
“구실장님!”
“꺽,꺽, 커, 컥...”
몸은 경련이 일어 부들부들 떨고 있고, 쩍 벌린 입에는 피 거품이 가득했다.
그의 상체와 하체는 떨어지기 직전으로 뒤틀려 있었다. 창자가 튀어나오고 끊어졌다. 신의가 와도 그를 살려낼 수 없는 상태다.
해수는 뜨거운 눈빛을 그와 마주하고 피 묻은 손을 맞잡았다.
점점 동공이 풀리는 구실장의 눈동자가 해수와 마주했다. 본능인지 무의식인지는 모른다.
구실장은 죽어가는 순간에 마주한 해수의 눈빛을 읽었다.
‘내가, 반드시 살려주겠습니다.’
< #11. 보수적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