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는 한동안 복권 당첨 번호가 올라와 있었다.
‘혹시...’
신해수는 점주가 들고 있는 쪽지를 확인했다. 대한은행 복권, 1등 당첨 쪽지다.
그의 코에 손가락을 대어보니 숨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도 올라오지 않는다. 이 좋은 소식에 충격을 받고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다.
해수는 찰나 고민이 들었다. 지금 과잉진압으로 인한 합의금으로 빚만 6천만 원이다. 편의점 안에는 아무도 없다. 복권의 위치는 CCTV의 사각지대다.
‘아니.’
해수는 머리를 털어 유혹을 떨쳐냈다. 그러자 동시에 훨씬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일단 혹여나 리셋이 안 될 수도 있으니 119에 전화를 넣어놓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해수의 눈은 복권 쪽지에 가 있었다.
‘33, 28, 7, 17, 43, 45... 좋아, 리셋.’
***
빠앙! 빵빵빵!
해수는 눈을 번쩍 떴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 반짝이는 신호등, 도로 한 복판이다.
제일 먼저 시간을 확인했다.
‘7시 52분.’
복권 판매시간을 확인해보니 밤 8시까지다. 8분도 남지 않은 것, 현재 도로는 꽉꽉 막혀 정체 중이었다.
저 멀리 복권을 판매하는 편의점이 보인다. 해수는 과감하게 액셀을 밟고 갓길로 달렸다. 그러나 다시 금세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지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내려서 달려갈까? 그냥 갈까? 고민은 짧았다.
브아앙!
해수는 불법 주정차량 두 대를 옆으로 밀어붙여 싹 긁으며 지나갔다. 음식점에서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나오던 중년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이 미친 새끼야!”
“저,저런 개새끼가!!”
해수는 그들의 욕을 가뿐히 무시하며 편의점으로 달려가 들어가자마자 5천원 권을 내놓고 대한복권을 수동으로 적었다.
시간은 3분 남짓, 해수는 휴대폰을 위에 올려 시간을 초 단위로 실시간으로 확인해며 빠르게 마킹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해수의 긴박함을 보고 자기도 긴장한 표정으로 복권 기기 앞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그리고 59분 40초를 넘어가던 때, 해수가 마킹 복권 카드를 번쩍 들었다.
“이거 구매요!”
“옙!”
띡, 지이이익-
구매에 성공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해수에게 복권을 내밀었다.
“꿈이라도 꾸셨나봐요.”
“아, 하하.”
해수는 그것을 두 손으로 귀하게 받아들여 지갑에 넣었다.
“고마워요. 되면 쏠게요!”
돈을 내고 다급히 다시 편의점을 나와 차로 향했다. 구매로 인해 리셋 전보다 10분가량 지체되었다.
저 멀리서 불법주정차 차량의 주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야! 너 뭐하는 새끼야!”
“뭐 시팔 급똥이라도 싸러 갔냐?”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 해수는 자신의 명함을 주고 바로 뒤돌아섰다.
“보험처리 하시고, 연락 주십시오!”
“야, 야!!”
해수는 한쪽 면이 다 긁히고 사이드미러도 부서진 차를 끌고 칼치기를 하며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8시 48분.’
리셋 전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유리창너머로 편의점 주인이 보인다.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이 동그래져 있다.
해수가 문을 벌컥 열었을 때,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지막 번호, 47번입니다. 당첨자 분들 축하드립니다.
“허,허,다,당, 꺼,꺼,꺽”
점주가 입을 쩍 벌린 채 과호흡이 오더니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아저씨!”
해수는 쓰러지는 그를 받아들며 2차 충격을 완화시켰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전, 편의점 문이 열리며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미리 차 안에서 신고를 했던 것이다.
점주가 실려가기 전, 해수는 그가 들고 있는 복권 용지를 그의 점퍼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쭈욱 올렸다.
“후”
해수는 그제야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집으로 올라갔다.
***
다음날, 출근 전에 아침을 사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르자 점주가 계산대에서 나와 해수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들었다.
“내 들었어, 자네가 나 살렸다며, 고맙네, 정말 고마워!”
“아뇨, 제가 더 고맙죠.”
“이 사람 경찰관이라 그런가 말도 아주 이쁘게 하는구만, 사실 말이야... 내가...”
점주는 주머니에서 반 접힌 복권 용지를 꺼내보였다.
“1등 당첨이 됐어, 이 복권때문에 허약한 심장에 무리가 온 것이야, 돈이 내 목숨을 집어삼키려 했던 거지.”
뉘앙스가 뭔가 이상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예...”
“이번에 당첨금이 30억이 넘는다고 하네, 이거... 자네가 가져가게, 처자식도 없어서 어차피 죽었으면 쓸모없을 돈이야.”
“...예?”
아무리 목숨을 구했다고 한들, 돈의 노예일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머리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제안이다. 죽었다 살아나서 그런가?
평소라면 이 착한 아저씨의 제안을 냅다 수락했겠지만 지금은 양심상 그럴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원래 당첨금보다 수억을 덜 받을 테니.
슥
해수는 그가 내민 복권을 다시 손에 쥐어주고는 손가락을 접어주었다.
“아저씨, 이 돈으로 이제라도 인생 더 즐기면서 사세요. 처자식도 즐기다 보면 생길 겁니다. 아저씨 아직 젊으시잖아요.”
“에헤 이 사람 농담도”
농담이 아니라 50대 초반이면 요즘 시대에 새장가 시집 드는 사람들 많다. 노년을 즐길 충분한 여유가 있다면 훨씬 수월할 터.
그리고 사람 마음은 갈대와 같다. 지금은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충동적으로 주지만 살아가다보면 오늘 일을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다.
해수는 몇 번이나 그것을 거절하고는 원래 사려던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 하나만 공짜로 받고 편의점을 나섰다.
오늘은 비번이 아니지만 월차를 썼다. 수십억 짜리가 지갑에 있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불안해서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격하게 현행범을 체포하다가 잊어버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집에 놔두고 왔다가 집에 빈집털이라도 올까 봐 그것도 불안했다.
그래서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하루를 꼬박 집에 박혀 지냈다.
그렇게 죽은 듯이 하루를 보내고, 대망의 월요일이 찾아왔다.
해수는 새벽같이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대한은행 본점은 서울로 이곳에서 두 시간 거리다.
수리를 맡겨야 하기도 했지만 자가용으로 갔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서 예기치 못하게 잊어버릴까 두려워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자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대한은행 본점 앞.
해수는 지갑을 넣은 안주머니를 더욱 보호하기 위해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괴한들이 들이닥칠까 봐 삼단 진압봉까지 챙겨왔다.
자신의 옆을 지나가거나 눈을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의심스럽다.
웬만한 사람 한 트럭이 와도 이길 자신이 있는데도 불안해서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다.
복권 당첨자 중 절반이 월요일에 대한은행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겠다.
대한은행 본점 1층 창구 앞, 해수는 빠르게 주변을 스캔했다. 수많은 현금을 보유한 은행답게 총을 소지한 청원경찰이 네 명이나 배치되어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고 있다.
모자나 후드를 눌러써 신원을 가리고 있는 사람은 세 명, 수상한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딩동
‘94번’
해수의 차례가 되었다. 은행원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예, 당첨금 찾으러 왔습니다.”
“아 네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신분증하고 복권 주시겠어요?”
해수는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복권을 천천히 꺼내었다.
그 두꺼운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육안으로 보인다. 연쇄살인범의 집에 혼자 침투했을 때보다 더 떨린다.
은행원은 그 모습을 자주 보았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복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확인한 순간 그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 어, 아... 추,축하드립니다.”
그녀가 받아든 5천원 짜리 복권은, 같은 번호가 다섯 번 반복되어 있었다.
*
당첨금을 받는 방법은 꽤나 까다로웠다. 창구에서 통장을 개설하고 바로 입금되는 게 아니었다.
해당 복권을 은행원에게 주니 시스템으로 당첨을 확인하고, 다른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 은행원이 다가와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2:1로 입금되는 통장을 설명하고, 여러가지 자산관리사나 펀드매니저 등을 한참동안 추천받아야 했다.
하지만 한두 푼도 아니고 당첨금을 준다는데, 이 정도는 백 번도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100억원 이상 예치하시는 VVIP분들만 특별히 개설 가능한 통장입니다. 연이율 1프로에 입출금 자유, 100억 이상을 유지하시면 해마다 이율이 0.1프로씩 고정적으로 최대 10년간 오르는 폭탄 혜택이 주어지는 통장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제 끝났나요?”
“예 맞습니다. 주소는 이곳이 정확하시죠? 수일 내로 백만 원 상당의 VVIP 사은품이 가기 때문에 정확해야 해서요.”
“예.”
은행원은 입맛을 다시며 해수를 쳐다보았다.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당첨금 절반 이상을 독차지하시다니...”
“...하하, 꿈을 잘 꿨죠.”
평소에는 당첨자가 열댓 명씩 나오는데, 이번에는 더 운이 겹쳐서 8명밖에 나오지 않아 받는 금액이 훨씬 많았다.
해수가 입금받은 당첨금은 세금을 제하고 114억이었다.
“후우”
잃어버리거나 물이 묻거나 찢기면 끝인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언제든 필요한 만큼 꺼내어 쓸 수 있고 잃어버릴 일도 없는 통장에 든든히 입금이 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해수는 올 때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도 신경쓰지 않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해수는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렸다. 항상 꿈만 꾸었지만, 이제는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이다.
먼저 합의금을 주느라 한창 마이너스가 된 통장에 돈을 채우고, 대출도 싹 다 정리했다.
해수는 무엇보다 단 한 가지 사실에 기뻤다.
‘이제... 합의금에 시달리지 않겠어.’
마음껏 과잉진압을 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법이 무섭지 않은 놈들은 주먹을 무섭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꺾지 않아도 된다.
강진시로 내려가자마자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출근했고, 이제는 조장의 위치가 바뀌어 조원이 된 임순경이 해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신경장님 오늘따라 신나보이시네요? 기분좋은 일 있습니까?”
“빚을 다 갚았습니다.”
“와... 축하드려요. 저는 아파트 대출 갚으려면 한 20년 남았는데, 대단하시다.”
“저 원룸 삽니다. 월세.”
“예?”
“빚은 합의금으로 진 빚 갚은 겁니다.”
“아...”
임순경은 무슨 생각인지 당분간 조용해졌다.
오늘도 주취자들과 열심히 씨름을 하다보니 퇴근시간에 다다랐다.
차 없이 걸어서 퇴근하는 해수를 보고는 임순경이 불렀다.
“신경장님, 차 어디 갔습니까?”
“작은 사고가 나서, 폐차시켰습니다.”
“...예? 작은 사고인데 폐차...? 아무튼 타세요. 데려다 드릴게요.”
“아닙니다. 오늘 좀 걷고 싶어서, 내일 뵙겠습니다.”
“아... 넵, 내일 뵙겠습니다!”
해수는 그녀를 보내고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걸어서 30분 가까이 걸리지만 오늘 따라 거리가 아름다워 보이고 그저 즐거웠다.
가는 길에 한 달에 한 번 씩 시켜 먹는 치킨집이 보였다. 해수는 평소와는 다르게 망설임 없이 그곳에 들어섰다.
배달 시킬 때 가장 갈등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메뉴 선택, 간장과 양념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맛이 있었기에 항상 시킬 때마다 괴로웠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간장, 매운 양념, 둘 다 주십시오. 포장!”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으면 버릴 것이다. 남을 리는 없지만.
스르륵 스르륵
치킨이 담긴 검은 봉지가 옷에 스치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해수는 아이처럼 검은 봉지를 흔들 흔들거리며 집에 들어갔다.
척.
도어락에 손바닥을 갖다 대어 번호를 활성화시키고 누르기 직전, 해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누군가가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사라졌다.
해수는 치킨을 빼앗길까 싶어 번호키를 손으로 가리고 다른 번호를 마구 누르고 충분히 눌렀을 때 진짜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불 꺼진 집 안, 싸늘한 공기가 감돈다. 해수가 한 발자국 들어서며 현관등이 켜지자 안쪽이 살짝 보였다.
낯선 사내 세 명이 각자 손에 흉기를 들고 해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사시미칼, 한 명은 망치, 한 명은 파이프 렌치.
사시미칼을 든 사내가 손잡이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가왔다.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라, 말만 잘 들으면 안 죽인다.”
해수는 검은 봉지 안에 예쁘게 포장된 치킨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치킨 먼저 먹으면 안 되겠나.”
< #8. 복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