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7화 (7/255)

“미,미쳤나 봐 저 아저씨!”

“경찰, 경찰에 신고해!”

신해수는 뒤에 사복차림으로 서 있는 임순경에게 턱짓했다.

“경찰은 내가 경찰이고, 임순경, 가해자들 휴대폰부터 압수합시다.”

“옙!”

오늘은 비번이다. 해수는 여학생들의 소지품을 뒤질 때 쓸데없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임순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뭐야! 내 몸에 손대지 마! 씨발 성희롱으로 싹 다 신고할꺼- 꺅!”

임순경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대들고 욕하는 모습을 봤는지 여학생들을 거칠게 제압했다.

사람은 다섯이지만 휴대폰은 총 일곱 개가 나왔다.

“유리야, 이 다섯 명이 다야?”

해수의 물음에 유리는 가만히 지난 날을 떠올렸다. 사실 유리에게는 모든 학생들이 가해자였다. 적나라하게 다 보고 있었음에도 그저 관전했던, 외면했던, 그 모두가 미웠다.

하지만 모두를 벌할 수는 없는 법, 직접적으로 괴롭힌 저 다섯 명이라도 제대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유리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네, 맞아요.”

“함유리 이 씨발년아!! 악!”

강주리는 입에 거품을 물며 유리에게 덤벼들려 했지만 임순경이 재빨리 팔을 꺾어 제압했다.

드르륵!

“이게 무슨 짓이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중년 여성이 소리쳤다. 담임 선생님은 그녀를 보고는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교장 선생님...”

“지금 내 학교에서 뭐하는 짓이지? 학생들을 부르고 수사를 하려면 정식으로 학교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담임은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무시하셨잖아요.”

“김수진 너는 닥쳐! 어디서 저런 이상한 것이 교사라고 들어와서 학교 물 흐리고 말이야.”

교장의 등장에 가해 학생들이 다시 의기양양해졌다. 강주리는 임순경의 손을 날카롭게 뿌리치고는 교장에게 찰싹 붙었다.

“할머니! 저 썅년이 내 손목 꺾었어, 여기 아파 죽겠어!”

“미친년이, 감히 내 손녀 몸에 손을...”

그때, 해수가 몸으로 유리를 가리며 한 걸음 나왔다.

“유리야, 잘 찍고 있지.”

“네.”

해수의 말에 유리는 아예 휴대폰을 직접 들어 교장과 가해 학생들을 찍었다.

“뭐,뭐? 뭘 찍어? 너 그거 이리 안 내?”

“선경고는 오늘 교육부에서 감사 나올 겁니다. 조금만 팠는데도 일이 아주 더럽던데요. 학교폭력 눈 감는 건 다반사고 시험지 유출에 상 몰아주기, 대회 참가자격 논란 등... 곧 강진서 형사과에서도 조사 나올 겁니다. 증거인멸 시도하다가 형량 늘리지 마시고 성실한 협조 바랍니다. 교장, 선생님.”

“뭐? 무슨 말이야 그게 지금? 나는 한 점 부끄럼 없어! 당당해!”

해수는 교장의 말을 무시하고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다들 경찰서에서 보자.”

“이봐, 이보세요. 잠깐만...”

해수는 임순경과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압수한 휴대폰을 챙기고 유리와 함께 교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거닐며 유리의 담임 선생님 얼굴을 살폈다. 근심이 가득하다.

“여기 계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모든 질타가 선생님께 쏟아질 겁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네, 괜찮아야죠, 우리 유리도 이렇게 용기냈는데, 저도 용기내서 맞설 겁니다.”

교권보다는 학생의 권리가 우대되는 이 시대에도 참 선생은 있었다. 해수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며 소리없이 그녀를 응원했다.

***

강주리 외 네 명의 오랜 집단 괴롭힘, 당연히 그들은 함유리를 괴롭힐 때 증거인멸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압수한 휴대폰을 포렌식으로 돌리기 전부터 폭행과 폭언의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유리의 증언에 따라 괴롭힘 당한 장소에 가서 CCTV로 생생한 폭행 증거도 확보했다.

어두컴컴한 방 안,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주변을 작게 밝히고 있다.

함유리를 향한 집단 괴롭힘의 모든 정황과 증거가 날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동영상이 한 사이트에 업로드 되고 있다.

해수는 마우스 커서를 [업로드]에 올려놓고 누르기 직전에 고개를 돌렸다.

“유리야, 정말 올려도 되겠어? 아무리 가리고 숨는다고 해도 소문이 날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

의자에 무릎을 올리고 쪼그려 앉아있는 유리는 모니터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올려주세요.”

“그래.”

해수는 업로드를 클릭했다.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에 가장 인기가 많은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 너튜브에 해당 사건이 올라갔다.

이는 유리의 아이디어다. 그녀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들을 어떻게 하면 더 괴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고 했다.

[강진시 ㅅㄱ고등학교 집단 괴롭힘을 고발합니다. 널리 퍼트려주세요.]

┗미쳤나봐, 저게 사람새끼들이 할 짓이냐?

┗이러니까 악마들이 일자리를 잃지

┗저기 선경고 2학년 새끼들임, 이름은 강ㅈㄹ 김ㅇㅅ 장ㅁㅁ 김ㅅㄹ 오ㅁㅊ

┗신상 떴다 저 쓰레기들 잡으러갈 파티원 구함

┗학교 윗대가리 싹 물갈이해라, 교육부 감사 제대로 해라, 애새끼들 징계 최대로 해라! ㅅㅂ래

┗학교가 더 쓰레기, 학교가 저따위니까 쓰레기들이 증식하지, 이번에 교육부 일 잘해라.

┗대충 보여도 이쁜데?

┗ㅈ이 뇌를 잡아먹은 새끼야, 동의한다.

해당 영상은 유명하다 하는 너튜버들이 모두 퍼가면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수십 개의 기사가 쏟아지고 며칠만에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신문사를 거치는 기자와는 달리, 너튜브에 직접 올린 영상은 외압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외압 또한 교장이 외할머니인 강주리 외에는 모두 평범 이하의 집안이었기에 거의 없었다.

며칠 후, 내주 경찰서.

가해 학생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이미 사회적 파장이 커서 그들은 한껏 지은 죄를 실감 중인지 얼굴이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해수는 취조실로 들어서며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며칠 새에 얼굴이 다들 좋아졌네.”

“...시팔”

“저주할꺼야...”

역시 며칠 인터넷으로 시달리는 정도로는 교화가 되지 않는다.

“들어와.”

해수의 말에 가해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섯 명이 다 모여있어 더 들어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정갈한 복장의 함유리가 살며시 들어왔다. 그녀를 보자 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함유리!”

“유리야, 내가 잘못했다. 그동안 진짜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줘, 우리 합의하자.”

“유리야 나는 진짜 너 거의 안 때렸어, 알잖아? 이거 다 강주리 이년이 시킨 거야! 너 안 때리면 이 년한테 맞아서! 나도 피해자야!”

“안 닥쳐 이 씹... 유리야, 함유리.”

강주리는 아예 유리 앞에 무릎을 꿇고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나, 나 진짜 후회하고 있어, 평생 반성하며 살게,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합의해주라, 응?”

애원하는 표정이 가관이다. 유리도 흔들리는지 굳은 표정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하”

웃음소리,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소리의 주인은 함유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강주리를 내려다보며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고작, 고작 이런 것들 때문에...”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유리는 해수와 눈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어요. 앞으로도, 합의는 절대 하지 않을거에요.”

“그래, 고생했다.”

유리의 말에 강주리의 표정이 언제 애원했냐는 듯이 악귀처럼 확 변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유리에게 달려들었다.

“야, 야이 씨팔년아악!!”

콰당탕!!

그러나, 유리가 한 박자 빠르게 강하게 밀쳐 강주리는 의자와 함께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유리는 그 모습을 차갑게 쏘아보고는 뒤돌아서 취조실을 나섰다.

“...시팔, 시팔...”

강주리는 일어나지도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욕을 내뱉으며 눈물을 흘렸다.

수사는 순식간에 마무리가 되었다. 국민의 관심이 쏟아지는 사건이니만큼, 가담 인원 총 다섯 명은 모두 실형을 받았다.

주동자 강주리와 그녀의 남자친구 김언석 3년형을 받았다.

선경고는 수많은 비리가 밝혀지며 교장 교감과 가담한 선생들까지 거의 절반이 갈려나갔다.

***

지구대 야간 근무는 퇴근 시간이 아침 9시다. 교대할 팀이 와서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익숙한 얼굴의 여학생이 한 중년 남성과 함께 서 있었다.

해수는 자신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여학생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 잘랐구나, 유리야.”

“금방 알아보시네요. 저희 아빠에요.”

옆에 있던 중년인이 그제야 해수와 눈을 마주하고 손을 내밀었다. 죄 많은 얼굴이다.

“유리... 아빠입니다...”

“예, 신해수 경장입니다.”

손을 맞잡자 놓지도 않고 두 손으로 꼬옥 잡더니,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경찰관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신경을 쓰지 못해서...”

해수는 난감했지만 그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지금이라도 잘 보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님 탓이 아니라 가해자 잘못입니다.”

함유리는 길었던 머리도 단발로 짧게 자르고 개명까지 하고 전학을 갔다고 한다.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지만 유리가 원했다.

그 학교에는 아직 수많은 가해자들이 남아 있다고.

***

강진시 동부 지구대에 출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해수는 그동안 과거로 여섯 번이나 가게 되면서 몇 가지 규칙을 알아냈다.

1- 시간은 정확히 60분 전으로.

2- 현장에서만 가능하다. 그것도 피해자가 죽거나 혹은 불구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3- 하루 한 번만 가능하다.

4-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시동어를 속으로 말하면 능력이 발휘된다. 시동어는 ‘리셋’이라 정했다.

5- 피해자가 리셋 당시 의식이 있으면 리셋 전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만 리셋 시간을 기준으로 그 후에 기억이 생긴다.

9시에 리셋해서 8시로 돌아오면 당사자는 9시 이후에 리셋 전 기억을 가지는 것이다. 이건 표본이 부족하여 정확하지는 않다.

보편적으로 당사자들은 생생한 데자뷰라고 착각했다.

해수는 깊은, 그러나 해결되지 않을 원초적인 고민이 생겼다.

‘나한테 왜 이런 능력이 생긴 거지...’

능력, 그래 능력이다. 한 번은 어긋난 과거를 바로잡을 기회였지만 상황에 맞춰서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은 능력이라 부를 수 있다.

스슥 슥

퇴근 후.

해수는 면도를 깔끔하게 하고, 잘 다려진 검은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가 잘 차려 입고 향한 곳은 추모 공원이었다.

한 유골함 앞에 경찰 정복을 입은 중년인과 불만 가득한 표정의 남학생이 찍힌 사진이 세워져 있다.

[故 신정석]

오늘은 유일한 피붙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꼬박 12년이 되는 날이다.

해수는 가만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저 때 왜 웃지 않았을까, 볼 때마다 후회가 된다. 둘이 찍은 사진이 제대로 된 사진이 저것밖에 없는 것도 후회가 된다.

‘아버지...’

해수는 12년 전 그 날을 떠올렸다.

체육관 땡땡이 치고 패싸움을 하고 온 날이었다.

해수가 사는 아파트는 복도식으로, 엘리베이터 기준으로 양 옆에 다섯 개씩 한 층에 열 개의 집이 있었다.

딩동

-7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해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발을 옮기려다가 멈칫했다.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모자에 후드를 겹쳐쓰고 마스크를 쓴 남자다.

한창 체육관을 다니면서 주먹에 자신감이 오를 대로 오른 겁 없는 고등학교 2학년 해수였지만, 생전 처음 보는 그 남자의 눈빛 하나에 압도되어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해수는 아주 찰나지만 그 눈빛에 담긴 뜻을 본능적으로 읽었다.

‘죽일까, 말까.’

등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고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간신히 발을 옮겼고, 남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아빠!!”

그리고 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베란다에 목을 메고 있었다.

사건은 속전속결로 종결되었다. 타살의 흔적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고, 앨리베이터 CCTV는 고장난 지 한참 되었었다.

-해수야, 이번 주말에 아빠랑 같이 낚시 갈까?

-몰라, 그러던가.

그러나 해수의 아버지는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살할 사람이 아들과 낚시 약속을 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수에게 타살 의심 정황은 오로지 하나, 그 남자의 눈빛 뿐이었고, 철없는 고등학교2학년의 외침은 당연하게 묻혔다.

그리고 현재.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겠다고, 범인을 잡겠다고 경찰이 되었지만 당시 사건 기록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고, 주변 CCTV도 이미 말소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 하지만 해수는 아직 끈을 놓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살인욕망을 믿고 있다.

그 괴물같은 눈빛은 반드시 살인을 다시 저지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살인사건을 파고 또 파다보면 그를 마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강력팀으로 가야한다.

해수는 손을 들어 손바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기적같은 능력만 있다면, 돈 없고 빽 없어도 위에 눈치 안 보고 강력팀으로 복귀가 가능할 것이다.

‘꼭, 잡겠습니다.’

***

추모 공원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가기 전, 해수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평소처럼 인사를 하면서 들어갔는데 편의점 주인 아저씨의 구수한 답인사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계산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을 갔나? 물건을 고르려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발에 무언가 걸렸다.

“아저씨?”

점주가 계산대와 진열대 사이에 쓰러져 있다. 그의 오른손에는 종이쪽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때, TV에서 아나운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 1006회 대한은행 복권 당첨번호 추첨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 #7. 능력의 규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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