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하 아파트 인근 놀이터.
신해수는 정자 밑에 들어가 있는 여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학생, 나와야겠는데.”
해수의 말에 여학생은 꿈틀꿈틀거리며 천천히 정자 밑에서 빠져나왔다. 워낙 좁은 곳이기에 교복은 매우 더러워졌다.
그 모습에 학생들은 심각성도 모르고 낄낄 웃음을 흘렸다.
“저 년 봐, 아 졸라 웃겨.”
“자연인이네 자연인”
다리는 물론 팔에도 자잘한 멍이 있고, 얼굴은 날카로운 것에 볼이 긁혀있다.
해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학생, 이 학생들이 그랬어?”
여학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해수는 히죽히죽 웃고 있는 가해학생들을 보며 분노를 꾹꾹 눌렀다.
그때 구석에서 씩씩거리고 있던 임순경이 말했다.
“신경장님, 이거 강력팀에 넘기죠, 쟤네 촉법소년도 아닌데 본때를 보여줘야죠, 무전하겠습니다.”
“예, 불러주...”
“계,계단에서 굴렀어요!”
여학생의 외침, 그녀는 작은 주먹을 꼭 쥔 채 그 말을 반복했다.
“혼자 계단에서 굴러서 넘어졌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가주세요.”
“와 시팔 존나 멋있어 함유리”
“찢었다. 지렸어.”
“맞아요. 쟤 혼자 존나 굴렀어요. 눈사람인 줄”
해수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정황이 있더라도 피해자가 신고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수는 어쩔 수 없이 임순경과 함께 학생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각 집으로 해체시키고, 함유리라는 피해 학생은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놀라운 것은 피해 학생의 집이 놀이터와 붙어있는 백하아파트인 것이었다.
해수는 그녀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불러세웠다.
“유리야.”
함유리는 말없이 몸을 반쯤 돌렸다.
해수는 그녀에게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쪽지를 건넸다. 아직 명함이 나오지 않아서 대신 이렇게라도 건네는 것이다.
“도움받을 ‘용기’가 생기면 연락해, 꼭”
유리는 손을 뻗다가 한 번 멈추고는, 다시 그것을 받아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임순경은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네”
임순경의 대답에 해수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그 모습에 임순경이 풋 웃음을 흘렸다.
“농담입니다.”
“음...”
해수는 머쓱하게 얼굴을 매만졌다.
***
며칠 후, 신해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주취자를 연행 중이었다.
가장 까다로운 건은 남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하지는 않았으나 가게에 꼬장을 부리는 주취자였다.
“...막걸리! 막걸리에 파전 갖고 오라고!”
“손님 여기 햄버거 가게라니까요. 막걸리는 없어요.”
“나 돈 있다고!! 자, 자!! 무시하지 말라고!”
한껏 취한 중년인이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사방에 뿌렸다.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같이 나가시죠, 임순경 지폐 좀 주워주세요.”
“옙!”
“너는 뭐야? 요리사야? 막걸리는?”
제 몸 못 가누는 주취자는 본래 몸무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해수는 중년인을 끌다시피 하며 데리고 나오고 있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해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무전이 되지 않을 때나 특별한 경우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기 때문에 항상 경찰들은 벨소리로 해놓았다.
해수는 한 손으로 중년인을 부축하고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다.
“경장 신해수입니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변 소리도 잡히지 않는다.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전화 받았습니다. 말씀하세요.”
“파전 먹으러 가는 거야? 나는 아까... 웁, 우웩!”
“아저씨 아저씨! 이런”
“으악...”
패스트푸드점의 하얀 대리석 바닥에 중년인이 오늘 먹은 메뉴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해수는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든 채 중년인을 밖으로 옮겨놓고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그러나 이미 끊어져 있었다.
해수는 임순경과 함께 뒷수습을 하고 주취자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제야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스팸전화가 올 시간은 아니고, 택배 올 것도 없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 해수는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복귀하죠.”
“옙!”
다시 출동을 두 번 나갔다 복귀할 때, 무전이 울렸다.
-여기 백하나, 용수동 백하 아파트 투신자살 신고입니다.
무전 내용을 듣는 순간, 해수의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듯했다.
임순경도 무언가 느낌이 왔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해수와 마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무전을 들었다.
“순넷... 백하 아파트 송발합니다.”
백하 아파트 화단 쪽, 주민들이 모여있다.
“쯧쯧... 어쩌다가”
“어떡해? 집값 떨어지는 거 아니야?”
“어휴 징그러워...”
“어린 게... 아깝네.”
“경찰입니다. 잠시 나와주세요. 나와주...세요.”
해수는 시체를 보고 멈칫했다. 교복이다. 함유리의 교복과 동일하다. 머리부터 떨어져 얼굴은 식별할 수 없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어 방금 전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딩 디링 딩 띵띵
벨소리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울린다. 동시에 해수의 두 무릎이 땅바닥을 찍었다.
“신경장님!”
“유리, 유리 전화였어...내가...”
그때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해수는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21시 37분,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21시3분, 전화 온 시간은 20시 38분.
해수는 자신을 과거로 돌렸던 그 능력, 그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발 과거로 되돌려줘!’
***
속으로 외치기가 무섭게 주변 환경이 싹 바뀌었다.
깜깜한 곳이었는데 갑작스레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바닥도 하얗다. 패스트 푸드점이다.
해수는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20시 37분, 정확히 한 시간 전이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시간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전화가 울린다. 해수는 주취자를 내팽개치고 전화를 받았다.
“신해수 경장입니다.”
-...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해수는 한 손으로 근처 테이블에 있는 종이백을 주취자의 입에 대며 말했다.
“유리니?”
그제야 수화기너머로 기척이 느껴진다. 동시에 주취자가 종이백을 잡고 토를 한 가득 했다.
-네...
해수는 임순경의 어깨를 톡톡 치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거기 그대로 있어, 전화 끊지 말고, 아저씨가 지금 당장 갈게.”
-흡...
“신경장님? 신경장님!”
해수는 임순경의 외침을 무시하고 순찰차를 몰고 백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중에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른다.
해수는 함유리와 계속 대화를 유도했다.
“유리야, 아저씨한테 할 말이 있는 거지? 말해봐, 도와줄게.”
유리는 몇 초간 조용하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잘못 눌렀어요.
“응? 아니 유리야 잠깐만!”
뚝
“유리야, 유리야?”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어도 받지 않는다. 해수는 자신의 모자란 화술을 탓하며 액셀을 더욱 깊게 밟았다.
백하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전화가 끊긴 후 3분 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보니 12층에 있었다.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다.
해수는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함유리의 집은 8층이다.
쾅쾅쾅!
“유리야, 유리야!”
전화를 계속 걸고 있지만 집 안에서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해수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벌컥!
“유리야!”
옥상 철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함유리는 보이지 않았다.
난간에 달라붙어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난간이 두껍고 비스듬하게 되어있어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함유리.’
해수는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유리의 집 문을 따서 안을 살필 생각이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가쁜 숨을 골랐다.
“후, 후...”
-1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 발을 붙이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함유리가 보였다.
“하아...”
해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소리에 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 범벅이다.
그녀는 해수를 발견하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저씨...?”
해수는 그녀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최대한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화, 잘 했어.”
***
함유리의 집, 신해수는 임순경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따로 시간을 가졌다.
유리가 원하지 않아 임순경은 순찰차 안에서 대기했다.
유리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와 둘이서 살지만 밤 열 두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온다고 했다.
해수는 유리와 식탁을 두고 마주앉았다.
“...유리가 도움받을 용기가 생겨서 전화했다고 해석해도 되지?”
“...몰라요. 모르겠어요. 솔직히... 못 믿겠어요.”
유리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담임선생님에게도 말해보았지만 학교 측에서 묵살했고, 그 가해 학생들이 괴롭히면서 경찰도 아무런 소용 없다고 말을 했단다.
해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유리야, 원래 좋은 소문은 코 앞에 떨어지고, 나쁜 소문은 멀리 가, 경찰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능하지 않아, 한 번 믿어줄래?”
유리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입을 삐쭉거렸다.
“꼰대같애.”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해수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정신을 단단히 붙들었다.
유리는 유리 구슬같은 눈으로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저 살려줄 수 있어요?”
해수는 그 맑은 눈을 마주보며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살릴 거야.”
해수와 유리는 새끼손가락 약속까지 하고 집을 나왔다.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학교는 가지 않기로 했다.
해수는 유리의 집을 나오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야, 떨어지니까 신똘 전화도 다 받아보네?
“팀장님, 안 바쁩니까?”
-어? 왜, 불안한데? 바빠
“바빠도 사건 하나만 받읍시다. 용수동 집단폭행 건입니다.”
-용수동이면 강진서 관할이잖아.
“아직 사건 정식 접수 안 됐습니다. 맡아주십시오.”
-아씨, 말해봐.
***
며칠 뒤, 선경고등학교 빈 교실.
함유리와 담임 선생님이 자리에 앉아있다. 선생님의 손을 꼭 붙잡고 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드르륵-!
교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가해 학생들이 등장했다. 놀이터에 있었던 그 인원 그대로다.
“씨팔, 꿀 같은 점심시간에 오라가라...”
“쌤, 우리 왜 오라고 한 거예요?”
“뭐야, 함유리 저 년 학교 왔었네?”
“요즘 안 맞았다고 쌍판 좋아졌다?”
그들은 선생님이 있음에도 마치 투명인간 취급을 하듯이 함유리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범죄학습.
담임 선생님이 학교 측에 학폭위를 요청했음에도 묵살당한 것을 보고 학생들도 무시하는 것이다.
함유리는 크게 용기를 내고 왔지만 당사자들을 마주하자 다시 두려움이 몰아쳤다.
선생님은 일어나 그들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유했다.
“유리가, 경찰서에 너희들을 집단폭행으로 신고했어, 이제 정식으로 수사가 들어갈 거야, 그 전에 선생님이 면담하려고 불렀어, 지금 행동은 모두 녹화될 거야, 언행 조심하고, 먼저 각자 휴대폰 여기에 내.”
“에? 무슨 씨발, 뭐요?”
“경찰? 수사? 존나 무섭네?”
“녹화? 녹화는 씨발 좃까고”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고, 면전에 대고 욕까지 한다.
노란 머리핀을 꽂은 여학생은 유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머리채를 쥐었다.
“야이 씨발년아 우리가 뭐했다고 신고야? 니가 아직 덜 쳐맞았구나?”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유리의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번쩍 올렸다. 선생님은 기겁하며 그 여학생을 밀쳤다.
“강주리!! 지금 뭐하는 짓이야! 너는 선생님이 보이지도 않니?!”
선생님에게 밀쳐진 여학생, 정주리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중얼거렸다.
“와, 선생이 학생 패네.”
“그렇네, 선생이 학생 존나 패네.”
“그럼 이제 정당방위지, 남친아 씨발 뭐해!”
정주리의 외침에 뒤에 있던 남학생 한 명이 선생님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꺄악! 이거 안 놔?!”
“선생님 어금니 물어요.”
그리고 솥뚜껑만 한 손을 선생님의 얼굴에 내리쳤다.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턱
그때, 남학생의 공격이 누군가의 손에 막혔다. 학생이 뒤를 돌아보니 전에 놀이터에서 보았던 경찰이 사복차림으로 우뚝 서 있었다.
신해수, 그의 표정은 악귀처럼 무섭게 변해 있었다.
“감히 선생님한테”
“이거 안- 아악!”
우득!
해수는 그의 손을 꺾어 뒤로 떨어트리고, 목을 잡아서 번쩍 들어올렸다가 책상에 내리찍었다.
콰지직!!
얼마나 강하게 내리찍었으면 책상이 부서지고 바닥에 등을 찍었다. 남학생은 숨을 못 쉬고 꺽꺽거렸다.
해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 큰 손으로 남학생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반갑다. 과잉진압 전문 경찰은 처음 보지?”
< #6. 과잉진압 전문 경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