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자가 해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먹었던 안주로 그림을 그려 놓았다. 여경이 입을 반쯤 벌렸다가 다급하게 걸레를 챙겼다.
"어떡해, 잠시만요."
해수는 자신의 바지에 묻은 토사물을 닦으려는 그녀의 손길을 막고, 걸레만 받아들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닦겠습니다."
"예, 아 네."
여경은 바닥에 널브러진 토사물을 치우고, 해수는 바지를 닦았다. 옷은 어차피 근무복으로 갈아입으니 괜찮지만, 신발 안쪽으로 들어와 양말까지 적신 것은 꽤 찝찝했다.
거의 마무리가 되었을 때쯤, 뒷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무궁화 두 개, 팀장급이다.
“오자마자 신고식 제대로 치렀네, 그 내주서 형사지요? 들어와요.”
“예.”
접수대 안쪽으로 들어가자 팀장이 해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형사 출신이라 그런지 몸은 좋네, 대장님은 아직 안 나오셨으니까 신고는 나중에 하고, 저기 계단 보이죠? 가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와요. 임순경, 안내 좀 해줘.”
“예 팀장님.”
해수는 함께 토사물을 치웠던 임순경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긴 복도를 따라 탈의실과 휴게실, 장비 창고가 보인다.
“여기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옷은 이름표 없는 보관함에 두시고요.”
“예.”
임순경이 입구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자 해수가 말했다.
“갈아입고 내려가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원래 감정 변화가 별로 없으신가 봅니다. 조금이라도 짜증 낼 만 한데.”
해수는 발을 멈추더니 몸을 돌려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화 많습니다. 나쁜 짓에 한하여, 토하는 건 나쁜 짓은 아니니까요."
"아..."
"그럼."
해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
해수는 지구대 근무를 6년 전에 딱 1년 근무했었다.
그때와 신고체계도 많이 바뀌어 마치 신입처럼 모든 것이 새로웠다.
동부 지구대는 순찰차도 여섯 대에 한 타임 인원도 열 세 명이나 되었다.
근무는 2인1조로 총 여섯 개 조, 세 개 조가 순찰을 돌고 나머지 세 개 조는 지구대에서 대기하다가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하는 형식이었다.
해수는 임순경에게 업무를 배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 백하나, 지정동 페바사거리 주폭 신고입니다.
백하나는 강진서 상황실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강진시는 경찰청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긴급출동 상황실을 직접 운영했다.
주폭은 주취자가 행패를 부리는 사건의 줄임말로 지구대 신고의 8할을 차지할 만큼 흔하다.
“아 또 신고 물렸네, 이거 임순경이 받아, 거기 오늘 온...”
“신해수입니다.”
“그래, 신경장이랑 다녀와요.”
임순경은 무전기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무전기는 예전에 그 벽돌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커다란 것이 아니라 휴대폰과 동일한 외형이다.
전화와 문자, 무전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고, 마이크 기능이 있는 이어폰과 단짝이다.
휴대폰이라고 부르면 일반 휴대폰과 헷갈릴 수 있어 무전기라고 칭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예 팀장님, 지정동 순넷 송발합니다.”
-순넷 배송
임순경은 익숙하게 순4라고 적혀있는 순찰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해수도 그녀를 따라 빠르게 조수석에 앉았다.
띡 띡
순찰차 시동을 켜자 네비게이션에 해당 사건 관련된 장소가 떴다.
임순경은 무전기로 무언가를 눌렀다. 그러자 긴급신고로 신고자와 상담을 한 내용이 들렸다.
[...네, 그래서 여기 아줌마는 머리에 피 나고 알바도...]
해수는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속으로 놀랐다.
‘뭐가 이렇게 신식이야... 몇 년 새에 엄청 달라졌네.’
임순경은 무심하게 네비를 조작하다가 해수의 반응을 보고는 설명했다.
“순마로 직접 사건 받는 건 얼마 안 됐어요. 강진서가 먼저 시행한다고.”
“아, 네.”
임순경은 기어를 드라이브로 넣으며 말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브르릉-
“읍”
임순경은 순둥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운전은 꽤나 터프했다.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잡이를 꽉 잡았다.
도착한 곳은 시내에서도 조금 동떨어진 작은 고기집.
가게 밖에 사람들 몇 명이 안을 힐끔힐끔 살피고 있어서 금세 발견했다.
유리문 너머로 엉망진창이 된 가게가 보였다.
의자와 테이블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많이 깔려 있었다.
그 가운데에 덩치가 큰 사내 둘이 자리에 앉아 술을 주거니 받거나 하면서 마시고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의 발 아래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몸을 웅크린 채 인간 발 받침대가 되어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그 모습에 임순경은 이빨을 드러내며 문을 벌컥 열었다.
근무복을 입어 경찰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데도 술에 취해서인지 놀라는 기색이 없다.
“어 아가씨가 왔네? 아가씨 이리와서 술 좀 따라봐.”
안으로 들어서자 주방 쪽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중년여인도 보였다. 해수의 눈빛이 한층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덩치들에게 덤벼들려던 임순경을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임순경 구급차 먼저 불러주세요.”
“저런 쓰... 예, 알겠습니다.”
해수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한 덩치가 맥주병을 테이블에 내려쳐 깨뜨리고는 날카로운 부분을 겨누었다.
“남자 새끼는 꺼져 뒤지기 싫으면.”
그러나 해수는 한 치의 딜레이도 없이 바로 무덤덤하게 그것을 손으로 쳐내고 그의 손목을 꺾으며 그의 머리를 테이블에 쳐박았다.
콰직!
덩치는 유리조각이 자신의 볼을 파고들어가 혓바닥으로 만져지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는 자신의 눈동자 바로 앞에 있었다.
“이, 이!”
쾅!!
무엇을 하기도 전에, 그의 친구도 바로 앞에 머리를 박았다. 친구는 자신과는 달리 유리조각이 코를 꿰었다.
이 짧은 시간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스산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당신들을 특수폭행 및 경찰관 폭행, 성희롱, 영업방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철컥 철컥
100키로는 거뜬히 넘을법한 사내 둘을 손쉽게 제압하는 모습, 지금까지 반쯤 눈꺼풀이 덮여있던 임순경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고기집 주인아주머니는 다행히 생명에 아무런 지장은 없었다.
두 덩치를 경찰서에 넘기고 지구대로 복귀하자, 임순경은 해수를 힐끔거리며 친한 여경들과 속닥거렸다.
좀처럼 근무환경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에 신기했다. 형사팀이나 강력팀에는 여경이 전무하니.
해수는 임순경과 함께 대기하면서 다섯 번 이상 출동을 나갔다. 그리고 네 시간이 지나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후”
순찰차에 타자 절로 짧은 한 숨이 나왔다. 그 모습에 임순경이 살짝 웃음을 흘렸다.
“많이 바쁘죠?”
“그렇네요.”
임순경은 이번에 목적지가 따로 없어서 그런지 천천히 차를 몰았다.
“강력팀도 많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바로 출동은 드물어서, 대신 퇴근을 못했죠.”
“아하.”
몇 시간 붙어있다보니 임순경도 조금은 편해졌는지 드문드문 해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순찰을 돌다보니 곧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지구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정시 퇴근이다.
“진짜 전쟁같은 하루였네요. 이제 슬슬 지구대로 돌아갈까요?”
퇴근 시간까지 10분 남았다. 이제 지구대로 돌아가면 딱 맞는 시간.
그때, 무전이 울렸다.
-여기 백하나, 용수동 실종 신고입니다. 순마 있나요.
임순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순넷 송발합니다.”
-순넷 배송
신고 녹음파일을 들어보니 21세 여성이 친구를 실종 신고 한 것이다.
둘이서 술집을 나와서 술을 많이 마신 친구는 앉혀두고 신고자가 화장실을 다녀오니 사라진 것이다. 집에도 없다고 한다.
단순한 사건이 아니니 신고 내용을 들으며 임순경이 형사 출신인 해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해수는 그 눈빛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그 술집 앞으로 가보죠.”
“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 까만 밤을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이 낯처럼 밝히고 있다.
술집 앞에는 진한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은 신고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는 오면 바로 전화주기로 했고, 술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은 없었고요.”
“예... 완전 꽐라돼서 지 발로 어디 갔을 리가 없거든요?”
해수는 실종자가 앉아있었다는 술집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블록 건너 화장품 가게 앞에 CCTV가 보인다. 바로 그곳으로 가서 협조를 구했다.
그곳에서 신고자와 함께 당시 시간대의 CCTV를 돌려보았다.
“어? 여기요! 얜데??”
검은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실종자의 두 어깨를 붙잡고 연인처럼 딱 달라붙어 걸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실종자분 남자친구나, 아는 사람은 아닌가요?”
“얘 남자친구 없어요! 이상한데??”
술을 과하게 마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지인인 척 데려가서 성폭행을 하는 범죄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해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임순경이 바로 무전을 들었다.
“여기 순넷, 용수동 실종신고건 납치건으로 전환, 송원요청합니다. 용의자 인상착의 검은 후드티에 청바지...”
실종 건은 특히나 초동수사가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인지한 지구대 측에서 팀장의 무전이 내려왔고, 대기하고 있던 순찰차 세 대가 지원에 응답했다.
-차 태운 게 아니면 그 근처야, 모텔이나 노래방 코노까지 싹 다 뒤져.
-이백 하나 송원 갑니다. 순넷 동선 따주세요.
이백 하나는 경찰서의 강력1팀이다. 강간 사건은 코드 제로로 분류되기 때문에 강력팀도 나서는 것이다.
순찰차 세 대가 10분도 되지 않아 모여서 주변 모텔과 노래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형사들도 금세 와서 해수에게 현재까지 파악된 용의자의 동선을 확인했다.
키는 조금 작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형사가 말했다.
“이제부터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지구대원 분들은 모텔...은 빼고 노래방 수색 좀 해주십시오.”
“예, 수고하십시오.”
형사들과 헤어지고 순찰차에 타자 임순경이 물었다.
“왜 모텔은 빼라고 하는 걸까요?”
해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이미 다른 순마가 모텔을 수색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실종 사건은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수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금액적인 면이나 숫적인 면이나”
“아...”
확실히 실종 위치에서 모텔보다는 노래방이 훨씬 많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여자를 데리고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해수는 임순경과 함께 노래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실종 위치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 골목길 후미진 곳에 위치한 지하 노래방.
“아잇 깜짝이야!”
“뭐야 시팔!”
“경찰이면 다야?”
실종과 납치는 시간이 생명이다.
해수와 임순경은 문을 거침없이 벌컥벌컥 열면서 수색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직 확인하지 못한 방에서 한 남자가 슬그머니 나와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검은 후드에 청바지.’
“거기, 잠시만요.”
해수가 부르자 그가 멈칫했다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해수는 바로 그의 뒤를 쫓았다.
임순경도 뒤를 따르며 무전을 쳤다.
“여기 순넷! 용의자 발견, 해돋이노래방! 도주 중!!”
턱-
해수는 용의자를 쫓다가 그가 나왔던 호실에서 우뚝 멈추었다. 옷이 풀어헤쳐진 채 노래방 쇼파에 누워있는 피해자가 보인다.
“컥, 컥”
피해자의 몸이 들썩이며 방 안에 피가 흩뿌려진다.
“구급차 불러요! 빨리!”
해수는 기겁하여 소리치며 안으로 들어가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목에 생긴 두 개의 구멍, 그곳에서 울컥울컥 솟구치는 피.
다급히 두 손으로 구멍을 틀어막았지만 역부족이다. 쇼파와 바닥은 이미 붉은 피로 덮여 있었다. 그만큼 피를 많이 흘렸다는 것이다.
“허,허억”
임순경은 해수의 말대로 구급차를 콜하고 방 안을 보았다가 기겁했다. 그리고 범인을 떠올리며 다시 발을 움직이려고 할 때, 해수가 소리쳤다.
“가지마! 어차피 위에 경찰이 깔렸으니 곧 잡힐 겁니다...”
흉기를 지닌 살인범을 혼자 쫓는 것은 웬만한 강력팀 형사도 지양하는 일이다.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니.
“젠장...”
구급대원은 아직이고, 피해자의 숨은 천천히 멎었다.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손가락 사이로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찰이 수색하는 소리에 당황하여 죽였는가? 아니면 원래 죽이려 했는가? 혹은 피해자의 반항이 거셌는가?
이렇게 허술하게, 금방 잡힐 곳에서 피해자를 죽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1분만, 아니 30초만 일찍 왔어도 피해자의 생명을 구했을 수도 있다.
아까 영업방해라며 큰소리 치던 노래방 주인에게 일갈하지 않았다면, 술에 취하여 멱살을 잡는 취객을 무시했더라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노래방부터 뒤졌더라면.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방금 전까지 했던 그 모든 선택들이 후회가 된다.
.
.
.
그때, 마치 사진을 넘기듯이 갑작스레 주변 환경이 바뀌었다.
순찰차 안이다.
-여기 백하나, 용수동 실종 신고입니다. 순마 있나요.
해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 #4. 대한민국의 고담시, 강진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