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주먹을 폈다. 손바닥이 대리기사의 얼굴을 때렸다.
쩌억-!
그래도 휘두르는 힘은 그대로인지라 대리기사의 몸이 뒤로 몇 미터나 밀려났다.
해수는 재빨리 달라붙어 그의 멱살을 잡아당기고, 팔을 뒤로 꺾었다.
“아악! 시팔 이거 안-”
우득
“끄아악!”
해수는 그의 팔을 뒤로 더욱 꺾으며 씹어먹을 듯이 말을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칼을 휘둘렀으니... 정당방위인데, 내가, 왜 못 봤을까? 어?”
“뭐,뭔 개소리야!”
“넌 과잉진압 해도 된다는 소리야.”
해수는 고민없이 그의 팔꿈치를 반대로 확 꺾어버렸다.
으드득-!
“끄어어억!”
해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팔을 한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상태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내주서 강력팀 경장 신해수입니다. 특수폭행 미수 건 신고합니다. 여기 위치가...”
신고 후, 안주머니에서 케이블타이를 꺼내어 대리기사의 손목을 묶었다. 그는 구석에서 해수를 힐끔거리며 궁시렁거렸다.
“시팔, 시팔... 형사였어? 제기랄...”
해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뭔 일이지?’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몸 가는대로 처리하고, 이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니 혼란이 밀려왔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은 뭐지? 꿈? 그러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손등을 뚫고 나왔던 못이, 뒤통수를 때리는 그 끔찍했던 고통이 아직도 환상통처럼 느껴지는 듯하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그때,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아니 이제는 알고 있는 번호, 팔팔대리운전자다.
-예, 팔팔대리운전인데요? 제가 좀 늦기는 했는데, 기다려도 안 보이셔서요. 어디세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한다. 해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이 타이밍에 저 멀리서 약한 불빛이 보인다. 미래인지 환상인지 모를 곳에서 보았던 트럭이다. 타이밍, 상황, 모든 것이 똑같다.
그저 개꿈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신이 불쌍하다고 기회를 다시 준 건가?’
할 일이 떠올랐다. 해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어 왜.
“헤어지자.”
-뭐야 갑자기, 오빠가 얘기했구나?
“어, 고마웠다. 짐은 내일 뺄게.”
해수는 더 아픈 얘기를 듣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
사건은 해당 관할서 형사들이 맡았고, 해수는 정당방위로 판정났다. 그러나 그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대리기사의 소지품에서 이게 나왔습니다.”
형사가 보여 준 것은 청테이프, 소형 니퍼, 접이식 칼도 하나 더 있었다.
절망은 희망으로 탈바꿈되었다.
담당 형사가 대리의 집을 수색하다 보니 얼마 전에 살해된 피해자들의 소지품이 나왔던 것이다.
해수에게 접근했던 방식이나 흉기도 동일했다.
대리기사의 원래 범행 계획은 차를 세운 곳에서 해수를 죽인 다음, 네비를 따라 해수의 집에 가서 여자친구도 유린하고 살해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범인이 예상치 못했던 해수의 전투력에 칼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쓰러졌던 것이다.
현재가 바뀌며 미제사건으로 마무리되었던 연쇄살인의 범인이 붙잡힌 것이다.
[강성동을 공포에 떨게 했던 대리운전 연쇄살인범, 형사에게 범행을 계획하다 잡히다.]
┗미친 ㅋㅋㅋㅋ 하필 형사를
┗야 그래도 대한민국 형사 안 죽었다. 꽐라 된 상태로도 연쇄살인범 때려눕히고
┗우연히 잡힌 거네ㅋㅋ 수사본부는 뭐했냐? 그 형사한테 포상이나 잘 해라
┗범인새끼 형사가 두 팔 다 부러트려서 똥도 못 닦는다더라, 졸라 잘 됐다.
┗이거 경찰이 과잉진압 아니냐?
┗미친새끼 칼 들고 너 죽이려고 덤비는데 과잉?
┗과잉댓 너 살인범 가족이지?
범죄자의 상태도 알려지면서 관련 기사에 가끔 과잉진압이 떴지만, 사람들은 그 형사가 특진 또는 포상을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해수가 근무하고 있는 내주서 강력2팀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햐······ 우리 신대리님은 동창회 가서도 범죄자를 잡으시네, 멋있다!”
“벌써 형사 누구냐고 네티즌이 겁나 찾고 난리네요. 영웅 됐어요, 영웅.”
“이거 잘하면 신똘 진급 미끄러진 거 특진으로 올라갈 수도 있겠는데?”
해수는 자리에 멍하니 앉아 눈만 껌뻑껌뻑거리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꿈만 같다. 그런데 그건, 분명히 실제였다. 꿈이나 미래 예지라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현실적이었다.
한낱 꿈이 아니라 미래시 또는 되감기를 한 것처럼 가까운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현장감, 그건 분명, 현실이었다.
미래시로 본 것이라기에는 너무 피부로 직접 체험했다. 보는 느낌이 아니다.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재소자들에게 뚜드려 맞을 때 간절히 원하여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해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기적이야, 기적이 일어났어.’
해수는 얼마 전에 받았던 과잉진압으로 인한 3개월 감봉을 해제, 특진까지는 받지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1호봉 상승이라는 포상을 받았다.
“그래도 특진이 아니라 아깝네, 신대리님처럼 범죄자 잘 때려잡는 형사가 어디 있다고.”
“그게 문제지 그게, 잘 잡는 게 아니라 잘 때려잡아서 문제라고, 안 그럼 벌써 총경 달았어!”
“팀장님 그건 좀 너무 나갔다.”
“신대리님, 아쉽지 않으십니까?”
팀 막내가 믹스커피 한 잔을 내민다. 해수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과잉진압 아닌 게 다행이지.”
“와······ 대인배다 진짜, 아무나 연쇄살인범 잡는 게 아니구나.”
“이야, 신똘 많이 착해졌다.”
해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분이 묘하다.
인생의 끝을 짧게나마 맛보아서 그런지 1호봉 상승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단 한 번 주어진 기회인가? 아니, 보통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그랬는데.’
해수는 지갑에 꽂혀 있는 복권을 만지작거렸다.
*
토요일.
해수는 복권 실시간 발표 방송을 챙겨보았다.
‘43, 28, 11, 36, 8, 3······’
복권 당첨 번호를 열심히 적고, 그것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외웠다.
‘······8, 3, 좋아, 다 외웠어, 이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제발 날 과거로 되돌려 줘······’
해수는 어쩌면 그때보다 더 간절히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 틈만 나면 과거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고 여기고 조용히 지내고 있을 때였다.
“해수야, 서장님이 찾으신다?”
“서장님이 신 주임님을?”
“특진? 특진?”
해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장실을 찾아갔다.
원형탈모에 금테안경을 쓰고 깐깐한 인상의 서장, 그는 해수를 불러놓고는 들어왔는데도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서장님, 찾으셨습니까?”
“3월이 얼마나 남았지?”
서장은 여전히 해수를 쳐다보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이틀 남았습니다.”
“이틀, 그래, 이틀 후에 강진에 그······ 동부 지구대로 가.”
5년 넘게 근무한 곳에서 갑자기 떠나라니? 그것도 지구대로, 사실상 좌천이나 마찬가지다.
해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갑자기 지구대라니요?”
그러자 서장이 미간을 좁히며 그제야 해수와 눈을 마주했다.
“위에서 내려온 명이야, 그러게 평소에 행실을 똑바로 했어야지, 연쇄살인범 잡으면 뭐해? 별명이 과잉진압 전문 형사가 뭐야 그게? 창피하지도 않아?”
“위에서······.”
쥐새끼같이 생긴 서장이 행실을 거론하지만, 행실에 있어서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법이 미달이니 진압이라도 과잉으로 하는 것뿐이다.
오히려 저 쥐새끼가 뒷돈 처먹은 것만 해도 한 트럭은 넘어갈 것이다. 심증이 있지만 증거를 미리 수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강진시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최악의 지역으로 근무 기피지역 1위로 꼽힌다.
으득-
적막한 서장실에 나무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퍼졌다.
해수가 잡고 있던 의자 팔걸이가 부서진 것이다.
그 괴력에 서장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뭐, 뭐 해, 얼른 나가서 일 봐.”
“······알겠습니다.”
해수는 차가운 어조로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서장은 금이 간 팔걸이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저 무식한 놈, 힘만 더럽게 쎄 가지고······.”
***
강진시
도 내에 신고 접수 1위, 강력 사건 1위, 경찰 근무 중 부상 1위.
대한민국의 고담시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강진시다.
신해수는 송별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강진시에 있는 동부 지구대로 출근했다.
사건이 몰리는 지역이니만큼, 지구대 건물도 규모가 있었다.
해수는 근무복이 담긴 백을 메고 안으로 들어섰다.
“······씨벌 내가 먼저 때리긴 했는데 저 새끼가 먼저 엄마 욕했다고!”
“이게 다! 나라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거야! 내 인생 책임······ 우엑.”
“의자에 토하지 마세요. 여기 봉지, 봉지에!”
“거기 아저씨 조용히 하세요!”
지구대 벤치에 누워서 코를 고는 사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토하는 사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경찰들.
비교적 한산했던 내주서와 달리 이곳은 초저녁부터 시끌시끌했다. 이래서 첫 출근부터 아침이 아니라 오후 타임에 오라고 한 듯했다.
다크서클이 짙은 여경 한 명이 해수를 힐끔 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경장 신해수입니다. 오늘부로 전입했.”
“읍, 으우웩-.”
다리가 뜨끈하다. 그저 액체가 아닌 질량이 가득하여 바지를 짓눌러 맨 살에 닿는 느낌.
해수는 말을 하다가 멈추고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 #3. 기적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