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화 (2/255)

신해수는 전화를 끊고 대리를 보았다.

술집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대리운전을 하는 척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자들도 많다. 그들 중 하나인 듯하다.

전화 한 번에 해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등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목격자도 없고 카메라도 없다. 비가 와서 피 흔적은 지워진다.

대리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접근했으니 자신의 차에 탄 것을 누가 알지도 못할 것이다.

이상한 쪽으로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모든 환경이 자신을 돕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는 듯하다.

그때,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산길이라 구불구불하여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해수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며 조급해졌다.

‘숨겨? 신고해? 일단 옮길까? 경찰직은?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은?’

해수는 고민을 끝내지 못하고 다급히 몸으로 대리기사의 시체를 가렸다.

후우웅-

거의 동시에 트럭 한 대가 해수를 지나쳤다.

봤을까? 아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에 가로등도 없어 어두운데다가 장대비로 인해 시야 확보가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이 마치 딱 사람 죽이기 적절한 장소인 것만 같다.

“후욱, 후욱.”

사람을 죽였다. 이대로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가면? 경찰은 다시 할 수 없다.

아버지를 살해한 그놈을 잡을 수 없다. 이건 불가피한 선택이다. 상대는 어차피 범죄자다.

술에 취하여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의 머리가 자기합리화로 홱홱 돌아간다.

해수의 알콜 가득한 뇌는 폭주기관차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이걸 어디에 처리하지? 산에 파묻기? 바다에 버리기? 삽이 없으니 깊이 파묻기에는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려, 혹시나 모르니 적절한 알리바이도 만들려면 빨리 일을 처리...’

우직

해수는 머리를 쥐어뜯어 물리적인 고통으로 생각을 멈추었다.

상대는 자신을 등쳐먹으려는 범죄자였다.

고의는 아니지만 자신이 상대를 주먹으로 때려죽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자수하더라도 경찰직 박탈은 물론이고 몇 년이나 살다 나올 지 모른다.

하지만, 살인을 숨기고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게 정당한 일인가?

“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어떠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살인을 숨기면 안 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경찰직은 박탈되고 아버지의 자살 의혹은 밝혀내지 못할 것이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잃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사람이라면.

해수는 길게 한 숨을 내쉬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예, 여기 사람이 죽······ 다쳤습니다. 여기 위치가······.”

119와 통화를 끊고, 해수는 시체 옆에 걸터앉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언제부터 이렇게 냉랭해졌더라.

“헤어지자.”

-뭐야 갑자기, 오빠가 얘기했구나?

대화의 핀트가 살짝 어긋났다. 이상하다. 그녀는 원래 해수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기서 오빠는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얘기했다’라는 말은 문맥상 그 오빠라는 새끼가 자신에게 얘기했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방금 동창회에서 만나고 온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래, 들었다.”

-하······ 뭐 이렇게 경찰이라는 것들이 입이 가벼워, 아무튼 어차피 내가 얘기하려고 했어, 짐은 내일까지 빼 줘, 여기, 내 집이잖아.

경찰, 자신이 아는 사람, 방금 동창회에서 만났던 경찰대 출신, 용의자는 어이없게도 딱 한 명이다.

“동남철······ 시팔······.”

-······모르고 얘기한 거야?

“하······ 하필 그 새끼라니, 니가 내 자존감을 진짜 바닥까지 끌어내리려고 작정을 했구나.”

-아직도 내려갈 자존감이 있어?

“넌 날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 같다."

-당연하지, 원래 연애의 끝은 경멸이야, 너는 뇌까지 경찰이잖아, 이제 평범한 사람 만나고 싶어.

“...뇌까지?"

-백일날 삼단봉, 1주년 전기충격기, 2주년 호신용 스프레이... 난 이제 범죄 범인 방범 경찰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

“그런데 경찰하고 바람을 피워?”

-오빤 너랑 달라, 경찰 일에 너처럼 매달리지도 않고 돈도 훨씬 잘 벌어.

“하... 끊자.”

해수는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던지려다가 멈추었다. 휴대폰을 다시 사려면 최소 30만원이다.

어쩐지 그 새끼가 채연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니더니, 둘이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혼자 기분만 더러우면 되니까.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아온 건가?’

곧 망해 버릴 인생을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탁 탁 탁

소낙비는 그쳤지만 비에 젖어 불이 잘 붙지 않았다. 해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라이터를 집어던졌다.

헤에- 헤에-

그때, 아주 미세하게, 이상한 소리가 귀에 꽂혔다.

자신이 낸 소리는 아니다. 주변에는 이 시체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범인은 하나.

해수는 담배를 퉤 뱉고 대리기사에게 다가가 입가에 귀를 대었다.

“······에-.”

아주 작은 소리로 숨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리다가 뚝 끊겼다.

그의 상태에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 스쳤다.

‘뇌진탕!’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강력한 뇌진탕이 오면 호흡을 들이마시기만 하다가 허파가 가득 차면 숨이 멈추고, 동시에 심장도 멈춘다.

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술? 혼란? 분노와 억울함? 골든타임이 지나갔는지는 아직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이다.

해수는 겉옷을 벗어 그의 머리에 둘러 단단히 압박하고, 상체를 일으켜 등허리를 강하게 두드렸다.

팡 팡!

“뱉어, 뱉어!”

주기적으로 응급처치를 배우지만 실제로 써먹은 적은 없었던 뇌진탕 응급처치, 그대로 행했지만 상대의 숨이 트이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들이마시던 숨이 끊기고 심장이 멈추었다.

심장이 멈추고 최대 5분 내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 손상이 시작되고 수 분 내로 죽음에 이른다.

해수는 그를 다시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제발 죽지 마, 죽지 마!”

대리운전의 심장은 여전히 멈춰 있고, 뒤통수에서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억겁과도 같은 10분이 흐르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내리고, 들것으로 사내를 싣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TV를 보고있는 것처럼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보였다.

해수도 함께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무진들이 신고하였고, 해수는 형사들에게 인계되었다.

해수의 부탁으로 대리기사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환자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뇌에 작은 손상이 있습니다.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하...”

“신해수씨, 이만 서로 가시죠.”

형사는 해수가 같은 형사라는 점, 직접 신고하고 응급처치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생각하여 수갑을 채우지는 않았다.

*

“피고인 신해수를 폭행치상 혐의로 3년형에 처한다.”

탕 탕 탕

경찰직을 박탈 당하고 선고가 떨어지자 해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형사 생활 4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범죄자를 잡아 넣었던 과거는 교도소에서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휘유~!”

“이게 누구야? 신.해.수.형사님 아니야?”

“이야 내 이빨 여덟 개 날리신 시녕사님 반갑슴니다!”

“난 비만 오면 신형사가 부러트린 오른팔이 그렇게 시큰거렸는데, 이제 좀 덜하겠네.”

“킁킁, 쟤가 코 아작내서 내가 아직도 냄새를 못 맡아.”

교도소에는 과잉진압 전문 경찰인 신해수에게 원수를 진 재소자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살기에도 해수는 그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3년이라면 짧다면 짧지만, 모든 것을 잃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신형사님이 동태눈깔이 되셨네?”

소내 전체 청소 날, 코가 기형적으로 생긴 사내가 해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해수는 못 본 척 기계적으로 쓰레기를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교도소 3사동 소각장,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해수에게 재소자들 열댓 명이 둘러쌌다.

그들의 손에는 각목과 끝이 뾰족한 칫솔, 유리조각 등이 들려 있다.

“죽은 듯이 살면 우리가 아... 안타깝네요. 모시겠습니다~ 할 줄 알았어? 값은 치러야죠 형사님?”

해수가 들고 있던 쓰레기 더미를 내려트렸다. 그러자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이 움찔했다.

아무리 이빨이 빠졌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날카로운 발톱은 여전하고, 해수에게 당했던 그 당시의 공포는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그 모습에 코가 짓눌린 사내가 욱하여 소리쳤다.

“뭐해 이 새끼들아! 죽여!”

“이야아아!!”

그의 외침에 가장 젊은 놈이 먼저 달려와 각목을 휘둘렀다.

빡!

각목이 해수의 머리를 정통으로 후려치며 부러졌다. 해수의 이마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린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른 사내들이 용기내어 달려들었다.

“죽어버려!”

“내 팔 내놔!”

“내 다리 내놔!”

퍼벅 퍽퍽 퍽!

누군가가 다리를 걸어 해수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엎드린 채로 무자비하게 짖밟혔다.

푹 푹!

누군가는 부러진 각목으로 해수의 팔꿈치를 찍고, 누군가는 칫솔 뒤쪽으로 해수의 손등을 몇 번이고 찍었다.

해수는 끔찍한 고통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반항할 의미가 없으니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해수의 얼굴로 못 박힌 각목이 날아온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때,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해수의 손이 각목을 붙잡았다. 못이 손을 관통하여 손등으로 튀어나왔으나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 모습에 사내들이 주춤하는 사이 해수가 몸을 일으켰다.

스윽

‘이가 없이면 잇몸으로, 경찰은 할 수 없더라도 아버지 살인범 추적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딜 쳐 일어나!”

뻑-!

그때, 뒤통수에 끔찍한 충격과 동시에 해수는 줄 끊어진 연처럼 풀썩 쓰러졌다.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

“...죽어!”

그때, 마치 사진의 다음장을 넘긴 것처럼 갑자기 주변 환경이 확 바뀌었다.

장대비가 내리고 있고, 깜깜하고, 눈앞에는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대리기사가 보였다.

‘칼?’

그때는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보인다. 해수의 몸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피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 안 돼!’

< #2. 나락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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