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화 (1/255)

넓은 호프집.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른 살의 동창회, 성공한 자들의 모임이다. 죽도 밥도 못된 놈은 참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니가 한 턱 쏴야지, 진급했다며? 경장인가 머시기?”

“경장 말고 경감, 경장은 해수가 경장이고.”

“아 해수도 경찰이었지? 그럼 뭐야, 계급이 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 거야?”

“야 뭘 그런 걸 묻냐? 해수는 순경 시험 봐서 들어온 거고 남철이는 경대 출신이잖아.”

경찰대 출신 동남철은 신해수를 힐끗 보고는 조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해수가 경장, 그 위로 경사, 경위, 경감, 세 개네, 금방이지 뭐.”

“세 개? 어마어마한 거 아니냐? 군대로 치면 쫄병이랑 대대장급 아니냐? 해수야 너 지금 이렇게 남철이랑 겸상해도 돼?”

해수는 살살 긁어대는 동창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없이 술을 털어 마셨다.

그 모습에 남철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야야 그런 게 어딧냐, 동창회에서, 안 그래도 해수 오늘 진급 미끄러졌는데 괜히 건들지 마라.”

“아 그래? 너는 오늘 진급했는데 쟤는 미끄러졌어? 기분 좃같겠네.”

쾅!

그때, 누군가가 맥주잔을 강하게 내리쳤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몰렸다.

까만 정장에 이마에 길게 흉터가 그어져 있는 사내, 해수의 절친이었던 황장수였다.

그는 험상궂은 인상을 들이밀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아, 좋은날 좋게좋게 마시자?”

평생 평범하게 살아온 이들이 칼밭에서 구르던 황장수의 기운을 이겨낼리 만무하다. 그들은 금세 꼬리를 말고 고개를 돌렸다.

동남철 역시 그의 기세에 눌렸지만 명색이 고위급 경찰인데 겁먹은 티를 낼 수는 없다.

“야야 분위기 왜 이래? 이 형 오늘 진급했다니까? 내가 쏜다! 짠!!”

“어, 오오! 역시 동남철!”

“오늘 남철이 믿고 달린다!”

굳어있던 동창들은 동남철의 말에 다급히 동조하며 자연스레 분위기가 물렁해졌다.

해수는 여전히 홀로 앉아 홀짝이고 있다. 그때 황장수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네가 나올 줄은 몰랐다.”

황장수는 해수와 같은 체육관에 다녔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항상 같이 붙어 다녀 쌍수라고 많이 불렸다.

해수가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동창회를 참석한 이유는 절친이었던 황장수가 격투기 선수의 길을 꺾고 깡패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직접 보니 분노와 실망보다는 허탈함이 앞섰다.

해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깡패랑 겸상 안 한다.”

황장수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말했다.

“······그래, 깡패랑 경찰이 겸상하는 모양새가 좋지는 않지, 근데 내가 들은 게 있어서 그냥 지나치진 못하겠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테이블에 놓고 해수에게 밀었다.

“돈 급하면 연락해라, 친구한테 이자 안 받는다.”

해수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는 들고 있던 잔에 담긴 술을 끝까지 들이키고는 테이블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굶어 뒤져도 깡패 돈은 안 먹어, 가라.”

황장수는 가만히 해수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알았다.”

장수가 자리를 뜨자, 해수는 그의 명함을 집어 바로 꾸겼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동남철이 다가왔다.

“너 아직도 채연이 집에 얹혀사냐?”

“네가 채연이 친오빠냐?”

“그렇게 돈이 없냐? 좁아터진 여친 집에 얹혀살고 싶냐?”

남철의 말에 해수가 눈을 부릅떴다.

“니가 좁은 건 어떻게 알아?”

“어? 그거야 당연히 나이도 어리니까 집이 좁겠지, 사회 초년생이 뭐 으리으리한 집에 있겠냐?”

말이 길다. 눈동자도 흔들린다. 느낌이 좀 더럽다.

하지만 해수는 오늘 자잘한 것까지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무시하며 술을 따랐다.

그러나 동남철은 포기하지 않고 해수의 신경을 긁었다.

“야, 너 별명이 과잉진압 전문 형사라며, 언제까지 그렇게 내일이 없이 살 꺼야? 너 합의금 밀린 것만 몇 천이라며, 감봉은 뭐 맨날 달고 살고, 형이 좀 도와줄까?”

술잔을 들던 해수의 손이 멈추었다. 추켜뜨는 해수의 눈빛이 사납다.

“깡패 돈보다 더러운 게, 너같은 새끼들 돈이야.”

남철은 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하여튼... 고딩 때나 지금이나 조또 없으면서 자존심만 강한 건 여전하네, 사회생활 7년쯤 했으면 주제 파악할 때가 되지 않았냐? 그러니까 니가 지금도 이따위 시궁창 인생이지, 너 같은 새끼한테 채연이는 과분해.”

콰직

해수가 쥐고 있던 맥주잔이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가 흐르는 손을 뻗어 동남철의 옷깃을 정돈해 주었다.

“동남철, 적당히 해야지? 죄 지은 게 많은 놈은... 형사 건드리는 거 아니야.”

동남철은 움찔했지만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의 치부를 해수가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합격자 고꾸러트리고 경찰대 추가 합격한 건, 동료 여경 성추행하고도 그 여자만 징계 먹은 건, 이번에 아버지 빽으로 시험성적 우수자 제치고 진급한 건, 모두 어쩌다보니 이놈이 알고 있었다.

증거가 없어 미친개처럼 물어뜯지 않는 거지, 마음먹고 동귀어진으로 파헤치면 골치아파진다. 잃을 게 많은 건 이놈보다 자신이다.

결국 비싼 셔츠가 피로 물들었지만 남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해수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눈을 마주했다.

“잘 마셨다.”

남철은 뒤늦게 호프집을 나서는 해수의 뒷모습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같잖은 새끼가 감히...”

***

호프집 밖.

신해수는 대리를 부르고 비틀비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후······.”

‘나도 뭐...’

해수는 어머니는 본 적이 없고, 아버지는 십 수 년 전에 자살로 위장 살해 당하셨다.

그 후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잡는다는 거창한 동기를 쥐고 경찰이 되었지만, 그때의 복수심과 패기는 수그러든 지 오래다.

지금은 그저 빚에 허덕이는 형사에 불과했다.

스읍 후-

차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며 대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저 한 대를 다 태우기 전에 한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대리 부르셨죠?”

“에? 예에······ 빨리 왔네.”

해수는 키를 건네고 뒷좌석으로 들어가 앉아 눈을 감았다.

집으로 가는 길, 대리는 차 중앙에 붙어 있는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물었다.

“와이프이신가봐요?”

“아······ 여자친구······.”

해수는 힐끔 눈을 떴다가 대답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예쁘시네, 다리도 늘씬하고······.”

해수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머리가 어지러워 무시했다.

그때, 대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가 존나 아깝네, 남자는 병신같은데······.”

해수의 눈이 살짝 뜨였다.

“뭐요?”

“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하.”

해수는 인상을 쓰며 등을 다시 등받이에 붙이고 눈을 감았다.

쏴아아아아-

해수의 울적한 기분을 씻어주려는 듯이,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눈을 뜨고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를 보고 있는데 대리가 또 말을 걸었다.

“여자친구가 밤일 잘하시겠다. 그쵸? 골반 잘 돌리게 생겼는데······.”

아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 새끼는 그냥 시비를 걸려고 작정한 새끼다.

“야, 차 세워.”

“예?”

해수는 앞좌석 등받이를 발로 강하게 찼다.

쾅!

“차 세우라고!”

“아, 알았어요. 말로 해요 말로.”

끼이익-

마침 인적이 드문 길이다. 갓길에 차가 멈춰 서자 해수가 문을 거칠게 열었다.

“내려.”

“예~예.”

해수는 대리를 내쫓고 운전석에 타려고 했다. 그런데 대리가 비켜주기는커녕 해수를 밀치더니 웃는 얼굴이 싹 바뀌었다.

“아저씨, 그렇게 빨리 뒤지고 싶었어?”

그가 싸늘한 눈빛을 지으며 오른손을 품에 넣었다. 지금 상황을 노린 건가?

“객기 부리지 말고 꺼져.”

“풋, 뒤질 줄 모르고 이 미친새끼가!”

그가 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며 달려들었다.

해수는 내리붓는 장대비와 온전하지 않은 정신에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의 공격을 피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제정신이었다면 팔을 꺾었을 텐데, 왜 주먹이 나갔는지 모르겠다.

퍼억-!

술에 만취해 있어도 주먹의 힘은 그대로였다.

대리기사의 몸이 살짝 떠올라 뒤로 몇 미터 밀려나더니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동시에 대리기사의 손에서 무언가 떨어졌지만 해수는 보지 못했다.

“아직 안 끝났······.”

해수는 그의 머리채를 잡고 일으키려다가 멈칫했다. 싸늘하다. 그의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순간 주변이 적막해졌다. 작은 신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머리에서부터 아스팔트로 흘러나오는 붉은 피.

놈의 뒤통수에서 피가 나고 있다. 어째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넘어질 때 부딪혔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드레일이 보였다.

사고가 있던 자리인지 끝 부분이 종잇장처럼 뜯겨나가 그 모서리가 매우 날카롭다.

그곳에 이 대리기사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가죽이 붙어 있다.

“젠장······.”

해수는 정신이 없었다. 몸이 술을 억지로 깨려는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가빠올 정도다.

대리의 목에 손을 대 맥박을 확인해 보니 뛰지 않는다. 숨도 쉬지 않는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이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죽었다고······.”

그제야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다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119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지이이잉 지이이잉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해수는 홀린 듯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울린 전화를 받았다.

-예, 팔팔대리운전인데요? 제가 좀 늦기는 했는데, 기다려도 안 보이셔서요. 어디세요?

“...뭐요?”

‘그럼 이 새끼는 뭐야...?’

< #1. 이 새끼는 뭐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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