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48화 (148/150)

148화. 유치원에 가자 (2)

모두가 숨을 죽였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지닌, 판타지적인 얼굴의 미남.

바로 옆에는 마찬가지로 아이의 손을 잡은 배우 원준이 있는데…….

미모로 전혀 꿇리지 않는다.

그러나 화려한 외모보다 유명한 것은 그의 능력.

키르단이라는 다른 차원의 수장으로서 황제, 마왕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지금껏 지구를 수많은 위기에서 구한 영웅.

학부모들의 시선이 그가 손을 잡은 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랬다.

이현에게도 아이가 있었다.

방송에도 나오며 공개됐던 아이가 제법 큰 모습으로 그의 손을 잡고 있는데…….

뿔과 날개가 어디 갔는지 안 보이지만 이현을 쏙 빼닮은 예쁜 얼굴이 딸임을 만천하에 증명 중.

지구에서는 보기 힘든 프릴이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웠다.

빈이도 유치원에 입학하러 온 것이다.

이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가 좀 늦었나.”

“아~ 마왕님! 안녕하세요!”

구석에서 어쩔 줄 모르고 사태를 보고 있던 선생이 이때다 싶어 달려 나왔다.

“전혀, 전혀 안 늦으셨어요!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래? 그럼 딱 맞춰 왔네.”

수군거리는 소리가 번졌다.

다들 숨길 수 없는 기쁨을 표출하는 중.

같은 유치원에… 마왕의 딸이 입학하는 것이다.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일단 게이트가 터져도 한달음에 마왕이 달려올 테니 세상 어디보다 안전할 것이다.

평소에도 잘 보호하겠지.

마왕, 이현의 딸과 애들이 친해지면 원준처럼 인맥으로 엮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인맥도 저리 가라 할 행운.

그때 빈이가 아빠의 손을 꾹꾹 잡아당겼다.

“아빠, 쟤 더러워.”

빈이가 가리킨 것은 땟국물로 얼룩진 아이.

잘 못 먹은 탓에 다른 아이들보다 확연히 마른 체구가 안쓰러웠다.

‘쫓겨나겠군.’

‘불쌍해라.’

이현이 빈이의 머리에 척 손을 얹었다.

“불쌍하네. 불쌍한 아이 보면 어떡해야 하지?”

“도와줘야 해.”

빈이가 척척 다가가더니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빈이야. 너는 이름이 모야?”

“유배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좋은 눈총을 받은 기억이 드문 아이였다.

그냥 길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데 도둑으로 몰려 크게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이름을 묻는 이유를 배현은 좋게 해석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차마 빈이의 하얗고 깨끗한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다들 스치기만 해도 질색을 한 탓에… 빈이도 그럴 거라 생각됐다.

그러나 빈이는 배현이 손을 내밀지 않자 먼저 덥석 붙잡았다.

“내가 깨끗하게 해주께!”

위이잉!

빈이의 손에서 푸른 빛이 나더니 배현의 몸을 감쌌다.

배현의 머리가 미풍에 휘감겨 잠시 위로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

빛이 사라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깨끗해진 배현의 몸이 드러났다.

빈이가 환하게 웃었다.

“깨끗해져따!”

홱 고개를 돌린 빈이가 이현에게 양팔을 벌렸다.

“아빠! 잘해찌!”

“아유~ 우리 빈이 잘했네~”

깨끗해진 몸에 배현도 놀라서 제 몸을 살폈다.

옷도 완벽하게 깨끗해졌다.

“오… 오아…….”

마법.

아직 어린아이가… 마법을 사용했다.

학부모들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리 마왕의 딸이라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마음도 참 착하고.

배현 모자를 쫓아내려고 했던 혜린이 이현에게 다가왔다.

“마왕님, 근데 이렇게 한 번 씻겨줘봤자… 어차피 계속 더러울 아이인데요. 아예 내보내는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이현이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응? 뭐야? 아줌마가 여기 원장이야?”

“아뇨. 그건 아닌데요.”

“불쌍한 애를 왜 내보내. 그치, 빈아?”

쪼르르 달려온 빈이가 아빠 바지를 잡고 끄덕였다.

“마자요.”

그러나 혜린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애 교육과 관련된 문제다.

마왕도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분명히 이해하겠지.

“그래도 말이죠. 애 교육도 생각하셔야죠. 병이나 안 좋은 버릇 옮으면 어떡해요?”

“음. 하긴…….”

이현이 끄덕였다.

“당신같은 학부모가 있으면 우리 빈이에게 안 좋은 버릇 옮긴 하겠네.”

혜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에… 예?”

이현이 선생을 불렀다.

“이봐. 여기 이 학부모는 입학 취소시켜.”

기다렸다는 듯 유치원 선생이 끄덕였다.

“네, 마왕님.”

놀란 혜린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자… 잠깐만요! 아무리 마왕님이라도 우리 애를 입학 취소시키실 자격은 없으시죠!”

“아뇨. 있으십니다.”

선생의 뒤에서 대뜸 유지애 이사가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냉소적인 미소로 지애가 말했다.

“이 유치원은 저희 헌터 협회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왕님께서는 협회의 대주주시고요.”

이현이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그랬어?”

이현이 없는 사이 제국이 산 것이라 이현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마왕님께서는 충분히 유치원의 운영에 간섭하실 수 있죠. 제게도 같은 권한이 있고요.”

지애가 문을 가리켰다.

정중하지만 거대한 얼음벽을 세운 듯 냉랭한 태도였다.

“죄송합니다만 나가주셨으면 좋겠군요.”

싸해진 분위기 속에 혜린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모멸의 시선에 혜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여론도 마왕의 편이다.

그녀에게는 거부할 힘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혜린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유치원을 나갔다.

지애가 빙긋 웃었다.

“그럼 입학식을 시작할까요?”

* * *

“아빠, 아빠! 언제 유치원 다시 갈 수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빈이의 눈에 샛별 백만 개가 담긴 채 반짝거렸다.

아침에는 별로 가기 싫다더니,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이런다.

허벅지에 앉은 빈이를 쓰다듬어주던 이현이 피식 웃었다.

“우리 빈이 얼른 가고 싶나?”

“웅!”

빈이가 손에 든 인형을 들고 해맑게 웃었다.

입학 선물로 받은 인형인데,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칭구들도 많아!”

“우리 빈이, 벌써 친구도 많이 사귀었구나?”

“웅! 이거 바!”

웬 사탕이 빈이의 손에 딸려 나왔다.

“아까 유환이가 줬어.”

이현의 미소에 실금이 갔다.

“유환…이?”

“빈이 예쁘다고 먹으래.”

“오호라~”

유환이라…….

철이에 이어 이번에는 유환이라는 놈인가.

우리 빈이를 번지르르한 말로 유혹하고 먹을 것으로 꼬시다니, 싹수가 노란 놈이 틀림없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지만 벌써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빈이가 줄줄이 새로운 과자며 종이조각들을 꺼냈다.

“이건 진수, 이건 혜월이, 이건 수리가 줬어.”

“으, 으응.”

그냥 인기가 많은 건가?

이 정도면… 미래의 아이돌로서 재능이 발휘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운전하던 베요네타가 갑자기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끼이익!

급제동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차가 앞차를 들이박고 나서야 멈췄다.

콰앙!

뒷좌석은 보호 마법덕에 아무런 물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빈이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하필 포장을 뜯던 쿠키를 뜯고 있던 빈이가 쿠키를 떨어트렸다.

파삭.

부서진 쿠키를 본 빈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아아아앙!”

“아유~ 우리 빈이 그래써요~ 슬퍼써요~ 야! 베요네타! 뭔 일이야!”

“소… 송구합니다! 갑자기 앞차가 멈춰서… 아! 괴물인 것 같습니다!”

“괴물이라고?”

빈이가 칭얼거렸다.

“후에에엥! 아빠아! 쿠키 깨져뗘! 후에에에엥!”

“아이구, 우리 빈이 쿠키 깨져서 어뜩해. 속 많이 상했겠네. 아빠가 쿠키 새 걸로 많이 사줄게요.”

“혜… 혜월이 쿠키이… 빈이가 먹고 시푼 건 혜월이 쿠킨데…….”

코를 훌쩍이며 하는 말에 이현의 얼굴이 굳었다.

“아빠가 혜월이 쿠키랑 똑같은 거 가져다줄 테니까 걱정 마.”

이현은 즉시 베요네타에게 텔레파시를 날렸다.

-당장 쿠키 크루엘한테 성분 분석해서 똑같이 만들라고 해!

베요네타가 비장하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폐하께서는……?

붉은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난 원인 제공자를 처단한다…….

감히 빈이의 쿠키를 깬 놈이 아까운 산소를 낭비하게 둘 수 없지.

* * *

“후욱후욱!”

먹필도사는 땀에 젖은 한복을 열심히 펄럭거리며 뛰었다.

건물 사이를 펄쩍펄쩍 뛰며 날아가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우와! 스파이더맨이다!”

“헌터지, 등신아.”

평소 같았으면 그런 관심에 손이라도 흔들어 화답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바쁘다.

게다가 힘들다!

별안간 도로 한가운데 게이트가 열렸고.

덕분에 교통망이 완전히 마비된 것이다.

운전이 안 돼서 파주에서 사당까지 마라톤을 했다.

원래 송풍이 잘 안 되는 한복을 입은 탓에 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제국 인간들은 뭘 하기에 내가 나와야 한단 말이오! 간만에 소개팅도 잡혔는데!”

오랜만에 참하고 능력도 좋은 아가씨를 소개받았다.

결혼까지 잘만 이어지면 은퇴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기둥서방으로 전직할 수 있을 터.

그런데.

“마왕 본거지에 출동할 수 있는 S급 헌터가 나뿐이라니! 말이 되나!”

먹필도사는 흘끔 시계를 보았다.

소개팅 장소는 다행히 가까운 홍대.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빨리만 물리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저 멀리에서 차 몇 대가 하늘을 날아 고가도로 아래로 떨어졌다.

쾅!

쿠웅!

“꺄아악!”

“으아아!”

차에서 뛰어나온 사람들이 도망치는데…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났다.

“크하하하하!”

토끼를 닮았지만, 머리부터 등까지 두꺼운 뿔이 돋은 괴물이었다.

티라노사우르스에 버금가는 크기다.

그것이 도로를 막고 서서 차 하나를 장난감처럼 들어올렸다.

안에 탄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떨었다.

“아이구! 살려주세요! 아이구, 어매야!”

멀리서 보던 먹필도사가 즉시 학을 소환해 올라탔다.

“이 망할 괴물놈! 이 몸을 여기까지 불렀으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오!”

소개팅 준비를 지연시킨 책임을 몸에 물어주겠다.

부채를 펼치며 날아가는데…….

타이어처럼 커다란 괴물의 눈이 할머니를 향했다.

“어매야! 아이구! 누가 도와줘요!”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 살의가 맺혔다.

“시끄럽군.”

발톱이 달린 커다란 손이 차를 깡통처럼 찌그러트리려는 순간.

“쿠키 돌려내!”

날아든 이현의 주먹이 괴물의 머리를 후려쳤다.

거대한 철구에 얻어맞은 듯 머리가 터지며 피와 뇌수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현이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착지했다.

“짜식이 우리 빈이를 울려?”

학을 타고 날아가던 먹필도사가 그 자리에서 굳었다.

“마… 마왕?”

실종됐다고 알려진 마왕이 왜 저기 있나.

그때 머리를 잃은 괴물의 사체가 넘어지며, 들고 있던 차도 아래로 함께 떨어졌다.

“아아악! 살려줘요!”

먹필도사는 재빨리 먹을 펼쳐 차를 받아냈다.

그를 본 이현이 반색했다.

“오. 너… 배추도사 아니냐!”

“먹필도사요!”

버럭 소리치며 앞에 착륙하자 이현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마침 잘됐네. 뒷정리 좀 부탁한다. 난 바빠서.”

“예? 아, 아니… 나도 바쁜…….”

“수고해!”

이현이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잠시 후, 차에서 나온 사람들이 먹필도사를 보고 환호했다.

이현의 공격이 너무 빨라서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우와아! S급 헌터!”

“최고다!”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허… 허허허…….”

먹필도사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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