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44화 (144/150)

144화. 초월자의 귀환 (1)

어둠이 드리운 묘지.

회색빛 대지를 박차고, 판타지스러운 갑옷을 입은 한 남자가 힘껏 달렸다.

“우오오옷! 방패 밀치기!”

파란 방패가 번쩍 빛나며 앞으로 반투명한 형상을 날려보냈다.

반쯤 썩은 시체들 다섯 구가 방패에 부딪쳐 박살났다.

하지만…….

봉철은 방패로 몸을 가리고 먼 묘비를 바라봤다.

묘비에는 흉악한 얼굴의 해골이 쪼그리고 앉았다.

[불사의 네크로맨서]

새카만 로브를 휘날리며, 손에는 보석이 박힌 완드를 들었다.

해골이 완드를 들어올리자 끝에서 에메랄드가 음산한 빛을 뿜었다.

“크크크크….”

무덤이 들썩였다.

쿠웅!

콰직!

흙이 들썩이고, 관이 깨지며 썩은 팔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으어어…….”

“어으어…….”

수십의 좀비가 다시 우르르 올라왔다.

봉철의 뒤를 따르던 여성 헌터가 창백한 얼굴로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봉철씨! 어떡하죠?”

“나… 나만 믿어! 난 A급 헌터잖아!”

자신만만하게 외친 봉철은 다시 앞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고작해야 B급 게이트.

마력 측정 결과값도 낮아서 무난할 거라고 생각하고 호기롭게 신청했다.

오랜만에 잘되가고 있는 여성 헌터에게 어필할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보스의 능력이 하필 그와 가장 상성이 좋지 않은 소환이었다.

탱커인 봉철은 A급 중에서도 공격력이 낮다.

광역기도, 일격필살의 공격기도 없다.

빠르게 소환수를 처리할 수도, 소환사를 단숨에 죽일 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뒤에 선 여성 헌터는 D급의 서포터.

‘나만 있으면 괜찮다’고 호언장담해 데려온 것인데…….

‘젠장… 다른 헌터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이 게이트에는 모두 팀의 헌터들이 들어왔다.

여성 헌터만 데려온 봉철과 달리, 다른 팀의 헌터들은 견실한 구성이었다.

그들이 오면 저놈 따위 쉽게 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어어…….”

좀비 하나가 방패를 붙들었다.

봉철이 움찔한 틈을 타 다른 좀비가 옆으로 팔을 뻗었다.

“끄어어어! 저리가!”

휙 방패를 휘두르는데.

별안간 불꽃의 구체가 방패를 휘두르느라 드러난 몸을 강타했다.

퍼엉!

“끄억!”

봉철이 데구르르 굴렀다.

아프다.

고개를 들어보니, 보스인 해골이 손에 화염구를 소환해 들고 웃고 있었다.

소환만이 능력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낚였다.

아니, 놀리고 있었던 것일까.

“크윽…! 괴물 주제에에!”

소리치며 일어나려는 봉철의 몸을 다시 한 번 화염구가 가격했다.

급히 방패를 들어 막은 봉철이 고개를 돌렸다.

“나연 씨! 얼른 피…….”

…하라고 말하려고 했더니 이미 백 미터 전력질주 중이었다.

“허.”

봉철이 허탈하게 웃었다.

콰앙!

다시 한번 화염구가 방패를 쳐 그를 넘어트렸다.

좀비들이 그의 위로 덮쳤다.

부패 중인 살점과 구더기들이 얼굴로 떨어진다.

시체 썩은내가 코를 가득 채웠다.

“으, 으아악!”

봉철은 어린아이처럼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죽음.

두 글자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살얼음 같은 한기가 가슴을 저몄다.

봉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쾅!“…해! 방어… 여기…….”

“…있… 좋아, 내가… 이얏호!”

“저기요! 저기요!”

찰싹!

왼뺨에서 느껴진 화끈한 감각에 봉철은 번쩍 눈을 떴다.

낯익은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B급 헌터 김남우.

“봉철 씨! 괜찮으세요?”

“어… 어? 당신이 여기 어떻게…….”

남우가 봉철을 일으켜세우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셔서 모르셨나 보군요. 저도 이 게이트 담당하기로 한 헌터 파티입니다.”

“그랬나…….”

쪽팔린다.

등급도 낮은 그에게 너무 추한 모습을 보여버렸다.

콰앙!

쿵!

묘비가 폭발하며 흙과 돌조각이 비산했다.

그 사이로 열심히 좀비들을 죽이고 있는 세 명의 헌터들이 보였다.

리치가 화염구를 쏘지만, 하얀 옷을 입은 헌터가 방어막을 사용해 이를 상쇄했다.

“크으으…….”

전세가 역전됐다.

핫팬츠를 입은 여성이 단검을 빙빙 돌리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야야! 일어났으면 빨리 합류해!”

“아, 넵! 봉철 씨, 괜찮으시겠어요?”

“어? 아, 응.”

* * *

게이트 공략이 끝난 후, 봉철은 남우에게 다가갔다.

다른 헌터들과 악수를 나누던 남우가 그를 바라봤다.

봉철이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고마웠다.”

“뭘요. 다들 돕고 사는 거죠.”

그런 말을 하는 그의 가슴에서 칠성검의 브로치가 반짝 빛났다.

“아니, 당신… 칠성검에 들어갔나?”

지금 블랙밴더와 함께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거대 길드, 칠성검.

길드장인 먹필도사가 좀 싸이코라는 소문이 있지만, 안 좋은 소문은 블랙밴더도 마찬가지다.

그 블랙밴더에서 몇 달 전 실적 문제로 퇴출당한 봉철은 지금 새로운 길드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B급 헌터인 그가 칠성검에 가입했다니…….

전투 때 그가 보인 몸놀림이 확실히 뛰어나기는 했지만… 왠지 분했다.

남우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 그거 대단하군.”

공기가 불편하다.

물러나려던 봉철은 남우가 든 디스플레이에서 ‘A급 헌터 김남우’라는 표시를 보고 경악했다.

“아니, 당신 A급이 됐어?”

“예? 아, 그렇죠. 얼마 전에 승급했습니다. 운이 좋았네요.”

A급.

그 이름은 대한민국에서 귀족을 의미한다.

A급 헌터가 갖는 권력과 재력은, 마왕의 군대가 게이트 공략을 돕기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하향 평가된 헌터들의 현 입지에서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C급과 A급은 당연히 어마어마한 차이를 지니며.

그 차이는 노력으로는 메울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C급에서도 말단이던 남우가 바로 그 A급이 된 것이다.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어떻게… 뭘 해서? 좋은 아티팩트라도 먹었나?”

아티팩트 중에는 사용자의 힘을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주는 것도 있다.

다만 그런 것은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구하기 어려운 탓에, 보통은 구하더라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남우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그냥… 꾸준히 노력했죠. 하하. 그래도 아직 봉철 씨 같은 A급 분들과 비교하면 한참 멀었어요.”

한참 멀었다니?

그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조만간 봉철 자신 정도는 금방 뛰어넘을 것이 분명했다.

봉철은 이를 으득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뭔 소리야!”

갑자기 뒤에서 한 여성 헌터가 남우의 목을 휘어 감았다.

딜러인 A급 헌터였다.

“아니, 너무 겸손하면 오히려 주변 사람한테 안 좋다니까? 남우 씨 정도면 A급 서포터 중에서도 최고지.”

다른 중년 헌터가 끄덕였다.“그래, 남우 씨. 우리랑 고정 파티하는 건 어때? 같은 길드잖아.”

그러고 보니 다들 칠성검의 헌터들이었다.

등급은 몰라도 칠성검의 헌터들인 이상 다들 한가닥하는@한가락 하는 이들일 터.

그런 이들에게 남우는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부럽다.

질투난다.

열등감이 지글지글 끓었다.

“오, 오늘은… 아무튼 고마웠어.”

“예, 봉철 씨. 다음에 또 봬요!”

쓸쓸하게 혼자 걸어가는 봉철의 뒤로 화기애애한 목소리가 울렸다.

“남우 씨. 오늘 게이트 힘들었으니까 회식이나 할까?”

“아니, 그냥 술 먹고 싶은 거잖아요. 뭐 나도 고기는 좋긴 한데.”

“어… 오늘은 집에 일찍 가야 할 것 같은데…….”

“에헤이~ 빼지 말고. 응? 2차 가자고는 안 할 테니까 1차만 하자. 1차만.”

낙엽 한 장이 봉철의 뒤에서 외롭게 흩날렸다.

* * *

서울역에 위치한 국립 전시회장.

그곳의 주차장에 잘 빠진 붉은색 람보르기니가 들어왔다.

차 문이 열리고, 검은 하이힐이 땅을 짚었다.

또각.

선글라스를 끼고 부티 나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작은 얼굴과 늘씬한 몸매에 지나가는 남성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앞을 가로막는 직원에게 여성이 집게손가락에 낀 티켓을 내밀었다.

티켓에 적힌 VIP 글자를 보고 직원의 태도가 즉시 공손해졌다.

“아… 헌터협회 유지애 이사님이군요.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붉은 줄을 치운 직원이 안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벽에 붙은 남자의 사진에 지애의 눈이 흘긋 향했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지닌 청년.

그가 게이트를 뒤로 하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 밑에는 문구가 보였다.

[이 사진은 멸망급 게이트 공략 후의 마왕님을 찍은 사진입니다.]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벽 위에는 ‘구세주 마왕 이현 사진전’이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직원이 지애를 안쪽 공간으로 안내했다.

작은 사진들 수십 개가 붙어 있었다.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개관 전이라 안은 한산했다.

“이쪽은 아직 마왕님께서 두각을 드러내시기 전에 찍힌 사진입니다.”

지애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잠깐 혼자 구경하게 해주시겠어요?”

“예, 물론입니다. 필요할 때 불러주십시오.”

직원이 물러난 후, 지애는 홀로 사진 앞에 서서 멍하니 사진들을 보았다.

이번 전시회는 협회의 주도 아래 발족된 것으로…….

몇 번이나 세계를 구한 영웅 이현을 기리는 취지였다.

취지에 맞게 사진은 모두 전 세계에서 기부받은 것.

그중 심사를 통해 선별한 사진을 특별히 확대해 액자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신경도 많이 썼다.

오늘 지애는 공식 개관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러@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아.”

사진 중 낯익은 것이 있어 보니…….

멸망급 게이트를 처리한 이현이 협회에 온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찍은 사진이다.

지애의 손을 잡고 어색하고 쑥스러운 미소를 띤 이현의 얼굴이 우스웠다.

피식.

저도 모르게 샌 웃음은 금방 한약이라도 들이켠 듯 쓴웃음으로 바뀌었다.

“벌써 2년이나 지났네…….”

2년.

이현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일반인들 사이에 마력 사용자가 늘며, 이들과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났고.

청년층의 마력을 이용한 범죄도 그 비율이 크게 늘었다.

공교육 과정에 마력 사용법을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다.

1년 전 출현한 S급 게이트는 제국의 도움으로 쉽게 공략에 성공했으나…….

벌써 2년이 넘도록 마왕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시민들의 불안이 커졌다.

[제국이 지구와의 우호 관계를 버릴 예정이다.]

[마왕이 멸망급 게이트 토벌 과정에서 사망했다.]

온갖 추측성 기사가 떠오르며 불안을 더욱 키웠다.

다행히 제국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었지만, 순간을 무마하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었다.

사실을 아는 지애의 입장에서는 더욱 불안했다.

‘언제 돌아오시는 거예요, 이현 씨.’

마왕 이현은 사라졌다.

제국의 기사단장들조차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몰랐다.

침체된 제국의 분위기는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음을 시사했지만… 지애조차 제대로 된 정보를 들을 수 없었다.

-백 년, 이백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폐하의 시간은 조금 다르니까요.

베요네타의 말은 오히려 절망을 부추기기만 했다.

지애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식사… 대접해주겠다고 하셔놓고.’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는 법이 어디 있어.

발을 구르고 분통을 터트리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지애는 애틋한 눈으로 사진 속 이현을 바라보았다.

“돌아오시기는…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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