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실연 (4)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숲속 길.
안경을 쓴 코브라가 혀를 날름거리며 걸었다.
책을 들고 이족보행을 하는 코브라의 뒤로는 다양한 모습을 한 아인들의 유아들이 졸졸 따라갔다.
코브라가 여성의 고운 미성으로 말했다.
“이제 여기를 지나면 블랙스톤 광산이 나와요.”
“후아아.”
겁을 먹고 움츠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호기심에 눈이 더욱 말똥말똥해진 아이도 보인다.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광산에 괴물 정말 있어요?”
코브라는 흐뭇하게 웃고 말했다.
“맞아요. 블랙스톤 광산에는 옛날옛날 황제 폐하께서 가둬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잠들어 있답니다.”
“헤에~”
“후아아~”
“무서워…….”
아이들이 잔뜩 겁에 질렸다.
그때 숲이 끝나며 너른 초원이 나타났다.
야트막한 언덕 너머, 검은 바위산이 보였다.
“저 너머가 바로 블랙스톤 광산이에요.”
“선생님, 괴물이 광산에서 나오면 어떡해요?”
아이들이 서로를 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코브라는 무릎을 굽혀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우리 황실의 기사분들이 열심히 힘을 합쳐 지키는 중이니까,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요?”
“그럼요~”
그때, 한 아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늘을 가리켰다.
“서… 선생님! 괴물이 나왔어요!”
어린아이다운 상상력이 당장에라도 괴물이 뛰어나오는 모습을 그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진짜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흔한 일이다.
코브라는 여유 있게 웃었다.
“어머, 그래요?”
고개를 돌린 순간.
“크아아아!”
하늘에 뜬 거대한 괴물이 포효했다.
“엄마나, 미친! 저게 뭐야악!”
놀란 코브라가 직업윤리도 잊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광산과 충동했다.
콰아앙!
광산이 폭발하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코브라가 두 손을 모았다.
“황제 폐하 맙소사.”
“거기!”
열 명의 조르그가 코브라의 앞에 착지했다.
“이런, 하필 이럴 때!”
“자자, 얘들아, 얼른 도망치자!”
“후에에엥!”
우는 아이들을 옆구리며 팔에 낀 조르그들이 재빨리 날아오르는데…….
콰르르르르!
등 뒤로 열풍이 밀어닥쳤다.
황금색의 불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는 중이었다.
* * *
이현은 재빨리 양팔로 몸을 가렸다.
동시에 그의 몸을 불길이 휩쓸어 날려 보냈다.
“뜨아아!”
날아간 이현의 등이 바위에 충돌했다.
콰아앙!
팔을 내린 이현이 앞을 보는데…….
“윙?”
새카만 우주.
저 멀리 푸른 구슬이 보인다.
사방에서 바위와 먼지 조각이 무중력을 부유했다.
제국을 내려다보는 세 개의 달 중 하나같았다.
충돌로 인해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진 상태.
“허허.”
우리 빈이가 아빠를 달까지 날려 보내고…….
“너무 심하게 놀잖아.”
이현은 단숨에 달을 박찼다.
콰앙!
크레이터 안쪽에 새로운 크레이터가 생겼다.
쐐애액!
순식간에 제국이 가까워졌다.
이현의 몸에 마찰열로 불이 붙으며 청백색으로 불탔다.
그의 몸이 하나의 유성으로 화했다.
광산에서 나오는 빈이를 발견하고 유성이 방향을 꺾었다.
“도로 들어가!”
떨어지던 이현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반투명한 황금색의 손바닥 형상이 수백 미터 크기로 나타나 빈이를 짓눌렀다.
“크아아!”
힘에 저항하던 빈이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번쩍!
빛이 종으로 퍼지며 거대한 원형을 그렸다.
쿠웅!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산들이 날카로운 절단면을 내비치며 떠올랐다.
이현은 그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미리 대피시키기를 잘했군.”
휘말린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이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빈이를 더욱 강하게 눌렀다.
“크르르! 카아악!”
반항하던 빈이가 견디지 못하고 광산의 안쪽에 박혔다.
입구를 막고 있던 방어 마법은 미리 해지해놓았다.
빈이의 몸이 깊은 안쪽으로 떨어졌다.
이현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가 더 깊이까지 빈이를 몰아붙였다.
“크아아악!”
쿵! 쿠우우웅!
그러나 빈이가 다칠 것이 두려워 힘 조절을 한 탓에 빈틈이 생겼다.
광채로 이루어진 날개가 사방으로 뻗어 돌벽에 박혔다.
그 상태로 빈이가 앞발을 휘둘렀다.
빈이를 눌러 내리던 거대한 손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찢어졌다.
“윽! 이런!”
도대체 지치지를 않는다.
빈이의 앞발이 파리를 잡듯 이현을 벽에 짓눌렀다.
콰앙!
마구 발을 휘둘러 벽을 할퀸 빈이가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벽을 향해 불을 뿜었다.
새카만 공간이 한순간 금색으로 밝아졌다.
콰르르!
불길이 잦아들며, 지하철 통로처럼 뻥 뚫린 구멍이 나타났다.
빈이가 그 구멍을 빤히 들여다보는데…….
“까꿍!”
이현이 위에서 떨어져 빈이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차마 주먹은 쓸 수가 없었다.
퍼엉!
“키엑!”
빈이가 다시 고꾸라져 안으로 떨어졌다.
풍덩!
새카만 물에 몸이 잠겼다.
“크르르르!”
빈이가 날개를 펼치며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크륵?”
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콜타르 같은 검은 액체가 스멀스멀 몸에 달라붙고 있었다.
어느새 몸의 절반을 거미줄처럼 감쌌다.
“크아아!”
빈이는 불을 뿜으려고 했지만, 불꽃은 목구멍에서 아른거릴 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날개의 광채도 점점 힘을 잃었다.
이현은 튀어나온 바위에 한 손으로 매달린 채, 빈이가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된 건가?”
붉은 눈이 신중하게 상황을 살폈다.
아무리 약화 됐어도 저 힘은 위험하다.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 방법은 극단적인 치료.
빈이가 정상으로 돌아온 후 약간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크게 다칠 것이다.
긴장과 초조로 입안이 바싹 말랐다.
“크아악! 크악!”
괴로운지 빈이가 온몸을 흔들며 액체를 떨쳐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액체는 더욱 빈이에게 달라붙을 뿐이었다.
어느새 목까지 액체에 덮였다.
“젠장.”
아무리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고통에 발버둥 치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으려니 너무 괴로웠다.
이현은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빈이를 바라봤다.
‘똑바로 봐야 해.’
한순간이라도 늦으면 오히려 빈이를 상처 입히는 꼴.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쿠르르르…….
마침내 빈이의 몸이 완전히 검은 액체 속에 잠겼다.
‘됐다.’
그 순간 액체 속에서 금빛이 번뜩였다.
‘설마?’
액체가 부글거리며, 안쪽에서 금색의 문자가 튀어나왔다.
커다란 거품이 안에서 부풀었다.
거품 안쪽에는 몸을 둥글게 말은 빈이가 있었다.
거품에서 검은 액체가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졌다.
물에 기름을 떨어트린 것 같은 반응이었다.
“방어막?”
가르쳐준 적도 없건만.
이현은 놀라 물끄러미 보다가, 빈이의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어설프지만 낯익은 구조임을 깨달았다.
‘설마 아시스의 결계를… 학습한 건가?’
빈이가 천재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하필 그 천재성이 이런 상황에 발휘되다니.
어느 정도 액체에서 떨어진 빈이가 활짝 몸을 펼치고 이현을 올려다보았다.
이현은 아연해 그 모습을 보았다.
작전 실패.
끝없이 탐식하는 공허의 힘도 통하지 않다니.
이제는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크아아!”
크게 울부짖은 빈이의 몸 주위가 일그러졌다.
“이런!”
공간이동이다.
급히 떨어져 빈이에게 날아갔지만, 그보다 빨리 빈이의 거체가 중심부를 향해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이현은 황급히 크루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작전 실패다! 뭐 다른 방법 없냐?!]
[예? 으아아! 폐하! 황녀님이 황궁에 나타나셨는데요?!]
“뭐?”
익숙한 곳으로 이동한 건가.
그 순간 어떤 생각이 이현의 머리를 스쳤다.
‘마법은 이성이 없으면 사용이 불가능할 텐데?’
아무리 초천재 대마법사라도 의식이 없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마법이라는 건… 지구로 치면 이공계의 끝판왕.
복잡한 계산과 수식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없이는 발현조차 불가능하다.
공간이동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을 무의식중에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현은 아래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저게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는 뜻일까?’
[금방 갈게!]
공간이동으로 황궁의 상공으로 이동한 이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빈이는… 어딨지?’
그때 이현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홱 몸을 돌린 순간.
빈이의 몸이 이현의 위를 덮쳤다.
쿠우웅!
황궁 전체를 돔처럼 덮은 보호막.
보호막과 빈이 사이에서 이현이 샌드위치처럼 짜부라졌다.
“뭐 하는 거야!”
이현은 힘껏 빈이를 밀쳤다.
“꾸어엉.”
살집이 있는 배가 젤리처럼 출렁거렸다.
훌쩍 밀려난 빈이가 보호막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바로 아래는 당연히 건물이 밀집한 지역.
“거기 아니야!”
펄쩍 뛰어 내려간 이현이 아래에서 빈이를 받쳤다.
쿠웅!
몸을 날려 쿠션을 대신한 이현이 다시 떨어지는데…….
빈이의 날개가 밝게 빛났다.
산을 절단하던 공격이 이현의 뇌리를 스쳤다.
“그건 안 돼!”
이현이 빈이의 몸을 지탱한 채 위로 날아올랐다.
구름을 뚫고 솟구친 순간 빈이의 날개가 번쩍 빛났다.
몸에서 성운이 퍼지고.
황금색의 빛줄기 수천 개가 위로 솟구쳤다.
투두두두두!
“엇?”
솟구쳤던 빛들이 짧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빛의 폭격이 시작됐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범위한 공격에 아찔해졌다.
‘공격 방식도 진화했어!’
게다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폐하!”
세 기사단장이 날아올라 방어막을 펼쳤다.
두두두두두!
쿠구궁!
폭격이 방어막을 두들겼다.
충격파가 지상을 뒤흔들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제국에서 싸워서는 안 돼.’
피해가 확대될 뿐이다.
하지만 이제 공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빈이를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이동시켜봐야 도루묵이고.
가려면 쉽게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했다.
이현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붕대 같은 문자의 행렬이 튀어나와 빈이를 둥글게 감쌌다.
임시방편이지만 잠깐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이현이 게이트를 열었다.
“너희들은 따라오지 마!”
기사단장들은 강하지만, 충성심과 동정 때문에 빈이를 상대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베요네타가 이현의 곁으로 올라왔다.
“아니 되옵니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마!”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어… 대충 생각해보고 있어!”
어쨌든 지금 제국에 있어서는 안 된다.
“여행 간 셈 치지 뭐!”
이현은 게이트 너머로 빈이를 밀어붙였다.
“폐하!”
단말마와 같은 소리가 그를 불렀지만, 이미 이현은 결심을 굳혔다.
그의 몸이 빈이와 함께 게이트를 통과했다.
숲속으로 몸이 곤두박질쳤다.
콰앙!
거체가 미끄러지며 숲이 솟구쳤다.
사방에서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며 한순간 세상에 그림자를 흩뿌렸다.
“후우…….”
이현은 빈이의 위에서 일어나 사방을 살폈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열대우림.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 처음으로 도착했던 무시무시한 약육강식의 차원이었다.
반사적으로 연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이라면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빈아, 아빠랑 같이 돌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