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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38화 (138/150)

138화. 아버지

“아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빈이가 이현의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어지러운지 풀썩 쓰러진다.

“어이쿠.”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현이 얼른 다가가는데.

발딱 일어난 빈이가 양팔을 펼쳤다.

“짠!”

“아유~ 우리 빈이 공주님이네~”

“아니야!”

빈이가 양손에 든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과 방패다.

“빈이는 왕자님이야!”

“…응?”

이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빈아, 왕자님은 남자를 왕자님이라고 하는데.”

우뚝 멈춘 빈이가 울먹거렸다.

손에서 검과 방패가 툭 떨어졌다.

“구롬 빈이 왕자님 모태?”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아, 아니! 비… 빈이도 왕자님 할 수 있지! 그럼!”

“빈이는 왕자님이다! 크아앙!”

신이 난 빈이가 홱 몸을 돌리더니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음?”

빈이의 날개가 눈에 띄었다.

새빨갛고 단단한 광택이 흐르는 비늘이 날개 끝까지 점령했다.

활짝 펼치니 분홍빛의 막에서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흐음.”

키도 5센치 정도 큰 것 같고.

머리카락도 벌써 목을 넘어 찰랑거린다.

‘확실히 너무 빨리 자라고 있어…….’

게다가 지칠 줄 모르는 저 체력과 귀여움.

몸 안에 아크 원자로가 내장된 것 같은 활기…….

이현은 눈을 부릅뜨고 응시했다.

빈이의 심장이 활발하게 마력을 돌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보였다.

크루엘의 관찰 및 연구로, 빈이가 주변 마력을 흡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증명이 됐다.

일단은 안전하다고 봐야 할 것이나.

여전히 걱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역시 레비아탄을 만나봐야 하나?’

“빈아.”

“웅.”

천진하게 돌아보는 빈이의 모습에 이현은 가슴이 욱신거렸다.

이렇게 예쁜 딸을 폭발물 취급하자니 슬프고 화가 났다.

그러나 지구를, 제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다.

“아빠랑 잠깐 어디 놀러 갈래?”

“쪼아!”

어딘지도 모르면서 일단 아빠랑 놀러 간다니 좋은 모양.

이현은 빈이를 꽉 안았다.

“우리 빈이, 아빠가 많이 사랑해.”

“웅! 나두! 아빠 짜랑해!”

* * *

“폐하! 너무 위험합니다!”

“송구하오나, 소녀도 같은 의견이옵니다.”

크루엘이 몸을 길쭉하게 늘였다.

베요네타도 굳은 얼굴.

이현은 배 위에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낙톤 데려가잖아.”

“죽음의 군단은 두고 가시지 않습니까?”

“제국을 지킬 전력은 있어야지. 죽음 녀석들도 오랜만에 제국밥 좀 든든히 먹고 싶을 테고.”

이현이 알기로는 벌써 휴가를 받아 여행 중인 녀석들도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소집해서 출정이라니… 못 할 짓이다.

“그래도…….”

“너희들이 보모냐? 걱정 마. 돌아올 거니까.”

우우웅!

고대 바이킹의 배를 연상시키는 배가 둥실 떠올랐다.

“그, 그럼 저희도 데려가시지요!”

베요네타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야, 너희들이 없으면 제국은 누가 지키고 일은 누가 해?”

“그, 그건.”

“걱정 말고 있어. 잘되면 오늘 안에 올 테니까.”

아낙톤도 레비아탄과 잘 이야기를 했다.

녀석들이 설령 외신에 속하는 종족일지라도 꼭 싸우리란 보장은 없겠지.

놈들이 좋아한다는 술도 잔뜩 실었고.

더 말이 나오기 전에 이현은 배를 출발시켰다.

새카만 게이트가 열리자, 이현의 품에 안겨 있던 빈이가 양손을 벌렸다.

“오아아!”

“갔다 올게. 빈아, 손 흔들어 줘야지.”

“다녀오게씁니다!”

해맑은 인사에 크루엘도 베요네타도 하는 수 없이 손을 흔들어야 했다.

후우웅!

게이트를 빠져나간 배가 새카만 우주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배의 뒤로 황금색의 물결이 길게 흩어졌다.

“아빠. 우리 오디 가?”

반짝이는 붉은 눈이 이현을 바라봤다.

“응? 어어… 아빠… 친구 보러 가는 거야.”

빈이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 친구도 이쪄?”

“풉.”

아낙톤이 옆에서 실소를 터트렸다.

이현은 빈이에게는 보이지 않게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 그럼! 당연하지! 아빠 친구 많아!”

“우.”

빈이가 입술을 내밀었다.

“빈이는 아빠 친구 마는 거 시러.”

“응? 왜?”

손가락은 꼼지락거리며 빈이가 속삭였다.

“왜냐묜… 친구 마느면 아빠가 비니랑 안 노라줄 거야…….”

역시 이렇게 착한 빈이가 위험할 리 없지.

다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이현은 순간 든 생각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빈이의 하얗고 통통한 볼에 쪽 뽀뽀했다.

“아빠는 빈이랑 평생 같이 놀 건데~”

시무룩하던 빈이의 눈에 은하수 천 개가 담겼다.

“딘쨔?”

“그럼~ 아빠는 빈이가 제일 좋아.”

빈이가 그를 와락 안았다.

“빈이도 아빠가 젤 조아!”

“그으래? 그럼 우리 빈이두 아빠랑 결혼할 건가?”

다른 딸내미들이 종종 한다는 말이 생각나 물었는데.

어째선지 빈이가 멈칫했다.

“우움~”

“우움?”

“우우움… 안 대.”

쿠르릉.

이현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왜… 왜, 안 되는 걸까?”

“왜냐면~”

“응.”

“비니는 철이랑 결혼하기로 해떠.”

철이.

유명 배우 원준의 아들이었다.

키드카페에서 만나 친해진 후로 종종 만남을 가졌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럼 엉큼한 약속을 했단 말인가!

역시 사내새끼들은 어려도 늑대다!

빈이가 이현의 얼굴을 보고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오아, 아빠 눈에 촛불이 이따!”

“응? 아니야, 빈아. 이건 촛불이 아니라 플레어라는 거란다.”

이글거리는 시선이 우주 어딘가를 강렬하게 응시했다.

“짐승은 불태워도 무죄겠지……?”

* * *

레비아탄이 사는 곳은 블랙홀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거대한 행성이었다.

막막한 우주 공간에 뜬 공허한 강철의 공.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다.

“아빠, 저게 모야?”

빈이가 다른 것에 관심을 표했다.

“음, 저건 블랙홀이라는 거야.”

“구경하댜.”

추상화가가 그린 호두같은 블랙홀의 빛나는 지평선을 보며 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거대 블랙홀에서 나오는 감마선 폭발은 빈이에게는 꽤 위협적일 수 있다.

“음, 그건 안 돼요. 위험하거든.”

빈이가 배의 난간에 턱을 올리고는 아빠와 블랙홀을 번갈아 바라봤다.

“예쁜데.”

“세상에는 예뻐도 위험한 게 있어.”

“그렇구나…….”

잠시 생각하던 빈이가 앗, 하고 이현을 바라봤다.

“구롬 베요네타도 위험해?”

‘베요네타, 좋겠구나. 빈이에게는 네가 예쁨의 기준이야.’

팔짱을 낀 이현이 끄덕였다.

“베요네타는 가끔 블랙홀보다 더 위험하지…….”

지금은 오히려 성질이 많이 죽었다고 할 수 있다.

동의한다는 듯 아낙톤이 끄덕였다.

“죽은 제 소환사를 떠오르게 한다니까요.”

“아… 어지간히 왈가닥이라고 했었지?”

“왈가닥이 모야?”

아차.

빈이의 앞에서는 해서는 안 될 얘기였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베요네타에게 ‘아빠가 베요네타 왈가닥이랬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프하하하!”

이현은 빈이가 제발 잊기를 바라며 웃음으로 무마했다.

배가 아낙톤의 인도에 따라 회색빛 행성에 착륙했다.

대기도 없고, 온도는 어림잡아도 영하 200도를 넘어설 혹독한 환경이었으나…….

이현이나 아낙톤이나 그런 것을 신경 쓸 몸이 아니었다.

빈이는 몇 겹의 보호막으로 보호받고 있고.

“그 레비아탄을 부르는 방법은?? 두드릴 문같은 건 안 보이는데.”

빈이의 생물학적 어머니, 레비아탄 문소드.

1억 살이 넘는 나이에 외신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지닌 자라고 했다.

말이 통하고 말고를 떠나 제대로 된 생명이기는 할지 의문인 상황.

“전 두드렸는데요?”

“응? 두드리다니? 뭘?”

아낙톤이 대뜸 내려서더니 땅을 주먹으로 마구 내려쳤다.

“이리 오너라!”

쿵! 쿵! 쿵!

“오호, 그래? 비켜봐. 내가 할게.”

붕 떠오른 이현의 발이 땅을 내리찍었다.

“이리~ 오너라!”

콰앙!

행성의 표면이 운석에 직격당한 것처럼 터졌다.

충격파가 행성 전체를 휩쓸고, 토사가 우주 밖에서도 보일 만큼 솟아올랐다.

이미 노크의 수준이 아니다.

아낙톤이 당황해 쳐다봤다.

“주군, 좀 셌던 것 같은데요?”

“아 그래?”

-쿠르르르르!

그 순간 강력한 힘의 파동이 일어났다.

저 멀리 뒤집힌 표면이 시뻘겋게 갈라지며 안에서 거대한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신화 속의 드래곤을 닮은 몸.

하지만 그 크기는 드래곤보다는 저 요르문간드와 비슷하다.

그 몸을 뒤엎은 붉은 비늘에 이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 녀석이…….”

눈이 마주친 순간, 괴물이 아가리를 쩍 벌렸다.

목구멍 안쪽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어,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한껏 영근 빛이 폭발하며 행성과 함께 이현이 있던 자리를 관통했다.

뛰어올라 피한 이현이 주먹을 들며 소리쳤다.

“얌마! 다짜고짜 뭔 짓이야!”

아낙톤이 할 말이 많은 눈빛으로 뒤에서 그를 지그시 보았다.

“야, 아낙톤. 네가 뭐 알 거 아냐. 진정 좀 시켜봐.”

“저도 공범인데요?”

“아, 그렇지.”

문소드가 다시 그들에게 입을 쩍 벌렸다.

“저걸 어떻게 진정시킨다.”

빈이를 안고 일단 방어에 집중하려는데…….

이글거리던 불길이 사라지며 주둥이가 닫혔다.

새빨간 한 쌍의 눈이 이현을 가만히 응시했다.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너, 나의 동족인가?

“오, 말 통하네.”

말이 통한다기보다는 의지를 나눌 수 있다는 개념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게 그거다.

빈이가 문소드를 가리켰다.

“용!”

“응. 용이지? 아빠가 용 친구랑 잠깐 얘기 좀 해야 하는데 저기 저쪽 가서 아낙톤이랑 놀래?”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빈이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망설였다.

“금방 올꾸야?”

“그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빈이가 작은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끄덕였다.

“아라쪄.”

“우리 빈이 착하네.”

이현은 훌쩍 뛰어 문소드의 앞에 섰다.

“난 이현이라고 한다.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왔지. 노크를 좀 강하게 한 건 미안.”

-…동족은 네가 아니라 저쪽의 모지리로군.

“…모지리?”

이놈이 감히 빈이를 모욕해?

생물학적 어머니라고 해도 쉽게 용서가 안 되는 발언이다.

이현이 꿈틀했지만 문소드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레비아탄은 탄생부터 완전하다. 완전을 이루지 못하고 태어나 다른 힘에 성장을 의지하고 있으니 모지리지.

성질이 난다.

당장 쥐어패고 싶다.

하지만 이놈은 만만한 놈이 아니고 빈이의 앞에서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것을 팰 수는 없다.

이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진정시킨 후 입을 뗐다.

“저 아이는 내가 알일 때 어떤 별에서 발견해 데리고 다닌 아이다. 너희들은 태어날 때 한 차원을 멸망시킨다며?”

-한 차원이 우리를 위해 바쳐지는 것이지.

빠직.

이마에 돋은 힘줄을 지그시 누르며 이현이 말을 이었다.

“저 아이는 아직 어느 차원도 멸망시키지 않았어. 앞으로 다른 차원을 흡수할 가능성이 있나?”

갑자기 문소드가 껄껄 웃었다.

-후후후후… 레비아탄의 힘을 이용해볼 생각인가? 그렇다면 안타깝게 됐군.

“뭐가?”

-저 아이는 말했듯이 모지리다. 다른 힘에 성장을 의지하고 있지. 너의 힘에 말이다.

“나?”

이현은 빈이를 돌아봤다. 빈이는 아낙톤이 줬는지 과자를 먹으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느끼지 못했나? 아마 차원을 떠나니 흡수할 힘이 필요했겠지. 그래서 한 차원보다 강대한 네 힘을 흡수했을 것이다. 보아라.

거대한 손이 빈이를 향해 펼쳐졌다.

-저 아이를 탄생시킨 것은 너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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