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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37화 (137/150)

137화. 새로운 신 (5)

[야, 민수야. AA피시방으로 와라.]

[안 오면 알지?]

톡을 본 민수의 얼굴이 굳었다.

명백한 협박이다.

“음? 뭐냐?”

옆에서 길가메시가 흘끔 쳐다봤다.

민수는 얼른 폰을 감췄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덜덜 떠는 다리를 길가메시의 손이 툭 짚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벌벌 떨어?”

“…다리가 아파서.”

“이 멍청아!”

쩌렁쩌렁한 고함에 고막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고작 이 정도 훈련에 아픈 티 내지 마라! 싸나이는 뭐라고 했냐!”

군기가 바짝 든 민수가 무릎에 주먹을 대고 꼿꼿이 앉아 소리쳤다.

“기세입니다!”

“그래! 기세!”

길가메시의 손이 민수의 등을 후려쳤다.

뻑!

앉은 자세 그대로 날아간 민수가 5미터쯤을 데굴데굴 굴렀다.

“켁!”

“기세다, 기세! 알겠냐!”

벌떡 일어난 길가메시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파도 괜찮은 척! 약해도 강한 척!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얕잡아 보일 뿐이야! 죽을 때까지 고개를 빳빳이 든다! 그게 사내라는 거다!”

“네, 넵!”

힘껏 대답하자 길가메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야지.”

‘6개월은 무슨… 한 달 안에 죽을 거야.’

이건 아동 학대다.

민수는 화끈거리는 등을 어루만지려고 애쓰며 훌쩍거렸다.

“좋아!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가보도록!”

“…네.”

터덜터덜 나오자… 선글라스를 낀 거한들이 손짓했다.

이제 2주나 봐서인지 태도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럽다.

“S급 헌터 ‘비스트’한테 매일 1:1 과외받는 기분이 어떠냐?”

…그런 농담까지 꺼내고 있었다.

민수는 어거지로 웃었다.

“하, 하하… 네. 조, 좋네요.”

비스트. 야수.

길가메시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네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부우우우웅…….

노을을 받으며 새카만 차가 골목길에 섰다.

“감사합니다.”

“어, 잘 가라.”

민수는 차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어디선가 곱등이 우는 소리가 울렸다.

“다녀왔습니다.”

“어, 우리 민수 이제 왔어?”

“네…….”

방에 들어서던 민수는 흠칫했다.

“친구 부를 거면 미리 얘기하지. 엄마가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환하게 반기는 어머니의 어깨 너머, 비릿한 미소를 띤 현석이 보였다.

“야, 왔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현석이 조소했다.

“하… 진짜, 민수야. 친구끼리 얼굴 보기 힘들다?”

“넌… 친구 아니야.”

민수는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공장에서 일하며 힘들게 벌어서 학교를 보내주는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더 짐을 얹어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늦게 오는 것도, 방과 후에 체육 보충이 있다고 둘러댔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모른다고 분위기가 이상함을 모를 수도 없다.

어머니가 민수의 손을 잡았다.

“싸웠어? 화해하려고 온 것 같은데… 잘 얘기해 봐.”

“엄마, 엄마는 나가세요.”

현석이 저놈이라면 어머니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안 되지.”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현석뿐만이 아니라… 다른 두 소년도 숨어 있었던 것이다.

집이 아니라 다른 곳에 숨어 있었는지 막 담장을 넘는 모습이었다.

민수는 거세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공포가 목을 옥죄었다.

“뭐, 뭐 하는 거야! 경찰 부를 거야. 빨리 나가!”

두렵더라도.

약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척 허세를 부려라.

길가메시의 폭력 섞인 당부 덕에 간신히 목소리를 꺼낼 수 있었다.

“허, 이 새끼 말이 짧아졌다?”

어머니가 민수를 감싸고 나섰다.

“너희… 뭐야? 뭐 하는 거야?”

“뭐하긴요. 친구랑 놀려는 거지.”

현석이 바닥에 칼을 박았다.

힐트 끝에 에메랄드가 박히고, 가드가 물고기 모양으로 치장된 화려한 칼이었다.

땅에 박힌 순간, 박힌 부분부터 물거품이 커지더니 삽시간에 집을 뒤덮었다.

“헉!”

민수는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가 조금 먹먹한 느낌이 들 뿐.

“야, 둘 다 묶어.”

현석의 명령에 두 소년이 달려들었다.

“너, 너희들 뭐야! 저리 안 가!”

어머니에게 달려든 두 소년이 그녀를 강제로 꿇어앉혔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몸무게가 70kg가 넘게 나갈 만큼 덩치도 큰 소년들이다.

그들은 쉽게 어머니를 제압했다.

현석이 칼을 톡톡 치며 말했다.

“이게 뭔지 아냐? 아티팩트라는 거야. 이 칼은 내가 원하는 반경을 외부랑 차단해주지. 방어막 같은 거라면 알려나? 아, 반경이라는 단어는 알지?”

현석은 모르겠지만, 민수는 현석보다 많은 아티팩트를 봤다.

길가메시가 훈련 도중 장난감 꺼내듯 수많은 아티팩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험성도 더욱 와닿았다.

“뭐, 뭐 하려는 거야!”

민수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고된 훈련이 무색하게… 소리치는 것 외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았다.

어머니를 돕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움직여! 움직여야 해!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돼!’

귀에서 삐-하는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민수는 한 발자국을 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아아!”

민수가 근육통을 무릅쓰고 달려갔다.

어머니를 붙잡고 있던 소년 하나를 민수가 온몸으로 밀쳤다.

방심하고 있던 소년이 비틀 밀려났다.

“엄마! 도망쳐!”

“민수야!”

“아, 개새끼야!”

밀려난 소년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민수의 배를 냅다 걷어찼다.

퍼억!

“컥!”

민수가 데구르르 굴렀다.

그 몸이 어떤 남자의 다리에 툭 부딪혔다.

“윽.”

“이게 뭔 일이야.”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선 남자.

현석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다른 두 소년은 아예 핏기가 빠져 뱀파이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남자가 민수의 뒷덜미를 잡더니 한 손으로 가볍게 일으켜 세웠다.

수건을 집는 것 같은 동작이다.

“마…….”

“마왕!”

이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응? 너희들 나 아냐? 아, 모르는 게 이상하겠군.”

도대체 이 달동네에, 그것도 이 집에 갑자기 마왕이 왜 나타나나.

세 일진이 얼어붙어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목덜미가 붙들린 민수도 당황해서 아픔도 잊고 그를 보았다.

현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친구끼리 놀고 있었는데요… 이거 다 자, 장난이에요.”

“그래?”

이현의 눈이 험악하게 번뜩였다.

그 순간 두 일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나며 바지가 시커멓게 젖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등신처럼 보여서 굉장히 유감이네.”

“윽.”

현석은 눈치가 빨랐다.

재빨리 방을 튀어나와 담을 뛰어넘었다.

뛰어내린 순간, 그의 앞뒤로 게이트가 생겨났다.

앞에 있던 게이트를 통과한 몸이 뒤에 있던 몸으로 튀어나와, 도로 담장 안에 착지했다.

이현은 손가락을 내밀고 있을 뿐.

특별히 힘을 쓴 기색도 아닌데.

이제는 현석도 오줌을 지릴 기분이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자, 잘못했어요.”

‘난 아직 애야.’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나이.

아직 어린 그들이 눈물을 보이며 사죄하면… 어른들은 으레 불쌍하다며 용서해주고는 했다.

게다가 그들은 촉법 소년이다.

법으로 처벌할 수도 없고, 처벌받더라도 금방 풀려났다.

경찰서를 갔다 오는 것이 약간 귀찮을 뿐이다.

이번 일도… 따지고 보면 아직 현석은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았다.

마왕은 영웅이라 불리는 자.

울며 빌면 분명히 봐주겠지.

우는 척하며 숙인 고개 아래 현석이 씩 미소 지었다.

“잘못했어?”

“네, 네. 잘못했어요. 흐으…….”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어떡하지.

현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영웅이잖아. 그렇게 큰 벌을 줄 리가 없어.’

상식적인 선… 자원봉사나 담배꽁초 줍기, 그 정도가 아닐까.

이미 몇 번 해본 일이었다.

“네… 네, 벌 받을게요.”

이현이 방긋 웃었다.

“그래? 베요네타!”

“네, 주군.”

별안간 모여든 벌레떼가 이현의 발치에 엎드리더니 요염한 여인의 형상을 그려냈다.

한쪽 무릎을 꿇은 베요네타가 나타났다.

“우리 제국법으로 납치, 주거침입이면 죄가 어떻게 되지?”

‘뭐? 제국법?’

현석이 당황해서 빼꼼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미성이 대답했다.

“손목을 자르고 얼음 광산에서 5년 노역형입니다.”

세 일진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현이 끄덕였다.

“음… 애들한테는 너무 과한 처벌인데.”

희망이 샘솟으려는 순간, 기요틴이 뚝 떨어져 희망의 끈을 잘랐다.

“받겠다고 했으니 받아야지.”

“자, 잠깐… 잠깐만요! 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요!”

우는 연기도 잊고 벌떡 일어난 현석이 외쳤다.

다른 일진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맞아요!”

이현이 귀를 후볐다.

“근데?”

“엣.”

너무 당당하게 되물으니 할 말이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부터 여긴 내 영역이 됐거든. 내 영역이니까 내 법으로 심판한다.”

“사… 살려줘요!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으어어엉!”

힘껏 외쳤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스스로 꽂은 아티펙트로 인해 소리가 차단된 상황이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릴 리가 없다.

그때 눈앞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찬바람이 훅 불며 눈송이가 하늘하늘 흩날렸다.

‘얼음 광산.’

상상만 해도 몸이 싸늘해지는 풍경이었다.

안에서 시퍼런 피부를 가진 설인이 걸어 나오자 기절할 지경이었다.

양손에 체인을 멘 설인이 두 쌍의 눈으로 현석을 노려보았다.

“이 녀석입니까?”

“응, 데려가.”

“살려주세요! 엄마! 으아아!”

이제야 현석이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는 모습은 민수가 보기에도 처절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한 번만요!”

설인이 현석을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현석이 발버둥 치며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빌었다.

“으아아! 제발요! 살려주세요! 진짜 안 그럴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팔짱을 끼고 보던 이현이 툭 내뱉었다.

“진짜?”

“네!”

“지, 진짜요! 다시는 민수 안 괴롭힐게요!”

“흐어어엉! 살려주세요! 허어엉!”

민수는 어처구니가 없어 쳐다봤다.

그 잔인하던 놈들이 다섯 살 꼬마처럼 처절하게 울고 있다.

믿기지가 않았다.

동시에…….

‘한심해.’

물끄러미 보던 이현이 별안간 물었다.

“그럼 거래할래?”

“하, 할게요!”

뭔지도 말도 안 나왔는데 일진 하나가 덥석 미끼를 물었다.

이현이 조소하며 말했다.

“이번에 너희들이 한 일… 지금 봐주는 대신, 사후에 가중 처벌받는 거야. 어때?”

사후.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가늠도 안 되는 추상적인 세계였다.

지금 당장 위험을 회피하고 싶다는 마음에 세 일진들이 끄덕였다.

“할게요!”

“그럴게요!”

“하… 할게요!”

“좋아.”

이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별안간 스산한 안개가 올라왔다.

세상이 뿌옇게 된 순간.

저승사자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오, 강림. 오랜만이네.”

“음, 웬일이오?”

넋이 나간 세 소년을 이현이 가리켰다.

“이 녀석들이 죄를 저질렀거든. 내가 지금 봐주는 대신 사후에 두 배로 받겠다는데… 되겠나?”

상상도 못 할 초자연적 존재의 등장이 그저 황당할 뿐.

멍하니 올려다보는 세 소년을 차례로 본 강림이 끄덕였다.

차갑고, 무뚝뚝한 음성이 웅웅 울렸다.

“되오.”

이현이 씩 웃었다.

“너희들, 약속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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