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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36화 (136/150)

136화. 새로운 신 (4)

올림푸스의 신들이 한데 모였다.

다 같이 공손히 손을 모은 자세.

아레스가 흘끔 제우스를 보았다.

“주신께서 왜 이리 공손하십니까……?”

“허허. 아레스, 이 녀석. 눈치가 있으면 조용히 하려무나.”

그때 그들의 앞에 마차가 내려섰다.

마차에서 이현이 훌쩍 뛰어내렸다.

“오… 오셨습니까.”

“어, 오랜만이네.”

이현의 강함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다.

제우스는 심하게 느껴질 만큼 정중했다.

마지막 자존심으로 굽신거리지만 않을 뿐이었다.

그때 아레스가 훌쩍 나섰다.

“으하하! 환영하네!”

“남자 품에 안기긴 싫다.”

이현이 끌어안으려는 아레스를 피했다.

모든 신들이 경악해서 바라봤다.

‘아레스 저놈이 미쳤나!’

‘저놈의 눈치가 결국 올림푸스를 조지는구나!’

그러나 아레스는 굴하지 않고 이현의 어깨에 손을 척 얹었다.

“어허, 그러지 말고 내가 좋은 술도 준비해놨는데 이따 얘기 좀 하지 그러나.”

“난 안주파야.”

평범하게 대화가 된다.

별로 기분 나쁜 기색도 아니다.

다들 어리둥절했다.

이현을 몰랐으니까.

이현은 자신을 옥죄는 것을 싫어했다.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타인을 옥죄는 것도 싫었다.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을 테니까.

굽신거리는 신들보다 이해타산 없이 접근하는 아레스가 더 호감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좀 귀찮기는 했지만.

“안주도 좋네! 맛난 걸로 잔뜩 준비했다고! 전쟁 후에는 연회를 여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이현이 피식 웃었다.

“그럼 생각해보지.”

“으하하! 잘 생각했네!!”

아레스가 이현의 등을 팡팡 때렸다.

초월적인 존재에게 초월적인 넉살이다.

이현이 안으로 들어간 후, 아테나와 제우스가 아레스에게 슬쩍 다가왔다.

“너… 대단한데?”

“어떻게 그리 무신경합니까?”

저녁밥을 먹을 생각에 마냥 신나 있던 아레스가 해맑게 물었다.

“응?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 * *

이현은 거대한 천구의를 올려다보았다.

놋쇠로 된 것 같은 모양에, 푸른 홀로그램이 겹쳐 있었다.

“그래서… 이걸로 지구를 조작하고 있었단 말이지?”

서늘한 물음이다.

대답에 따라 목숨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

헤르메스가 끄덕였다.

“네. 이미 아시겠지만, 지구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는 문제 자체는 막을 수 없으니까요.”

화산이 폭발하고 물이 범람하는 것과 같은 재해.

그것이 게이트였다.

적어도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를 포함한 성단들의 힘과 기술로는 막을 수 없었다.

그 점은 제국에 열리는 게이트를 막아보려고 노력했던 이현이기에 잘 알았다.

연구하다가 실패한 결과 아시스의 방패라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끝내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저희 성단 연합이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지연시키고 내부를 조작했습니다. 일종의 통제 시스템이죠.”

“그럼 그냥 너희들이 게이트를 정리하는 방법도 있었잖아?”

올림푸스의 군대는 강하다.

제국도 이미 게이트가 열리는 곳을 미리 파악해 군대로 대비하는 방식을 사용중이다.

“뭐 하러 그런 게임 같은 요소를 추가한 건데?”

“통제를 위해서였습니다.”

헤르메스가 홱 손을 휘둘렀다.

홀로그램에 현재 지구에 열린 게이트의 숫자와 더불어 묘한 그리스어 알파벳이 떠올랐다.

“지구에서 ‘성좌’로 각성할 만한 인간을 표시한 것입니다.”

“흐음, 그래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하며 마력을 깨우치는 인간이 많아졌습니다. 지금도 계속 늘고 있죠.”

“그건 알아.”

마력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어린아이들.

특히 초, 중학생들이 마력을 사용해 경찰을 공격하기까지 하며 문제가 되고 있다나.

게다가 이들을 막기에는 헌터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저희의 조사에 의하면, 외신은 마력을 사용하는 지성체의 숫자가 일정 이상이 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마력의 질과 양이 높아지는 것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저번 ‘불스아이병장’이 좋은 예죠.”

불스아이병장… 명우.

이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한 줄로 요약해줄래?”

“이 모든 것이 외신의 탄생을 막고, 외신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뜻입니다.”

“좋아.”

팔짱을 낀 이현이 헤르메스를 보았다.

“그건 어쨌든 너희들 얘기고… 내가 보기엔 그냥 인간들 갖고 노는 것처럼 보이거든.”

아마 이놈들은 숨긴다고 숨긴 것이겠지만.

이미 다 들통났다.

이놈들은 명백히 지구에 열린 게이트를 유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헌터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돈이라도 거는 것이겠지.

“그, 그건.”

터엉.

이현의 손이 천구의를 쳤다.

반박하려던 헤르메스가 입을 꾹 닫았다.

“이거 관리에 나도 들어가지. 최종 권한은 내가 갖겠다.”

“예? 갑자기 그러시면…….”

“뭐. 아예 내가 통째로 접수하려다 많이 봐준 거야.”

이미 지구는 이놈들의 시스템에 의지하고 있다.

상당히 같잖기는 하지만, 지금 갑자기 시스템이 바뀌어버리면 이놈들도 강경하게 나올 테고… 지구도 혼란에 빠질 것이다.

멸망급 게이트에 이어 외신의 침략이라는 재앙에 당한 지구에는 지금 평화가 필요했다.

이현은 일주일 전 보았던 소년을 떠올렸다.

지금 세상이 개판이 되면 그놈은 당장 악마와 계약하겠지.

‘민수였나. 그 녀석 잘하고 있으려나?’

헤르메스가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알겠습니다. 주신께 그렇게 보고하죠.”

“아니, 내가 직접 말하지.”

온 김에 이것저것 다 해결하고 가야 나중에 말이 안 나오겠지.

‘돌아가는 길에 민수 녀석도 좀 보고 갈까.’

* * *

“으으…….”

민수는 아팠다.

팔다리가 아파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평생 이렇게 운동을 해본 적이 있던가.

낯선 근육통에 혹사당한 몸은 평범한 동작도 지옥의 11번 체조로 만들었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길가메시, 그 인간은 너무 무서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간 민수를 괴롭혔던 현석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 죽으려고 해도 정해진 훈련을 마치기 전까지는 휴식이 없다.

무슨 능력인지 엄살을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해서 거짓말도 안 통했다.

지난 일주일간 몰래 도망쳐보려다가 걸린 것이 세 번.

그때마다 호탕하게 웃으며 훈련을 추가하는데…….

‘끔찍해!’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저었다.

이제 세 시 반.

조금 있으면 하교 시간이고… 그럼 또 지옥 훈련이 시작되겠지.

“하아…….”

“야, 오민수.”

갑자기 어깨에 턱 손이 얹혔다.

민수는 고개를 들었다가 얼어붙었다.

현석이 웃는 얼굴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하니 직접 온 것이다.

“잠깐 나와 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머리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등골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가자니까.”

부드럽게 다독이는 손길에 몸이 떨렸다.

“어? 뭐야?”

현석의 눈이 민수의 손등으로 향했다.

화상 흉터가 사라진 것이다.

요즘 돈을 들이면 치료 못하는 병이 없고, 죽은 사람조차 살린다지만…….

민수의 집에 그만한 돈이 없음은 현석도 알았다.

그래서 삥을 뜯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흉터가 치료됐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현이 흉터를 치료해줬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현석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거 진짜 궁금하네. 얘기 좀 하자.”

꿀꺽.

민수는 침을 삼켰다.

그 순간, 이현의 당부가 떠올랐다.

‘…쫄지 마. 그놈한테 네 발로 찾아가서 맞았다는 소리 들리면 그때는 내가 너 지옥에 던져버린다.’

당시에는 왜 그런 말을 하나 했는데…….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이다.

아래를 향해 있던 시선이 천천히 올라 현석을 마주했다.

이현의 사람 같지 않던 붉은 눈과 다른 평범한 갈색 눈.

지금껏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색도 몰랐는데…….

‘너, 내가 무섭냐, 그놈이 무섭냐?’

당연히 마왕이 더 무서웠다.

마왕이나, 길가메시에 비하면 현석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 둘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초월적이며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뭘 봐. 가자니까.”

눈을 마주친 게 거슬린 듯 현석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다시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괴롭힘당한 지도 8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쌓인 고통과 두려움은 흉터가 사라졌다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민수는 꼿꼿이 앉아 말했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어떻게든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싫어.”

현석은 교내에서의 평판에 신경 쓰고 있다.

여기서는 절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뭐?”

다시금 눈에 힘을 주고 민수가 말했다.

“싫어. 할 말이 뭔데.”

현석이 피식 웃었다.

“아니, 친구끼리 할 얘기가 있다니까.”

가면 안 된다.

가면 이놈이 아니라… 마왕, 이현에게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면 되잖아.”

갈색 눈이 뚫을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그뿐.

민수가 눈을 피하지 않자 현석이 물러났다.

“…됐다. 이따 얘기하지 뭐.”

현석이 나간 후, 민수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허억! 헉!”

남몰래, 거친 숨이 책상을 뜨겁게 울렸다.

‘내가 했어! 거부했어!’

뭔가… 달라진 걸까.

두려움을 더 큰 두려움이 눌렀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모두 이현 덕이었다.

* * *

“그 새끼가 사람을 X으로 봐!”

콰앙!

플라스틱 박스가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담배를 피던 현석이 그를 노려봤다.

“야야, 됐어. 시끄러우니까 그만해.”

“아니…….”

“그만하라고.”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소년이 조용해졌다.

친구로 어울리고 있기는 하지만 현석이 무서운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강하고, 손에서 불을 내는 초능력자가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다.

말이 친구지, 현석은 순전히 힘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게다가 힘뿐만이 아니라 현석에게는 재벌가라는 뒷배도 있으니…….

대부분이 가출 청소년인 일진들에게는 감히 대들 수가 없는 존재였다.

현석이 담배를 맛깔나게 빨고는 먼 곳을 바라봤다.

“민수 이 새끼. 귀엽게 노네.”

“어쩔까?”

현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두 소년을 바라봤다.

이 등신 새끼들.

물어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마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

그간 같이 놀아줬던 이유는 구린 일들을 잘 알기도 했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떠넘기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미련 없이 손절할 예정이었다.

이런 일진 놀이는 중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촉법 소년은 고등학생에서 끝난다.

그때는 미래를 위해 깨끗하게 살아야지.

“뭘 어째. 끌어내서 줘패야지.”

“현석이 너라면 어른 둘이어도 이기잖아. 마력 있으니까.”

아부 섞인 발언에 현석이 피식 웃었다.

“뭐 그렇긴 하지.”

마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게다가 현석은 부모님에게 받은 아티팩트까지 있었다.

자그마치 B급의 아티팩트.

어지간한 헌터들도 갖고 다니지 못하는 아티팩트다.

현석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강철과 비슷한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에 감겼다.

건방지게 노려보던 민수의 눈이 생각났다.

“다른 건 상관없는데… 그 새끼 눈깔이 마음에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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