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새로운 신 (2)
커다란 화면에 아자토스와 싸우는 이현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그 위로 각기 다른 각도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이 새싹처럼 돋아났다.
화면이 꺼지고.
새카매진 화면에 유지애 이사의 얼굴이 비쳤다.
“보시다시피…….”
그녀가 시선을 향한 곳에는 팔짱을 낀 이현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이현님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이현님인지 모르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다들 많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자토스를 물리친 후, 이현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지애는 그 황금색 존재가 이현일 거라 짐작하면서도 아무런 해명도 할 수 없었다.
“하음… 그래?”
이현이 하품했다.
느슨한 모습이다.
빛나는 거인으로 변해 막대한 힘을 휘두르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그거… 이현 님이 맞죠?”
“응, 나 맞지. 그러니까 온 거 아냐. 그게 나였다고 밝히면 되지? 인터뷰 일정은 잡았나?”
“네, 인터뷰 일정은 이현님의 일정에 맞춰 협의하려고 합니다.”
“그건 그쪽에서 정해서 통보해줘.”
지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솔직히 그 거대한 모습을 보고 거리감을 느꼈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평소의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하긴, 모습만 달라졌을 뿐 원래도 강한 힘을 지녔던 그가 아닌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응?”
배 위에 두 손을 모은 지애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지구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망하게 뭘. 그쪽도 고생했잖아.”
이런 거대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큰 욕을 먹는 곳이 헌터협회다.
왜 미리 막지 못했냐.
이러라고 준 돈이 아니다.
이번에는 이현 덕에 미리 사태를 알아채고 준비할 수 있었고. 덕분에 성원을 보내는 시민들의 수가 더 많았으나…….
원래 사람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신경이 쓰인다.
그것은 이 바닥에서 아무리 오래 일한 지애라도 마찬가지였다.
이현의 말이 지애에게는 큰 위로로 다가왔다.
‘정말… 좋은 사람이야.’
이현이 일어났다.
“그럼, 뭐 업무는 끝났으니 가볼게. 다음에 시간 나면 또 보자고.”
또 보자는 말이 지애의 가슴을 울렸다.
“다, 다음에… 집에 가봐도 될까요? 전에 이현 씨도 저희 집에 오셨으니까요.”
“아, 나도 대접해주기로 했었지.”
‘기억하고 계셨구나!’
이현이 전화 받는 시늉을 했다.
“시간 날 때 연락해.”
* * *
어두운 골목.
담배를 물고 핸드폰을 보던 중학생 하나가 말했다.
“야, 너 뉴스 봤냐? 그 괴물 물리친 게 마왕이라더라.”
바로 앞에서 담배를 피던 다른 중학생이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촉수 괴물?”
“아니, 촉수는 뒤진 새끼가 촉수고. 넌 뭐 했냐?”
“휘바, 바빴지.”
“바쁘긴 네가 뭘 바빠. 잠이나 처잤겠지.”
낄낄 웃은 중학생이 검지를 들었다.
검지 끝에 불꽃이 일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맛깔나게 담배를 한 번 빤 중학생이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아~ 존나 좋겠다. 나도 마왕처럼 세지면 좋겠다. 그럼 다 존나 빨아줄 텐데.”
지금 마왕 이현의 힘은 이미 한 국가의 수장 정도를 넘어섰다.
“현석이 넌 벌써 블랙밴더에서 스카웃 왔다며? 너 정도면 나중에 마왕처럼 될 수 있는 것 아냐?”
블랙밴더라면 지금 거의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길드.
그 수장인 쉐도우 로드의 악명도 유명했다.
“진짜? 중학생인데?”
검지에서 불꽃을 피우던 중학생, 현석이 피식 웃었다.
“아~ 그건 숨기라니까. 길드에서 비밀로 하랬다고.”
“개쩌네… 와.”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현석이 먼 곳을 바라봤다.
“근데 괜히 헌터돼서 괴물이랑 싸우는 건 귀찮아서… 아직 생각 중이야.”
“왜? 헌터 돈 많이 벌잖아! 그냥 해! 나라면 했다!”
옛날에는 큐튜버가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지만, 지금은 헌터가 최고다.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누구나 마력을, 힘을 원함이 당연한 이치.
거기에 명예와 돈이 따르니 어렸을 때부터 마력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사교육이 유행했다.
그리고 현석은 그 사교육을 받으며 큰 엘리트.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E급의 마력.
모든 것이 우월했다.
“등신아. 헌터는 목숨 걸고 해야 하잖아.”
헌터처럼 지저분한 일은 싫다.
몸으로 뛰는 일은 천박하다고 부모님도 그랬고.
‘난 신인류야.’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
훨씬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다.
마왕 같은.
“에이~ 마왕은 직접 발로 뛰잖아.”
현석이 조소했다.
“마왕도 당연히 약한 놈들이나 잡겠지. 넌 인터넷에서 떠드는 소리를 다 믿냐?”
현석은 지금 마왕의 명성에 과장이 섞였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신이다]
[구원의 영웅]
다들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방송도 봤지만, 사람이 그렇게 완벽할 리가 없잖아?
그 군대의 힘이 대단한 것일 뿐이지 마왕 개인은 그리 강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싸운 괴물도 사실 다른 S급 헌터들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일 테고.
“하긴.”
“난 이제 사당으로 이사 가서 마왕이랑 같은 동네가 되니까… 그쪽에 스카웃 될 수도 있겠지.”
“아씨, 크크크. 부럽다.”
현석이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무릎을 꿇은 소년이 보였다.
겁에 질린 얼굴로 땅만 보는 중이다.
“우리 멍멍이 못 보는 건 좀 아쉽긴 해.”
현석이 민수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손이 민수의 뺨을 툭, 툭 쳤다.
“야, 민수야. 너도 아쉽지? 응? 대답 안 해? 엉?”
“아… 아쉬워.”
눈물이 툭툭 바닥을 적셨다.
“크~ 그치? 그럼 아쉬우니까… 형이 가는 김에 친구 완장 채워줄게.”
현석이 검지를 들었다. 검지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민수가 흠칫 떨고는 손등을 가렸다. 그의 손등에는 빨간 화상 자국이 있었다.
“어쭈? 가려? 개새꺄. 손 안 떼?”
“제, 제발… 하지 마…….”
현석의 얼굴이 굳었다. 쳐다보며 낄낄대던 다른 중학생이 뒤에서 민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개새꺄! 네가 뭔데 하라 마라야. 뒤질래?”
현석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아, 씨. 왜 애를 패. 우리 친구잖아.”
척.
현석이 민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집게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담배가 부스스 재를 어깨에 흘렸다.
“그치? 우리 친구 맞지?”
현석은 지그시 민수를 바라봤다.
아랫입술을 꼭 물고, 두 눈은 공포에 젖었다.
민수가 벌벌 떨며 끄덕였다.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
힘에 굴복해 멍청하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따르는 바보를 보는 것.
그가 힘을 지닌 ‘강자’임을 체감시켜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수는 귀여웠다.
말 잘 듣는 애완동물 같달까. 키우기에는 좀 비루하지만.
‘애완동물 유기는 흔한 일이니까.’
픽, 웃은 현석이 검지를 까닥였다.
“손 내밀어 봐. 아~ 괜찮아. 친구잖아. 내가 친구 표시 새기려는 거야. 걍 문신 같은 거라니까. 저 새끼들도 다 했어.”
“야, 우린 돈 주고 했다.”
“와~ 우리 민수 좋겠다!”
“으… 으.”
민수가 덜덜 떨며 손등을 내밀었다. 현석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달아오른 검지가 손등으로 향했다.
“친하니까 두 줄.”
치익!
“아아아악!”
“어어? 아이~ 야! 움직이니까 그리기 힘들잖아. 야, 이 새끼 손 잡아.”
“응.”
치이익!
“으아아! 싫어! 그만해! 아악!”
* * *
“자, 다 구웠다~”
불판 위의 고기를 집은 이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고기를 잘랐다.
접시에 올려놓기 무섭게, 빈이가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작은 입이 어떻게 저러나 싶게 고기를 욱여넣었다.
“와앙!”
“아유, 잘 먹네.”
그 모습을 매직미러 너머에서 크루엘이 관찰했다.
그가 서류를 들어 체크했다.
“흐음, 이상 조짐 안 보임…….”
옆에서 베요네타가 그가 든 서류를 흘긋 보았다.
“역시 공주님께서는 그런 흉악한 힘을 갖고 계시지 않으신 거겠죠.”
“모르지.”
다른 서류를 집어 드는 크루엘에게 베요네타의 시선이 섬뜩하게 꽂혔다.
“모른다니요?”
“황녀님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잖아? 그 힘의 출처가 어딘지는 불명확하고.”
“폐하의 사랑의 힘이겠죠.”
“농담이 심하군.”
냉정하게 자른 크루엘이 말했다.
“서툰 감정으로 판단해서는 안 돼. 폐하를 위해서라도 황녀님의 몸을 제대로 검사해야 한다고. 예를 들어…….”
크루엘의 팔이 여럿으로 늘어나 수정들을 바쁘게 조작했다.
“황녀님이 어떤 특정 존재의 마력을 콕 집어 흡수하고 계시거나, 스스로의 생명을 연료로 마력을 불리는 중일 수도 있지.”
“꼭 그런 끔찍한 말을…….”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흥.”
그러나 이번에는 베요네타도 더 크루엘을 압박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옳은 얘기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의혹을 하루빨리 벗겨내는 것.
그것이 주군을 위한 일이겠지.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이현이 방을 나왔다.
“어때?”
“현재로서는 수치적으로 별다른 이상은 안 보입니다.”
“그래?”
다행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다행’이라는 말을 뱉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일까.
“그럼 난 잠깐 빈이랑 한국에 다녀올게.”
빈이가 제국을 좋아하기는 해도, 태어난 곳은 한국.
한국을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다.
제국보다는 한국을 더 편하게 생각하니, 가끔은 돌아가야 했다.
베요네타가 얼른 나섰다.
“같이 가시죠!”
“뭐 그러던가.”
베요네타의 두 눈에 ‘야호’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 모습에 크루엘이 물거품을 길게 뱉었다.
“전 여기서 연구 좀 더 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
이현이 그 자리에서 게이트를 열었다.
목적지는 베요네타에게도 익숙한 강남 외곽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게이트에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굳었다.
강남도 이번 사태에서 무사하지는 못해… 전투와 파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벌어진 사태라 복구는 더뎠다.
“이것 참.”
베요네타도 혀를 찼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당시 남우네 가족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남우 씨, 괜찮을까?’
참 좋은 사람인데.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때 이현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외곽이라고 해도 강남은 강남.
주중인데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왕님 아냐?”
“마왕님… 같은데?”
“마왕님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원형으로 포위됐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람들도 생겼다.
“마왕님!”
“우와아!”
“싸인해주세요!”
“사진 찍어주세요!”
길이 막혔다.
이현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바쁜데 길 좀 내주지.”
“앗, 네!”
“저기요! 길 좀 비켜주세요!”
“마왕님 지나 가신데요!”
모였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고맙군.”
이현이 유모차를 끌고 인파의 가운데를 당당히 지나갔다.
베요네타가 그 옆에 딱 붙어 가는데…….
주위에서 수군대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근데 저 여자는 누구야?”
“마왕님 군대 기사단장이래.”
“오오, 겁나 이뻐.”
“옷 너무 야한 거 아니냐.”
“단둘이 온 거 보면 데이트?”
“연인 아냐?”
“그렇고 그런 사이겠지.”
‘훗.’
보랏빛 립을 바른 베요네타의 입술이 위로 호선을 그렸다.
‘따라오기를… 잘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