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증오의 끝 (1)
[오빠, 괜찮아? 무사하면 전화해.]
[엄마랑 벙커에서 나옴]
[오빠, 우리 플라자호텔 801호에 있어.]
[오빠, 여기 괴물 왔어, 도와줘.]
[일단 숨었어.]
[방에 들어온 것 같아.]
[오빠 사랑해.]
남우는 핸드폰을 접고 발을 멈췄다.
전투가 끝난 직후 쉬지 않고 뛰어온 탓에 허벅지가 끊어질 듯 아팠다.
멀리, 플라자 호텔의 간판이 보였다.
“저긴가…….”
호텔의 입구는 이미 완전히 부서졌다.
외벽에도 여섯 마리의 괴물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리창을 깨고는 안으로 쑥 들어갔다.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안 돼…….”
남우는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무릅쓰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나까지 죽어서는 안 돼.’
침착하자.
어머니와 동생은 분명 살아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쨌건 호텔에 들어가야 한다.
남우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추스르며 호텔에 들어갔다.
“하아, 하아…….”
로비는 피로 칠갑되어 있었다.
죽은 괴물 두 마리와 잔인하게 찢겨 죽은 남자의 시체가 보였다.
아마 괴물을 막으려던 헌터일 것이다.
그래도 이 강력한 괴물들을 두 마리나 막다니…….
‘고생하셨습니다.’
남우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찌그러진 채 열려 있고, 안쪽에서 불이 깜박였다.
깜박이는 수은등의 창백한 빛이 흘러나오는 흥건한 피를 비췄다.
‘엘리베이터로는 갈 수 없겠구나.’
마음이 더 급해졌다.
남우는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넘으며 8층을 전력으로 올랐다.
평소라면 괜찮았겠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였던지라 8층에 도착했을 땐 완전히 땀범벅이 됐다.
“허억, 헉!”
801호.
두리번거리며 희수의 방을 찾던 남우는 아연했다.
거의 모든 방의 문이 부서져 있었다.
“희수야!”
이제 괴물이 듣건 말건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구조를 보면 아마 여기가… 801호!’
남우는 급히 방에 들어갔다.
방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한쪽 벽이 부서져 바깥 광경을 훤히 보였다.
반쯤 부서진 침대에 피로 물든 옷자락이 보였다.
“하아… 허윽…….”
눈물이 나왔다.
남우는 뿌얘진 눈앞을 팔뚝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러나 금방 다시 눈앞이 뿌얘졌다.
“어, 엄…마.”
피묻은 어머니의 옷.
그것이 의미하는 잔혹한 현실이 남우의 정신을 두드렸다.
그때, 희미한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려왔다.
“헉.”
남우는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박살이 난 화장실 문을 억지로 떼어내자, 욕조 속에 바들바들 떠는 그림자가 보였다.
“엄마?”
겁에 질린 눈동자가 빼꼼 올라왔다.
“남우니……?”
“엄마!”
엄마의 아래에서 희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
세 가족이 와락 부둥켜안았다.
‘이럴 수가… 기적인가?’
남우는 한참 꿈결같은 둘의 온기를 안고 있다가 몸을 뗐다.
다친 데도 없다.
흔적을 보면 분명히 괴물이 안까지 들어왔는데.
“그 괴물들… 사실 눈이 나쁜가?”
“아냐, 오빠.”
희수가 눈물을 닦고 말했다.
“마왕 오빠 덕이야.”
“어…? 형님이 지켜주셨어?”
“그게 아니라…….”
* * *
삼십 분 전.
욕실에 숨은 희수와 엄마는 서로를 안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가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문을 열었더니 막 엘리베이터에서 촉수가 나오는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둘은 화장실에 숨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앙!
문이 부서지며 부서진 문틈으로 시뻘건 눈이 나타났다.
-꺄악!
-희수야!
어머니가 욕조에 희수를 숨기고 자신이 그 위를 덮었다.
-괜찮아. 엄마가 지켜줄게. 괜찮을 거야.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희수는 어머니를 밀쳐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괴물이 욕조로 머리를 기울였다.
그 순간, 어머니의 몸을 붉은 막이 감쌌다.
세 개의 붉은 눈이 보였다.
괴물이 기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탄이 성경을 읽는 것 같은 모독적인 소리에 귀가 썩을 것 같았다.
어째선지 전혀 모르는 언어인데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어둠의 파라오시여… 오오오… 무한의 종복이시여…….
-그대의 비약으로 살린 자에게 접근하지 않겠나이다…….
괴물이 물러났다.
* * *
“그 괴물이 말한 비약이라는 건… 엄마가 드신 그 약이 아닐까?”
남우는 물끄러미 어머니의 몸을 보았다.
어머니의 몸에서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에게서도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뭔가 그 이상의 힘이 어머니를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
괴물이 두려워하며 물러난 힘이라는 점이 다소 꺼림칙했다.
‘일단 어머니는 살았어. 지금 해결할 수 없는 걸 생각하지 말자.’
남우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그래, 형님 덕에 또 목숨을 구했네.”
“이제 어떡하지?”
희수가 겁에 질려 올려다봤다.
남우는 희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안전한 데를 찾아보자.”
* * *
불타는 황금의 검이 아자토스를 내리그었다.
금색의 광채가 아자토스를 반으로 갈랐다.
몸이 쩍 벌어지며 체액을 뿜은 순간.
아자토스의 몸을 이룬 거품들 중 하나가 금색으로 물들더니 펑 터졌다.
체액을 뿜으며 침몰하던 아자토스의 몸이 사라졌다.
‘또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한 사태.
감각을 확장하자 바로 옆에 나타난 기척이 느껴졌다.
이현은 급히 몸을 젖히며 옆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퍼억!
촉수가 얼굴을 후려쳤다.
쩌적.
이현의 얼굴에 얇은 금이 갔다.
피 대신 불티가 터졌다.
이현은 검을 휘두르고 일단 거리를 벌렸다.
“큭…….”
또다.
죽였는데 살아나고, 피했는데 맞는다.
아마도 녀석의 능력.
원래라면 무슨 능력을 가졌던 검에 베이고 찔린 순간 파훼되어야 하는데…….
아자토스에게는 모든 법칙을 거부하는 이현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통하고는 있다.
다만 녀석은 몸의 무수한 거품 중 하나로 이현의 능력을 대신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저 더럽게 자글거리는 거품들을 다 터트릴 때까지 죽일 수 없다는 뜻인가?’
하지만 놈의 거품은 보이는 대로 무수하다.
수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
그 힘이나 체력도 좋아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죽지도 않는 놈이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니.
놈의 공격을 맞으며 슬슬 몸에 데미지가 쌓이는 것도 느껴지고 있었다.
‘RPG게임에서 깨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숨겨진 보스같잖아.’
밸런스 붕괴다.
‘왜 이딴 귀찮은 놈을 내가 맡아야 되지?’
힘든 일은 혼자 다하네.
이게 조별과제였으면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이름은 PPT에서 삭제하고 혼자 발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평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구를 들쳐메고 도망치더라도 탐욕스럽게 쫓아올 괴물이니.
여기서 잡아야 한다.
지구의 상황도 걱정되기는 하지만…….
‘뭐 그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일단…….’
이현은 씩 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랜만에 전력을 다하니 꽤 재미있었다.
“죽을 때까지 죽여볼까!”
* * *
타앙!
타앙!
타앙!
세 발의 총성이 도시를 가로질렀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새빨갛게 융해시키며 돌진한 총알들이 벙커를 덮치던 괴물들에 명중했다.
키에엑!
캬악!
괴물들도 건물과 마찬가지로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무너졌다.
“많군.”
명우는 총알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너무 많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괴물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중.
명우는 펄쩍 뛰어, 자리를 옮겼다.
저격수는 원래 한 자리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의 눈에 공사 현장이 보였다.
익숙한 깃발이 공사장 위에서 펄럭거렸다.
제국 주둔지.
그곳도 마찬가지로 괴물들의 습격을 맞아 치열한 사투 중이었다.
기회다.
지금 저곳으로 가면… 괴물들의 힘을 빌어 손쉽게 공사장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패배하고 감옥에 갇혔던 것으로 증오가 걷히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의 눈은 아직도 너무나 선명하게 증오를 마주하고 있었다.
‘전부 없어져야 해.’
판초우의가 펄럭이며 공사장에 가까워졌다.
그곳 또한 이미 아비규환.
촉수 괴물들을 상대로 조르그들이 맞서 싸우고 있었으나… 몇몇 장소에는 이미 침입을 허용한 상황이었다.
내버려 둬도 무너지겠지만…….
제국의 심장을 저격할 자료까지 없어지면 곤란하다.
타앙!
키에엑!
명우는 앞을 가로막는 괴물의 몸에 총알 구멍을 내어주고 공터에 착지했다.
조르그들은 괴물들을 막는 데 정신이 팔려 그에게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전부… 불타야 해.”
이딴 괴물들의 더러운 기지는 전부 없어져야 마땅하다.
그 피묻은 발로 누구의 땅을 밟느냐.
절대 용서 못한다.
하회탈 너머에서 푸른 안광이 이글거렸다.
“마미!”
그때 앳된 목소리가 울렸다.
괴물인데, 언어를 쓰고 있다. 울먹이며 소리치는 목소리.
“마미! 우아아앙! 마미!”
명우는 조용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이동했다.
건물의 잔해에 깔린 리저드맨이 보였다.
피거품을 문 상태.
명우의 눈에서 불이 확 타올랐다.
한 발 더 내디딘 순간.
잔해에 가려져 있던 작은 리자드맨들이 나타났다.
두 마리.
어처구니없게도 지구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치마를 입고 셔츠를 입은,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쓰러진 리자드맨을 울며불며 흔들고 있었다.
“흐아아앙! 마미!”
“마미!”
‘마미…….’
아마도 엄마라는 뜻일까.
저 다른 차원의 제국에 지구와 비슷한 단어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증오스러운 괴물들.
심지어 리자드맨들이다. 당장 죽여야 하는데…….
“마미!”
“아아앙!”
총이, 올라가지 않았다.
뿌득.
명우는 어금니를 부서져라 물었다.
‘웃기지 마! 너희 괴물들은 다 죽어 마땅해!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다! 내가 정확히 바라왔던 일이잖아? 상실의 아픔을 알아라. 나와 같은 증오를 느끼고, 그리고 무력하게 쓰러져. 그게 너희 괴물들에게 어울리는 벌이다.’
그때 잔해에 깔려 있던 리저드맨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리저드맨이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피거품을 문 입이 힘겹게 달싹였다.
들렸더라도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어쩐지, 무슨 말을 했을지 알 것 같았다.
‘너희들만이라도 도망가.’
“크, 윽.”
바르르 떨던 명우가 몸을 돌렸다.
그때, 촉수 괴물 하나가 잔해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명우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아앙! 아앙!”
“마미, 마미!”
‘병신들! 조용히 해!’
등 뒤에서는 계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다. 당연히 엄마를 두고 간다는 선택은 할 수 없겠지.
내버려 두면 괴물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죽일 수 있어. 그래, 차라리 잘됐지.’
키르르르.
쿵. 쿵.
괴물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잔해로 다가갔다.
“꺄악!”
“우아아!”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저 자비 없는 괴물은 아이고 노인이고 상관없이 하나같이 꿰고 짓눌렀다.
그 순간, 명우는 총을 쏘며 몸을 날렸다.
타앙!
‘뭐? 내가 뭐하는 거지?’
당황한 와중에도 몸은 신속하게 움직여 괴물을 도륙했다.
촉수를 피하면서 검으로 난도질한다.
파슉! 파슉!
촉수가 끊어지며 순식간에 괴물이 쓰러졌다.
“내가… 무슨 짓을.”
명우가 멍하니 괴물을 바라보는데…….
구오오오오!
하늘에서 지켜만 보던 거대한 괴물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명우는 뒤를 돌아봤다.
리저드맨 아기들이 엄마에게 달라붙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명우의 몸이 하늘을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