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아비규환의 도시 (3)
붉은 하늘에서 쳐다보는 눈알들.
그 사이에서 입이 벌어졌다.
부오오오…….
고래의 울음과 비슷한, 그러나 훨씬 섬뜩한 울음소리가 온 세상을 울렸다.
남우는 오싹해졌다.
‘뭔가 벌어지려 한다.’
“윽!”
갑자기 옆에서 예슬이 비틀거렸다.
어느새 하늘에서 내리쬐던 광채가 사라져 있었다.
그녀가 창백해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스, 스킬이… 강제로 취소됐어요.”
“예?”
부오오오!
다시 한 차례 소리가 들린 후.
쐐액!
쿵!
쐐액!
콰앙!
쿠구구궁…….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콰앙!
바로 옆에서 빌딩의 옥상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충격이 진동으로 느껴진다.
유리창이 인도로 우수수 떨어졌다.
“우왓!”
쿠웅!
바로 정면의 도로 한가운데가 폭발했다. 커다란 진동에 사람들이 휘청했다.
무엇인가 추락한 것이다.
곡사포 사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솟구친 파편이 온 사방에 위협적으로 튀었다.
예슬이 재빨리 앞으로 손을 뻗었다.
“홀리 실드!”
반투명한 막에 튄 파편이 총알처럼 부딪쳤다.
그녀가 막지 않았으면 군인들 몇은 아무것도 모르고 파편에 사망했을 것이다.
그때 뿌연 먼지 사이로 시커먼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거대한 촉수.
두 가닥의 촉수가 땅을 짚더니 그 너머로 둥근 그림자가 나타났다.
크르르르…….
수십 개의 촉수가 둥글게 뭉친 괴물.
미트볼같은 몸에는 수십 개의 눈이 아무렇게나 박혔다.
쉬익!
촉수가 남우의 앞을 막은 실드를 후려쳤다.
콰앙!
쩌억!
실드에 금이 갔다.
놀란 남우가 황급히 물러났다.
“이, 이거!”
쉬리릭!
공격이 막힌 것이 짜증이 났을까.
촉수 수십 개가 솟구치더니 단숨에 실드를 후려쳤다.
두두둥!
“윽!”
강한 충격에 실드를 유지하던 예슬이 무릎을 꿇은 순간.
퍼엉!
실드가 박살났다.
파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뻗어온 촉수가 군인 하나를 낚아챘다.
“으앗! 성철아!”
먹이를 낚아채는 문어처럼 가볍게 사람을 들어올린다.
군인들이 냅다 총을 갈겼다.
투두두두두두!
그러나 무용지물.
희미한 보랏빛의 장막이 총알을 막아내며 파문을 일으켰다.
촉수에 휘감긴 군인이 인형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으아아! 살려줘! 컥, 어억!”
우득, 뜨득.
촉수에 감긴 몸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웁!”
뿌직.
피의 비가 군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괴물이 허리가 접힌 채 늘어진 군인을 몸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우드득! 뿌직! 와직!
군인이라고는 해도 실전 경험은 거의 없는 이십 대의 남자들이다.
동료가 잡아먹히는 끔찍한 광경에 멘탈이 박살났다.
“으, 으아악!”
탄창이 빌 때까지 총을 쏴 갈기는 이가 있고,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이도 있었다.
어떤 군인 주저앉아 바지를 적셨다.
그 군인을 향해 다른 촉수가 뻗어왔다.
“이런, 안 돼!”
“도망치세요!”
그때 군인들의 뒤에서 뛰어오른 남우가 촉수에 검을 휘둘렀다.
퍽!
“윽?!”
엄청난 힘.
타이어를 식칼로 후려친 느낌이었다.
‘형님 말대로… 힘에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흘린다!’
남우는 칼을 비스듬히 들어 어깨에 기댔다.
휘리릭!
촉수가 꿈틀거리는 기세에 남우의 몸이 튕겼다.
“으악!”
쿵!
근처 자동차에 날아간 남우가 문짝에 등을 부딪쳤다.
“크윽!”
고개를 드는데…….
콰앙! 콰앙!
도로 곳곳에서 새로운 폭발이 일어났다.
촉수 괴물들이 폭심지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한 번 상대해보니 최소한 A급에 해당하는 괴물.
그런 것들이 셋이나…….
겁이 난다.
죽음이 가까이 왔음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따스한 초록빛이 남우의 몸을 감쌌다. 예슬의 마법이었다.
지끈거리던 통증이 사라지고 힘이 차올랐다.
“아, 성녀님!”
“저희 둘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요!”
예슬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었다.
[일곱 개의 성스러운 창]
빛이 뭉쳐 말뚝같은 형상을 이뤘다.
말뚝들이 빗줄기처럼 한 괴물에게 쏟아졌다.
두두두두!
키에에엑!
말뚝이 괴물의 몸을 찰흙처럼 꿰뚫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몸이 비틀거렸다.
질긴 생명력이다.
그때 다른 두 괴물이 예슬에게 달려들었다.
남우가 검을 들고 그 앞을 막아섰다.
온갖 보호 마법이 걸린 몸에서 힘이 넘쳤다.
‘이것이 S급의 힘.’
희망이 생겼다.
예슬이 뒤에서 외쳤다.
“방어는 제가 맡을 테니 공격에만 신경 쓰세요!”
“네!”
남우는 한 번 하늘을 보았다.
‘형님도… 베요네타 씨도 저기 어딘가에서 싸우고 계시겠지!’
더욱 힘이 넘쳐흐르는 기분이다.
‘위기일수록 침착하게.’
이현의 가르침을 떠올린 남우는 기합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키에엑!
촉수가 그를 향해 창처럼 뻗어왔다.
‘방어는 맡긴다!’
텅! 터텅!
남우의 몸이 희미하게 빛나며 촉수들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하아아압!”
내지른 검이 괴물의 몸을 꿰뚫었다.
치이익!
예슬의 힘 탓인지, 검에 닿은 괴물의 몸이 고기 굽는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으아아아!”
남우는 힘껏 검을 아래로 그어 내렸다.
콰직!
괴물의 몸이 쩍 갈라졌다.
채액을 폭포수처럼 쏟은 괴물이 부르르 떨다가 엎어졌다.
남은 건 두 마리.
남우는 힘껏 땅을 박찼다.
서걱!
콰직!
눈이 베이고 몸이 꿰뚫린 두 괴물이 스르르 무너졌다.
“허억! 허억…….”
남우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형님 덕이야.’
이현이 특훈을 해주지 않았다면… 설령 예슬에게서 힘을 받았더라도 이 괴물을 물리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띠리리리…….
그때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격하게 울렸다.
여동생, 희수의 전화였다.
“희수야?”
끊어질 듯 가는 음성이 안에서 들려왔다.
-오, 오빠… 구해줘…….
* * *
“뇌전!”
쿠르르릉!
우주 공간에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시커먼 먹구름이 몰렸다.
먹구름에서 수십 가닥의 벼락이 내리쳐 외신의 사자들을 공격했다.
키에엑!
캬악!
올림푸스의 주신, 제우스의 전력.
네 마리의 괴물이 벼락에 꿰뚫리고 탄화되어 힘없이 추락했다.
그 뒤로 열 마리의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
“젠장! 너무 많아!”
제우스는 주신의 위엄도 잊고 욕설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처리는 하고 있지만 지구에 접근하지 못하고 길항을 이룬 상태였다.
“제우스!”
아테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끝이 없어요!”
그녀의 말이 맞다.
보기에는 대등한 것 같아도… 놈들은 이미 지구를 점령한 상황.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이쪽이었다.
게다가 저 괴물들의 총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마왕은 어디 간 거야!”
“폐하께서는 적의 본진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제우스가 흠칫 고개를 돌렸다.
옷이 여기저기 찢어진 베요네타가 보였다.
‘오, 섹시한데.’
베요네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를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게이트의 안쪽.
눈에 힘을 준 제우스가 안쪽의 풍경을 보고 경악했다.
황금의 거인이, 수십이 넘는 외신의 사자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괴물들이 말 그대로 쓸려나간다.
“저… 저건 대체.”
“폐하십니다.”
저게, 마왕.
이현이라는 말인가.
제우스는 전율했다.
그조차 두셋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이 고작인 괴물들이다.
그런데 이현은 검 한 번 휘둘러 그런 괴물들을 쓸어내고 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쏟아져나온 괴물들에 올림푸스고 아스가르드고 전부 압살당했을 터.
마왕이 그들을 살려주고 있었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저 정도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나.
‘두렵구나!’
그들의 힘이 이 정도였다는 말인가.
이현이 그토록 모든 일에 초탈한 듯 보였던 이유가 이해가 갔다.
저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자가 무엇에 욕심을 낼까.
맹수가 단련하지 않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였다.
“폐하께서는 목숨을 걸고 계십니다. 당신들도 신으로서 자존심이 있다면 그에 맞는 값어치를 해주었으면 좋겠군요.”
베요네타가 휙 사라졌다. 그녀가 향한 곳에서 외신의 사자들을 상대하는 질병의 기사단이 보였다.
이미 그 주위에도 수많은 괴물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중.
제우스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콰르릉!
내리친 벼락이 손에 담겼다.
“우리가 질 순 없지!”
* * *
“하아… 하아…….”
희수는 숨이 턱에 차오름을 느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피난 매뉴얼대로 벙커에 들어갔는데…….
벙커 안에 사이비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이 벙커 입구를 강제로 열었고, 거기로 괴물이 들어오며 대량 학살이 시작됐다.
비상문으로 빠져나온 사람은 희수와 어머니를 포함해 열 명이 넘지 않았다.
“희, 희수야.”
뒤에서 어머니가 희수를 불렀다.
그녀는 땅에 풀썩 주저앉아 있었다.
“엄마!”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두고 가. 어, 엄마는 더 못 달리겠어.”
“그럼 걸어가. 우리 도망가야 해! 조금만 더 도망치자. 그럼 분명히 이현 오빠가 구하러 와주실 거야.”
희수의 부축을 받고 어머니가 힘겹게 일어났다.
“그… 마왕님이, 그렇게 강해? S급보다?”
쭉 누워만 있다가 요즘 들어 활동하기 시작한 어머니는 사회에 많이 무지했다.
게다가 직접 이현의 싸움을 본 적도 없는 탓에 이런 질문이 나온 것 같았다.
희수는 어머니를 부축하고 걸으며 끄덕였다.
“응! S급들도 상대도 안 될걸?”
“그, 그래? 대단하네…….”
“우리 오빠도 강해졌으니까. 괴물들은 다 싹둑싹둑 자르고 올 거야.”
다행히 아직 이 주변은 조용하다.
이상하게 변한 사람들이나 괴물들도 안 보였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커다란 눈알들이 보였다.
무섭다.
지옥이 도래하기라도 한 것일까.
끔찍한 광경이었다.
저 눈들에게서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안 돼.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희수는 이현을 떠올렸다.
몇 번이나 그녀를 구해준 구세주.
이번에도 이현이 도와줄 것이다.
거짓말처럼 나타나서 구해주겠지.
마치 히어로처럼.
그때 몇몇 사람들이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던 사람들이 희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예요! 여기!”
희수가 어머니와 함께 호텔에 들어갔다.
컨시어지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여기는 지금 A급 헌터 두 분이 지키고 계시니, 아무 방에 들어가셔서 안심하고 쉬세요. 배고프시면 저기, 지하에 있는 조식 뷔페 이용하시고요.”
인류애가 차오른다.
“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컨시어지가 쑥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열쇠를 받아 방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리며 맥이 쭉 빠졌다.
희수는 어머니를 침대에 앉히고 자신도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우는?”
어머니도 이제 정신이 좀 드는지 아들 걱정이 나왔다.
희수는 핸드폰을 켜보았다.
“모르겠어. 아까 전화는 했는데 다시 전화가 안 오네. 싸우는 분위기였어.”
무사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물병을 연 순간.
쿠궁!
호텔이 진동했다.
놀란 희수와 어머니가 몸을 바싹 붙였다.
방송으로 컨시어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러분! 도망치거나 숨으세요! 호텔에 괴물들이 들어왔습니다! 괴물들이… 아아악!
-으직으직.
죽음의 전주곡이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