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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26화 (126/150)

126화. 성단 연합(1)

“이것이 우리 올림푸스가 자랑하는 대계 관리 시스템, ‘가이아’요.”

거대하게 빛나는 태양계의 홀로그램.

그 위를 빨간 점들 수십 개가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이현이 그 점들을 가리켰다.

“저게 그 외신들인가?”

이미 크루엘을 통해 본 광경이라 이현은 심드렁했다.

“…그렇소. 현재 빠른 속도로 지구에 접근 중이오. 아마 일주일 정도면 도착할 것이오.”

언젠가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 빠르다.

“그 정도 속도면 그냥 지구에 갖다박아도 멸망이겠는데?”

현재 위치가 토성인데 거기서 일주일 만에 지구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다.

그 정도의 질량을 지닌 물체가 수십 개나 지구에 충돌하면 지구는 태양계에서 명왕성 다음으로 퇴출된 명예로운 행성이 되겠지.

그걸 기록할 인간이 남아있다면 말이겠지만.

헤르메스가 이현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짓은 안 할 겁니다. 외신들의 목적은 지구의 생명체들을 접수하는 것이니까요.”

“그래?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확실한 정보입니다."

혹시 이놈들도 외신들과 싸워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전력을 상향 평가해야 할 것이다.

“뭐 그럼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이만큼 확신하는 태도를 보면 그만한 근거가 있을 터.

본인들의 근거지를 지키는 데 탐색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성좌라는 자들이니까.

“놈들이 지구로 접근하기 전에…….”

제우스가 화면을 키웠다. 태양계가 확대되며 달의 이미지가 뚜렷해졌다.

“이곳, 달에서 놈들을 잡을 생각이오. 아무튼 지구에 접근하게 두어서는 안 되오.”

“놈들을 어떻게 유인하게?”

“그건 이 몸이 설명하지.”

오딘이 뚜벅뚜벅 장내를 가로질러 나타났다.

외신들을 막기 위해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라는 두 거대 성단이 연합한 것이다.

듣기로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열세 개 성단이 더 지원을 한다고 했다.

그들이 외신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느껴지는 전력이었다.

오딘이 황금색 창으로 땅을 짚고 말했다.

“달에 마법을 걸어 외신 놈들에게 지구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오. 반대로 지구는 달로 보이겠지.”

“오… 그런 게 가능해?”

“이 몸은 마법의 신이오. 물론 가능하지.”

자만하는 오딘의 옆에서 제우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놈들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포위해 섬멸하는 것이오.”

이현이 턱을 긁적였다.

“근데 점심은 언제 줘?”

“…….”

* * *

이현은 오랜만에 헌터협회에 찾아왔다.

그런데 협회에 가까이 가니, 처음 보는 인간들이 앞에서 진을 치고 팜플렛 같은 것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웬 키 큰 남자가 이현에게 접근했다. 하얀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포마드로 넘긴 머리에 손에는 성경을 들었다.

“잠시만요, 청년.”

청년이라니…….

생소해서 반갑기까지 한 호칭에 이현은 잠깐 감회에 젖었다.

아무래도 이 인간들은 교회에 빠져서 TV도 안 보는 모양이었다.

하긴 극단적인 사이비들은 TV는 물론이고 인터넷에 SNS까지 엄격하게 통제한다니…….

발을 멈춘 이현에게 남자가 근엄하게 웃었다.

“혹시 기가 좋다는 말 듣지 않나요?”

이현은 놀란 시늉을 하며 쳐다봤다.

“아니, 그걸 어떻게?”

남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걸 알고 계신답니다. 자매님께서도 저희와 합일하기를 바라고 계시고요.”

“합일? 혹시 그거 하면 내세에 영생을 누리고 행복해지나?”

“자매님께서는 높은 영성을 타고나셨군요!”

“내가 좀… 영성이 높긴 하지.”

얼마나 높은지 신도 발아래 꿇릴 지경이랄까.

“바로 맞추셨어요. 저희 합일교를 믿으시면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가 되어 영생과 구원을 얻는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자가 손을 펼치자, 그 손바닥 위에 불꽃이 일어났다.

“오, 뭐야?”

“보이십니까? 세간에는 마력이라고 불리는 힘… 이 힘은 사실 우리의 신께서 인류에게 내린 은총이시죠. 따라서 그분을 따르는 신도들에게는 이처럼 무력한 자들조차 힘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냥 흔히 있는 사이비인 줄 알았더니… 상당히 위험한 녀석들이다.

마력이라는 것은 현대 병기를 가볍게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힘. 사악한 개인에게 들어가면 그만큼 위험한 흉기가 된다.

그것을 사이비에 휘둘릴 만큼 정신이 불안정한 녀석들에게 쥐여주고, 하나의 의지 아래 조종한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했던 것 이상의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도 혹시 성좌의 개입일까? 하필 외신이 오는 이 마당에…….

아니, 이 마당이라 다른 성단들이 정신없는 지금을 호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흐음~ 그래서 그 신 이름이 뭐라고?”

남자가 검지를 세웠다.

“그분의 이름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답니다.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것은 크나큰 죄거든요.”

“무슨 볼x드x트야?”

“하!지!만! 오직 그분의 신도들은 그분의 이름을 발음하고 하나가 되는 것을 허락받았죠. 그리고 영생구원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응, 좋겠네. 근데 손에 불 피우는 게 끝이야? 뭐 더 없나?”

“후후, 물론 더 있습니다만… 저처럼 미력한 자에게 주어진 힘은 이 정도네요. 하지만 신도가 되셔서 성실히 노력하시면 당연히 훨씬 강한 힘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문득 이현의 머릿속에 명우가 스쳤다.

명우 만큼 분노에 미치지는 않았더라도… 비슷하게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이런 사이비들은 그런 사람들의 나약한 부분에 침투해 조종한다.

위험한 자들.

지금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명함 있나?”

“물론이죠.”

이현은 명함을 받고 싱긋 웃었다.

“나중에 생각나면 전화하지.”

오늘은 협회에 볼일이 있어서 온 것이다. 이놈들의 상대는 좀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협회에 들어가자, 입구에 서 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가 이현에게 다가왔다.

“마왕님? 이사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남자가 수줍게 물었다.

“저, 마왕님. 혹시…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덩치도 큰 남자가 몸을 움츠리고 물으니 약간 징그럽다. 이현은 피식 웃었다.

“그러지. 사진도?”

“아, 예!”

사인을 건네받은 그가 말했다.

“저번 멸망급 게이트 사태 때, 가족들이 다 죽을 뻔했습니다. 마왕님이 아니었다면 정말 다 죽었겠죠.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기분이 가장 좋은 순간은 역시 이런 때일 것이다. 이현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만 애쓴 것도 아니고… 당신도 사람들 구하고 있잖아. 같이 힘내자고.”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이곳입니다.”

안내된 곳은 좀 과하게 큰 회의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앉아 서류를 뒤적이던 지애가 벌떡 일어났다.

“바빠 보이는데 미안.”

“아닙니다. 마왕님께서 일이 있으시다는데 당연히 시간을 내야죠. 앉으시죠.”

긴장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꼭 해야 하는 말씀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아, 그게…….”

잠시 말을 고르던 이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놈의 말주변은 천 년을 살아도 별로 느는 것 같지가 않다.

“괴물이 올 예정이거든.”

“괴물이요?”

지애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우주에서 괴물이 올 거야. 대비해. 대충 이쪽? 아니, 저쪽 방향인가?”

손가락으로 헌터 협회의 천장을 이리저리 가리키던 이현이 쓸모없는 짓임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그런… 예언 같은 건가요?”

갑자기 이현이 찾아온 탓에 머리를 정돈하고 화장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일까. 지애는 약간 두통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직접 본 거야.”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도… 그런 두루뭉술한 이야기로는 뭘 대비하기가 곤란한데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일주일… 아, 이제 6일 뒤에 올 거야. 대충 막긴 할 건데 혹시 모르니까.”

“6, 6일이요? 급은 어느 정도 될까요?”

“급? 아…….”

잠시 눈썹을 모으고 고민하던 이현이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멸망급 열 배.”

“…예?”

농담인가?

하지만 이현이 평소 은근히 나사 빠진 모습을 보이는 인간이기는 해도, 이런 일로 농담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멸망급의 열 배나 되는 재앙이라고요?”

태양이 꺼지고 운석이 비처럼 내리는 광경이 상상됐다. 소름이 다 끼친다.

“괜찮아. 막는다니까. 뭐… 사실 나도 오고 있다는 것 외에 정확한 사실은 아무것도 몰라서. 대충 멸망급 막는 정도로 대비해둬.”

대충 멸망급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제멋대로 합쳐놨다.

“경고했으니까, 난 간다.”

“예? 아, 차… 차라도 드시죠.”

“아냐, 됐어. 아, 그렇지. 협회 근처에서 웬 사이비들이 명함 나눠주고 그러던데. 협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네, 조치하겠습니다.”

나가는 이현의 등을 향해 지애가 아쉬운 듯 손을 뻗었다가 힘없이 @축 내렸다.

* * *

“아!”

이현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도도도도 달려온 빈이가 꼬리로 바닥을 튕겼다.

뛰어오른 몸을 날개가 파닥이며 이현의 품으로 인도했다.

“빠!”

“아이구, 우리 빈이! 잘 놀고 있어쬬요?”

“아니!”

빈이가 아빠의 품을 꼭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볼이 부루퉁하게 커졌다.

“아뺘 없어서 잼 없었더!”

“아유 그래~”

붉은 눈이 이현을 가득 담았다.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던 빈이가 뜻밖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아빠가… 이제 비니랑 놀기 싫나?”

이현이 정색했다.

“헉! 아냐! 안 싫어! 우리 빈이랑 노는 게 아빠가 왜 싫겠어!”

“군데… 왜 비니랑 안 노라주지?”

“아빠가… 그랬나?”

“웅.”

작은 머리가 힘없이 끄덕였다. 빈이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왜냐면… 어제도 안 노라주구… 어제어제두 안 노라줬어… 빈이 심심해써…….”

아이에게 이틀이란 일 년처럼 긴 시간일 것이다. 최근에 제국 일에다가, 명우 일, 외신들에 대한 대비가 연속으로 겹치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다 빈이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런 사정을 빈이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아빠가 되기란 정말 어렵군.’

친구 같으면서, 나중에 ‘사랑받은 적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이현은 빈이를 안고 바닥에 앉았다.

“아빠는 빈이 많이 사랑해요. 아빠도 빈이랑 엄청 놀고 싶었어.”

빨간 눈에 초롱초롱 빛이 돌았다.

“진땨?”

“그러엄. 자, 얼른 놀까? 우리 빈이 장난감 가져오자.”

“웅!”

방으로 뛰어 들어간 빈이가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던 이현의 얼굴이, 빈이가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장난감을 보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저… 저건!’

수많은 아티팩트와 장난감이 있지만… 종족이 어떻든 여자아이라서일까.

빈이는 최근 한 장난감에 푹 빠졌다. 돌 선물로 받은 수많은 장난감 중 하나였다.

‘주주의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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