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초월자는 딸바보-111화 (111/150)

111화. 용을 삼킨 신 (4)

“너무 잘되니까 이상하네.”

이현이 사과를 크게 한입 물었다.

사각.

상쾌한 소리와 함께 즙이 터져 입가로 흘렀다. 팔뚝으로 즙을 문질러 닦은 이현이 사과를 던지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을 꺼냈다.

그것을 톡톡 치자 여러 게이트의 좌표가 나타났다. 열 개의 좌표 중 8곳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미 들렀다는 표시다.

“어디 보자… 지금까지 메타트론, 산타클로스, 타나토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헐리우드, 무사시였나.”

카오스 성단 소속 성좌는 원래 여덟.

바롱 삼디가 죽으며 일곱이 됐고, 그중 여섯의 영역을 털었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 좌표를 아는 두 곳 중 한 곳이 그놈의 영역일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놈 덕에 일이 쉽군.”

그놈이 죽고 남긴 사체에는 카오스 성단에 관한 정보를 포함해 다량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베요네타의 벌레가 수집한 정보와 대조하여 열 개의 차원 좌표를 얻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한 차원 한 차원 털어서 힘을 약화시키고, 놈들을 전면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지금 놈들은 빈이를 어딘가에 숨겨서 잡아먹을 속셈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게릴라전으로 차원을 털어대면 빈이를 어떻게 해볼 여유를 갖기 힘들 터.

당장 제국을 침공하려고 들겠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하고.

사과를 다시 크게 한입 무는 이현의 눈에,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날아오는 천사들이 보였다.

“이봐! 거기 너!”

“오, 단체 손님인가.”

사과를 뒤로 던진 이현이 손가락으로 하늘의 한 점을 콕 짚었다.

“밀어서…….”

기이잉!

그가 짚은 하늘의 한 점에 검은 구멍이 생겼다. 하늘이 검은 구멍을 중심으로 일그러지며, 몰려오던 천사들 일부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빨려 들어갔다.

“잠금 해제.”

손가락이 옆으로 이동하자, 구멍도 함께 옆으로 이동하며 몰려오던 천사들을 빨아들였다.

수챗구멍에 머리카락이 빨려 들어가듯 속수무책으로 수백의 천사가 사라졌다.

“으아악!”

“끄아아아!”

살아남은 천사들도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더 접근할 생각을 못 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경악과 공포가 혼란스러운 대열에서 훤히 드러났다.

씩 웃은 이현이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화륵!

별안간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힌 불기둥이 이현을 덮쳤다.

이윽고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수만 장의 날개로 몸을 감싼 거대한 정육면체가 하늘에서 구름을 두르고 내려왔다.

금색의 서광이 주위에 어른거리는 그 거체는 신성하면서 장엄했다.

천사들이 환호했다.

“메타트론 님이시여!”

“우리들의 주여!”

그러나…….

화르르.

불길이 폭풍에 휘말린 촛불처럼 사라지고, 이현이 다시 나타났다. 약간 그을린 것을 빼면 멀쩡했다.

“예상보다 등장이 빠르신데?”

“호호호호호!”

쏜살같이 날아온 루돌프가 이현을 치고 지나갔다.

불기둥에 직격당해 유리질화 되어 있던 대지로 교통사고를 당한 이현의 몸이 구르며 유리 조각이 폭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짝이는 유리 결정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눈이 내리듯 아름다웠다.

대지에 긴 자국을 남기고 날아오른 두 마리의 루돌프들의 뒤로 썰매가 보였다.

썰매 위에서 산타가 노호성을 질렀다.

“꿈과 희망의 공장을 파괴한 대가를 받아라!”

유리조각을 털며 일어나는 이현을 이번에는 거대한 섬광이 가로질렀다.

번쩍.

빛이 지나간 자리가 쩍 갈라지며 반듯한 협곡이 생겨났다.

새카만 망토를 펄럭이며 산타의 옆에 선 타나토스가 대낫을 어루만졌다.

“클클클… 목숨은 내가 거두어야겠다.”

협곡 사이에서 이현이 떠올랐다.

자신만만하던 세 성좌들이 다들 곤혹에 젖어 바라봤다.

완벽한 기습이라 생각했건만, 전혀 다치지 않다니?

이현이 찢어진 옷을 벗어 던졌다.

“세 놈이 전부냐?”

위이이잉!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수천 기의 드론이 떠올랐다.

드론들이 모여 마치 어린아이의 얼굴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정정. 넷입니다.]

“전에 그놈이군.”

그럼 나머지 셋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 제국을 찾고 있을 것 같은데…….

드론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인류가 꿈꾸는 문명의 총체. 인간인 당신이 이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투항하십시오.]

대답 대신 이현이 몸을 날렸다. 순간이동을 한 듯 산타의 앞에 나타난 이현이 주먹을 뻗었다.

“니들이 투항해!”

순간 불꽃의 채찍이 이현의 몸을 뒤에서 옭아맸다. 대낫이 정수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졌다.

“칫.”

뒤에서 당기는 힘을 이용해 물러난 이현의 가슴을 낫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러자 정면으로 루돌프가 뿔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뿔을 잡은 이현의 팔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흡!”

“아닛?!”

루돌프들이 번쩍 들려 타나토스에게 날아갔다. 간신히 공중에서 중심을 회복한 산타에게 타나토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방해가 될 거면 꺼져라…….”

“좀 놀란 거다! 그나저나…….”

고삐를 강하게 잡은 산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불리한 상황에서 선제공격이라니… 역시 정신 나간 놈이로군.”

“얕보지 마라.”

메타트론이 날개를 펄럭이며 21개의 눈을 깜박였다.

“놈은 바롱 삼디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죽였다. 그 힘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따악!

이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타나토스와 산타의 옆에서 공간이 깨지며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입을 크게 벌리고 나타났다.

한입에 삼킬 기세.

사악!

“미물은 나서지 말지어다.”

수평으로 휘두른 낫에 사냥개의 몸이 단숨에 반으로 갈라졌다.

이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두 개로 나뉜 사냥개가 그대로 축 늘어진 것이다. 시커먼 문자들이 사냥개의 몸을 박음질하고 있었다.

타나토스의 뼈만 남은 손이 이현을 가리켰다.

“클클… 이 몸의 낫은 설령 불사의 괴물에게라도 죽음을 부여하노라. 네놈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왕.”

이현이 턱을 긁적거렸다.

“아니, 보통 베이면 죽는 게 맞기는 하지. 그걸 뭐 대단하다고 자랑하냐.”

기이잉!

기계 소리를 듣고 이현은 재빨리 위로 몸을 날렸다. 수천 개의 레이저가 그가 있던 자리를 가로지른 후 동선을 추적했다.

메타트론이 외쳤다.

“이 영역은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해라! 여기서 놈을 잡는 게 최우선이다!”

[동의한다.]

주사위의 눈이 빛나며 스물한 개의 불기둥이 이현을 감쌌다.

하나하나가 도시 하나를 불태울 규모.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숨 막히는 열기가 퍼졌다. 엄청난 열기에 땅이 녹아 용암이 되어 흘렀다.

불꽃의 틈으로 이현이 빠져나오자 수십 개의 선물 상자가 위에서 떨어졌다.

“호호호호! 서프라이즈!”

콰앙!

선물 상자가 폭발, 거대한 얼음과 전격을 사방에 방출했다. 이현이 급히 양팔로 앞을 가리는데… 폭발이 걷힌 순간 대낫의 날 끝이 교차한 팔 아래로 들어와 있었다.

“우앗!”

후웅!

턱을 젖히고 팔을 풀었으나, 팔뚝과 턱이 베이며 피가 터졌다.

타나토스가 붉은 안광을 빛냈다.

“붉군. 인간은 인간인가.”

이현은 발차기를 날리려 했지만, 또다시 레이저빔이 아래에서 그를 노렸다.

“젠장!”

여유가 없다.

일격필살의 힘을 지닌 타나토스가 근거리를 지키고, 원거리는 메타트론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중거리는 산타가 커버하는 구도.

최근 남우와 지태가 자주 하는 게임이 떠올랐다.

‘게임이었으면 원딜이 물몸인데…….’

이놈들은 성좌. 각자 제 몸 보신할 힘은 충분히 지녔다. 그리 쉽게는 해결이 되지 않겠지.

“생각할 시간이 있는가.”

타나토스가 그의 턱을 가리켰다.

“클클클… 너는 이미 내 낫에 베였다. 죽음이 스며듦이 느껴지지 않는가?”

보통이라면 벌써 재생이 되었을 턱의 상처가 그대로. 별것 아닌 상처임에도 출혈도 심해지며 시커멓게 변색되고 있었다.

이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정도 패널티는 주지.”

“건방진 놈!”

타나토스가 낫을 치켜들더니 거리를 벌렸다. 이현의 얼굴이 위에서부터 하얗게 물들었다.

지지직!

머리카락이 타는 소리에 이현이 올려다본 순간.

화르륵!

불기둥이 내리꽂히며 이현과 함께 대지를 꿰뚫었다. 우주 궤도에서도 보일 것 같은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역시 너부터 잡아야겠다.”

새카만 꼬리를 남기며 솟구친 이현의 주먹이 메타트론의 앞에서 수십 개의 잔광을 만들었다.

터덩! 텅! 텅! 텅!

“으으음!”

주먹질 한 방에 메타트론의 몸이 킬로미터 단위로 밀려났다. 깃털이 터지고 금빛의 선혈이 튀었다.

하지만… 주먹에 느낌이 없다.

‘안 먹혀?’

흩날리는 깃털 사이에서 주사위 눈이 번쩍 빛났다.

백열이 그에게 쏘아졌다. 한 점에 집중된 에너지.

손을 내밀어 막는데… 백열에 금색과 검은색의 오오라가 섞이며 보호막이 녹아내렸다.

이현이 급히 옆으로 피했다.

파슉!

백열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큭……!”

아주 약간씩이지만 놈들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그 힘은, 다름 아닌 이현 자신의 것.

“클클클… 느껴지느냐?”

타나토스가 낫을 늘어트리고 한 손을 경배하듯이 들었다.

“네 딸의 힘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있노라.”

“…뭐?”

[당신의 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포기해라.]

네 성좌가 날아오르는데… 그들의 몸에서 금색과 검은색의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착각이 아니었나. 이현의 손이 하늘을 와락 움켜쥐었다.

가슴이 쥐어뜯기는 듯하다.

이미 빈이가 죽었을 가능성을 생각 못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성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죽음의 증거를 직면하자… 부인하고 싶었다. 분노보다 더한 슬픔과 좌절에 시야가 까맣게 졸아들며 숨이 터질 것 같았다.

게이트에 들어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쐐액!

다시 날아든 낫이 이현을 노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젖혀 피했지만,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기잉!

레이저가 이현의 가슴을 두드렸다. 옆으로 몸을 날렸지만, 한쪽 다리가 레이저에 휩쓸리며 반작용으로 술에 취한 듯 몸이 휘청거렸다.

그 가슴을 타나토스의 낫이 찔렀다.

콰직!

이현의 가슴을 장식한 검은 보석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낫이 가슴을 꿰뚫었다.

피가 흐르다 굳더니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졌다. 가슴을 중심으로 점점 검은 기운이 확산됐다.

죽음의 기운.

“커헉.”

타나토스의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이현을 보고 산타가 껄껄 웃었다.

“호호호호호! 빈이가 아빠 대신 속죄를 해준 셈 치지. 빈이가 준 힘이 그대가 부순 공장을 재건하고 앞으로 수많은 아이들의 희망이 될 것이네!”

“클클… 죽음을 목도하여라…….”

타나토스가 이현의 가슴에서 낫을 뺐다. 이현의 몸이 휘청하며 피를 토했다. 낫이 목을 노리고 높이 들렸다.

그 모습은 신화 속 죽음을 노리는 사신 그 자체였다.

“죽어라!”

“너나 죽어.”

퍼억!

날아든 주먹이 타나토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두개골에 쩍 금이 가며 타나토스의 몸이 비닐봉지처럼 날아갔다.

“끄악!”

주먹을 회수한 길가메시가 사자 갈기 같은 금발을 휘날리며 당당히 섰다.

0